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보호자의 선택
받을 때까지 울릴 것만 같은 휴대폰을 할머니는 뭔가 각오한 표정으로 화면을 터치했다.
“여보세요.”
-밤늦게 죄송합니다만, 여기 병원인데요. 김길자 할머니 맞으시죠?
“네, 맞아요. 제가 김길자예요.”
-다름이 아니라 고채량 씨가 손녀 맞으신가요?
“…….”
수화기 너머 ‘고채량’이란 이름이 들리자 할머니는 잠시 침묵했다.
-여보세요? 어르신 안 들리세요? 고채량 씨 모르세요?
“압니다. 알아요. 걔 때문에 전화한 건가요?”
-예? 아, 네. 지금 손녀분이 우리 병원에 있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김길자 할머니는 음독으로 병원에 누워 있는 여자의 유일한 보호자였다.
“거기 위치가 어디인가요?”
-제가 주소랑 전화번호 문자로 남겨 드릴게요.
“알겠어요.”
전화를 끊은 할머니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안방 문을 열어 할아버지가 잠든 걸 확인했다.
“소화제가 어디 있더라.”
몇 숟가락 뜨지도 않은 늦은 저녁이 얹혔는지 할머니는 소화제를 먹은 뒤, 한동안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무소식 희소식이라 했는데 그걸 못 참고……. 참!”
혼잣말을 중얼거린 할머니는 지갑과 소지품을 챙겨 집을 나섰다.
* * *
“이 쌤?”
스테이션에서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갸웃하는 이찬희를 임정숙 간호사가 불렀다.
“보호자랑 연락됐어요?”
“…….”
“이 쌤? 보호자 연락됐냐고요.”
“아, 네. 됐어요.”
“전화 받았어요?”
“아까는 전화를 그렇게 안 받더니 이번에는 한 번에 받더라고요.”
이찬희는 어떻게든 베드에 누워 있는 환자의 보호자에게 연락하고 싶었다.
삶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저 환자를 이대로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예전에, 수련받을 때 동기 놈이 한 말이 있었다.
오랫동안 입원하며 연명 치료를 받던 환자였는데, 더 이상 환자의 치료가 힘들어졌다.
실질적인 오더야 교수님이 하므로 환자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던 동기는 환자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 말하라고 했다.
‘환자분, 혹시 필요한 거나 원하시는 게 있으면 저한테 말해 주세요.’
‘그러면 염치없지만 제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그럼요. 말씀하세요.’
‘제 가족에게 연락 좀 해 주세요.’
‘가족……이요?’
‘네, 보고 싶네요.’
오래전, 아내와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던 환자는 가족들이 보고 싶다고 했고, 동기는 어렵게 수소문해 가족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환자가 눈을 감기 바로 전날, 동기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고 했다.
‘선생님 덕분에 죽기 전에 가족을 볼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어요. 이상하게 다른 건 하나도 아쉽지 않은데 가족 얼굴 못 보고 갈까 봐 그게 무서웠거든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찬희는 그때 동기에게 들었던 그 환자의 말이 자꾸 생각났고 그래서 더 고채량 가족에게 악착같이 연락을 한 거였다.
“그래도 보호자랑 연락이 안 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다행이긴 한데……. 그런데요 수 쌤? 좀 이상한 거 같아요.”
“이상하다니 뭐가요?”
“보통 가족이 병원에 있다고 하면 막 놀라고 그러잖아요.”
“그렇죠. 아무래도 가족이 병원에 있다고 하면 놀랄 수밖에 없죠.”
“제 말이요. 그런데 할머님께서 뭔가 반응이 뭐랄까……. 심드렁하다고나 할까 태연하다고나 할까?”
보통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스럽다면 손주는 그 이상으로 사랑스럽고 예쁘다고 한다. 그런데 조금 전에 전화를 받은 환자의 보호자인 할머니는 어쩐지 그런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여튼 뭔가 이상하긴 해요.”
“아마 할머니께서 놀라서 그럴 거예요. 가끔 저도 보호자에게 연락하다 보면 놀라서 멍한 사람들도 있어요. 게다가 연세가 있으신 분이면 더 그럴 수도 있죠.”
“그런가…….”
“그럼요. 그런데 이 쌤, 괜찮으시겠어요?”
임정숙 간호사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젊은 음독 환자를 본 이찬희가 평소와 조금 달랐기에 보호자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싶었다.
“마음이 안 좋기는 하지만 괜찮아요. 이것도 우리 일인데 보호자에게 사실대로 잘 전달해야죠.”
잠시 뒤-
이찬희에게 연락받은 김길자 할머니는 생각보다 빨리 병원에 도착했다.
“손녀가 여기 있다는 연락을 받고 왔는데 어디 있나요? 이름은 고채량이고 나이는 19살이에요.”
“접니다. 제가 연락을 드렸어요.”
백발이 성성한 머리카락과 작은 체구의 날카로운 인상이 눈에 띄던 할머니는 다급한 발걸음으로 응급실로 들어왔지만, 울거나 허둥지둥하지 않았다.
표정과 발걸음에서부터 할머니의 인생에 많은 곡절이 있었음을 짐작게 했다.
“갑자기 병원에서 연락드려서 놀라셨죠?”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건가요?”
“손녀분이 투숙했던 모텔에서 쓰러진 걸 모텔 사장님이 발견해서 병원으로 데려왔어요. 그런데 몸에 안 좋은 그라목손이라는 농약을 음독했습니다. 그로 인해 현재 손녀분의 상태가 많이 안 좋습니다.”
이찬희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할머니의 감정을 살피며 말했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거짓이 없게 있는 그대로를 전했다.
행여 할머니가 충격을 받고 쓰러질까 봐 단어 선택도 조심하며 말했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밤이나 내일 오전을 넘기기 힘들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빳빳이 들고 있던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하지만 그 외의 행동은 없었다.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고 발을 동동 구르지도 않았다.
이찬희가 느낀 그 감정이 맞았다.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고 태연했으며 평정심도 잃지 않아 보였다.
대개 이런 경우 보호자들의 반응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그런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뭐라고요?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 oo이 죽는다는 말인가요?’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뭐가 잘못됐어.’
‘죽다니 누가 죽어요. 예? 누가 죽어! 당신 의사 맞아?’
‘하!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나 죽네. 나 죽어…….’
화를 내는 사람, 애원하는 사람, 믿지 못하는 사람, 감당할 수 없는 울음을 터트리는 사람, 충격으로 기절하는 사람까지.
보통 가족이라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하나뿐인 보호자이자 가족이라는 이 할머니의 반응은 이찬희의 의사 인생 처음 겪어 보는 경우라 좀 당황스러웠다.
‘그래, 놀라서 그러겠지.’
아까 임정숙 간호사의 말대로 할머니가 연세도 있으시고 손녀의 상태가 상태이니만큼 많이 놀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이어 할머니의 충격적인 말이 들려왔다.
“불쌍한 년, 박복한 년. 그렇게 죽으려고 하더니 기어이 가는구나…….”
그 말을 들은 이찬희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의료진 역시 다들 제 귀를 의심하며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
보호자인 할머니에게 아직 전달할 말이 남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중환자실을 다녀온 태경이 다가왔다.
“이 선생, 내가 할게. 수고했어.”
입까지 벌린 채 놀란 눈을 하는 이찬희를 달래며 태경이 할머니와 마주했다.
“안녕하세요. 전 이 병원 원장 김태경이라고 합니다.”
“아, 네. 수고가 많으시네요.”
“할머님 많이 놀라셨겠지만, 현재 환자분의 상태가…….”
“됐어요. 하지 마세요.”
태경이 좀 더 상세한 설명을 전하려 하자 할머니는 듣기를 거부하듯 말허리를 잘랐다.
“방금 저 선생님께 들을 만큼 들었어요. 더 안 들어도 돼요.”
“그러면 환자분 치료를 이어 갈지 결정해 주셔야 하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 죽어 가는 애를 치료해 봤자 뭐해요. 쟤도 나도 서로 괴롭기밖에 더하겠어요.”
“그 말씀은 치료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치료 안 해요. 뭐가 그리 급하다고 20년도 못 채우고 가는지…….”
“혹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시다면 잠시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태경은 언제나 그렇듯이 다시 한번 할머니에게 물었다.
이런 엄청난 소식을 갑자기 들었는데 머릿속에 온전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갑자기 사고 소식을 접하고 온 가족들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태경은 항상 생각할 시간을 묻고는 했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대답은 흔들림 없이 그대로였다.
보호자인 할머니는 손녀의 치료를 거부했다. 확고한 대답에 태경도 조금 놀라긴 했다.
솔직히 아무리 가망이 없고 손을 쓸 수 없더라도 손녀였기에, 가족이기에 할머니의 입에서 치료를 원한다는 말이나 비슷한 말이 한 번은 나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태경 역시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누구보다 환자의 상태를 가장 잘 알고 할머니가 환자의 보호자이자 가족이기에 그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저기요!”
그런데 별안간 이찬희가 목소리는 내며 할머니에게 다가왔다.
“보호자분? 환자분이 아니, 할머님의 손녀가 19살이라면서요? 그런데 이대로 보내신다고요?”
누구보다 죽음을 많이 접하는 의료진들조차 가장 힘든 죽음은 어린 환자들의 죽음을 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성인 환자의 죽음이 아무렇지 않다는 건 아니었지만, 나이가 어릴수록 환자에게 닥친 죽음이 가혹하고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찬희가 목소리를 높인 이유는 환자의 나이가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전 할머니가 응급실로 들어오면서 환자의 나이를 말했을 때, 이찬희는 속으로 꽤 놀랐었다.
머리가 염색되어 있고 화장을 했기에 대학생이지 않을까 했는데 아직 학생이었다. 생각해 보니 환자의 앳된 얼굴이 어린 학생처럼 보였다.
“할머님은 이대로 보내도 괜찮으세요? 저 어린 손녀를 어떻게…….”
“이찬희!”
“그럼 젊은 선생님께 물어볼게요.”
태경이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인 이찬희를 말리는 사이 할머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가 치료하겠다고 하면 쟤를 살릴 수는 있으세요?”
“네?”
“의학적으로 그라목손을 마신 사람을 살릴 수 있냐고 물었어요. 내가 지금은 도시 사람이지만 옛날에는 농사를 지어서 그게 어떤 농약인지 선생님보다 더 잘 알고 있어요.”
할머니는 손녀가 음독한 농약이 얼마나 독하고 무시무시한지 이미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선생님도 못 살리잖아요. 그러면서 왜 치료를 안 하냐고 화를 내면 어떡해요. 그냥 치료하지 않겠다는 내 말에 화가 났던 거 아닌가요?”
사실이었다.
의학적으로 이미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태라는 걸 이찬희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슬픔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할머니의 태연함에 화가 났던 것이다.
“이찬희, 그만해.”
“이 선생님, 저랑 잠깐 가요.”
태경이 다시 한번 진지한 표정으로 주의를 주자 최모나가 이찬희의 손을 잡고 자리를 벗어났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지금 손녀는 볼 수 있나요?”
“그럼요. 곁에 계셔도 됩니다. 환자분 곁에 있어 주세요.”
“감사합니다.”
태경에게 살짝 묵례하며 인사한 할머니는 손녀가 누워 있는 베드로 천천히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