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89화 (289/472)

289화. 여우 새끼

분명 잔소리와 함께 엄청 혼이 나겠구나 싶었다.

본인이 잘못한 일이기에 혼나도 당연히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의 이상한 소리가 서준우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지금부터 엄마 말 잘 들어. 너 이번 일 모른 척해.”

엄마는 침대에 걸터앉은 서준우의 옆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작게 말했다.

“대충 형사님이 얘기하는 거 들어 보니까 승규가 문제라는 거잖아. 너한테 물어보면 넌 모른다고 해.”

“그게 무슨 소리야. 벌써 형사님한테 다 이야기했어.”

“그러니까 왜 그런 말을 엄마, 아빠랑 상의도 없이 먼저 말을 하고 그래.”

“엄마…….”

“앞으로 또 물어보면 기억 안 난다고 하고 승규에 관한 것도 무조건 모른다고 하라고. 내일 엄마가 변호사한테 이야기해서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지…….”

“엄마, 잠깐만!”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서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엄마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지금 승규의 잘못을 덮으라는 거야?”

“덮으라는 게 아니라 그냥 모른 척하라는 소리야.”

“그게 그 소리잖아.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왜긴! 너한테 괜히 불똥 튈까 봐 그러지.”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불똥이 튀어. 나도 애들도 다 그 자식한테 속은 거라고! 그리고 잘못한 게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하잖아.”

“아니, 얘가 왜 그렇게 흥분하고 그래. 넌 잘못한 게 없는데 무슨 책임을 진다는 그런 소리를 하고 그래.”

“엄마!”

“조용히 해. 밖에 형사가 다 듣겠다. 엄마가 괜히 이러는 줄 알아?”

서준우의 팔을 잡아, 자리에 앉힌 엄마는 진짜 이유를 말했다.

“오늘 승규 엄마가 집에 왔다 갔어.”

“승규네 아주머니가 왜? 이번 일 아신 거야?”

“그런 게 아니라. 준우 너, 대치동 곽 선생 알지?”

곽 선생이란 인물은 소위 말하는 1타 강사로,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과 학부모들은 거의 알고 있는 유명인이었다.

“승규네 엄마가 너희 동아리 애들 과외 선생으로 그 사람을 섭외했어. 그 선생께 배우면 무조건 점수도 오른다잖아. 아주 어렵게 섭외했는데 이 기회를 놓칠 거야?”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부모의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일이 아니었다.

현실은 이보다 더 심했고, 입시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에서는 매년 반복되는 일이었다.

“제발 그만 좀 해 엄마. 지금 이게 얼마나 심각하고 잘못된 일인지 몰라?”

“엄마는 남의 자식 일보다 내 자식 일이 더 중요해.”

“범죄라고! 고승규가 한 일 범죄란 말이야!!”

철컥-

“이게 다 지금 무슨 소리야!”

두 사람의 다투는 소리에 아빠가 방문을 열자 흥분한 서준우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준우야!”

“서준우? 준우야, 어디 가?”

부모님이 부르는 소리에도 대답하지 않던 서준우는 거실로 나와 갑자기 TV 전원을 켰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잠깐이면 돼요. 두 분 이것 좀 보세요!”

서준우가 TV로 튼 영상은 병원에서 태경이 보여 줬던 마약성 진통제에 관한 영상이었다. 준우는 부모님이 볼 수밖에 없도록 볼륨을 높였다.

“아빠, 엄마! 고승규가 나랑 애들한테 준 약물이 바로 저거예요.”

“준우 군 말이 맞습니다. 적은 양에도 중독이 심한 마약성 진통제로, 외국에서는 매년 수많은 사람이 저 약물로 인해 사망하고 있습니다. 두 분께서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셨겠지만, 이건 엄연) 범죄행위입니다.”

“엄마 들었지? 이래도 모른 척해? 그리고 난 1타 강사 과외 필요 없고 내 양심을 속이면서까지 의사 되고 싶지 않아. 난 엄마 아들이지 엄마 인형이 아니잖아.”

“……!”

생각지 못한 아들의 발언의 엄마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굳어 버렸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기 뜻을 거스른 적이 없었기에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형사님, 이번 일은 우리 가족이 협조할 일이 있으면 협조하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이만 가 주시겠습니까?”

“네, 늦은 시간 실례 많았습니다. 그럼 내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김 경사가 돌아가고 서준우는 아빠의 말을 듣고 방으로 들어갔다.

“준우는 좀 어때요?”

“생각보다 괜찮아. 그보다 당신은 괜찮아?”

“모르겠어. 준우 저런 모습 처음 보니까 좀 놀랍기도 하고 그러네.”

“당신도 놀랐을 텐데 일단 마음 좀 가라앉히고 준우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고.”

“여보? 그렇게 말하면 나 서운해. 난 지금까지 준우를 위해서 그런 거야.”

“알지. 당신 노력한 거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런데 아까 준우가 소리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과연 우리는 준우의 의견을 물어봤는지 싶어.”

“그거야 지금까지 한 번도 싫다고 한 적 없었잖아. 뭘 시키든 늘 잘 해냈으니까. 난 준우도 원한다고 생각했어.”

“맞아. 그런데 정작 부모라는 우리가 준우의 마음을 몰랐던 거 같아.”

“…….”

“시간도 늦었는데 일단 자. 그리고 당신 고승규인가 그 친구 엄마랑 친하게 지내지 마.”

가족 모두에게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집안의 가장인 아빠는 일단 각자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아내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 * *

다음 날-

서준우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일부러 동아리 방에 가지 않았다.

“준우야? 동아리 방 놀러 가자.”

“미안. 나 수학 문제 풀이할 게 남아서.”

중간중간 이선이가 같이 가자고 했지만, 공부 핑계를 대며 가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과외가 끝난 뒤, 서준우와 아이들은 아지트로 자리를 옮겼다.

“준우야, 너 오늘 왜 동아리 방에 안 왔어?”

“준우 공부하느라 바빴어.”

“이선이, 네가 준우 여친이냐?”

“뭐래, 그냥 말해 준 거야.”

“선이 말이 맞아. 문제 풀이 때문에 바빴어.”

“역시 우리 동아리 최고 모범생답네.”

“그런 거 보며 놀 거 다 놀고 전교 1등 하는 승규가 진짜 대단한 거야.”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다. 난 학교에서 안 할 뿐이지 집에서 공부 많이 하거든. 그건 그렇고 준우야. 어제 힘들지 않았어?”

고승규가 사물함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아니, 생각보다 간단하던데?”

“그렇지? 그게 그렇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니까. 한번 해 보면 별거 아니야. 그냥 진통제라 문제 될 것도 없고. 그럼 별일 없이 잘 마무리된 거지?”

고승규의 질문에 답을 하려던 서준우가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탁-

“야! 너 뭐 하는 거야?”

그러더니 한쪽에서 사탕 형태로 된 펜xx 진통제를 입에 넣으려던 친구의 진통제를 낚아채 쓰레기통에 던졌다.

“앞으로 이거 하지 마!”

“그걸 왜 버려!”

진통제를 버린 서준우에게 친구가 소리치던 그때 사물함을 확인한 고승규가 서준우를 불렀다.

“준우야, 진통제가 없네? 여기에 둔 거 아니야?”

“그러게, 진통제가 어디에 있을까?”

서준우는 고승규에게 다가가며 되물었다.

“무슨 소리야. 어제 네가 병원에 갔잖아. 승훈이 진통제도 쓰레기통에 버리고 갑자기 왜 그래?”

“준우 너 좀 이상하다.”

“장난하지 말고 진통제 어디 있는지나 말해.”

“승규야. 내가 뭐 하나 물어볼게. 그게 정말 단순한 진통제 맞아?”

“어. 맞아.”

“그래? 내가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진짜 맞아?”

“그렇다니까.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뭐 하긴. 네 거짓말을 밝히려는 거지.”

심기가 불편해진 고승규가 슬슬 짜증을 냈지만, 서준우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진실을 말했다.

“그거 진통제 아니잖아. 얘들아, 지금까지 너희가 진통제라고 믿고 있던 그 사탕이랑 스티커는 그냥 진통제가 아니야.”

“준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이선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날 선 눈빛으로 말하는 서준우를 보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너희 그거 하면서 한 번도 이상하다고 느낀 적 없어? 정신이 몽롱하고 나른하면서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돌아서면 또 생각나서 다시 하고 싶고.”

“맞아. 정확하네.”

“이게 과연 진짜 진통제라고 생각해? 타x레놀 같은 진짜 진통제 먹었을 때도 이랬어? 아니잖아!”

“그러고 보니 준우 말이 맞아. 타x레놀 먹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어.”

지금까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아이들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럼 진통제가 아니면 뭔데?”

“고승규가 우리한테 진통제라고 말할 건 마약성 진통제야. 이 약물은 강한 중독성이 있고 위험하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 후 사용해야 하는 그런 약물이야. 우리같이 일반인이 사용하면 그건 범죄라고.”

그 뒤 서준우는 약물의 위험성과 어제 병원에서 있던 일을 아이들에게 말했다.

“……!”

“이게 다 무슨 소리야.”

“고승규가 우리 전부를 속인 거야.”

“야! 승규야 어떻게 된 거야? 뭐라고 말 좀 해 봐.”

“하! 시x. 병신 같은 범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우 새끼였네.”

가만히 듣고 있던 고승규는 가면 뒤에 숨겨 놨던 본색을 드러냈다.

그동안 아이들이 몰랐던 이유가 있었다.

고승규는 아이들이 알게 될까 봐 항상 약국에 노인 혼자 들어가게 지시했었다.

약국 안에 있는 CCTV에 찍히면 안 좋다고 말했기에 아이들은 그 말을 전부 믿었다.

노인이 약국에서 처방받은 진통제를 고승규가 준 검정 봉투에 담아 밀봉한 뒤 건네면 아이들을 그대로 아지트 사물함에 넣어 놨다.

그 뒤 고승규가 진통제 포장지를 바꿔 놨기 때문에 마약성 진통제라는 사실을 알 길이 없었다.

“그래, 서준우 말이 다 맞아.”

“야! 고승규 너 우릴 속인 거야?”

“아니 어떻게 우리한테 마약성 진통제를 줄 수 있어? 너 미쳤어?”

모든 진실과 고승규의 민낯을 본 아이들은 하나같이 목소리를 높이며 화를 냈다.

“다 좋았잖아? 너희도 다 즐겨 놓고 인제 와서 무슨 개소리야.”

“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그냥 진통제랑 마약성 진통제는 전혀 다른 거잖아?”

“그게 뭐가 다른데? 이유야 어찌 됐든 너희도 한 건 한 거야. 왜? 서준우가 범죄라고 하니까 갑자기 쫄았냐?”

아이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고승규는 자기 잘못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존x 쫄았네.”

“넌 지금 그게 할 소리냐?”

“그럼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여기서 진통제 하고 중독된 사람 있어? 시x 없잖아. 내가 너희 중독되지 않게 간격 조절해서 잘 알려 줬기 때문에 그런 거야. 알아?”

“너 정말 뭐가 잘못된 건지 전혀 모르는구나?”

고승규의 막말을 듣고 있던 서준우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넌 많은 애들을 속인 걸로도 모자라 그걸 돈 주고 판매까지 했어.”

“그래서? 그 돈을 내가 혼자 가졌어? 같이 썼잖아. 야! 너희들 진짜 웃긴다. 그리고 서준우 너 혹시 내 자리가 탐났냐? 대가리 하고 싶어서 이런 거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고 잘못한 일에 대한 책임이나 져.”

“책임? 무슨 책임.”

“네 잘못에 대한 책임.”

“어떻게 반성문이라도 쓸까?”

“난 이번 일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

“넘기지 않으면? 학교에 꼰지르기라도 하려고? 어디 해 봐. 네가 전학 온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나 본데 우리 학교에 나 터치할 사람 아무도 없어.”

“아니, 난 학교에 할 생각 없는데?”

뻔뻔한 고승규에게 밀리지 않고 씩씩하게 대답하던 서준우가 현관으로 걸어갔다.

“대신 경찰 선생님을 불렀어.”

그리고 의아해하는 고승규에게 한마디를 던지며 현관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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