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딱 2분만
“자! 마셔.”
김길자 할머니에게 뭐라고 했던 이찬희를 데리고 잠시 응급실 밖으로 나온 최모나는 정수기에 있는 찬물을 따라 건넸다.
“마시고 정신 차려. 이 쌤, 답지 않게 왜 그런 거야?”
처음 보는 동료 모습에 놀란 최모나는 다그치듯 말했다.
가끔 덜렁거리기는 하지만, 이찬희는 늘 차분하고, 병원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잘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까칠하고 시니컬한 자기와는 달랐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늦은 시간, 그것도 마지막을 앞둔 손녀를 보러 온 할머니에게 목소리를 높인 게 의외였다.
“아니, 환자나 보호자한테 잘하는 사람이 왜 갑자기 나이 많은 분한테 버럭한 거냐고.”
“…….”
“이찬희!”
“귀 안 먹었거든? 그냥…….”
“그냥은 무슨 그냥이야. 이 쌤 거기서 안 멈췄으면 선생님께 된통 깨졌어.”
“알아.”
충분히 알고 있다. 아마 이따 제대로 한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보호자인 할머니에게 목소리를 높인 순간, 레이저를 뿜어 대는 태경의 눈빛을 정확히 봤기 때문이다.
“그냥 좀 답답했어.”
“그러니까 그냥 뭐가 답답했길래 생전 안 하던 보호자에게 급발진했냐니까.”
“넌 몰라.”
“참나! 모르긴 뭘 몰라? 할머니 태도 때문에 그런 거지?”
“어! 어떻게 알았어?”
“내가 너랑 하루 이틀 일해? 척 보면 척이지.”
사실 최모나도 이찬희가 버럭한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병동에서 환자를 보고 검사실에 갔다 오느라 상황이 조금 진행된 뒤에 왔지만, 최모나도 보호자의 태도가 안타까운 건 사실이었다.
고채량 환자를 자신이 담당했으면 아마 이찬희보다 더 버럭했을 것이다.
“나도 그 기분 이해하지. 그런데 이 쌤? 우리는 그러면 안 되잖아. 그 말 알지? 병원에 온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이야기 들어 보면 사연 없는 사람 없다는 말.”
이찬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이란 곳이 아무래도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오는 곳이기 때문에, 진료하다 보면 환자들이 꺼낸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할 때가 적지 않았다.
“환자랑 저 할머니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우린 알지 못하잖아. 물론 아무 사정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쌤이 보호자를 질타할 수는 없는 거야.”
“그걸 왜 몰라.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 가네. 그리고 가족이잖아. 경찰 말로는 유일하게 연락이 가능한 가족이라는데, 그것도 저렇게 어린 손녀를…….”
“나도 알아. 근데 가족이라고 해도 마음이 애틋하지 않을 수도 있어. 예전에 독거 할머니 일 기억나?”
혼자 사는 할머니가 집에서 고독사하고 시신 인계 때문에 응급실에 온 적이 있었다.
독거노인이었던 할머니는 경찰의 도움으로 유일한 혈육인 아들에게 연락이 닿았다. 그런데 응급실에 온 아들의 태도가 가관이었다.
자식이란 놈이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하기는커녕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어머니의 몸에서 통장을 찾아 그대로 간 적이 있었다.
“기억나지. 최모나, 너 그때 그 아들에게 소리치고 난리도 아니었잖아.”
“기억하네. 맞아. 그땐 어찌나 화가 나던지 그딴 놈을 아들이라고 둔 할머니가 불쌍해서 참을 수 없었어. 그런데 내가 그 아들을 보면서 느낀 건 진짜 가족이라도 남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거야. 뉴스만 봐도 가끔 그런 일 있잖아.”
“알지. 나도 알아.”
이찬희 역시 그걸 모르는 게 아니었다.
다만, 눈앞에서 어린 손녀를 대하는 할머니를 보니 이성적으로 대할 수가 없었을 뿐이다.
“저 할머니가 겉으로 보이는 반응이 건조하다고 해서 그 속내가 어떤지는 우리가 알 수 없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저 할머니는 왔잖아.”
“오다니. 뭘?”
“이 늦은 시간에 손녀가 위급하다는 말을 듣고 병원에 왔잖아. 진짜 쓰레기 같은 사람들은 죽든 말든 신경도 안 써. 내가 보기에 저 할머니는 적어도 나쁜 사람은 아니야. 손녀의 마지막을 배웅하러 왔잖아.”
“참나!”
최모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찬희는 피식 웃음을 보였다.
“뭐냐, 사람이 기껏 말했더니 그 반응은?”
“내 반응이 왜?”
“뭔가 비웃는 거 같은데…….”
“틀렸어. 비웃는 게 아니라 멋있어서 웃은 거야. 개모나 멋있네.”
“이제 알았냐?”
“우리 모나 멋지게 성장했구나?”
“뭐래.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들어가서 얌전히 있어.”
최모나는 이찬희의 어깨를 툭 치며 함께 응급실로 들어갔다.
챠륵-
“일상아?”
응급실에 들어온 이찬희는 친구가 있는 베드로 향했다. 지금까지 정신이 없어 잊고 있던 친구가 이제야 생각난 것이다.
“찬희야?”
단순히 엉덩이를 소독하기 위해 웃으며 병원에 왔던 김일상은 갑작스럽게 펼쳐진 응급실 상황에 이도 저도 못 하고 가만히 베드 위에 있던 참이었다.
“너, 괜찮아?”
“당연히 괜찮지. 너야말로 괜찮아?”
“나야 뭐……. 근데 찬희야? 저 환자분 말이야. 살 수 있는 거야? 죽지는 않겠지?”
생전 일면식도 없고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김일상은 고채량이 걱정됐다.
“그게 힘들 거야.”
“아, 그래. 힘들어? 어떻게 하냐. 저 어린 친구가……. 하!”
“이 쌤? 신환이요.”
“네. 지금 갈게요.”
“소독해 주려고 왔는데 또 가 봐야겠네. 미안, 조금만 기다려.”
“무슨 소리야. 나 시간 많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환자 보고 와.”
“그래. 고맙다.”
이찬희가 베드를 나가고 김일상의 시선은 다시 고채량이 누워 있는 베드로 향했다.
* * *
“지금 손녀는 볼 수 있나요?”
“그럼요. 곁에 계셔도 됩니다. 환자분 곁에 있어 주세요.”
“감사합니다.”
태경에게 살짝 묵례하며 인사한 할머니는 손녀가 누워 있는 베드로 천천히 걸어갔다.
손녀딸이 누워 있는 베드 옆으로 걸어온 할머니는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보여?”
그러더니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손녀가 잘 볼 수 있게 얼굴 쪽으로 들어 올렸다.
할머니가 들어 올린 건 집에서 청소 중에 찾았던 빛바랜 가족사진이었다.
“네가 그랬지? 엄마 얼굴 기억 안 난다고, 사진 없냐고. 아까 집 청소하다가 찾았어. 이게 너 어릴 때고 이게 네 엄마랑 아빠야.”
“……!”
“이제 기억나니? 나도 잊고 있던 얼굴인데 이걸 보니까 기억이 나더라.”
고채량은 힘든 와중에도 할머니가 보여 주는 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너도나도 서로 참 많이 힘든 인생을 산 거 같다. 그렇지? TV에서 그러더라. 아무리 힘들어도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고. 인생은 살아 볼 만하다고. 그런데 너랑 나를 보면 그 말이 틀린 거 같아. 사는 게 고욕인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지?”
할머니는 파르르 떨리는 손녀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사는 게 힘든 사람한테 꾸역꾸역 살아가는 게 그게 얼마나 고통인데. 난 너한테 뭐라고는 못하겠다. 네 엄마 만나거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해 보고 싶던 것도 다 해 봐. 여기서 힘들었던 기억은 잊어버리고 거기서는 행복해라. 고생했다. 그리고 나 너, 싫어한 적 없어. 내 삶이 고단해 널 돌볼 여력이 없던 거지, 난 너 싫어하지 않았어. 미안하다.”
할머니는 들고 있던 사진을 내려놓고 죽어가는 손녀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흐!”
그 뒤, 베드에 누워 있던 고채량이 울음을 터트렸다.
“흐으윽! 흑!”
견딜 수 없는 괴로움 속에서도 고통을 분출하지 않던 그녀는 응급실이 떠나가라 통곡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을 보고 있던 태경은 저 어린 학생의 눈물이 아파서 흘리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형용할 수 없는 통증이 있겠지만, 여태까지 환자의 반응을 볼 때 통증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정말 서럽게 우는 그냥 아이 같았다.
저 두 사람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서러움에 가슴이 먹먹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김길자 할머니는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두 사람이 있는 베드 주변의 환자, 보호자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전부 숙연해졌지만, 할머니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응급실에 있던 의료진도 다른 환자들도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흐흐윽!”
구슬프게 울리는 울음소리에 사람들은 그저 말없이 두 사람을 안타깝게 쳐다볼 뿐이었다.
한동안 계속되던 고채량의 서글픈 울음이 그쳤다.
할머니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 없이 손녀의 떨리는 손을 잡고 말없이 그 옆을 지켰다.
그리고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고채량은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나이 고작 19살이었다.
19살의 어린 나이에 그녀는 스스로 이 세상에 안녕을 고했다.
계속 손녀의 손을 잡고 있던 할머니가 잡고 있던 손을 가지런히 베드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조용히 혼잣말하듯이 속삭였다.
“지금까지 살아가느라 애썼다. 애썼어. 부디 그곳에서는 행복하게 살길 바랄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임정숙 간호사가 조용히 태경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고채량 환자 이 선생님께 확인하라고 할까요?”
“아니요. 내가 할게요.”
환자를 보며 계속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태경이 환자가 누워 있는 베드로 걸어갔다.
지금까지 응급실은 물론 병원에 진동하던 다섯 번째 바이탈이 마치 거짓말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환자의 숨이 멎는 순간 지독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태경은 고채량에게 다가가 조용히 할 일을 했다. 그녀의 숨은 멎었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사망선고였다.
보통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의사가 시간을 보고 이야기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환자의 자발 호흡이 멈추고 모니터상 그래프의 곡선이 멈춘 뒤, 누가 봐도 환자가 사망한 상태라 할지라도 마지막으로 심전도 확인을 한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고채량의 심장 박동수는 제로였다. 심전도 플랫까지 마치고 이제 정말 사망선고만이 남은 상태였다.
환자의 사망선고는 환자가 사망한 시간이 아니라 의사가 모든 절차를 끝내고 확인한 시간을 선고하는 것이다.
현재 시각을 확인한 태경이 사망선고를 하던 그때였다.
“지금 x월 x일 오전 2시…….”
“저기, 선생님? 잠시만요.”
지금까지 별다른 말 없이, 그 어떤 반응 없이 가만히 손녀 옆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태경의 가운을 손끝으로 살짝 잡으며 사망선고를 말렸다.
“죄송하지만……. 정말 죄송하지만, 사망선고를 조그만 기다려 주시면 안 될까요?”
“……!”
사망선고를 기다려 달라니.
태경은 적잖이 당황했다.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기도 했다. 지금까지 사망선고 중에 이런 말을 한 보호자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태경뿐만 아니라 베드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귀를 쫑긋하며 집중했다.
“보호자분 지금 사망선고를 기다려 달라고 말을 하신 게 맞나요?”
“네, 맞아요. 죄송해요. 그런데 잠깐이면 돼요. 딱 2분만 기다렸다 해 주시면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