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88화 (288/472)

288화. 전문가의 도움

“세상에! 무서워라. 아오. 무서워.”

“수 쌤, 괜찮으세요?”

아까부터 스테이션에서 심각한 얼굴로 혼잣말하는 임정숙 간호사를 보며 이찬희가 물었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데 전혀 괜찮지 않네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근데 수 쌤? 아까 그 할아버지 도망가서 장 요원님이 잡으러 갔다는 건 또 무슨 소리예요?”

응급실 환자를 보느라 자세한 내막을 몰랐던 이찬희는 방금 다른 간호사에게 노인이 도망갔다는 말을 들었다.

“이 쌤? 그 할아버지 암 환자 아니래요.”

“암 환자가 아니라고요?”

“네, 옆에 있던 그 남자아이도 손주가 아니고요.”

“그 할아버지 분명 나한테 말기 암 환자고 손주랑 둘이 산다고 하면서 손주 불쌍해 죽겠다고 우는소리도 했는데…….”

“둘이 아무 사이도 아니고 할아버지가 받으려고 했던 진통제는 그 손주라는 애가 가져가려고 했던 거래요.”

“그 애가 펜xx을 왜요?”

“저도 자세한 건 아직 몰라요. 근데 확실한 건 펜xx과 아이들이 관계있는 거 같아요.”

“아니, 말도 안 돼! 수 쌤 그거 마약성 진통제잖아요?”

“그게 왜 말이 안 돼.”

환자를 보고 온 최모나가 모니터 앞에 자리하며 자연스레 대화에 합류했다.

“펜xx에 중독됐나 보네.”

“설마! 아까 걔 아직 얼굴에 솜털도 안 가신 학생이던데 어린애가 무슨 중독이야?”

“이 쌤은 가끔 보면 참 순진한 면이 있어. 약쟁이가 나이 가려 가면서 약하니?”

“그건 외국 얘기지. 여긴 한국이잖아.”

“우리나라도 돈 있고 마음먹으면 마약 구하는 거, 일도 아니야. 아까 걔도 우리 선생님 아니었으면 이 쌤이 처방전 줬을걸. 펜xx이 무슨 약인지 몰라? 우리가 더 잘 알잖아. 진통제라는 단어가 붙어서 그렇지 그거 거의 마약이나 같은 거야.”

“하! 진짜 말도 안 나온다. 기가 막혀.”

자칫 자신이 어린 학생에게 처방전을 줬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자 이찬희는 소름이 돋았다.

“아니, 요즘 애들 왜 이렇게 무섭냐?”

“누가 아니래요. 전 자식 키우는 엄마라 그런지 더 무섭고 놀라워요.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 어린애들이……. 어!”

흥분해서 말이 빨라지던 임정숙 간호사는 핸드폰 알림 소리에 화면을 보다 하던 말을 멈췄다.

“이거 아무래도 보통 일이 아닌가 보네요.”

“왜요?”

“원장님이……. 연락 좀 해 달라고 카톡 왔어요. 저, 전화 좀 하고 올게요.”

“수 쌤? 누구한테요?”

“김 경사님이요!”

임정숙 간호사는 말을 들은 이찬희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최모나를 쳐다봤다.

“야, 개모나. 들었어? 김 경사님이래. 진짜 큰일인가 봐.”

“새파랗게 어린애들이 위험한 약물에 손댔는데 큰일이지 그럼.”

“경찰까지 오면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개인적으로 난 어리다고 봐주고 이딴 거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개모나, 넌 가끔 보면 사람이 너무 냉정해.”

“넌 가끔 쓸데없이 물러 터졌고. 나 환자 보러 간다.”

* * *

이제 고작 18살 고등학생인 아이가 조직적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판매한다는 말이 도무지 믿어지질 않았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준우야, 아까 이걸 친구가 줬는데 넌 하지 않았다고 했지?”

“네. 뭔가 느낌이 좀 그랬어요.”

“그래, 잘했어. 이 약에 손을 대지 않은 건 정말 잘한 거야.”

서준우와 마주 앉은 태경은 아이의 어깨를 토닥였다.

“혹시 너에게 이걸 준 그 친구 이름이 뭔지 말해 줄 수 있니?”

“고승규요.”

“그 승규라는 친구가 동아리 리더라고 했지?”

“네, 맞아요. 실질적으로 모든 동아리 권한을 승규가 갖고 있어요.”

“지금부터 선생님이 하는 말 잘 들어.”

“네…….”

“준우야, 쉽지 않았을 텐데 전부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오늘 네가 한 일, 그리고 그 고승규라는 친구가 한 모든 일들은 불법이야.”

“…….”

서준우는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 보이는 진통제의 실체를 들은 순간 자신이 한 일과 고승규가 하는 일이 불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준우야, 선생님은 널 도와주고 싶어.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널 도와줬을 거야. 그런데 이 문제는 나 혼자서 해결할 수가 없어.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했어.”

“전문가요?”

“어. 조금 있으면 경찰이 올 거야.”

“…….”

경찰이라는 말에 서준우는 더욱 고개를 떨궜다.

“경찰이라는 말에 놀랐니?”

“……네.”

“준우야, 솔직히 말할게. 이 상황에서 눈 딱 감고 널 보내 줄 수도 있어. 그런데 선생님은 그러고 싶지 않아.”

정말 그랬다. 태경은 겁에 질려 눈물까지 보이는 서준우를 그냥 보낼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만약 이대로 그냥 이 아이를 보냈다면 아마 서준우는 앞으로는 위험한 진통제에 절대 손을 대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로 경각심을 심어 주면 무서워서라도 다시는 쳐다보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다른 애들이 마음에 걸렸다.

특히 리더라는 고승규 그 아이 때문에라도 이 문제를 지나칠 수 없었다.

준우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 아이는 이미 혼자 멈출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기에 더 많은 피해 학생들이 생기기 전에 경찰에 알리는 게 급선무였다.

“다른 아이들도 이게 잘못됐다는 걸 알아야 하고 고승규가 더는 나쁜 짓을 못 하게 막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나이가 많든 적든 사람은 잘못했으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게 맞아. 무엇보다 내가 이대로 널 눈감아 준다면 선생님 생각에는 준우 너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거 같은데, 선생님이 잘못 생각한 거야?”

“아니요. 선생님 말씀이 다 맞아요.”

모르고 한 일이지만 잘못한 건 잘못한 일이었기에 서준우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

“죄송해요.”

그 뒤 태경은 준우가 물어본 개인적인 문제들을 상담해 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 경사가 병원에 도착했다.

대충 상황을 전해 들은 김 경사는 먼저 장득칠이 의국실에서 지키고 있던 노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함께 온 후배에게 서준우가 갖고 있던 증거품을 챙겨 노인을 경찰서로 데려가라고 지시했다.

도주의 우려가 있었기에 경찰서에서 조사하기 위함이었다.

“난 잘못 없다니까……. 나는 약 만 타다 준 거야. 판을 짜는 놈은 그놈이야! 키 큰 놈이 문제라고!”

“할아버지, 그게 잘못이고 불법이라는 거예요. 일단 서에 가서 말씀하세요.”

그 뒤, 태경과 대화 후 김 경사는 서준우로부터 모든 사실을 정확히 전해 들었다.

그 역시 경악스러움을 금치 못했지만, 티를 내지 않고 사건에 중심에 있는 고승규에 대해 질문했다.

“준우야. 혹시 고승규라는 친구가 일진이나 그런 친구니?”

“아니요. 우리 학교는 그런 애들 없어요. 다들 좋은 대학 가는 데 목숨 건 애들이라 공부 쪽에 관심이 많아요. 그리고 걔가 우리 학년 전교 일 등이에요.”

들을수록 기가 막힌 고승규 이야기에 김 경사는 어이가 없었다.

“준우야. 이게 엄청 큰 사건이거든. 근데 준우의 도움이 좀 필요한데 도와줄 수 있겠니?”

“네, 도와드릴게요.”

도주 우려가 없고 직접적인 잘못인 없는 서준우는 일단 김 경사와 함께 집으로 가기로 했다.

“준우야. 아까 선생님이 한 말 잊지 말고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와. 알았지?”

“네, 선생님.”

“우리 또 보자.”

탁-

태경은 차에 탄 서준우에게 인사를 전하며 밖에서 잠시 김 경사와 대화를 나눴다.

“김 경사님. 준우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일단은 집에 가서 부모님께 사실을 알려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내일 증거 수집도 하고 제대로 수사가 진행될 겁니다. 원장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죠?”

경찰 일을 하면서 별별 일을 다 겪었던 김 경사도 놀란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만큼 이 문제는 심각한 사건이었다.

“여기가 미국도 아니고…….”

“저도 아직도 어이가 없어요.”

“원장님? 제가 잘 몰라서 그런데 원래 이런 마약성 진통제를 아프다고 하면 아무나 막 주고 그럽니까? 이렇게 쉽게 처방할 수 있는 거예요?”

“네, 현실적으로 처방이 어렵지 않아요.”

전문 의료인인 태경도 그 부분이 안타까웠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세계적으로도 좋은 건 사실이었지만, 분명 개선될 부분도 있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진료를 보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

의사들은 짧은 시간 동안 환자 한 명을 봐야 하기 때문에 오늘처럼 아픈 사람인 척 작정하고 속이면 그걸 확인할 방법이 없다.

물론 좀 더 주의 깊게 확인하면 알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진료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특히나 통증은 눈에 보이는 지표가 아니기 때문에 고승규같이 그런 점을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태경은 다른 것보다 펜xx 같은 위험 약품인 마약성 진통제는 미성년자들에게 처방할 수 없도록 관련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예전부터 몇몇 의료인들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아직까지 바뀌는 부분은 없었다.

“이렇게 아이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속이 답답합니다.”

“김 경사님 모쪼록 준우 잘 부탁드릴게요.”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원장님, 또 뵙겠습니다.”

서준우는 김 경사의 차를 타고 평소보다 조금 늦게 집에 도착했다.

철컥-

“저 왔어요.”

“준우야. 너 왜 늦게 온 거야? 엄마가 전화랑 카톡 했는데 못 봤어? 동아리 애들이랑 있었어?”

“엄마. 손님이 오셨어.”

“손님? 무슨 소리야. 이 시간에 손님이라니?”

“들어오세요.”

서준우가 현관문을 열어 주자 집으로 들어오는 김 경사를 보며 엄마는 깜짝 놀랐다.

“누구세요? 준우야, 이분 누구시니?”

“밤늦게 정말 죄송합니다. oo 경찰서 김호민 경사라고 합니다.”

김 경사는 놀란 표정을 짓는 서준우 엄마에게 명함을 건넸다.

“경찰이 왜 우리 아들이랑 같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곧이어 서재에 있던 서준우의 아빠도 현관으로 나와 물었다.

“마약 관리법 위반 사건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마, 마약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준우가 마약이라도 했다는 말인가요?”

“아니요. 서준우 학생이 한 게 아닙니다.”

순간 깜짝 놀랐던 부부는 김 경사의 말에 안심하며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게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없애 주는 진통제로 알고 있던 마약성 진통제입니다.”

사건의 전말을 들은 부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만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엄마는 아들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엄마 들어갈게.”

철컥-

“준우야, 너 괜찮아?”

“괜찮아요.”

“밖에 형사 아저씨가 한 말 사실이야?”

“네, 저도 몰랐어요. 죄송해요.”

서준우는 잔뜩 풀이 죽어 사과했다.

“준우야, 엄마 봐. 너 정말 안 한 거 맞지?”

“정말이야. 엄마. 난 저렇게 위험한 건지 몰랐어.”

분명 잔소리와 함께 엄청 혼이 나겠구나 싶었다.

본인이 잘못한 일이기에 혼나도 당연히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의 이상한 소리가 서준우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지금부터 엄마 말 잘 들어.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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