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반전
뻔뻔한 고승규에게 밀리지 않고 씩씩하게 대답하던 서준우가 현관으로 걸어갔다.
“대신 경찰 선생님을 불렀어.”
그리고 의아해하는 고승규에게 한마디를 던지며 현관문을 열었다.
철컥-
“안녕! 얘들아. oo경찰서에서 나왔다.”
문이 열리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 경사와 경찰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 아침, 학교에 가기 전 김 경사를 만난 서준우는 고승규를 잡기 위해 아지트의 위치를 알려 준 것이다.
“네가 승규니?”
“……!”
“표정 보니까 맞구나? 반갑다. 네 이야기 많이 들었어. 너 아주 대단하더라.”
“서준우? 너 경찰에 신고했냐? 네가 이런다고 내가 타격이라도 받을 거 같아? 우리 부모님이 누군지 몰라?”
경찰을 본 고승규의 막말은 점점 심해졌다. 돈과 인맥이 많은 부모를 둔 그는 경찰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김 경사님, 여기 진통제 있습니다.”
“거래 내역이 적힌 장부도 찾았습니다.”
경찰들은 하나씩 증거를 찾았다.
“야! 이거 펜xx이 한두 개가 아니네…….”
사물함 한쪽에 있는 펜xx을 본 김 경사와 경찰들을 혀를 내두르며 기막혀했다.
“너희 이게 얼마나 무서운 약물인지 몰라? 아직 학생들인데 이런 거 하면 어떻게?”
“죄송……합니다.”
“그렇게 무서운 약물인지 몰랐어요.”
“맞아요. 저희는 진통제인 줄 알았어요.”
아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어쩔 줄 몰라 했지만, 고승규는 여전히 뻔뻔했다.
“이거 다 네가 주도한 거니?”
“경찰 아저씨, 영장은 갖고 오신 거예요?”
“하!”
순간 김 경사를 포함한 경찰들은 고승규가 던진 발언에 어이가 없었다.
“영장도 없이 남의 오피스텔에 함부로 들어오는 거 불법 아닌가요?”
“그래? 요즘 애들이 영화를 너무 많이 봤네.”
“영장 없으면 이만 나가 주시죠.”
“그건 안 될 거 같은데? 이거 보이지?”
“…….”
김 경사가 주머니에서 꺼낸 종이를 보여 주자 고승규는 할 말을 잃었다. 그가 꺼낸 종이는 바로 영장이었다.
“네가 말한 영장 갖고 왔다. 됐냐?”
나이에 안 맞게 영악한 고승규가 영장이란 단어를 들먹이며 경찰을 쫓을 생각이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서준우와 노숙자 노인에게 고승규에 대해 전해 들은 김 경사는 보통 녀석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오랜 경찰 생활 노하우로 이런 경우 영장을 받는 게 빠른 수사에 도움이 됐기에 급히 영장을 청구했고, 고등학생이 저지른 사건에 담당 검사는 바로 진행했다.
“고승규,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한다.”
그렇게 고승규는 손목에 수갑이 채워진 채 경찰에게 끌려갔고, 서준우와 나머지 아이들도 함께 경찰서로 이동했다.
김 경사가 속해 있는 경찰서는 조사받으러 온 고등학생들로 정신이 없었다.
서준우를 포함한 동아리 아이들은 물론이고 그동안 한 번이라도 펜xx을 한 인근 학생들까지 전부 모여 있었다.
“학생은 이거 어떻게 접했어?”
“SNS로 메시지를 받았어요. 제 친구가 고승규랑 중학교 동창인데 스트레스를 없애 주는 진통제가 있다고 소개받았어요.”
“전 학원 친구가 하는 거 보고 물어봤다가 스트레스 없애 주는 거라고 해서 해 봤어요.”
“저도 SNS를 통해 한 번 해 봤어요. 이쪽 공부 좀 한다는 소수 애들 사이에서 스트레스 사탕, 스티커라고 하면서 한동안 유행처럼 번졌거든요.”
조사를 받으러 온 아이들은 하나같은 비슷한 말을 했다. 다행히 고승규를 뺀 아이들은 펜xx을 몰랐고 다들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 진통제로 알고 있었다.
“형사님? 애들한테 이딴 거 준 그 나쁜 놈 반드시 처벌해 주세요.”
“어떻게 어린애가 이런 걸…….”
“우리 애한테 이거 준 새끼가 누굽니까? 네? 내가 한마디 하게 어디 얼굴이나 좀 봅시다.”
“아버님 진정하세요.”
연락받고 온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마약성 진통제를 속여 판 고승규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몇 시간의 조사 끝에 아이들은 참고인 조사를 마치고 귀가 조치됐다. 그리고 아지트에서 그렇게 당당하던 고승규는 입을 닫고 말을 하지 않았다.
“너 진짜 말 안 할 거야?”
김 경사가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보고 달래도 봤지만, 고승규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변호사님 오면 말할게요.”
“하! 그래. 네 마음대로 해.”
벌써 두 시간째 변호사 타령만 하는 고승규 때문에 김 경사는 속이 답답했다.
“안 뜨거우세요? 무슨 커피를 냉수처럼 마셔요.”
“속에서 열불이 나서 뜨거운 줄도 모르겠다.”
“근데 어린애가 저 정도로 버티는 거 보면 꽤 있는 집 자식인 거 같은데 진짜 거물급이 오면 어떡하죠?”
“어떡하긴 뭘 어떡해? 법대로 원칙대로 해야지. 죄를 지었으면 처벌받는 게 맞아.”
“그거야 그렇지만…….”
“저기 실례합니다.”
김 경사가 후배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명품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고승규 학생이 조사받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왔는데요.”
“아, 네. 제가 담당 형사입니다. 실례지만 고승규 학생과는 관계가 어떻게 되나요?”
“변호사이자 고승규의 형인 고승원입니다.”
변호사 명함을 내밀며 형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고승규와 나이 터울이 꽤 있어 보였으며 상당히 날카로운 인상을 자랑했다.
‘이거 만만치 않겠는데…….’
‘어쩐지. 형이 잘나가는 변호사라 그렇게 당당했구나. 쉽지 않겠어.’
김 경사와 후배는 고승규의 형을 보며 아무래도 조사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제 동생 어디 있습니까?”
“저 안쪽에 있습니다.”
“조사는 어떻게 되고 있죠?”
“그게 변호사님만 불러 달라고 하고 말을 하지 않아 조사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따라오세요.”
고승규의 형은 입을 꾹 다문 채 김 경사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고승규? 변호사님 오셨다.”
변호사가 왔다는 소리에 고승규는 고개를 들었다.
“……!”
드르륵-
근데 뭔가 이상했다.
앵무새처럼 변호사만 찾던 고승규는 순간 깜짝 놀란 표정과 함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크, 큰형이 여길 어떻게…….”
찰싹-
곧이어 깜짝 놀랄만한 상황이 펼쳐졌다.
저벅저벅 고승규를 향해 걸어오던 고승원이 오른손을 들더니 그대로 동생의 뺨을 후려갈겼다.
뺨을 강타한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사무실 내 경찰은 물론 조사를 받고 있던 사람들까지 전부 쳐다봤다.
따악-
그리고 놀란 마음이 가시기도 전에 둔탁한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고승원이 뺨에 이어 동생의 뒤통수를 세차게 갈겨 버린 것이다.
“뭐! 펜xx을 하고 판매까지 했다고?”
“죄, 죄송해요.”
“죄송? 이게 죄송해서 될 일이야?”
김 경사도 다른 경찰도 고승원의 인상만 보고 동생을 감싸고돌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전이었다.
고승원은 당장이라도 동생을 죽일 듯이 쳐다봤고 고승규는 눈도 못 마주치고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고승규는 남자 형제들이 많은 집에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다.
항상 사랑만 준 부모님과 달리 큰형은 부모님보다 엄격하고 무서운 존재였다.
그런 큰형이 업무차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고 그때부터 고승규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군 거였다.
아까 말한 변호사 역시 자신과 장단이 잘 맞은 셋째 형이 올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귀국한 큰형이 이 사실을 알고 짐도 풀기 전에 경찰서로 오게 된 것이다.
“너 이 새끼, 펜xx은 어떻게 알았어?”
“미국에 어학연수 갔을 때 알게 됐어요.”
방학 때마다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던 고승규는 외국 친구들과 펜xx을 접했다. 그 뒤, 우리나라에서 생각보다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이렇게 일을 키운 것이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웠네.”
“…….”
“네가 감히 이딴 짓거리를 저지르고 무사할 줄 알았어? 부모님이 오냐오냐하니까 세상 무서운 줄 모르지? 공부도 잘하고 돈도 많으니까 세상이 다 네 것 같아?”
“큰형? 그, 그게 아니라…….”
“입 닫아.”
“잘못했어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고 빨리 자리에 앉아. 뭘 쳐다보고 서 있어? 얼른 앉아.”
“네.”
“허리 펴고 똑바로 앉아!”
그 소리에 고승규는 바른 자세로 의자에 앉았다.
“너 지금부터 성실히 조사받아. 알았어?”
“…….”
“야, 이 새끼야 대답 안 해?”
“네. 조사받을게요.”
“공부를 잘하면 뭐 해! 사람이 돼야지. 너 앞으로 형이 사람 만들 테니까 그리 알아. 제 동생이 불찰을 일으켜 죄송합니다.”
동생을 눈물 쏙 빠지게 혼낸 고승원은 김 경사와 경찰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조사 잘 받을 수 있도록 제가 옆에 있겠습니다. 시작하시죠.”
“아, 네.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아군의 등장으로 김 경사는 그 어느 때보다 조사를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 * *
우리병원-
김 경사가 한참 조사에 열을 올리고 있던 그때, 수술을 마친 태경은 진료실 책상에 앉아 어느 사이트를 들어갔다.
그가 들어간 곳은 현직 의사들만 가입할 수 있는 유명 커뮤니티였다.
이곳은 의사들이 다양한 글을 올리면서 생각을 공유하는 곳이기도 했다.
모니터를 보며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태경은 이내 빠르게 키보드를 누르며 글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현재 여울동에서 환자를 보고 있는 김태경이라고 합니다. 제가 오늘 이곳에 글을 남긴 것은 우리 병원에서 있던 일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 신분을 위장하여 노숙자를 할아버지라고 속이고 병원을 돌며 지속적으로 펜xx을 처방받았습니다.
태경은 이번 일을 적으며 동료 의사들에게 부탁했다.
-모든 선생님이 바쁜 와중에도 환자를 진심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 친구들이 위험한 약물의 처방을 원할 때는 바쁘시더라도 조금 더 관심 있게 봐주시고 신경을 써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물론 어린 친구들에게 처방할 수 없도록 현실적인 조치가 필요하지만 당장은 힘든 부분이니 선생님들께 부탁드립니다.
나 하나쯤이야 괜찮겠지? 라는 생각보다 이 환자가 정말 심각한 통증에 마약성 진통제가 꼭 필요한가? 라는 생각으로 진료하고 처방해 주시기 바랍니다.
거창할 말일지도 모르지만, 선생님들의 작은 관심이 유혹에 흔들리는 어린 학생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김태경-
처음부터 글을 다시 읽으며 문장을 다듬은 태경은 그제야 저장 버튼을 누르며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워낙 많은 글이 올라오는 곳이었기에 과연 몇 명이나 이 글을 볼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많은 이들이 이 글을 보길 바랐다.
그 뒤, 태경은 비슷한 내용의 문서를 최 팀장에게 부탁해 인근 병원에 팩스를 보내고 마지막으로 감덕찬 의원에게 연락했다.
“안녕하세요. 의원님, 김태경입니다.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내용은 메일로 자세히 보냈습니다. 꼭 한 번 살펴봐 주시고 의학적 자료가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이번 고등학생 펜xx 사건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다.
아무리 주변 의사들에게 부탁해도 어딘가에서는 이런 일이 또 생길 수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인 대응과 예방책이 필요했고, 법을 발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감덕찬에게 부탁한 것이다.
‘원장님.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주저 말고 알려 주세요.’
평소 감덕찬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지만, 국회의원에게 부탁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일은 그가 아니면 부탁할 사람이 없었다.
철컥-
“선배?”
태경이 진료실을 막 나가려는데 의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커피 한잔하실래요?”
“좋지. 안 그래도 커피 리필하려고 식당 가려던 참이었어. 같이 가자.”
“감 의원님께 연락했어요?”
“방금 메일 드렸어.”
“뭔가 변화가 있을까요?”
“글쎄……. 당장에 뭔가 바뀌긴 힘들어도 계속 이렇게 문을 두드리다 보면 언제가 되지 않을까 싶어.”
“그럼요. 맞다! 선배 이번 사건 기사 올라온 거 봤어요?”
“벌써 기사까지……!”
의진과 함께 대화하며 접수처를 지나던 태경은 우연히 정문 쪽을 쳐다보다 걸음을 멈췄다.
“선배, 왜 그래요?”
“의진아, 정말 미안한데 커피 혼자 마셔야겠다.”
“왜요, 무슨 일……. 괜찮아요. 얼른 가 보세요.”
갑자기 왜 그런가 싶던 의진은 정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그 이유를 알고 혼자 식당으로 향했다.
태경은 재빨리 정문으로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이쪽저쪽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준우야? 이 시간에 왜 여기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