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95화 (295/472)

295화. 307호

“야! 너 왜 그래? 원장님을 왜 불러?”

당황한 이찬희가 친구를 팔을 붙잡고 귀에 중얼거렸지만, 김일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태경에게 다가갔다.

“저기 원장님. 제가 뭐 하나만 여쭤보고 싶은데 잠시 시간 괜찮으세요?”

“그래요. 물어봐요.”

“지금 이 새……. 아니 찬희가 제 엉덩이에 난 혹을 제거해 줬는데요. 혹시 제대로 처치됐는지 봐주실 수 있으세요? 제 친구이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돌팔이 같거든요.”

“이 선생이 돌팔이 같아요?”

“네, 영 믿음이 안 가네요.”

“야! 김일상?”

이찬희가 버럭 목소리를 높이자 태경이 피식 웃으며 친구를 쳐다봤다.

“그래요. 내가 한 번 볼게요.”

“진짜요?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유명하신 분께 진료를 다 보고 영광이네요.”

그 말에 김일상은 빛의 속도로 바지를 내리며 누웠고 태경은 이찬희가 처치한 부위를 유심히 살펴봤다.

“원장님, 어떤가요?”

“음…….”

“찬희가 잘 처치한 거 맞나요?”

태경이 살펴보는 사이 이찬희는 속으로 깔끔한 처치에 칭찬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게 지금…….”

그런데 태경의 표정이 미묘하게 뭔가 이상했다.

“어라!”

“왜, 왜 그러세요?”

“뭐가 잘못됐나요?”

점점 심각해지는 태경을 보며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진 이찬희와 김일상이 동시에 질문했다.

“선생님, 제가 처치를 잘못했나요?”

“어. 잘못했는데?”

“예?”

“하! 내가 찬희 너, 그럴 줄 알았다. 어쩐지 돌팔이 녀석 불안하더라니……. 죄송하지만 원장님께서 다시 봐주시면 안 될까요?”

“다시 봐주는 건 문제가 아닌데 아무래도 수술을 해야 할 거 같은데…….”

“예!? 수, 수술이요? 방금 수술이라고 하셨나요?”

“이거 단순히 낭종이 문제가 아니야. 다른 게 문제인데. 이 선생? 여기 환부 위쪽 보여?”

진지한 표정과 대화에 이찬희는 빠르게 친구 곁으로 다가와 태경이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

순간 뭔가 깨달은 이찬희 역시 상황을 파악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여기가 문제였네요.”

“이걸 놓치면 어떡해? 내가 항상 환자를 볼 때 좀 더 주의 깊게 관찰하라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제가 환부에 집중하느라 그쪽을 미쳐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당장 수술 준비할까요?”

“그러는 게 좋은 거 같아. 서둘러!”

“아니, 저, 저기 원장님? 이제 지금 어떤 상황인데 갑자기 수술하신다는 건지 설명 좀…….”

바지를 내리고 엎드려 누워 있는 김일상은 의학 용어를 섞어 가며 말하는 두 사람의 대화에 점점 더 걱정이 밀려왔다.

“환자분 혹시 평소에 두통이 있거나 가끔 소화가 안 된 적 있지 않아요?”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이틀 전에도 저녁 먹고 소화가 안 되더니 두통이 와서 힘들었어요. 원장님 저 수술이 필요할 만큼 많이 안 좋은가요?”

김일상은 태경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른 방법이 있긴 한데…….”

“뭔데요? 뭐든 할게요. 알려 주세요.”

“그럼 이틀에 한 번 내원해서 소독 잘 받으시고 이 선생이 처방하는 약도 잘 먹어요. 아! 당분간 술도 멀리하고요.”

“예. 소독 잘 받고……. 네?”

가만히 태경이 하는 말을 곱씹던 김일상은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원장님 저, 정말 이상이 있는 건가요?”

“아니요. 전혀 이상 없어요. 이 선생 처치를 잘해서 더 볼 것도 없습니다. 환부도 깨끗해요.”

“예?!”

조금 전까지 심각한 표정으로 수술해야 한다던 태경은 어느새 온화한 표정과 함께 웃고 있었고, 옆에 있는 이찬희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우리 이찬희 선생, 실력 있는 좋은 의사예요.”

“네?”

“아까 밖에서 지나가면서 들으니까 환자분이 자꾸 돌팔이라고 놀리길래 제가 살짝 장난 좀 쳐 봤습니다. 이 선생? 나 가 볼게. 친구분 갈 때 처방전 꼭 주고.”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철컥-

“봤지? 나 돌팔이 아니다. 네가 자꾸 돌팔이라고 하니까 원장님이 한마디 하신 거잖아.”

“아니, 전혀 장난 같은 거 안 치게 생기셨는데 무슨 장난을 저렇게 진심으로 하시냐?”

“우리 원장님이 유쾌한 면이 있으셔. 근데 너 아까 표정 진짜 웃겼다.”

“나 순간 수술이란 말에 쫄아서 심장 튀어나올 뻔했어.”

“사람 피부층이 생각보다 두꺼워서 심장 그렇게 쉽게 안 튀어나와.”

“근데, 너희 원장님 진짜 명의는 명의인가 보다. 나 아까 소름 돋았잖아.”

김일상은 엄지를 추켜세우며 태경을 칭찬했다.

“왜?”

“아니, 나 가끔 소화가 안 되고 두통도 있거든. 잠깐 본 사이에 바로 맞추잖아. 실력이 장난 아니야.”

“실력이 장난 아닌 건 맞는데 그건 그냥 하신 말씀이야. 가끔 소화불량이랑 두통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

“그런 거야? 난 속으로 막 감탄했잖아. 민망하네.”

“뭐가 민망해. 어! 일상아 나 콜 온다. 응급실 좀 갔다 올게.”

“아니야. 나 그냥 집에 가서 잘란다.”

“왜? 자고 간다더니”

자고 가겠다던 김일상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너희 원장님 보니까 보통 분이 아니다. 뭔가 아우라랑 포스가 느껴지는 게 아무래도 오늘 여기서 자면 안 될 것 같아. 나 처방전이나 빨리 줘라.”

“그냥 자고 가.”

“아니야. 괜찮아.”

태경의 장난에 혼이 쏙 빠진 김일상은 처방전을 받은 뒤 곧장 집으로 향했다.

“너 이틀 뒤에 소독하러 와.”

“알았다. 오늘 고마웠어.”

* * *

“정말 없네요.”

한 여자가 영업시간이 끝나고 뒷정리하는 식당 구석 테이블 주변을 살피며 직원에게 말했다.

“아까 전화 받고 제가 다 찾아봤는데 안 보였어요. 나중에라도 나오면 아까 알려 주신 번호로 바로 연락 드릴게요.”

“네, 부탁드릴게요.”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남자 친구가 있는 차에 탄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 어디 갔지.”

“없대?”

“어, 없대. 이번 우리 팀 디자인 시안 들어 있어서 꼭 찾아야 하는데 미치겠다.”

“모텔에 한 번 전화해 볼까?”

“모텔?”

“어. 우리 식당 갔다 모텔 갔잖아.”

“어머! 맞다!”

모텔이란 소리에 여자는 손뼉을 치며 확신의 찬 어투로 말했다.

“자기야, 모텔이다. 내가 정신이 없어서 이제 기억났어. 모텔에 두고 왔네. 빨리 가 보자.”

여자의 말에 남자는 차에 시동을 걸고 모텔로 향했다.

서울의 어느 모텔-

“그런데 여기에 두고 온 건 확실해?”

“확실하다니까, 아까 노트북으로 영화 보기 전에 내가 USB 빼서 서랍에 넣어 놨잖아.”

차에서 내린 커플은 서로 짜증이 난 얼굴로 모텔로 들어가고 있었다.

“자기 내가 서랍에 넣은 거 못 봤어?”

“내가 그걸 어떻게 봐. 그러게 잘 좀 챙기지. 이 밤에 다시 오게 만드냐.”

“야!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가 모텔 오자고 했어? 네가 오자고 했잖아? 나 혼자 찾아갔고 갈 테니까 너 그냥 가.”

“아니, 자기야 난 그런 뜻이 아니라…….”

“어서 오세요.”

남자친구가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여자 친구가 인사를 건네는 프런트 직원에게 다가갔다.

“저기 어제 307호에 들어갔다가 오늘 오전에 나온 사람인데요.”

“아! 네. 옆방에서 전……. 아닙니다. 알아요.”

직원은 두 커플이 기억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했다.

“죄송한데 그 방에 좀 들어갈 수 있을까요?”

“또 대실 하시게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제가 아까 급하게 나오느라고 중요한 물건을 두고 와서요.”

“중요한 물건이요?”

“네, 초콜릿 모양으로 생긴 손가락만 한 USB인데요, 중요한 업무 자료가 들어 있는 거라서 꼭 찾아야 하는데……. 부탁 좀 드릴게요.”

여자 친구에게 미안했던 남자친구가 직원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

“그럼 번호 남겨 주시면 제가 찾아서…….”

“아니요. 진짜 죄송한데 제가 내일 출근할 때 가져가야 해서요. 지금 좀 찾아볼 수 있을까요? 딱 5분만 보고 나올게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307호에 지금 손님이 계시거든요. 그래서 지금 당장 들어가기에는 실례가 될 거 같아서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는데요. 제가 진짜 급해서 그런데 어떻게 안 될까요?”

“저도 들어가서 확인해 드리고 싶은데 두 분 다 아시지만, 여기가 모텔이고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그건 어려울 거 같은데요.”

여자의 사정이 급한 건 알겠지만, 직원은 괜히 방문을 두드렸다가 곤란해질까 봐 거절했다.

“그러면 전화만이라도 해서 확인이라도 해 주시면 안 돼요?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전화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직원은 프런트 안쪽에 있는 전화로 307호에 전화를 걸었다.

“주무시나?”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걸고 또 걸고 또 걸고 또 걸었지만, 연결음만 들릴 뿐이었다.

“보통 이 정도 전화하면 받는데 아무래도 자는 거 같은데요?”

“하! 야단났네.”

전화를 여러 번 했는데도 불구하고 307호 투숙객은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그렇게 이도 저도 못 하고 있는 상황에서 직원과 야간 교대를 하기 위해 모텔 사장이 막 들어왔다.

“사장님, 오셨어요? 그게 여기 두 분이 낮에 307호에서 퇴실하신 분인데요…….”

직원은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했다.

“307호? 거기 한 사람 들어갔어.”

“한 사람이요?”

“응. 젊은 여자 혼자 대실하더라고.”

낮에 사장이 일할 때 직접 키를 주기도 했고, 주로 연인들이 많이 오는 이곳에 혼자 왔기에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많이 급하신가 보네.”

“네. 회사 자료가 들어 있는 거리서요.”

“다른 것도 아니고 회사 자료인데 가져가셔야지. 여기 있어 보세요. 내가 한 번 올라가서 확인해볼게요.”

“감사합니다.”

여자의 사정을 들은 사장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07호로 향했다.

딩동- 딩동-

똑똑-

객실 문 옆에 있는 초인종 버튼을 연달아 눌렀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사장은 문을 직접 두드리며 말했다.

똑똑-

“고객님, 모텔 사장인데요. 정말 죄송하지만, 잠시 문 좀 열어 주시겠어요? 낮에 투숙객이 물건을 두고 가서요.”

똑똑-

“고객님?”

딩동- 똑똑-

초인종과 함께 손으로 계속 노크하며 투숙객을 불렀지만, 문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술 먹고 잠들었나?”

가끔 혼자 모텔에 와서 술을 먹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이별에 아픔을 달래는 사람, 삶이 괴로운 사람, 외로운 사람 등 생각보다 그런 사람들을 꽤 봤기에 사장은 역시나 이번에도 그런 줄 알았다.

“술 먹고 잠들었으면 일어나기 힘들 텐데 이걸 어쩌나. 가만! 307호 사람이 술을 사 왔었나?”

사장은 혼잣말을 하며 휴대폰으로 녹화된 모텔의 복도 CCTV 영상을 빠르게 돌려봤다.

“어! 빈손이네.”

그런데 307호 투숙객이 체크인했을 때 술이 보이지도 않았고 중간에 외출하지도 않았다.

물론 여자가 매고 있는 가방에 술이 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화면에서는 확인이 힘들었다.

그렇게 사장은 굳게 닫힌 307호를 뒤로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이 정도 했는데도 반응 없으면 그냥 내일 다시 오라고……!”

그런데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며 혼잣말을 하던 사장이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추더니 그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런!’

사장은 왔던 길을 다시 뛰어가 307호 문을 세차게 두들겼다.

쾅- 쾅-

“고객님? 고객님!”

두꺼운 문에 귀를 바짝 붙이며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던 사장은 미친 듯이 복도를 뛰어갔다.

‘제발! 설마 아니겠지…….’

그새 다시 위층으로 올라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은 그는 혼잣말하며 비상구 계단을 몇 칸씩 내리달으며 1층 프런트로 향했다.

철컥-

“야! 기정아? 키, 키 줘!”

“네? 무슨 키요?”

“어떻게 됐어요? 제 USB 거기 있죠?”

직원은 되물었고 여자는 자기 물건에 관해 물었지만, 사장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뭘 보고 서 있어, 빨리 키 달라니까!”

“무슨 키요?”

“307호 객실 키 말이야. 키!”

“아, 네 여기요.”

“저기, 사장님 저희도 같이 올라가면…….”

“아니요.”

덩치 큰 사장이 인상을 쓰며 단호하게 말하자 여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객실 키를 손에 쥔 사장은 즉시 3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아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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