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불가항력
“하!”
태경의 입에서 묵직한 한숨이 딸려 나왔다.
환자가 사용한 게 그라목손이라는 것만으로 절망적이었지만, 사실 더 절망적인 것은 지금 이 약물이 판매 금지가 되었는데 환자가 왔다는 것이다.
그라목손은 제초제의 일종으로, 그 효능이 뛰어나다 보니 농가나 필요로 하는 곳에서 손쉽게 구입해 사용했다. 하지만 그 독성이 너무 뛰어나고 그와 관련된 사건, 사고가 계속 일어나다 보니 2012년도에 판매가 전면 금지됐다.
판매가 금지되기 전까지 그라목손으로 인한 음독 사건이 꽤 많았었다.
그렇게 판매와 유통이 금지되고 나서 자살률이 떨어졌다는 통계청의 소식도 있었을 만큼 자살 관련 사고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그 무시무시한 위험성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판매가 금지됐을 정도였다.
“저기……. 선생님!”
이찬희가 마음이 먹먹한 채 환자를 보며 생각에 잠긴 태경을 조용히 불렀다.
“그라목손은 판매가 금지되지 않았나요? 혹시 다른 약물일 수도 있잖아요.”
“좋은 지적이야. 원인을 찾기 위해 의심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고. 그런데 찬희야, 99% 그라목손이 확실해. 모텔 사장에게 부탁해서 방에 있던 모든 병들 사진 찍어서 보내 달라고 해.”
“이 쌤은 여기 있어요. 제가 갔다 올게요.”
태경의 말을 듣고 있던 임정숙 간호사가 그 말을 전달하기 위해 대기실로 향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판매가 금지된 저 맹독을 어떻게 구한 걸까요?”
이찬희는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고,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안타까웠다.
한 사람이 그것도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이토록 젊은 친구가 자신의 생명을 왜 스스로 끊어야 했는지 안타까웠다.
한동안 자살 환자가 없어서 마음속으로 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의사가 되어 생명의 전선에서 일하다 보면 일반 사람은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수많은 죽음을 보게 된다.
처음에는 환자의 죽음에 가슴이 먹먹하고 아프지만, 대부분의 의료인은 경험이 쌓일수록 익숙해지고 덤덤해진다.
하지만 이찬희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게 있었으니, 바로 자살한 환자를 보는 거였다.
본인이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스스로 삶을 버린 환자들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병원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의 꺼져 가는 삶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여러 의료진이 고군분투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선택한 그들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럴 때마다 이찬희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특히 오늘처럼 젊은 자살 환자들을 볼 때면 쓰린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처럼 마음이 아렸다.
그동안 자살 환자는 꽤 봤었지만, 인턴부터 지금까지 그라목손을 음독한 환자는 처음 봤기에 더 그랬다.
“안 거야.”
점점 더 그 강도가 심해지는 다섯 번째 바이탈을 느끼던 태경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알다니……. 뭘요?”
“요즘 농약은 어지간히 먹어서는 죽지 않아. 그걸 알고서 그라목손이 첨가된 옛날 농약을 찾아서 먹은 거야.”
“아니, 판매가 금지됐는데 그걸 어떻게 찾았을까요?”
농약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나이도 아니었기에 이찬희는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기어코 찾아서 먹는 경우가 있어. 온라인 xxx페나 그런 데서 구한다고 하더라.”
태경은 우리 병원에 오기 전, 예전에 신화대 시절 자살 환자들을 상당히 많이 봤었다.
그 당시 자살을 시도한 환자를 조사하기 위해 경찰이 왔었는데, 그때 경찰에게 들었다.
온갖 방법이 있는데 그중에는 그라목손의 비율이 꽤 된다고 했다.
판매가 금지됐지만, 그전에 판매됐던 약물을 전부 수거하지 못했기에 남아 있는 물량이 삶을 등지려는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일부러 그런 곳에서 그라목손을 구입할 정도면 이미 몇 번의 자살 시도를 했다는 말도 되고, 반드시 죽으려고 약을 구매해서 소지하다가 시도했을 확률이 높아.”
“아…….”
그 말을 듣고 있던 이찬희가 시선이 저도 모르게 환자의 손목으로 향했다. 그리고 태경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서로 만나지 못하는 여러 개의 평행선이 그녀의 손목 안쪽에 문신처럼 상처로 남아 있었다.
살짝 보이는 그 상처들을 보자 그간 이 환자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대충 짐작됐다.
“네, 알았어요. 바로 갈게요. 찬희야, 나 중환자실 가 있을게. 지금 바이털 흔들리는 환자가 있어.”
그사이 중환자실에서 콜을 받은 태경은 이찬희에게 오더를 내렸다.
“예.”
“보호자 오면 면회시켜 드리고 과거력 등 물어본 뒤에 중환자실로 올려보내. 내가 볼게.”
“네, 알겠습니다. 저기…… 선생님? 잠시만요.”
대답한 이찬희는 잠시 머뭇머뭇하더니 급하게 태경을 부르며 그를 뒤 따라갔다.
“왜?”
“혹시, 혹시 말입니다. 보호자가 치료를 원하지 않으면……. 그땐 어떻게 할까요?”
“그럴 수도 있지.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다른 사고 환자도 아니고 자살 환자였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아 보호자가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걸 태경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해 드려. 환자의 마지막 순간을 같이 있게 해 드리는 게 나을 수도 있어.”
평소 생명의 소중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작은 희망만 있다면 어떻게든 해 보려는 태경과는 어울리지 않은 발언이었다.
하지만 결코 일부러 나온 발언이 아니었다.
저 환자가 중환자실로 가더라도 환자는 의학적으로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살 수 있는, 살릴 수 있는 미세한 수치조차 저 환자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 있는 태경은 중환자실에서 환자가 혼자 있는 것보다 가족들이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에게도 떠나보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의사로서 잘 알고 있었다.
환자에 대한 오지랖이 깊은 그가 이런 결정을 내린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주 미세한 소량이 아닌 이상, 그라목속을 음독하고 살아나기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 환자는 작정하고 치사량을 음독했기에 사실상 살 수가 없었다.
어쩔 수가 없다. 아무리 태경이라도 신은 아니었다.
그라목손을 먹은 저 환자의 상태는 불가항력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태경 역시 마음이 무겁고 먹먹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보호자가 치료를 거부할 경우, 중환자실에서 홀로 눈을 감는 것보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게 나을 거라고 판단했다.
“언제 즈음일까요?”
“아마 오늘 밤이나 내일 오전에 사망할 거야. 그보다 더 빠를 수도 있고. 보호자에게는 솔직히 말씀드려. 혹시 날 만나고 싶다고 하시면 바로 콜하고. 나 중환자실에 가 볼게.”
“네……. 알겠습니다.”
마치 안개가 잔뜩 낀 것처럼 시체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응급실을 벗어나는 태경의 뒷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힘이 없어 보였다.
“이 쌤, 사진 왔어요.”
그 뒤, 보호자 대기실에 있다 모텔로 돌아간 사장에게서 사진이 도착했다.
“여기요. 한 번 보세요.”
“아……. 맞네요.”
사진을 본 이찬희는 역시나 태경의 예상대로 환자가 음독한 농약이 그라목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쌤, 경찰에서 연락해 왔는데요?”
이미 확인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진을 확대해서 쳐다보던 이찬희를 스테이션 간호사가 불렀다.
“제가 받아 볼게요.”
휴대폰을 내려놓은 그는 환자의 신상을 알기 위해 조금 전, 통화했던 경찰과 다시 통화했다.
“여보세요. 네, 여기 연락드렸던 우리병원인데요. 네! 아……. 네. 감사합니다.”
경찰의 도움으로 간신히 환자의 신상을 파악한 이찬희는 직접 보호자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 * *
어느 다세대 주택-
1층에 사는 할머니는 화장실에서 변기를 내린 뒤 안방에 누워있는 할아버지 앞에 섰다.
“이제 소변 통도 다 비웠으니 얼른 자요.”
“…….”
“하!”
할아버지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할머니는 짧은 한숨을 푹 내뱉으며 어이없이 웃었다.
“이 세상에 당신만큼 속 편한 사람은 없을 거야. 내가 미친년이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깟 이혼을 안 해 줬나 몰라.”
“…….”
“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길 가는 사람 전부 붙잡고 물어봐도 나 욕할 사람 아무도 없어요. 다 당신 욕하지. 난 당신 하나도 안 불쌍해. 내가 불쌍하지. 당신이나 나나 고달픈 인생, 얼른 잠이나 자요.”
할머니는 방에 불을 끄고 문을 닫은 뒤 거실로 나왔다.
아침 일찍 일하고 온 뒤 할아버지를 돌보느라 뒷전인 집안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작은 거실은 확실히 정리가 필요해 보였다.
그렇게 말없이 거실을 정리하며 아침에 벗어 두고 간 옷가지를 걸어 놓고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를 시작한 김에 늘 눈에 거슬리던 작은 책장 속 두서없이 꽂힌 책과 물건들을 정리하는데, 별안간 그 사이에 끼어 있던 무언가 바닥 위로 떨어졌다.
“아이고, 아이고 허리야.”
할머니가 앓는 소리를 하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웠다.
자글자글 짙은 주름이 팬 손에 들려 있는 건 빛바랜 가족사진이었다.
“그렇게 찾을 때는 보이지도 않더니 여기 있었네.”
한참 청소에 집중하던 할머니는 하던 일을 멈추고 사진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사진 속에 있는 가족들을 한 번씩 쳐다보던 할머니의 시선이 어린 여자아이에게 멈췄다.
“네 말대로 연락 없이 사는 게 너도나도 속이 편할 거 같다. 안 그러냐?”
사진을 보며 혼잣말하던 할머니는 벽에 걸린 달력을 쳐다봤다.
1년 12달이 한 번에 보이는 기다란 달력 위로 이따금 빨간색 동그라미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작은 글씨로 ‘살자’라는 단어가 보였다.
“그래 무소식이 희소식이랬지. 너도 나한테 연락하는 게 싫겠지만, 미안한데 나도 너한테 연락 오는 게 안 반가워. 네 말대로 우리 이렇게 살자. 각자 알아서 잘 살자. 하!”
복잡한 표정으로 혼자서 한탄하던 할머니는 서둘러 청소를 마친 뒤 냉장고로 향했다.
달랑 김치통 하나를 꺼낸 뒤 아침에 끓여 둔 콩나물국에 대충 밥을 말았다.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밥을 먹지 않으면 기운이 없었기에 억지로 밥을 먹었다.
“리모컨이 어디 갔더라…….”
고요한 집안에 울리는 적막이 싫었던 할머니가 TV를 켜고 식탁 의자에 다시 앉으려던 그때였다.
Rrrrrrrrrrr
식탁 한쪽에 올려둔 휴대폰이 세차게 진동하며 울렸다.
“……!”
다 늦은 시간, 생전 처음 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에 휴대폰으로 향하던 할머니의 손은 잠시 멈칫했다.
그러더니 이내 다시 숟가락을 들고 콩나물국에 말은 밥 한 수저를 입에 밀어 넣었다.
Rrrrrrrrrrr
또다시 휴대폰이 진동하며 울렸지만, 할머니의 태도는 똑같았다.
느낌이란 게 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전화번호였지만, 지금 울리는 저 전화를 받으면 안 될 것 같은. 아니, 정확히는 받기 싫었다.
전화의 내용이 어떤 내용인지 알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난 안 받을 거야. 안 받고 싶고 알고 싶지도 않아. 백날 울려 봐라. 내가 받나.”
그렇게 할머니는 마치 작정한 사람처럼 전화를 억지로 받지 않았다. 그리고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끼니를 때운 뒤에야 다급하게 울리던 휴대폰이 잠잠해졌다.
“이제야 조용해졌네. 모르는 게 좋아. 그게 속 편해.”
그렇게 양치를 마치고 화장실에서 나온 할머니가 알람을 설정하기 위해 다시 휴대폰을 잡은 순간,
Rrrrrrrrrrr
휴대폰은 다시 진동했다.
“지랄맞네. 내 인생처럼 지랄맞게도 울려.”
받을 때까지 울릴 것만 같은 휴대폰을 할머니는 뭔가 각오한 표정으로 화면을 터치했다.
“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