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82화 (282/472)

282화. 동아리

교사가 칠판에 수업 내용을 쓰며 말을 하던 그때였다.

털썩-

뒷자리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다 바닥에 쓰러지다시피 주저앉았다.

“뭐야! 왜 그래?”

“선생님, 선이 쓰러졌어요.”

“이선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아이들의 시선이 쓰러진 학생에게 집중되고,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학생이 벌떡 일어나 이름을 부르며 괜찮은지 물었다.

“이선이! 야, 이선이?”

“선이 너 괜찮아?”

교탁에 있던 선생님이 놀란 표정으로 다가가자 쓰러진 학생이 아무렇지 않게 상체를 일으켰다.

“쌤. 죄송해요. 사물함에 책 꺼내러 가다가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렸어요.”

“너, 괜찮은 거야? 너 방금 쓰러졌었어.”

“요즘 공부하느라 잠을 좀 못 잤더니 잠깐 어지러워서 그랬나 봐요. 이제 괜찮아요.”

“괜찮은 거 맞아? 확실해?”

“당연히 괜찮죠.”

여학생은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교복 치마를 털었다.

“그러지 말고 좀 누워 있어. 네가 양호실 좀 데려다주고 와.”

교사는 옆자리에 앉아 있다 여학생을 살폈던 남학생에게 말했다.

“네.”

“야! 선이야?”

교사는 남학생과 함께 교실을 나가려던 여학생을 다시 불러 세웠다.

“너 그 막대사탕 그만 좀 먹어. 아까 넘어졌을 때 잘못했으면 목구멍 찌를 뻔했어. 위험해.”

“쌤. 이 사탕 없으면 저 낙이 없어요.”

“뭔 소리야?”

“제 학업 스트레스를 줄여 주는 사탕이거든요. 주의할게요.”

여학생은 여전히 사탕을 입에 물고 남학생과 함께 교실을 나갔다.

“야!”

양호실로 향하던 남학생은 반대 방향으로 가는 여학생을 급히 불렀다.

“너 어디 가? 양호실 그쪽 아니잖아.”

“나도 알아. 전학생? 촌스럽게 무슨 양호실이야. 어디 가는지 궁금하면 따라오든가.”

“야!”

어쩔 줄 모르던 남학생은 결국 양호실이 아닌 여학생을 따라갔다.

드르륵-

여학생은 조용한 복도를 지나 번호 키로 잠겨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와.”

“여긴 어디야?”

“어디긴, 동아리 방이지.”

여학생이 동아리 방이라고 소개한 곳은 도무지 일반 고등학생의 동아리 방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가의 브랜드 PC가 여러 대 보였고 한쪽 벽에는 트로피와 상장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그건 그렇고 전학생? 계속 그렇게 서 있을 거야? 좀 앉아?”

“……아닌데.”

“뭐라고?”

“내 이름 전학생 아니라고. 전학을 온 지가 언제인데…….”

“알아. 너 이름 서준우잖아. 근데, 넌 얼굴도 잘생긴 애가 이름도 아이돌스럽냐. 너 홍콩에서 왔다고 했지?”

“어.”

“그건 그렇고 너 진짜 공부 잘하더라. 너도 의대가 목표라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너희 엄마가 모임에서 그러셨다는데? 맞다! 서준우, 너도 내일부터 우리 동아리 멤버야.”

“뭐? 내가?”

“내일 승규가 말할 거야. 내가 미리 말했다고 말하지 말고 모른 척해라.”

“…….”

“뭐야? 그 반응은? 너 우리 동아리가 어떤 곳인지 모르는 건 아니지? 다른 애들 들어오고 싶어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 우리 동아리야.”

“나 먼저 가 볼게. 선생님이 찾으시겠다.”

“안 찾으실걸?”

“뭐?”

“선생님이 너 안 찾으실 거라고. 아까 수학 표정 봤잖아. 나 걱정돼 죽겠다는 표정. 학교에서 우리 동아리 애들 터치하는 사람 없어. 교장도 함부로 못 해.”

“나 수업 빼먹으면 안 돼. 먼저 간다.”

드르륵-

“와! 뼛속까지 범생이는 또 오랜만이네.”

서준우가 동아리방을 나가자 여학생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한쪽에 있는 소파에 대자로 누워 버렸다.

“하! 진짜 미치겠다.”

여학생은 여전히 막대사탕을 입에 문 채 황홀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 * *

띠리릭-

“다녀왔습니다.”

“아들! 훌륭하게 될 우리 아들 잘하고 왔어?”

서준우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주방에 있던 엄마인 김미영이 활짝 웃으며 아들을 맞이했다.

“응. 똑같지 뭐.”

“별일 없었고?”

“나보고 동아리 들어오래.”

“동아리! 잠깐만!”

동아리라는 말에 김미영은 거실 소파에 아들을 앉히며 맞은편에 자리했다.

“설마 찬란한 동아리 거기 말하는 거야?”

“찬란한 동아리? 뭐야 그 유치한 이름은?”

“유치라니? 우리의 인생은 찬란하게 빛난다고 해서 찬란한 동아리인데. 아무튼 같은 반 선이가 있는 그 동아리 맞지? 거기 들어가고 싶어도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야.”

“엄마는 어떻게 학교 다니는 나보다 학교 소식을 더 잘 알아?”

“당연하지, 엄마가 모르는 게 어디 있어? 엄마는 준우 일이라면 다 알아.”

“근데 그 동아리 꼭 들어야 해?”

“얘가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아들이 동아리에 별 관심이 없자 지금까지 웃고 있던 김미영은 무슨 큰일이라도 난 사람처럼 놀란 표정을 지었다.

“준우야! 너 그 학교가 어떤 학교고 그 동아리가 어떤 동아리인지 몰라?”

“…….”

김미영은 금융 쪽에 종사하는 남편과 하나뿐인 아들 준우와 사는 대한민국 열혈 엄마다.

그녀는 남편이 홍콩지사에서 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기 1년 전부터 아들 준우가 다닐 학교를 물색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에서 탑3 안에 드는 대학의 의대를 가장 많이 보낸 지금의 학교를 선택했다.

부모들도 거의 대기업과 변호사 의사들이 많았고, 쉽게 말해 금수저인 자식들이 모인 학교였다.

아파트 역시 학교 아이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고급 아파트였다.

서준우는 유명 사립 고등학교인 이 학교에 전학 오기 위해 일반 인문계 학교에서 몇 달을 다니다 전학을 온 것이다.

인문계에서 전학을 올 때도 가기 싫다고 했지만, 본인을 의대 보내는 게 삶의 목표인 엄마의 고집을 꺾긴 힘들었다.

“엄마가 그 학교 왜 보낸 줄 알아? 노는 물이 달라야 하는 거야. 요즘은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아니야.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사회 나가서도 서로서로 돕는 거라고.”

특히나 학교 내에서도 유명한 동아리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쓰러졌던 여학생이 말했던 찬란한 동아리였다.

공부로 전교에서 노는 아이들이 만든 동아리로, 함께 공부하고 엄마들끼리 대학 정보를 공유하는 일종의 사모임 같은 동아리였다.

부모들 역시 학교에 상당한 금액의 기부금을 냈기에 그들의 입김이 대단했다.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고 부모들은 학교에 돈을 잘 주니 사실상 학교에서 동아리 아이들을 터치하는 선생님은 없었다.

부모들의 대단한 인맥으로 얻은 정보와 최고의 과외 선생들을 붙여 주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찬란한 동아리에 가입하고 싶어 했고 멤버들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도 높았다.

김미영은 아들이 동아리 멤버가 될 수 있도록 다른 엄마들을 초대해 밥을 대접하며 노력했다.

하지만 서준우는 엄마와 뜻이 달랐다.

너무 과한 것들은 부담스러웠기에 평범하게 지내고 싶었다.

가끔은 엄마의 이런 모습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지만 차마 내색할 순 없었다.

“준우야. 너 절대 안 한다는 소리 하면 안 돼. 그게 기회야. 알았어?”

“……알았어.”

“이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 씻고 과외 선생님 오시기 전에 얼른 간식 먹어.”

“네.”

그렇게 엄마의 잔소리가 끝나고 서준우는 긴 과외 수업을 받은 뒤 하루를 마무리했다.

며칠 뒤-

서준우가 학교 내 핫한 동아리에 가입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사이 동아리에 관해 서준우의 생각이 바뀌었다.

엄마의 말대로 과목별 최고의 과외 선생들을 붙여 줬기에 공부의 효율이 더 올랐다.

또한 동아리 멤버들 역시 다들 공부를 잘했기에 함께 공부하면서 서로 부족한 면을 채워 줄 수 있어 괜찮았다.

그리고 가장 좋은 건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에 대한 시선이었다.

동아리 멤버가 되니 아이들의 관심이 어마어마했고 다들 자신과 친해지기 위해 말을 걸었다.

게다가 학교 선생님들까지 친절하게 대해 주니, 마치 자신이 뭐라도 된 것만 같았다.

철컥-

“하이! 친구들~ 우리 왔다.”

일주일 전 교실에서 쓰러졌던 여학생 이선이가 서준우와 함께 과외를 하는 오피스텔로 들어오며 인사했다.

동아리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근처 오피스텔에 모여 과외를 받고 있었다.

“다들 모의고사 잘 봄? 이번에 빡세게 나온다더니 좀 어렵더라.”

“그럭저럭 선방했지. 너랑 준우는?”

“난 점수 유지고 준우는 전학 오고 첫 모의고사인데 우리 반 1등 했다.”

“와! 서준우 머리 개또라이급이네. 대단하다.”

“아니야. 이번에 운이 좋았어.”

“윽! 잘난 놈이 겸손하면 재수 없다.”

“그거 인정!!”

“알았다. 쏘리. 내가 잘나서 시험을 잘 본 거야. 됐지?”

“인간미 넘치고 훨씬 낫네.”

“얘들아, 오늘 과외 쌤 모의고사 문제풀이 하겠지?”

“그럴걸? 쌤이 틀린 개수대로 숙제 낸다고 했는데.”

“아! 이번 모의고사 망했는데. 집에 가면 엄마 잔소리에 숙제까지……. 싫다.”

“그러게 누가 시험 망치래?”

“이 자식 말하는 거 보소. 누가 망치고 싶어 망치냐?”

“그게 바로 평소 실력이다.”

“잘났다. 시험으로 인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야겠다. 패치 남은 거 있으면 나 한 장만 주라.”

“없어. 사탕이나 빨아.”

“매정한 놈. 그래! 사탕이나 빨아야겠……. 어라!”

소파에 누워 시험 이야기를 하며 사탕을 찾던 남학생이 말끝을 흐리며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아! 시x. 내 사탕? 야! 누가 내 사탕 가져갔냐? 이선이 네가 또 가져갔지?”

“뭐래! 나 아니거든.”

“이거 아니야?”

모의고사 시험지를 보던 서준우가 테이블 밑에 떨어진 사탕을 집으며 말했다.

“맞아! 내 사탕! 패치도 떨어지고 그거 하나 남은 건데……. 준우 땡큐.”

남학생은 누워 있던 소파에서 일어나 서준우가 건넨 사탕을 움켜쥐며 감격스러운 표정까지 지었다.

“근데 나 궁금한 거 있는데……?”

“조용한 준우 입에서 궁금하다는 말이 다 나오고 신기하네. 뭔데?”

“그 사탕 무슨 사탕이야?”

서준우는 친구가 들고 있는 사탕을 가리키며 물었다.

일주일 전 쓰러졌던 이선이를 비롯해 다섯 명의 동아리 아이들은 며칠에 한 번씩 다들 똑같은 사탕을 물고 있었다.

친구들 입에 물려 있는 저 사탕이 탐나거나 먹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흰색 막대에 꽂혀있는 작은 덩어리는 일반적인 사탕과는 그 생김새가 조금 달랐다.

그러다 보니 도대체 저 사탕이 뭔가 싶었다.

‘아들? 너 이제부터 젤리 먹지 마.’

준우는 이 학교로 전학이 결정된 날 엄마가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어느 날 공부하고 있는데 엄마가 들어와 책상에 있던 젤리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이다.

‘갑자기?’

‘단 거 너무 많이 먹으면 두뇌 회전에 방해된대. 아까 엄마가 들었는데 이쪽 학교 애들은 이런 젤리나 사탕도 아무거나 안 먹는다고 하더라. 무슨 유럽 왕실에서 먹는 몸에 좋은 간식만 먹는대.’

‘아! 엄마 진짜 오버야. 난 그런 것만 먹고 못 살아.’

서준우는 순간 그때 엄마가 말했던 몸에 좋은 사탕이 저 사탕인가 싶었다.

“승규야. 준우가 사탕을 궁금해하는 거 같은데?”

남학생의 말에 한쪽에서 시험지를 보고 있던 동아리 리더인 고승규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준우야, 궁금해?”

“당연히 궁금하지. 준우 우리 동아리 들어온 지 벌써 일주일이나 됐잖아.”

“찬성아. 나 너한테 질문한 게 아니라 준우한테 한 건데…….”

“어, 그러게. 미안.”

차분하게 퍼지는 고승규의 한 마디에 세상 까불던 친구가 슬며시 눈치를 보며 머쓱 해했다.

“친구끼리 미안하긴. 듣고 보니 궁금할 법도 하네. 준우야?”

“어?”

“저 사탕이 뭔지 알고 싶어?”

상냥한 말투의 고승규는 마치 때 묻지 않은 서준우를 유혹하는 타락한 뱀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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