279화.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한데…….
기사 밑에 셀 수 없이 달린 댓글 중 몇 개를 읽던 이소리는 궁금증 가득한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물었다.
“이게 다 혁이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네? 혁이 씨 때문에요?”
“그냥 민우를 응원해 주고 싶어서 한 일인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몇 시간 전, 촬영을 마치고 병원에 온 강혁은 구민우가 수술받기 위해 수술실로 향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영화사는 촬영을 중단했고 구민우를 기다려 주겠다고 했지만, 그와 별개로 마음 한쪽이 편치 않았다.
연예계에서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일해 온 강혁은 늘 안타까운 게 하나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안타까움을 넘어 못마땅했다.
드라마도 영화도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만들어지는 건 맞지만, 진짜 고생하는 사람들은 화면 밖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배우들을 빛나게 해 주는 스태프들부터 단 한 컷을 위해 8시간 동안 마땅한 대기실도 없이 대기하는 단역 배우들이 그랬다. 그리고 구민우처럼 목숨 걸고 위험한 장면을 촬영하는 스턴트맨들도 그랬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주목받는 건 언제나 자신처럼 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참여한 작품이 인기를 얻어 시상식에서 상을 받아도 그들의 노고를 언급하는 배우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몇 년 전, 유명한 영화배우가 그들에게 고마움을 말하면서 숟가락으로 비유해 화제가 된 적이 있었지만 잠깐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배우가 다치면 모든 포털 사이트를 비롯해 기사는 물론 TV에까지 떠들썩하게 나온다.
하지만 촬영 스태프나 스턴트맨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해도 기껏해야 기사 몇 개 나고 심지어 기사조차 나지 않은 경우도 허다했다.
강혁은 이런 게 싫었다.
특히 평소에 아끼는 동생인 구민우가 사고가 나자 그 마음이 안타까워 더 가만있을 수 없었다.
연예인이 다쳤을 때 만큼은 아니라도 누군가 그의 부상을 알고 진심으로 격려하고 응원해 주길 바랐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관리하는 SNS에 구민우와 촬영하면서 찍었던 사진과 함께 글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강혁입니다. 오늘 영화 촬영을 하던 중 또 다른 저를 연기하는 액션 배우 구민우 씨가 사고로 부상을 당했습니다.
언제나 촬영장에서 누구보다 진지하고 열심히 연기하는 민우를 위해 빨리 일어날 수 있도록 응원 부탁드릴게요. 더불어 늘 화면 밖에서 수고하는 모든 스태프들도 기억해 주세요.
-민우야 빨리 일어나서 다시 촬영 같이하자.
강혁은 단 몇 사람이라도 진심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파급력은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다.
-오빠는 어쩜 인성도 이렇게 멋져요? 팬인 게 자랑스럽다.
-역시 내 배우야. 이런 모습 때문에 내가 강혁을 좋아한다고.
-헐! 대박. 나 이분 드라마에서 볼 때마다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오빠랑 같이 영화 찍고 계셨구나. 빨리 일어나셨으면 좋겠어요.
-이분 스턴트맨 세계에서는 유명한 분이시래요. 스턴트맨분들이 진짜 힘드신데 안타깝네요.
순식간에 좋아요 버튼을 누른 사람들이 100만 명을 넘었고, 댓글 또한 몇십만 건이 주르륵 달렸다.
그리고 이 소식은 강혁의 팬클럽 회원들 귀에까지 전달됐고 그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평소에도 유기견 센터와 한부모 가정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남몰래 기부하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강혁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대놓고 공개 SNS에 글을 올릴 때는 알려지길 바라는 뜻으로 올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팬클럽 회원들은 공지를 남겨 정해진 시간에 구민우에 대한 글을 동시다발적으로 포털 사이트에 검색했다.
-구민우 배우님의 빠른 쾌유를 응원합니다.
그 글이 바로 현재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한 글이었다. 그리고 검색어를 시작으로 구민우 이름도 올라오고 기사로 이어진 것이다. 이제는 강혁의 팬클럽 회원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사고 소식을 접하고 구민우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이소리는 참았던 눈물이 다시 터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남편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비록 지금 중환자실에서 남편이 누워있지만, 사람들의 응원이 전해질 것만 같았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신경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아니에요. 전 사진 한 장이랑 글만 올린 거뿐인데 운이 좋았던 거 같아요.”
“남편이 일어나면 제가 다 말할게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시니까 분명 빨리 자리 털고 일어날 거예요.”
“그럼요. 당연하죠.”
철컥-
세 사람이 대화가 마무리될 즈음, 조연 배우인 김선호가 노크 소리와 함께 조심스럽게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로?”
“다른 게 아니라 아까 사과를 제대로 못 드린 거 같아서요. 저 때문에 민우 씨가 사고를 당한 것 같아서…….”
김선호는 본인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 위해 지금까지 계속 병실 밖에서 기다렸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민우 씨가 다치길 바란 적도 없고 그러려고 NG를 낸 것도 아닙니다. 이런 일이 생겨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요. 저한테 사과하지 마세요.”
사과하는 김선호를 향해 이소리는 확실하게 말했다.
“김선호 씨가 저한테 사과할 일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저 말고 민우 씨한테 하세요.”
“…….”
사고를 바라고 NG를 낸 게 아니라는 김선호의 말이 진짜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행동이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 솔직히 아까까지만 해도 실컷 욕이라도 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리고 배 속에 있는 행운이를 생각하면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그가 남편에게는 꼭 사과하길 바랐다.
“우리 남편 깨어나면 그때 직접 사과하세요.”
“네, 꼭 민우 씨에게 사과하겠습니다. 심려 끼쳐 드려 정말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한 김선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실을 나갔다. 그 역시 이번 일에 꽤 마음고생 한 듯 얼굴이 안 좋아 보였다.
“김선호 저 친구 영화에서 하차하기로 했어요.”
“하차요? 갑자기요?”
그러고 보니 아까 실시간 검색어에 김선호 하차라는 글이 있었다.
“뭐, 아무래도 민우한테 미안했던 모양이에요. 진짜 사고가 날 줄은 몰랐지만, 자신이 괜히 NG를 내는 바람에 일이 더 커진 것 같다고 했대요. 그래서 소속사에 하차 의사를 밝혔고 영화 제작사도 모든 사실을 알고 하차 수순을 밟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랬군요.”
“이 바닥이 원래 여론을 의식하는 일이 많아요. 김선호가 직접 말하지 않았어요. 하차는 시간문제였을 겁니다. 제수씨는 신경 쓰지 마세요.”
“네.”
그 뒤, 편의점에 갔던 시어머니가 들어와 이야기를 주고받던 두 사람은 인사를 전했다.
“시간도 늦었는데 전 이만 가 볼게요.”
“저도 가 보겠습니다. 어머님도 제수씨도 많이 놀라셨을 텐데 얼른 쉬세요. 저는 또 찾아뵙겠습니다.”
“그래요. 다들 바쁜 사람들인데 이렇게 와 줘서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안녕히 계세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철컥-
“그래도 우리 민우를 위해 이렇게 와 주니 고맙네. 참! 소리야, 너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지?”
김창희 대표와 강혁이 나가고 시어머니는 커다란 봉지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것 좀 먹어.”
“아니에요. 어머님 저 괜찮아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이거 죽이야.”
편의점에 간다고 나갔던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좋아하는 전복죽을 사기 위해 옆 동네까지 갔다 왔다.
봉지 안에는 죽뿐만 아니라 며느리가 좋아하는 음료와 간식들이 가득했다.
“너, 전복죽 좋아하잖아.”
“어머니, 저 때문에 일부러 나가신 거예요?”
“아까 너 쓰러졌다는 말 듣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그리고 너 행운이도 있잖아. 이럴 때일수록 더 잘 먹어야지.”
“어머님…….”
멀리서 사는 친정 부모님 대신 자신을 친딸처럼 아껴 주는 시부모님들이 이소리는 늘 감사했다.
“죄송해요.”
“얼래! 네가 왜 죄송해. 사고 난 게 네 탓이 아닌데 왜 죄송해. 그런 말 하지도 마. 그냥 민우가 운이 없던 거야. 그래도 이렇게 살아났으니 얼마나 감사하니.”
“어머님 말씀이 맞아요. 진짜 감사해요.”
“소리야. 네 남편이라 잘 알겠지만, 우리 민우 강한 사람이잖아. 속도 겉도 강한 사람이야. 반드시 건강 회복할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그래야 민우 보살피지.”
“네, 어머님. 이제 울지 않을게요. 어머님도 같이 드세요.”
“난 아까 먹어서 배불러. 입맛 없더라도 행운이 생각해서 먹어. 그리고 임신 축하한다. 내가 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말하네.”
시어머니는 이소리를 꼭 안아 주며 임신한 사실을 대견해 했다.
“고맙다. 아가.”
“감사합니다. 어머님.”
“어서 먹어.”
이소리는 시어머니가 사다 준 따뜻한 죽을 먹으면서 사랑하는 남편과 행운이를 위해 더욱 강해지기로 했다.
유난히도 길고 힘들었던 하루가 드디어 끝나 가고 있었다. 절망으로 시작했던 하루는 희망이라는 단어와 함께 끝이 났다.
* * *
다음 날, 오후.
간만에 오프를 쓰기로 한 태경은 예정된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전, 병동에 있는 환자들을 회진하고 중환자실로 향했다.
“민우 씨? 아까 어머님이 면회하러 오셨는데 목소리 들었죠?”
태경은 잠들어 있어 대답할 수 없는 구민우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도 날씨가 참 좋네요.”
구민우가 특별하거나 좀 더 마음이 쓰이는 환자라서 말을 거는 게 아니었다.
태경은 중환자실을 회진할 때마다 환자들에게 전부 똑같이 말을 걸고 있었다. 일종의 습관이었다.
의식이 없는 환자라 할지라도 그들이 힘을 내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 이제는 습관이 된 것이다.
“민우 씨, 살아 줘서 고마워요. 지금 잘하고 있으니까 계속 힘내 줘요.”
중환자실을 나온 태경은 의국실에 들러 의료진이 먹을 간식을 사 주고 나갈 준비를 했다.
“이 선생이랑 최 선생은 내가 말한 환자들 특별히 더 잘 챙기고 응급환자 있으면 바로 연락해. 마취가 필요하면 최동훈 선생님에게 연락하면 바로 와 주실 거야.”
“걱정하지 마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들 해.”
“네, 축하한다고 전해 주세요.”
“저도요.”
“뭘 축하한다는 거예요?”
태경이 의국실을 나가자 떡볶이를 먹고 있던 이찬희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결혼식 가시는데 당연히 결혼 축하지.”
“결혼식? 갑자기 웬 결혼식이야?”
결혼식에 간다는 최모나의 말을 이찬희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이번에는 임정숙 간호사가 거들었다.
“최선해 환자 따님 오늘 결혼식이잖아요.”
“최선해……. 최선해라. 하! 이름이 기억날 듯 말 듯하네요.”
“예전에 공사장에서 복부 관통해서 수술했던 환자요.”
“아! 맞다. 그 환자 기억나요. 함바집 대금 못 받아서 동료들이 봉고차 타고 왔던 그분이죠?”
“네, 그분 맞아요. 정확히 알고 계시네.”
“복부 관통이라니까 바로 생각나네요.”
오프를 잘 지키지 않은 태경이 오늘 오프를 자청한 것도 바로 최선해 환자 딸의 결혼식 때문이었다.
그 당시 병원에서 뱀술을 먹고 죽을 결심까지 했던 최선해는 응급 수술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때 인연으로 자신을 살려 준 태경에게 감사하며 하나뿐인 딸의 결혼식에 초대한 것이다.
오래전부터 약속했던 일이라 태경은 병원을 대표해 기쁜 마음으로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어쩐지 선생님이 아무 이유 없이 오프를 할 리가 없지.”
“그건 그런데 오늘은 결혼식 끝나고 들어오시지 말고 제대로 쉬고 오시라고 했어요. 이제부터 오프 잘 안 지키면 제가 가만 안 있겠다고 했거든요.”
“그건 수 쌤 말이 맞습니다. 선생님도 좀 쉬셔야 합니다.”
“저도 최 쌤 말에 동의해요.”
“잠깐만요! 좀 이상하지 않아요?”
뭔가를 생각하던 이찬희는 상당히 심각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뭐가요?”
“우리 선생님 말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