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화. 어디서 사는 거야?
“저 사탕이 뭔지 알고 싶어?”
상냥한 말투의 고승규는 마치 때 묻지 않은 서준우를 유혹하는 타락한 뱀과 같았다.
“알려 줄까?”
“뭐, 특별한 사탕이야? 뭔데?”
“매우 스폐셜하긴 하지.”
애매한 답을 한 고승규는 서준우를 보며 싱긋 웃더니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선생님 저, 승규에요.”
-알지. 우리 승규.
전화를 받은 사람은 동아리 아이들의 많은 과외 선생 중 한 명으로 오늘 수업을 맡은 사람이었다.
-승규가 선생님한테 전화를 다 하고 어쩐 일이야? 오늘 모의고사 봤지? 아까 뉴스 봤는데 요번에 아주 어려웠다고 하더라. 다들 괜찮았…….
“저기, 선생님.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드릴 말이 있어요.”
-죄송하다니 그런 소리 하지도 마. 뭔데? 말해. 승규야.
“다름이 아니라 급한 일이 생겨서 아무래도 오늘 과외 수업받기는 힘들 거 같아요.”
분명 과외받기 위해 오피스텔에 와서 시험지를 보고 있는데 수업을 못 한다니. 서준우는 고승규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리둥절한 준우와 달리 나머지 아이들은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태연했다.
“아이들이랑 같이 수행평가 때문에 중요한 인터뷰하기로 했는데 그 인터뷰가 오늘 급하게 잡혔어요.”
-그래? 그런 일이 생겼으면 어쩔 수 없지. 수행평가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데.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승규네가 직접 전화를 걸었는데 오죽 급한 일이면 그랬겠니.
누가 선생님이고 누가 학생인지 전화기 너머 과외 선생은 고승규에게 무한 신뢰를 보이고 있었다.
서준우를 뺀 나머지 아이들은 이 상황이 재미있는지 다들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선생님도 바쁘실 텐데 사정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내 일이 너희들 일인데 언제든지 편하게 얘기해. 모의고사는 다들 잘 봤니?
“저번이랑 비슷한 거 같아요. 제가 이따가 애들한테 단톡방에 오답 노트 풀이해서 올리라고 할게요.”
-그래, 고맙다. 승규야. 그럼 오늘 못한 수업은 다음 시간에 채워서 하는 거로 하자.
“네, 선생님. 항상 감사합니다. 그리고 엄마가 좋은 고기가 들어와서 선생님 댁으로 보내 드렸다고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항상 감사하다고 꼭 전해 드려.
“네, 들어가세요.”
“역시 승규가 전화하니까 과외 쌤 그냥 프리패스네.”
“다들 들었지?”
전화를 끊은 고승규가 한마디를 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들이 각자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르륵-
“준우야, 뭐 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하는 아이들 틈에서 어리둥절한 서준우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자 고승규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가자.”
“가다니? 어딜 가는 건데? 우리 과외 안 해?”
“과외 방금 쨌잖아. 궁금증 해결하러 가야지.”
“궁금증?”
“계속 서 있지 말고 일단 따라와. 내가 신세계를 보여 줄게.”
“…….”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서준우는 할 수 없이 고승규를 따라 나갔다.
오피스텔을 나온 아이들은 택시 두 대를 나눠 타고 10분 거리에서 내렸다.
“잠시만!”
택시에서 내린 고승규는 이선이를 부르더니 가방에서 작은 봉투를 꺼내 건넸다.
“선이야? 이거.”
“오케이. 오늘은 나지? 갔다 올게.”
봉투를 건네받은 이선이는 다짜고짜 건물로 들어가더니 금방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교복 대신 흔한 츄리닝을 입었고 모자와 선글라스 거기에 마스크로 얼굴을 완전히 가렸다.
-띵동 띵동
곧이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보이스톡 벨소리가 울리자 고승규가 생전 처음 보는 핸드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것도 음성변조 버튼을 눌러서 통화했다.
“여보세요? oo 고등학교 파랑오솔길 씨? 네, 곧 갈 테니까 거기서 기다리세요.”
“도착했대?”
“어. 신분 확인하고 줘.”
“당연하지. 걱정 마. 갔다 올게.”
완벽하게 분장을 한 이선이는 고승규가 건넨 봉투를 들고 근처에 있는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더니 금방 돌아왔다. 그리고 가져갔던 봉투를 다시 고승규에게 건넸다.
“수고했어. 가자.”
그렇게 아이들의 알 수 없는 행동으로 서준우의 궁금증이 점점 더 쌓여 갈 즈음 어느 건물로 다 함께 들어갔다.
가장 높은 층에 내려 현관 도어락을 열고 들어온 내부는 과외를 하는 오피스텔보다 모든 것이 고급스러웠다.
인테리어는 물론 비싼 게임기와 영상을 보기 위해 고급 프로젝터부터 한쪽에는 바 형식의 일자 테이블도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구하지도 못하는 리셀가 천만 원짜리 운동화가 바닥에 가지런히 쭉 놓여 있었다.
“우리 아지트에 온 환영한다.”
어리둥절한 서준우를 보며 고승규는 웃으며 말했다.
“어때 죽이지?”
“여기가 뭐 하는 곳이야?”
“말 그대로 우리 아지트이자 사무실이라고나 할까?”
“사……무실?”
“응. 사실 우리 동아리 애들끼리 작은 사업을 하고 있거든.”
“너희가 사업을 한다고?”
“그렇게 놀라지 말고 이쪽으로 와 볼래?”
같은 한국말인데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은 서준우를 보며 고승규가 한쪽 구석에 있는 사물함으로 데려갔다.
띠띠띠띠-
“이거 뭔지 알지?”
“아까 선이가 가져갔던 봉투 아니야?”
“맞아.”
“……!”
무슨 사업이며 이선이는 왜 갑자기 변장했고 전화를 받은 고승규는 왜 목소리 변조까지 했는지 물어보려던 서준우는 열린 사물함을 보자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놀랐지? 다들 처음에 딱 그런 반응을 보이더라.”
사물함 안에는 만 원짜리 돈다발이 빼곡히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한눈에 봐도 그 액수가 어마어마하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가 사업 아이템으로 번 돈이야. 선이는 아까 고객에게 물건을 주고 그 값을 받아 온 거고.”
“뭘 파는 건대?”
“이거?”
고승규가 내민 사업 아이템이란 서준우가 궁금해했던 사탕과 투명한 스티커였다.
“그게 도대체 뭐야?”
“뭐, 쉽게 설명하자면 공부에 지친 고객들에게 선사하는 일종의 마법이라고 할까?”
“알아듣게 설명해.”
“준우 너 공부하다가 스트레스받은 적 없어? 가끔 뭐든 게 짜증 나서 도망치고 싶다거나 가슴이 답답하거나 그냥 다 싫고 다 귀찮고 그럴 때 없어?”
있다. 당연히 있었다.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성적에 상관없이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면 스트레스를 받는 건 누구나 똑같을 것이다.
특히 서준우는 더 그랬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말을 잘 듣는 착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지만, 사실 부모님의 기대와 달리 서준우는 의대에 가고 싶은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진짜 되고 싶은 건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였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오로지 자신을 의사로 만들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붓고 있던 부모님에게 이런 사실을 말할 순 없었다.
점점 더 의대를 향해 걸어가는 자신을 볼 때마다 이게 맞는 삶인지에 대한 고민과 답답함이 뒤엉켜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었다.
“있어.”
“당연히 있지. 나도 너도 여기 모인 우리뿐만 아니라 이 근처 소위 공부 좀 한다는 있는 집 자식들은 다 비슷할걸. 그래서 우리도 뭔가 출구가 필요하지 않겠어?”
“…….”
“막말로 우리가 부모님을 피해 도망을 갈 수가 있겠어? 아니면 마음 편히 놀 수가 있었어. 그렇다고 공부를 때려치우고 막살 수도 없잖아? 그럴 때 이걸 하는 거야.”
“그걸 하면 어떻게 되는데?”
“스트레스를 없애 주고 구름 위를 걷게 해 주지. 쉽게 설명해서 게임으로 치면 힐러가 주는 마법 템이라고 할까.”
“뭐라고?”
“농담 같지?”
“진짜야.”
“나는 하늘을 나는 거 같던데?”
“난 꿈속을 걷는 기분. 한마디로 기분이 좋다는 거지. 크큭!”
못 믿겠다는 서준우의 말 뒤로 이선이를 비롯한 동아리 아이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어쨌든 일반 사탕과 스티커는 아니라는 거네.”
“그렇지. 쉽게 구할 수도 없고 일종의 리미티드 에디션 같은 거지. 우리는 이걸 주변 학교 또래 친구 중에 판매하고 값을 받는 거야. 대신 원한다고 다 이걸 살 수 있는 건 아니고 집안이 확실하고 우리와 수준이 비슷한 그런 애들한테만 팔아.”
“왜?”
“그래야 문제가 안 생기니까. 개나 소나 다 주면 꼭 문제가 생기거든. 아까 선이가 변장하는 거 봤지? 우리는 사는 애들이 누군지 알 수 있어도 사는 애들은 우리가 누군지도 몰라.”
자신 못지않게 모범생 이미지가 강했고 선생님들 사이에서 신뢰가 두터운 고승규가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학교에서 느껴지는 그의 이미지는 여기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거래는 반드시 현금으로 하고 벌어들인 돈은 여기 보다시피 사고 싶은 거 사고 가끔 놀 때 사용해. 그리고 목표 액수가 모이면 똑같이 나누는 게 우리 규칙이야. 참고로 가격은 스티커는 300만 원이고 사탕은 100만 원이야.”
“뭐라고?! 말도 안 돼. 무슨 사탕이랑 스티커가 그렇게 비싸!”
터무니없는 액수의 서준우의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다.
“그러니까 내가 아까 구름 위를 걷게 해 주는 마법 템이라고 했잖아.”
“근데 너희 다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걸 하는 거야?”
서준우는 문득 뭐 하나 부족한 거 없는 애들이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 싶었다.
“너무 안일한 소리를 하네. 우리나라 재벌들이 돈이 없어서 사업하는 건 아니잖아?”
“…….”
“놀라긴. 이건 그냥 멋있어 보이려고 한 소리고, 사실 우리가 손에 쥐는 건 돈이 아니야. 자유지. 준우, 너 부모님께 용돈 받아?”
“아니. 카드 써.”
“나도 그래. 다들 부모님이 주신 카드 쓰지. 근데 아무리 한도 없는 카드라고 해도 먹는 거 하나 편하게 살 수 있는 게 없어. 우리 부모님은 내가 없는 것까지 전부 다 관리하고 계시거든. 뭐 하나 자유로운 게 없어.”
그건 서준우 역시 사정이 비슷하긴 마찬가지였다.
먹고 싶은 음료를 하나 사도 바로 엄마에게 알림이 뜬다. 그리고 전화가 온다.
‘준우 너 또 xx음료 사 먹었니? 엄마가 성분 안 좋다고 그런 거 먹지 말랬지? 머리 나빠진다니까.’
‘준우야? 너 학교 끝났는데 왜 안 오니? 어디 간 거야? 내일 토요일이라 테니스 레슨 있는 건 알지? 빨리 와.’
먹는 거 입는 거 일거수일투족이 부모님께 실시간으로 보고되다 보니 하고 싶은 걸 살 수도, 먹을 수도 없었다.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살고 있으니까 우리도 숨 쉴 구멍 하나쯤은 있어야 하잖아. 그게 이거야. 스티커랑 사탕은 우리한테 그런 존재야.”
“그건 승규 말이 맞아. 머릿속에 가득한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 준다고나 할까.”
고승규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서준우는 스트레스가 없어진다는 게 가능한가 싶었다.
“도저히 못 믿겠다는 표정이네?”
“어? 솔직히 말하면 좀 그렇긴 해. 너랑 애들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
“그럴 수 있어. 다들 처음에는 준우 너랑 반응이랑 똑같았거든. 자! 받아.”
고승규는 서준우에게 사탕과 스티커를 담은 봉투를 내밀었다.
“이걸 왜 날 주는 건데?”
“아무리 설명해도 이런 걸 왜 하나 싶지? 일단 한번 해 봐. 그러면 너도 우리 마음 바로 이해될 거야.”
“……!”
“한 가지 말해 두겠는데 절대 강요하는 거 아니다. 준우 너도 스트레스받는다며? 그래서 주는 거야.”
허공에서 잠시 머뭇머뭇하던 손길이 고승규가 건넨 봉투를 잡았다.
“부모님께 걸리지 말고.”
“그런데 이건 어디서 사는 거야?”
문득 서준우는 이걸 어디서 구하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바로 돌아왔다.
“병원.”
“병원? 이걸 병원에서 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