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97화 (297/472)

297화. 간, 신장, 폐

“그만해.”

“……네!? 그만하라고요?”

이찬희는 심각하게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지금까지 태경이 우리병원에 온 뒤로 수많은 환자를 진료했다.

다들 다양한 병명을 지닌 환자들이었지만, 직원들이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방금 태경의 입에서 나온 ‘그만해.’라는 단어였다. 그 때문에 이찬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기, 선생님. 정말 그만합니까?”

혹시라도 자기가 잘못 들은 건 아닐까 싶은 마음에 이찬희가 다시 한번 확인차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같았다.

“그래. 그만해.”

그 와중에 간호사들은 정신없이 혈관을 잡으며 기기를 연결하고 방금 측정된 EKG를 전달했다.

‘선생님이 왜 그러시지?’

순간 이찬희는 본인이 실수했나 생각하며 멀뚱히 서 있는 태경이 왜 저러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뭔가 처치에 자신이 없어서 실수했다고 생각한 게 아니었다.

보통 상급자가 저런 행동을 보이면 후배들은 처치를 정석대로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 처치가 잘못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곤 했다.

‘뭐지?’

그리고 이 상황이 이상한 건 이찬희뿐만이 아니었다.

간호사 중 최고참인 임정숙을 비롯한 주변에 있는 다른 의료진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일전에 영화 촬영장에서 와이어 사고로 위급한 상황에 놓였던 구민우 때도 태경의 행동을 의료진들이 의아했지만, 그때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다른 걸 다 떠나서 태경의 입에서 ‘그만해’라는 단어가 나오지는 않았었다.

오히려 다들 정신 차리라고 호통을 치며 구민우를 살리기 위해 응급실에서 갈비뼈를 부러뜨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태경이 어찌나 심각한지 그를 둘러싼 응급실 공기마저 심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임 선생님?”

“네, 원장님.”

다들 머릿속에 궁금증이 커질 때쯤 태경이 임정숙 간호사를 불렀다.

“다른 검사 할 필요 없어요. 기도삽관은 할 수도 있으니 환자 옆에다 준비해 놓고, nasal(코끝에 거치되는 관)로 산소 6L 틀어 주세요.”

“네. 선생님,”

“그리고 마약성 진통제 준비해 주시고, 지갑이나 소지품 같은 거 찾아서 가족들한테 연락해 보세요. 연락처가 없으면 경찰에 도움 요청해서라도 반드시 가족들을 찾으세요.”

가족을 찾으라고 말하는 태경의 표정에는 비장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치료는……. 치료는 진통제가 가장 중요하고 일단 중환자실 예약만 해 두세요.”

“네, 알겠습니다.”

차분한 어투로 막힘없이 오더가 쏟아졌지만 다들 아직도 의아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지금 들은 오더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다.

“선생…….”

“저기, 제가 말씀을 안 드린 게 있어서요.”

이찬희가 태경에게 물어보려던 그때, 대기실에 있던 모텔 사장이 눈치를 살피며 불쑥 끼어들었다.

“저, 젊은 아가씨가 있던 방에 퍼런색의 구토가 있었어요. 술병도 있고요. 그 구토 냄새가 온 방에 진동했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하면서 구토 냄새를 많이 맡아 봤는데 평생 처음 맡아 본 냄새로 말도 못 하게 지독했어요.”

“……!”

모텔 사장의 말을 들은 이찬희는 그때서야 뭔가 깨달은 듯 다급히 질문했다.

“혹시 술병 외에 다른 병은 없었나요?”

“급하게 데리고 나오다 보니까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소주도 있었고 막걸리인가? 뭔가 하여튼 있었는데 정신이 없다 보니 잘 모르겠네요.”

“말씀 감사합니다.”

“찬희야…….”

모텔 사장은 다시 보호자 대기실로 향했고, 환자를 뚫어져라 보며 생각에 잠긴 이찬희를 태경이 불렀다.

“네, 선생님.”

태경은 아주 잠시 뜸을 들이더니 여자 환자에게 머물던 시선을 이찬희에게 옮기며 분명하게 말했다.

“이제 앞으로 볼 일이 거의 없겠지만, 이 환자 잘 봐 둬. 파라콰트 다이클로라이드(Paraquat dichloride)이야.”

“파라콰트 다이클로라…….”

“아, 그렇게 말하면 모를 수도 있겠구나. 그라목손이라고 하면 알겠지?”

“그……!”

태경의 입에서 그라목손이라는 단어가 떨어지자마자 진심으로 놀란 이찬희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급기야 말까지 더듬었다.

“그, 그……그라목손이요? 그렇다면 이 환자분은 가…….”

“그래. 상당히 안타까운데 가망이 없어.”

숱한 환자를 본 태경의 입에서 한 번 들을까 말까 하는 단어가 분명하고 확실하게 튀어나왔다.

“지금은 판매가 금지되고 나서 거의 없었지만, 예전에는 정말 많았어.”

조금 전-

그러니까 모텔 사장이 젊은 여자를 둘러업고 우리병원에 막 들어오던 그때였다.

‘어디 불편하신 곳 없으시죠?’

‘전혀요. 어제는 수술하고 마취 깨어났을 때는 좀 힘들었는데 이제는 괜찮습니다.’

어제 수술받은 환자와 보호자가 진료실에서 태경과 면담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몸 안의 암을 제거해 주셔서 그런지 벌써 다 나은 기분입니다. 선생님이 제 은인이세요.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과찬이십니다. 그런데 인사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옆에 계시는 아내분이세요.’

마치 방송국 방청객을 능가하는 과한 리액션을 보이는 50대 중년 남자는 대장암을 수술한 환자였다.

모든 대장암 환자들이 전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이 환자 나이와 비슷한 대장암 환자들이 병원에 올 때는 어느 정도 병이 진행된 상태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환자는 소위 암이 진행됨에 있어 초기라고 할 수 있는 그 시기에 발견하여 수술받은 것이다.

남자가 대장암 초기에 수술을 받을 수 있던 건 바로 아내 덕분이었다.

어느 날, 평소보다 짙은 색의 변을 본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아내는 곧장 대장 내시경을 예약했다.

병원을 멀리하는 남편은 몇 번이나 병원 진료를 거부했지만, 평소 건강 염려증이 있던 아내의 잔소리를 견디다 못해 억지로 왔던 게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아내분 말씀 안 들었으면 나중에 힘드셨을 거예요.’

‘네,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 아내 덕분에 살았네요.’

‘알면 내 말 잘 들어.’

‘여부가 있겠습니까. 우리 마나님이 최고야.’

‘원장님 좋으시지?’

‘그러게, 당신이 왜 큰 병원 안 가고 여기로 오자고 한지 알겠어.’

‘저 선생님 수술 예약 잡기 쉽지 않아.’

한껏 기분이 좋은 환자는 아내와 작은 목소리로 태경을 칭찬하며 진료실을 나갔다.

사실 이런 환자들을 수술하고 진료할 때면 태경 역시 기분이 좋았다.

예전처럼 암에 걸렸다고 모두 죽는 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큰 병임에는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수술 후 완치라는 목적지를 향해 항암을 진행하는 환자들의 고통과 그 과정은 긴 마라톤과도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암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대할 때면 그만큼 마음이 더 쓰이고는 했었다.

그런데 방금 환자처럼 암에 걸렸어도 초기에 발견하여 깔끔하게 수술로 종양을 제거한 경우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환자가 그 힘든 과정을 겪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그것만으로도 참 좋았다.

부산 호스피스 병원에 있는 말기 암 환자인 유지천을 보고 온 뒤 태경은 요즘 들어 환자들의 죽음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환자가 돌아간 뒤, 흐뭇한 표정으로 수술 복귀 노트를 작성하고 있었다.

이찬희와 최모나 그리고 나중에 우리병원 일할 후배들에게 물려줄 생각이었기에 최근 다시 복기 노트 작성을 시작했다.

한동안 그림까지 그려 가며 복기 노트에 열을 올리던 태경의 오른손이 순간 삐끗하며 빨간 색연필이 노트를 가로질러 그어졌다.

‘……!’

드르륵-

그러더니 별안간 자리를 벌떡 일어난 태경이 미간을 잔뜩 구기며 진료실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철컥-

‘원장님, 낮에 말씀하시던…….’

뭔가 할 말이 있는 최 팀장의 말을 무시한 채 미친 듯이 응급실로 뛰었다.

‘5단계다.’

여러 냄새가 뒤섞여 있는 병원 안에서 절대 느껴지지 않길 바라고 바랐던 죽음의 냄새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바이탈이 정확히 5단계, 그것도 지금까지 맡아 본 적 없는 극한의 냄새를 자랑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시체가 썩는 냄새와 유황이 섞인 냄새였다.

시체가 썩은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었기에 태경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호스피스 병원에서 맡았던 냄새보다 더 강한 냄새였다.

‘누구지? 119에서 연락받은 거 없는데?’

그 독함에 눈이 아리고 코끝이 시린 기분이었다.

‘사고 환자인가? 아! 혹시…….’

이런저런 상황을 유추하며 응급실에 다다른 태경은 베드에 누워 있는 젊은 여자의 상태를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다섯 번째 바이탈이 아닌 그라목손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불안한 마음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항상 의학적 지식과 경험에 바탕을 둔 의사이지만, 위급한 환자를 마주할 때면 태경 역시 사람이기에 속으로 간절히 외치는 말이 있었다.

‘일말의 희망을 주세요. 이 환자에게 기적이 일어나게 도와주세요.’

하지만 본인 스스로 일말의 희망과 기적의 끈을 잘라 버린 환자를 보자 안타까움에 잠시 할 말을 잃었었다.

그래서 아까 이찬희를 비롯한 의료진이 태경의 모습을 보고 의아했던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데 주저함이 없는 그였지만 이건 경우가 달랐다.

사실 응급실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자살 시도 환자를 많이 보게 된다.

그중에는 다행히 목숨을 구하는 환자도 있었지만, 반대로 그렇지 못한 환자도 있었다.

그런데 모든 직원이 입을 모을 정도로 우리병원은 자살 환자들이 별로 없었다.

응급실이 있는 병원을 운영하면서 그 점이 가장 감사했다.

그렇게 오늘도 마음을 놓으며 환자들을 보던 찰나, 예상치 못한 자살 환자를 만난 것이다.

그것도 본인에게 가장 잔인한 방법을 택한 환자를 말이다.

“어떻게 그라목손을…….”

이찬희는 아직도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 듯 얼이 빠진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라목손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저런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파란색 혹은 초록색 구토를 하는 그라목손은 특유의 지독한 냄새를 유발한다.

여타의 독극물, 그러니까 청산가리 등과는 달리 그라목속은 자기가 직접 화학반응의 반응물질이 되지 않는다.

단순히 반응의 촉매제이다.

문제는 이 촉매가 엄청나게 오래 지속된다는 것이다.

스스로 반응 물질이 아니므로 소모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고, 그동안 우리 몸 반응을 엄청나게 촉매하여 활성산소를 만들어 낸다.

이 활성산소를 좀 더 거칠게 표현하면 방사능과 거의 유사하다.

방사능이 아주 작은 총알로 우리 몸을 관통하는 것이라면, 활성산소는 뜨겁게 달군 인두로 우리 몸 곳곳을 지지고 다니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라목손으로 인해 달구어진 미세한 인두들이 온몸을 돌아다니면서 장기를 박살 내 버린다.

간, 신장, 폐 등이 순차적으로 혹은 동시에 손상이 된다. 물론 그전에 위장관부터 아작이 난다.

이것을 복용하고 난 뒤 고통은 인간이 평상시에 경험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다.

이렇게 설명을 한다고 해도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이상 절대 느낄 수 없는 극악의 고통일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환자들은 그 고통으로 인해 자신을 죽여 달라고 애원하기 마련이었다.

그만큼 입이 마르고 닳도록 강조해서 부족하지 않을 만큼 위험하고 무서운 맹독이었다.

“하!”

태경의 입에서 묵직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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