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87화 (287/472)

287화. 100배 50배 강력한 fxxxx

아이의 표정을 본 태경은 서준우가 약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 실체를 알려 주기로 했다.

“일어나!”

“네?”

“일어나서 이쪽에 앉아.”

태경은 서준우에게 손짓하며 책상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뭐 해! 얼른 오라니까.”

잠시 머뭇머뭇하던 서준우는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의자에 앉았다.

“네 말대로 진통제는 맞는데 그냥 진통제는 아니야.”

“그러면요?”

“일단 이거부터 봐.”

탁-

온라인으로 무언가 빠르게 찾은 태경은 외국 기자가 올린 짧은 동영상을 클릭하고 자막을 켰다.

화면에는 외국의 한 도시와 사람들이 모습이 나왔다. 그런데 화면에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다.

무릎을 굽히고 있는 사람, 땅에 넘어질 듯 상체만 숙이고 있는 사람, 축 늘어진 팔과 함께 땅바닥에 쓰러지듯 앉아 있는 사람 등.

뭔가 행위 예술이라도 하듯이 그들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하고 기괴함마저 느껴졌다.

마치 영화 속 괴물이나 좀비의 모습과도 같았다.

그리고 곧이어 마이크를 든 기자가 화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소식을 전했다.

-지금 이 영상을 보시는 분들은 아마 화면이 잠시 멈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시는 분도 계셨을 겁니다.

제가 미리 말씀드리지만, 화면이 멈춘 게 아닙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합성 마약에 중독되어 이런 좀비 같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손쉽게 구입이 가능한 마약성 진통제인 fxxxx에 중독된 사람들의 수가 너무 많이 생겨 경찰과 당국이 손을 쓰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탁-

동영상이 끝나갈 무렵 태경은 화면을 멈췄다.

말없이 화면을 본 서준우는 동영상에 나온 끔찍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내가 이걸 왜 보여 주는지 알겠니?”

“……아니요. 솔직히 왜 보여 주셨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

태경은 책상 위에 있는 전화기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

“임 선생님, 전데요. fxxxx 좀 갖다 주시겠어요?”

잠시 뒤-

“이거 보이니?”

임정숙 간호사가 주고 간 진통제를 꺼내 태경이 서준우에게 직접 보여 줬다.

“이게 네가 아까 그 할아버지에게 대신 처방전을 부탁했던 그 진통제야. 그리고 이 진통제가 아까 화면에 나왔던 fxxxx 이라고 부르는 마약성 진통제라고. 이제 알겠어?”

“……!”

서준우의 시선이 책상 위에 있는 마약성 진통제 fxxxx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태경이 한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게 점점 피부로 와닿기 시작했다.

“같아. 둘이 똑같잖아…….”

서준우는 고승규가 해 보라고 줬던 스티커와 사탕을 가방에서 꺼내 태경이 보여 준 것과 비교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똑같았다.

포장지는 달랐지만, 투명한 스티커와 작은 막대 사탕은 동아리 아이들이 갖고 있던 진통제와 똑같았다.

무엇보다 포장지 겉면에 빨간색 도장으로 찍힌 보기만 해도 무서운 ‘마약’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지금까지 단순한 진통제로 알고 있던 게 마약성 진통제였던 것이다.

고승규의 설명을 들으며 특이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이런 엄청난 약물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너, 이거 어디서 났어?”

서준우가 꺼낸 마약성 진통제를 본 태경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너 이거 했어? 한 거야?”

아까 도망쳤던 노인이 아픈 곳도 없이 처방받아 fxxxx을 복용해도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그 노인이 해도 문제인 약물이 아직 어린 학생의 가방에서 나오자 태경은 경악하고 만 것이다.

“이건 정말 몸이 아파서 심각한 통증의 있는 환자들이 사용하는 약물이야. 이게 얼마나 무서운 건 줄 알아? 아까 화면 못 봤어! 이게 어떤 건지 더 자세히 말해 줘?”

fxxxx은 투명한 패치와 작은 막대 사탕같이 입에 물고 있는 형태로 통증이 심한 환자들에게는 통증을 줄여 주는 약물이지만, 멀쩡한 사람이 사용하면 무서운 중독을 일으키는 위험한 약물이었다.

오한, 구토, 어지러움 등 외에도 여러 부작용이 있었고 모르핀보다 100배, 헤로인보다 50배나 강력했다.

또한 몇 번만 사용해도 중독이 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전문가와 상담하여 처방받아야 했다.

외국에서는 fxxxx의 중독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지경이었고, 또 다른 나라에서는 비상 상태까지 선포한 적도 있었다.

“아, 아니요! 안 했어요. 전 진짜 진통제인 줄 알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서준우는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만 같았고, 두려움을 느낀 눈가에는 서서히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괜찮아!”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놀랐던 태경은 두려워하는 서준우를 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제 선생님한테 이름 알려 줄 수 있어?”

“……우요. 서준우요.”

“그래, 준우야, 일단 진정하고 물 한 잔 마셔. 괜찮아.”

태경은 따뜻한 물을 따라 와 서준우 앞에 내려놓고 아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달랬다.

* * *

한편, 태경이 서준우를 달래고 있는 사이 우리병원 지킴이 장득칠은 쥐새끼처럼 병원에서 도망쳤던 노인을 찾고 있었다.

“하! 이상하네.”

뒷문과 연결된 주차장과 그 주변을 배회하며 찾았지만, 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내가 바로 따라 나왔는데…….”

“장 요원?”

때마침 소식을 접한 최 팀장이 뒷문으로 나와 노인 찾기에 합류했다.

“그 할아버지는 못 찾았나요?”

“팀장님, 그게 좀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뭐가 이상한데요?”

“거의 간발의 차이로 나왔는데 이 할아버지가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도통 보이지 않네요.”

“아니, 다 늙은 사람이 그사이에 육상 선수처럼 뛰어가진 않았을 텐데……. 장 요원이 놓친 거 아니에요?”

“무슨 소리세요. 제가 덩치 때문에 보기에는 좀 둔해 보여도 달리기는 빠르다고요. 그나저나 아까 원장님 표정이 별로 안 좋던데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좀 심각한 일이 생긴 거 같아요. 그래서 일단 그 할아버지를 빨리 찾아야 하는데.”

“하! 멀리 못 가서 이 근처 어디 있을 텐데…….”

“혹시 저쪽 재활용 수거함은 봤어요?”

“그럼요 진작 봤죠.”

캬!-

“아! 깜짝아!”

주차장 입구에서 좌우로 길가를 살피던 장득칠은 주차된 갑자기 차에서 튀어나온 길고양이 때문에 깜짝 놀랐다.

“덩치는 산만 한 사람이 고작 고양이 보고 놀라면 어떡해요.”

“덩치가 무슨 상관이에요. 그리고 저 어릴 때 동네 고양이한테 할퀴어서 고양이는 무섭습니다.”

“나비야. 너 차 밑에 있으면 다쳐! 거기 있지 말고 다른 데 가서 놀아.”

야옹! 야옹!

“너 차에 들어가면 안 된…….”

자꾸만 차 밑에서 주춤하며 울어 대던 고양이를 보던 최 팀장은 순간 머릿속에 번쩍하고 무언가 떠올랐다.

“길냥이가 배가 고픈가 보네.”

“저 고양이는 배가 고파서 우는 게 아니에요.”

“그걸 팀장님이 어떻게 하세요?”

“장 요원? 내가 포항 앞바다를 주름잡던 팔각모 사나이인 거 알죠?”

“그럼요. 우리병원에서 팀장님 해병대 출신인 건 한 번 온 환자들도 알고 있잖아요.”

“해병대가 귀신도 잡는데 사람을 못 잡겠습니까?”

“……네?”

최 팀장은 손을 들더니 고양이가 있던 근처 차를 가리켰다. 그리고 장득칠을 향해 씨익 웃으며 신호를 보냈다.

웃음의 의미는 바로 노인을 찾았다는 뜻이었다.

조금 전, 늘 있던 자리에서 놀던 고양이의 예민한 반응을 본 최 팀장은 노인이 차 밑에 숨어 있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그 노인 밑에 있다고. 밑에!!’

“……!”

최 팀장이 입 모양을 크게 벌리며 무음으로 말했지만, 장득칠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최 팀장은 핸드폰을 꺼내 장득칠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 할아버지 지금 이 차 밑에 들어가 있다고요!!!

-예! 설마 바닥에요?

-그렇다니까.

메시지를 본 장득칠이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자 최 팀장이 손가락으로 셋을 세면 노인을 확인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하나, 둘, 셋!

손가락 사인에 맞춰 두 사람이 동시에 엎드렸다. 그리고 곧이어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눈부셔!”

최 팀장이 고개를 숙이면서 차 밑으로 핸드폰 불빛을 비추자 바닥에 숨어 있던 노인이 놀란 것이다.

조금 전, 뒷문으로 도망쳤던 노인은 멀리 가지 못하고 주차장에 주차된 차 밑으로 기어들어 가 숨었다.

주변을 맴돌던 장득칠이 병원으로 들어가면 도망갈 생각이었는데, 생각지 못한 길고양이 때문에 걸리고 만 것이다.

“이보세요! 할아버지. 거기 그러고 계시면 위험해요. 얼른 나오세요.”

“난 잘못한 거 없어.”

“알았으니까 나오시라고요.”

“나가면?”

“예?”

“나가면 경찰에 넘길 거잖아? 난 잘못 없다니까.”

경찰에 끌려가기 싫었던 노인은 두 사람의 설득에도 쉽게 나올 생각이 없었다.

“이거 보세요. 할아버지? 나쁜 짓을 했으면 벌을 받는 거는 건 어린애들도 알아요.”

“안 넘길게요. 그리고 지금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았어요.”

단호한 장득칠과 달리 최 팀장은 살살 달래며 노인을 나오게 만들 생각이었다.

“진짜야?”

“그럼요. 할아버지 일단 나오세요. 계속 그러고 계시면 위험해요. 예? 나와서 저랑 천천히 대화해요.”

두 사람은 그 뒤로도 통 말을 듣지 않은 노인 때문에 한동안 바닥에 엎드려 계속 설득한 뒤, 소주를 사 준다는 말로 꼬셔서 간신히 나오게 했다.

* * *

태경은 서준우가 진정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준우야, 좀 진정이 됐어?”

“……네. 선생님?”

“어. 그래.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저는……. 정말 저 약을 하지 않았어요.”

서준우가 억울한 말투로 말했다.

고승규에게 진통제를 받은 그 날, 부모님의 잔소리로 인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던 서준우는 진짜로 약을 할까 생각했지만 결국 하지 않았다.

뭔가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승규나 아이들은 괜찮다고 했지만 썩 내키지 않았다.

“그래. 준우 말 믿어. 믿을게.”

태경은 적어도 서준우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아이의 반응을 보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준우야 근데 이 약을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친구가 진통제라고 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정말이에요. ……죄송해요.”

“친구! 지금 친구라고 했니? 친구가 너한테 이걸 준 거야?”

“네, 동아리 친구가 스트레스를 없애 주는 진통제라고 알려 줬어요.”

“왜 이게 필요한 건데? 그 친구 많이 아프니?”

“아니요. 아픈 곳 없어요. 그게…….”

잠시 망설이던 서준우는 모든 사실을 태경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까 그 노숙자 할아버지랑 동아리 애들이 돌아가면서 처방전을 받고 그 친구는 주변 학교 애들한테 스트레스 없애 주는 진통제라고 하면서 팔고 있어요.”

“뭐, 뭐라고! 네 친구가 또래 친구들한테 진통제를 팔고 있다는 거야?”

“네, 맞아요.”

모든 사실을 들은 태경은 손끝이 떨릴 정도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제 고작 18살 고등학생인 아이가 체계적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판매한다는 말이 도무지 믿어지질 않았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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