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할머니와 손녀
“보호자분, 지금 사망 선고를 기다려 달라고 말을 하신 게 맞나요?”
“네, 맞아요. 죄송해요. 그런데 잠깐이면 돼요. 딱 2분만 기다렸다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까지 별다른 반응이 없던 김길자 할머니의 표정이 드라마틱하게 변한 건 아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간절함이 느껴졌다.
“선생님, 황당하신 거 아는데 부탁드릴게요.”
태경의 시선이 응급실 벽에 걸린 시계로 향했다.
현재 시각 오전 2시 58분으로 2분 뒤의 시각은 오전 3시였다.
별안간 할머니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사망 선고 중간에 기다려 달라는 말이 설명되지 않았다.
“…….”
2시간도 아닌, 고작 2분의 시간이다. 그 짧은 시간을 못 기다려 줄 이유는 없었다.
태경은 가만히 침묵했고, 응급실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침묵했다. 마치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짧은 2분 안에 의사와 간호사를 부르는 환자조차 없었다.
계속해서 의료진을 찾던 술에 취한 환자조차 조용했다.
그렇게 평소보다 길게 느껴지던 2분이 지나고 시계가 정확히 오전 3시를 가리키자 태경은 다시 사망 선고를 시작했다.
“202x년 x월 x일 오전 3시, 환자의 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고채량 환자 사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사망 선고가 끝난 뒤, 태경은 보호자에게 인사를 하고 진료실로 향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큰 반응이 없었다. 반대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몇몇 환자들은 숨죽여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뒤, 병원 내 장례식을 담당하는 직원이 와서 김길자 할머니에게 장례 절차에 관해 설명했다.
철컥-
“하!”
진료실에 들어온 태경은 의자에 힘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온몸에 기운이 쏙 빠지는 것만 같았다.
사고든 병이든 자살이든 환자들의 죽음은 늘 언제나 안타깝다.
특히 어린 친구들을 떠나보낼 때면 그 마음이 더 깊이 가라앉는다.
잔뜩 물을 머금은 스펀지처럼 몸과 마음이 축 처지는 것만 같다.
본인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보호자와 환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의사였기에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머릿속도 가슴도 꽉 막힌 도로처럼 답답했다.
드르륵-
태경은 답답한 마음을 씻어 버리고 싶은 마음에 차가운 음료수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탁- 탁-
그런데 창가 쪽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가 그의 귓가를 노크했다.
탁-탁- 탁-
반복적으로 울리는 소리에 창가로 걸어가 밖을 보자 김길자 할머니였다. 구석 벤치에 작은 몸을 기댄 그 모습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
할머니는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려는 듯 반복된 행동을 했다.
창가에 서서 잠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태경은 골이 울릴 정도로 차가운 음료수를 한 번에 들이켠 뒤, 진료실을 나갔다.
그리고 의국실에 있는 작은 담요를 들고 밖으로 향했다.
탁- 탁-
“감기 걸려요. 할머니.”
차가운 새벽 공기에 감기에 걸릴까 우려됐던 태경은 가져온 담요로 할머니 무릎 위를 덮어 주었다.
“그리고 여기서 담배 피우시면 안 돼요. 병원은 금연이에요.”
“감사합니다. 아! 이거요?”
김길자 할머니는 입술 끝에 물고 있던 담배와 라이터를 가리켰다.
“담배를 피우려고 불을 붙인 게 아니라 이렇게 해야 답답한 속이 좀 풀릴 거 같아서요. 담배를 끊은 지 2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가방에 얘네들이 없으면 가끔 불안해요.”
“담배 끊기가 정말 힘들다고 하던데 대단하시네요.”
“끊을 때 힘들긴 했어요. 조금 전에 장례식에 관해 설명 듣고 병원을 나오는데 누가 저보고 그러더라고요.”
할머니는 담배와 라이터를 손에 꼭 쥔 채 말을 이었다.
“사람이 어쩜 이렇게 독하냐고, 분명 진짜 할머니가 아닐 거라고 수군대더라고요.”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아니요. 선생님. 그 사람 말 맞아요. 저 채량이 할머니 아니에요. 아까 다 보셨잖아요. 죽어 가는 애 앞에서도 눈 하나 꿈쩍도 하지 않은 거. 뭐랄까……. 애매한 사이라고 해야 할까. 서로 반갑지 않은 사이라고 하는 게 맞을 거 같아요.”
할머니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누구한테 털어놔 본 적이 없던 속내를 하소연하듯 태경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채량이는 제 손녀가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남편 상간녀의 손녀예요.”
“……!”
전혀 예상 못한 전개에 태경은 순간 움찔했다. 분명 서로가 어색한 모습과 마지막을 앞두고도 애틋함이 느껴지지 않은 모습에 사연이 있겠구나 짐작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사이가 이 정도로 기막힌 사이일 줄은 몰랐다.
병원 생활을 하면서 환자들의 별별 사연을 다 겪어 본 태경조차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놀라셨죠?”
“아, 네.”
“놀라셨을 거예요. 저도 저 자신이 가끔 놀랍긴 해요. 저랑 결혼한 남자는 남편이 아니라 원수였어요.”
김길자 할머니는 그 시절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부모님이 중매한 남자와 결혼했다.
딱히 이상형이란 게 없던 할머니는 그저 성실하다고 소문난 남편과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아갈 날을 꿈꿨다.
하지만 소박한 바람과 달리 남편에게 문제가 있었는데, 바람기가 문제였다.
결혼하고 3년이 지나고 남편의 바람을 알게 됐다. 남편 하나만 믿고 시집온 할머니에게 믿기 힘든 일이었다.
처음 바람이 들켰을 때 남편은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 뒤에는 양가 부모님에게 말했지만, 그 옛날 노인들이 그러했듯이 참고 살라는 말이 돌아올 뿐이었다.
결혼 초기 아이를 유산하고 그 뒤로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그것 때문에 바람을 피나 싶기도 했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문제인가 싶어 이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참아야지 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남편은 더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죽겠다고 말을 하며 이혼하자고 하니 무릎까지 꿇으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그렇게 남편의 바람은 고쳐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몇 년 동안 눈 가리고 아웅 하며 할머니를 철저히 속였던 것이다.
그동안의 바람이 정말 가볍게 스치는 바람과 같았다면, 이번에는 젊고 어린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두 집 살림을 한 게 들통나자 남편이 했던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거 같았다.
‘야!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네가 애를 못 낳으니까 내가 자꾸 딴 여자가 눈에 들어오는 거 아니야.’
죽이고 싶었지만, 자신의 상처와도 같은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자 할머니는 더 이상 남편이란 인간과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 남편은 보란 듯이 상간녀와 살았고 할머니는 눈길을 안 주고 귀를 닫았다.
‘야! 너, 참! 독하다. 이혼 안 하냐?’
‘형님 참 대단하시네요. 형님도 싫으시면서 뭐가 좋다고 꾸역꾸역 사세요. 이혼하고 편하게 사세요.’
주기적으로 쓰레기들이 찾아와 이혼을 요구했지만, 그때마다 이를 악물고 이혼하지 않았다.
그게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였기 때문이다.
‘이혼! 누구 좋으라고 이혼을 해 줘. 어디 평생 조강지처 두고 바람난 놈이랑 상간녀라는 소리 듣고 살아 봐.’
할머니의 단호한 태도의 두 사람은 발길을 끊었다. 그렇게 강산이 바뀌고 또 바뀌고 이제는 남편의 얼굴이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시간이 지날 때, 남편이 찾아왔다.
그것도 병에 걸린 채로 어린 여자아이와 함께. 그게 바로 고채량이었다.
“남편이 병에 걸렸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저, 솔직히 좀 고소했어요. 조강지처 버린 벌을 받는구나 싶었거든요.”
평생을 본부인으로 살 수 없던 여자와는 싸움이 잦았고, 상간녀는 딸을 두고 남편을 떠났다고 했다.
그래도 자기 핏줄이라 딸을 키웠지만, 부녀 사이는 좋지 못했고 성인이 된 딸은 미혼모로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다른 남자와 살겠다며 집을 나간 뒤, 몇 년 후 알코올 중독으로 눈을 감았다.
그렇게 남편은 상간녀의 손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당시 고채량은 어린 초등학생이었지만, 할머니는 그 아이에게 정을 줄 수 없었다.
“걔를 볼 때마다 지난날이 생각나서 힘들더라고요. 지 할머니를 많이 닮았거든요. 그래서 그냥 모른 척, 없는 사람인 척 지냈어요.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밥해 주는 거 그거 하나였어요. 그래도 어린애를 굶길 순 없잖아요.”
사춘기가 된 고채량은 자신을 외면하는 할머니에게 딱 한 번 분노를 터트렸지만, 할머니는 받아주지 않았다.
태어나 부모는 물론 그 누구에게도 사랑 한 번 받지 못하고 관심받지 못한 고채량은 우울증이 심했고, 중학교에 들어가 가출을 반복한 뒤 집을 나갔다.
‘여기 응급실인데요, 고채량 환자 가족이시죠?’
‘oo 응급실입니다. 지금 가족분이 실려 왔어요.’
‘고채량 학생 보호자 맞죠? 0oo병원으로 빨리 와 주세요.’
그러다 가끔 연락이 오면 늘 병원이었다. 그럴 때마다 병원비를 내어주고 얼굴 한 번 보고 오는 게 전부였다.
‘그래. 너무 삶이 힘들겠지. 괴롭겠지.’라는 생각을 할 뿐 목소리를 높이며 왜 이런 짓을 하느냐며 화를 내지 않았다.
고채량도 그런 할머니를 향해 단 한 번도 자신의 속내를 보이거나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하면서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할머니 집에 있던 1년 12달이 다 보이던 달력에 간간이 쓰여 있던 ‘살자’라는 글씨는 고채량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마다 할머니가 표시한 거였다.
그렇게 반복된 병원 연락에 언젠가 큰일을 치르겠다 싶었는데, 그게 오늘이 될 줄은 몰랐다.
“이게 제 사연이에요. 채량이도 저도 박복하죠?”
“할머니도 손녀분도 힘드셨겠네요.”
“쟤도 저도 서로 힘든 인생이었죠. 내 가슴이 다 너덜너덜해져서 그 아이에게 눈길조차 줄 수 없었어요. 저도 실은 우울증이거든요. 저는 그게 우울증인지도 몰랐어요. 그냥 속병인 줄 알았어요. 몇 년 전에 동네 사회복지사를 통해서 검사하니 극심한 우울증이라고 어떻게 버텼냐고 하더라고요.”
그런 삶을 살고 멀쩡한 게 더 이상했다. 우울증이라는 할머니의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울증이란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아요. 누가 뭐라고 해도 전 채량이 쟤 이해해요. 그리고 아까 정말 죄송했어요.”
“네? 뭐가…….”
뜬금없는 사과에 태경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망 선고하실 때, 제가 갑자기 기다려 달라고 해서요.”
“조금 놀라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그게……. 채량이가 숫자 2를 지독하게 싫어했어요.”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밥을 차려 주고 집안일을 하는데 손녀가 묻지도 않은 말을 한 번 한 적이 있었다.
“엄마가 자기를 두고 집을 나간 날도 세상을 떠난 날도 다 2일이었대요. 그래서 자기는 숫자 2가 정말 증오스러울 정도로 끔찍하게 싫대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날이 지 엄마 기일이라 그 말을 한 거 같더라고요.”
할머니는 아까 사망 선고했을 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순간 손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사망 선고를 기다려 달라고 한 것이다.
“그렇게 숫자 2가 싫다고 했는데 적어도 그 시간은 피해서 보내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잘하셨어요.”
“아고! 제가 바쁜 선생님 붙잡고 별말을 다 했네요. 다 늙어서 제가 주책이네요. 저 이만 가 볼게요.”
이야기를 마친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갈 준비를 서둘렀다.
“장례 때문에 잠시 집에 갔다 오려고요. 선생님, 제 이야기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때문에 제 속이 조금은 후련하네요. 담요 감사했어요.”
할머니는 무릎에 덮고 있던 담요를 잘 접어서 태경에게 준 뒤 병원을 나섰다.
“별말씀을요.”
태경은 한동안 병원을 나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할머니도 고채량도 말할 수 없이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지금 잠깐 할머니와 손녀의 삶을 단편적으로 들을 것뿐이지만, 그간 두 사람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싶어 마음이 먹먹할 정도였다.
그리고 잠시 뒤, 장례식장에서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질 거라고 할머니는 입때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