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 Mental Drowsy
객실 키를 손에 쥔 사장은 다시 3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아닐 거야……. 제발!’
꼭대기 층까지 올라간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잠깐의 시간조차 없었다.
‘안 되는데……. 진짜 그런 거 아니겠지?’
사장은 큰 덩치로 빠르게 올라가면서 주문을 외우듯이 계속 비슷한 말을 반복했다.
‘그러면 안 돼. 안 되지.’
20년 동안 숙박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은 긴 시간 동안 모텔을 관리하며 별별 일을 다 겪었다.
잉꼬부부라고 소문난 부부가 바로 옆방에서 바람을 피우다 파국을 겪은 일도 있었고, 사람을 죽이고 몰래 숨어 있던 범죄자도 있었다.
부모님께 말을 하지 못하고 모텔에서 출산했던 대학생 커플도 있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코트 속에 알몸으로 투숙해 거사를 치르러 오던 변태도 있었다.
이밖에도 밤이 새도 모자랄 정도로 수많은 투숙객을 겪었다.
그러다 보니 어지간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만큼 간이 큰 사람이 됐다.
‘아, 이 두 사람은 불륜이구나.’
‘저런 저런. 한 달 안으로 이별하겠어. 커플 얼굴이 죽상이야.’
게다가 이제는 프런트에 들어오는 사람들만 봐도 어느 정도 감이 느껴져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느낌이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생기 없는 눈빛과 아무것도 관심 없는 표정 그리고 상당히 건조한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이 투숙객으로 오면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동시에 오금이 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307호로 향하는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살자, 살자……. 제발! 우리 다 같이 살자.’
두 번 다시 겪고 싶은 않은 순간이 현실이 될까 봐 무서운 사장은 손까지 파르르 떨며 307호 문을 열기 시작했다.
“아! 젠장, 왜 이렇게 안 열려.”
미세하게 떨리는 손 때문에 문이 잘 열리지 않자 사장은 짜증이 났다.
“후!”
철컥-
그렇게 짧은 한숨을 내뱉은 뒤 문이 열렸고, 사장은 문제의 307호로 들어갔다.
“저기, 고객님?”
천천히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들어온 그는 사용한 흔적조차 보이지 않은 휑한 침대를 쳐다봤다.
“고객님? 모텔 사장입니다. 고객님 어디 계세요? 고객님?”
똑똑-
계속해서 투숙객을 찾으며 화장실 문을 노크한 뒤 천천히 문을 연 그때였다.
“……!”
그토록 찾던 307호 투숙객을 발견한 사장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젊은 여자가 화장실 안쪽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 옆에는 소주병과 처음 보는 병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처음 보는 그 병은 느낌상 절대 술이 아니었다.
“고, 고객님? 정신 좀 차려 보세요?”
사장은 여자의 어깨를 살짝 흔들며 그녀를 깨우려고 했다.
“이봐요? 저기요?”
결국 불러도 대답 없는 여자를 조심스럽게 업은 뒤 급히 밖으로 나갔다.
“사, 사장님. 무슨 일이세요?”
급하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사장을 본 프런트 직원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축 늘어진 채 업혀 있는 여자를 본 커플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기정아? 307호 아무도 못 들어가게 문 잠가 놔. 나 병원 갔다 올 테니까 프런트 좀 부탁한다.”
“저기 사장님 근데 여자분 USB는 어떻게 할까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내일 다시 오라고 해!”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직원에게 신신당부를 한 사장은 급히 여자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 * *
이틀 전, 엉덩이에 난 낭종을 제거한 이찬희의 친구 김일상은 소독을 위해 다시 우리병원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소독 받으러 왔는데요. 이찬희 선생님 계신가요?”
“혹시 이 선생님 친구분 아니세요?”
“네. 맞습니다.”
“안 그래도 이 선생님이 오늘 친구분 올 거라고 오면 안내 부탁한다고 하셨어요. 저쪽 응급실 입구 보이시죠? 그쪽으로 들어가세요.”
“그리고 이거…….”
잘 치료해 준 친구가 고마웠던 김일상은 이찬희를 비롯한 직원들의 커피를 사 와 접수처에 전달했다.
“뭘 이런 걸 사 오셨어요.”
“그럼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어!”
커피를 주고 응급실로 향하던 김일상은 마침 응급실에서 나오는 최모나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춘 채 씩 웃었다.
‘그래, 찬희야. 넌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고백은 못 할 거 같다. 사랑 앞에 소심함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이 형이 도와줄게.’
부탁하지도 않은 사랑의 큐피드를 자처한 김일상은 괜히 옷매무새를 만지며 최모나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최모나 선생님이시죠?”
“맞습니다만, 그런데 누구…….”
“저 이틀 전에 인사했던 이찬희 친구 김일중이라고 합니다.”
“기억납니다.”
“선생님. 제가 이틀 전에 이찬희 선생한테 치료받았는데 소독 때문에 왔거든요.”
“아, 네.”
“혹시 최 선생님께 소독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요.”
“저한테 말입니까? 이 선생님께 안 받으시고 왜 저한테…….”
“그게 우리 찬희가 마음속에……아!”
눈을 반짝이며 말을 하던 김일상의 한쪽 눈꼬리가 갑자기 올라가더니 고라니 울음소리 같은 고음이 들려왔다.
최모나와 함께 있는 친구의 모습을 본 이찬희가 기겁하며 응급실에서 뛰어나와 김일상의 구레나룻을 잡아당긴 것이다.
“최 선생? 이 친구는 내가 소독할 테니까 얼른 병동 가 봐.”
“그럼, 치료 잘 받고 가세요.”
“네. 최 선생님, 우리 다음에 또 봐요. 조만간 보면 더 좋고요.”
김일상은 병동으로 향하는 최모나의 뒷모습을 보며 밝게 인사했다.
“미친놈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아오. 살 뜯길 뻔했네. 뭐하긴. 너랑 최모나 선생님 이어 주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이어 주긴 뭘 이어 줘?”
“네가 모나 씨한테 표현을 못 하고 바보같이 구니까 이 형이 직접 나서려는 거지.”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지도 못하는 이찬희가 답답했던 김일상은 친구를 도와주고 싶었다.
“이 자식이 근데, 언제 봤다고 모나 씨래.”
“모나 씨를 모나 씨라고 부르지. 그렇다고 모나야? 라고 할 수는 없잖아.”
“이게 진짜!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 저기 눕기나 해. 내가 너 때문에 돌아 버리겠다.”
“에이, 돌면 안 되지.”
“하! 내가 내 발등 찍었다. 괜히 말은 해가 지고…….”
챠륵-
친구의 격한 오지랖에 머리가 지끈거린 이찬희는 커튼을 확 열며 베드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티 안 나게 잘 도와줄게. 찬희 너도 알잖아. 내가 고등학교 때 이어 준 커플 꽤 있다.”
“시끄럽고 얼른 누워. 근데 넌 왜 밤에만 오냐?”
친구가 더 이상 최모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도록 이찬희는 대화 주제를 빠르게 바꿨다.
“낮에 바쁘니까 그렇지.”
“뭐 하느라 백수가 바빠.”
“뭐래. 나 백수 아니야. 대학원생이야.”
“진짜? 너 대학원 들어갔어? 언제?”
“아니, 이제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이거지.”
“하여간 대단하다. 뭐 해? 빨리 누워.”
“찬희야, 오늘은 아픈 거 없는 거지?”
김일중이 침대에 누워 바지를 막 내리려던 그때였다.
“이 쌤?!”
임정숙 간호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챠륵-
이찬희가 커튼을 열자 뛰어오는 임정숙 뒤로 여자를 업고 들어오는 중년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에게 업혀 있는 여자의 팔이 축 늘어진 채 힘없이 흔들리는 것으로 봐서 이미 의식이 없는 거 같았다.
“뭔가요?”
이찬희는 친구를 두고 바로 남자에게 향했다. 지금 낭종 제거 소독이 문제가 아니었다.
한눈에 봐도 심각한 상황에 웃고 떠들던 김일중도 절로 조용해졌다.
“어떤 상황에서 발견된 거죠?”
“아니, 저는 그게…….”
“우선 바이탈 다 체크하고 팔에 IV line 잡아 주세요. 그리고 CBC, CRP, EKG 해 주시고요. 혈당도 체크해 주세요.”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그리고 함께 오신 분은 보호자이신가요?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 주세요.”
“전 모텔 주인인데요. 이 아가씨가 불러도 인기척이 없어서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화장실에 쓰러져 있었어요.”
이찬희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사장의 얼굴은 근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모텔을 운영하면서 절대 겪고 싶지 않은 순간이 바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었다.
지금까지 몇 번 그런 사람들을 만났었다.
가장 처음은 20년 전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모텔을 처음 시작할 때 중년 남자가 목을 맸다.
퇴실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아서 찾아갔더니 남자는 목을 매고 버둥거리고 있었고 사장이 빨리 구할 수 있었다.
병원으로 옮긴 중년 남자는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사장은 그 뒤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으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 뒤로도 모텔을 하면서 몇 번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죽어 가는 사람을 눈앞에서 보는 건 생각보다 충격이 큰 일이었다.
한동안 매출이 떨어지는 걱정보다 자꾸만 그 순간이 꿈에 나오는 게 더 힘들었다.
그래서 사장은 자살할 것 같은 느낌이 오는 사람이 투숙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 수시로 체크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이 여자는 아니었다.
전혀 삶을 끝내려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젊은 여자여서 그런 거 같았다.
지금까지 일을 벌였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들 나이가 중년이 좀 지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젊은 여자가 그런 일을 벌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일단 알겠습니다. 환자분과 아는 사이는 아닌 거죠?”
“네, 전혀 모르는 사이입니다.”
모르는 사이였지만, 사장의 마음은 무거웠다. 누워 있는 여자를 보니 젊다는 표현보다는 어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죄송하지만, 처치 때문에 그런데 대기실에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모텔 사장은 씁쓸한 표정과 함께 여자가 괜찮길 바라는 마음으로 보호자 대기실로 향했다.
이찬희는 베드 위에 누워 있는 여자를 자세히 살펴봤다.
“……우. 후……우.”
숨이 느렸다.
여자가 내뱉은 숨은 뜨거운 태양에 늘어진 고무줄처럼 느리고 힘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가득했고, 입에서는 진한 술 냄새가 났다.
‘뭐지……?’
그리고 알 수 없는 강한 냄새가 여자에게서 풍기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냄새야?’
여자의 눈 밑에는 엄청 진한 다크서클이 있었다.
긴 단발머리에 전체적으로 마른 체구로 언뜻 보아서는 20대로 보였으나, 자세히 보니 그보다 좀 더 어려 보였다. 그리고 입고 있는 청바지와 남방은 어쩐지 조금 오래돼 보였다.
“이 선생?”
그렇게 여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살피고 있는 사이 등 뒤에서 태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선생님.”
어찌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태경은 숨을 가쁘게 내쉬며 말했다.
“하! 보고!”
“네, 모텔에서 멘탈 드로우지(Mental drowsy, 의식은 있으나 수면에 빠지려는 상태며 반응이 느리다)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현재 바이털 언스테이블(unstable, 블안정)로 BP가…….”
“아니야.”
이찬희의 보고를 가만히 듣고 있던 태경이 손을 들며 멈추라고 지시했다.
“찬희야”
“네, 선생님.”
“그만 말해도 괜찮아.”
누워 있는 여자를 뚫어져라 보고 있던 태경은 뭔가 초탈한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만해.”
“……네!? 그만하라고요?”
이찬희는 심각하게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