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편지
“왜요?”
집에 돌아온 할머니는 안방 환자용 베드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근육이 안 좋아지는 병을 앓고 있는 할아버지는 말을 할 수 없어 눈빛으로 자기 의사를 전달했지만, 신기하게도 할머니는 거의 알아듣고 있었다.
밤늦게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온 할머니를 보며 할아버지는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렇게 쳐다보는 거 보니까 궁금하나 보네. 당신 손녀 오늘 하늘나라 갔어요.”
“……!”
궁금증이 가득했던 할아버지의 표정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아까 연락받고 병원 다녀오는 길이에요.”
할머니처럼 할아버지 역시 불안정한 손녀 상태를 알았기에 늘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있었다.
새벽에 급히 할머니가 나갈 때마다 병원이지 않을까 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갈 줄은 몰랐다.
“이따 복지사 선생님이 당신 보러 올 거예요. 선생님 힘들게 하지 말고 말 잘 듣고 있어요. 그리고 당신, 손녀 좋은 곳으로 가라고 마음속으로 잘 빌어 줘요.”
“……!”
“왜! 나한테 할 말 있어요? 옷장?”
자꾸만 옷이 걸려 있는 쪽으로 눈짓을 보내는 할아버지를 보며 할머니가 묻자 할아버지가 또다시 눈을 깜빡였다.
외출할 일이 없기에 옷장 속에는 단벌 신사처럼 한 벌의 재킷만 걸려 있었다.
“여기 뭐가 있길래…….”
덩그러니 걸려 있는 할아버지의 재킷 주머니를 뒤적이다 손에 걸린 무언가를 꺼낸 할머니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주머니의 들어 있던 건 채량이의 사진이었다. 그것도 아주 밝게 활짝 웃는 사진이었다.
지금까지 손녀의 웃는 얼굴을 본 적 없는 할머니는 그 해맑은 모습에 순간 멈칫했다.
“이 아이가 웃을 줄도 아네요.”
그리고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이 사진을 꺼내라고 했던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바로 손녀의 영정 사진으로 해 달라는 뜻이었다.
“이 사진으로 하라는 거죠?”
할아버지는 분명하게 눈을 깜빡였다.
고채량은 늘 불안과 외로움이 가득한 표정이 익숙한 아이였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하나뿐인 손녀의 장례식 사진만큼은 밝은 사진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요. 이 사진이 좋겠네. 그게 좋겠어요. 갔다 올게요.”
할머니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할아버지의 눈물을 닦아 준 다음 준비를 마치고 몇 시간 뒤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한쪽에 있는 장례식장에 들어온 할머니는 우두커니 서서 제단을 가만히 쳐다봤다.
애틋함도 없고 정도 없던 손녀였지만, 그래도 장례는 치러 주고 싶었다.
없는 살림이지만 마지막 가는 길이니 잘하지는 못해도 조금이라도 구색을 갖추는 게 마음이 편할 거 같았다.
“오셨어요? 보완할 곳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장례를 담당하는 직원이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그런 거 없어요.”
“한복 사이즈는 괜찮으세요?”
“네. 잘 맞네요.”
직원이 준비해 준 검은 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괜스레 옷고름을 만지며 답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최대한 간소화해서 진행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떠돌이 같은 짧은 인생을 살았던 손녀였기에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 할머니는 직원과 상의 후 장례 기간도 줄였다.
장례식을 치르면서 필요 없다고 느끼는 순서는 다 배제하고 최대한 간소하게 꾸렸다.
빈소 역시 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할머니는 혼자서 조용히 손녀를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하루만 빈소를 차리기로 했다.
새벽부터 하나하나 도와준 직원 덕분에 빈소는 빠르게 차려질 수 있었다.
“저 부탁이 하나 있는데 말씀드려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영정 사진을 이걸로 바꾸고 싶은데 가능할까 해서요.”
할머니는 할아버지 준 활짝 웃고 있는 손녀의 사진을 직원에게 건넸다.
“그럼요. 당연하죠. 제 생각에도 이 사진이 더 좋겠네요.”
잠시 뒤 고채량의 영정 사진이 바뀌었다. 아무 근심 걱정 없이 활짝 웃는 사진 때문일까, 황량한 장례식장이 환해 보이기까지 했다.
“웃는 모습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데…….”
할머니는 썰렁한 제단으로 다가가 손녀의 사진을 한 번 쳐다봤다.
그렇게 텅 비어 있는 장례식장에 홀로 앉은 김길자 할머니가 구석에 몸을 기대앉아 있을 그때였다.
입구 쪽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이번에도 직원이 들어오나 싶었다. 가족도 찾아올 문상객도 없이 늙은이가 홀로 있는 게 안쓰러웠던지 아까부터 직원이 자주 들려 필요한 게 없는지 묻고 있었다.
“자꾸 안 와도 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던 할머니는 뜻밖에 방문객의 하던 말을 멈추고 멈칫했다.
“서, 선생님!”
장례식장을 찾은 건 다름 아닌 태경이었다.
“선생님께서 어떻게 여길…….”
“고채량 환자 추모하려고 왔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문상객에 할머니는 어쩔 줄 몰라 했다.
“들어가도 될까요?”
“그럼요. 들어오세요.”
근무하던 태경은 잠시 시간을 내어 장례식장에 들렀다. 고채량의 마지막 가는 길에 인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새하얀 국화꽃을 들고 온 태경은 할머니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한 뒤 제단 위 웃고 있는 고채량을 위해 기도하고 꽃을 올려 두었다.
‘이곳에서 안 좋았던 기억은 다 잊고 그곳에서는 아픔도 슬픔도 느끼지 않고 항상 웃길 바랄게.’
“바쁘실 텐데 어떻게 오셨어요.”
“아직 괜찮습니다. 그리고 이거 받아 주세요.”
태경은 조의금이 담긴 봉투를 건넸다.
“아니요. 선생님 이건 아닌 거 같아요. 와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러지 마세요. 문상객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해서 격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어요.”
할머니는 사진만 덩그러니 있는 장례식장 재단을 쳐다보며 말했다.
사실 문상객도 문상객이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금액이 많이 나가는 꽃값을 지불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제가 이것까지 받으며 죄송해서 안 돼요.”
“금액이 크지 않아요. 받아 주세요.”
태경은 극구 부인하는 두 손에 봉투를 찔러 넣은 뒤 할머니를 위로하며 장례식장을 나갔다.
“어르신?”
태경이 주고 간 흰 봉투를 물끄러미 보고 있던 할머니를 장례식장으로 들어온 직원이 불렀다.
직원 뒤로 다른 사람도 함께 보였다.
“이게 다 뭔가요! 전 주문한 적이 없는데요?”
“알고 있어요. 여기 원장님 왔다 가셨죠?”
“네, 조금 전에……. 혹시 원장님이 주문하신 건가요?”
“네, 김태경 원장님이 장례비용 전체를 지불하셨어요.”
“세상에…….”
“사장님, 잘 좀 해 주세요.”
“그럼요. 제가 특별히 더 신경 쓰겠습니다.”
직원은 국화꽃으로 재단을 장식하는 남자에게 부탁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원장님께서 고인분 가시는 길에 부족함 없이 정성껏 해 달라는 말도 잊지 않으셨고요.”
장례 담당 직원에게 할머니네 사정을 들은 태경은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 사용하는 병원 내 제도를 이용해 도와주기로 했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그런데 제가 이런 도움을 받아도 될지 모르겠네요.”
“받으세요. 할머니.”
감사함과 놀라움 그리고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 할머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태경을 시작으로 병원 의료진과 직원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둘씩 장례식장을 찾았다.
‘원장님이 고채량 환자 문상을 다녀오셨나 봐요.’
‘그래요? 역시 원장님이시네. 실은 저도 가려고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임 선생도? 나도 그래요.’
태경이 장례식장을 찾은 걸 본 최 팀장이 임정숙 간호사에게 소식을 전했고, 그 소식을 들은 직원들은 각자 시간이 날 때 고인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전날, 응급실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본 김일상도 그중에 한 사람이었다.
“찬희야?”
“뭐야, 너 웬일이야? 엉덩이 아파?”
어제 환부 부위를 잘 소독하고 갔던 친구가 연락도 없이 찾아오자 이찬희는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게 아니라 너 혹시 어제 그 고채량 학생 있잖아? 그 학생 장례식장 가냐?”
“어, 안 그래도 지금 가려다가 네 연락 받고 다시 나온 거야. 그건 왜?”
“저기……. 나도 같이 문상 갈 수 있을까?”
“너, 설마 문상 가려고 병원 온 거야?”
김일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의 죽음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게 살면서 처음이었다.
그는 전날 큰 충격과 함께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거 같았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저런 모습을 일반 사람들이 본다면 누구라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게다가 아직 너무나 어린 친구의 죽음이었기에 김일상은 고인을 애도하고 싶었다. 힘든 삶에 묻힌 못다 핀 꽃 한 송이가 너무나 가여웠다.
“그래, 같이 가자. 안 그래도 어제 응급실에 있던 환자 몇 분도 문상하셨다고 하더라. 어린 환자라서 그랬던 거 같아.”
두 사람은 고채량의 장례식장을 찾아 조용히 문상한 뒤 할머니를 위로하고 나왔다.
“야, 찬희야?”
“응?”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는데 가슴이 먹먹하다.”
장례식장을 나온 김일상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장례식장을 너무 오랜만에 와서 그런 건지 아니면 고인이 어려서 그런지 마음이 무겁네.”
“모든 죽음은 다 무겁지. 나도 볼 때마다 그런 감정이야.”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열심히 살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생겨. 솔직히 말하면 나 여친이 바람피우고 이별 통보받은 뒤에 너무 힘들어서 진짜 죽으려고 했거든.”
“미친놈. 왜 그딴 여자 때문에 네가 죽냐?”
“맞지. 그 당시에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죽을 만큼 힘들었어. 그런데 어제오늘 일을 겪으면서 삶이 진짜 소중해지는 거 같아. 뭔가 그냥 이유 없이 감사하기도 하고…….”
“당연한 거 아닐까? 마땅히 있어야 할 것들이 없어졌을 수도 있다는 것을 타인을 통해서 알게 되는 거니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거지.”
“듣고 보니까 찬희, 네 말이 맞는 거 같다. 바쁠 텐데 얼른 들어가 봐.”
“벌써 가려고? 너 할 일 없잖아. 밥이라도 먹고 가.”
“아니야. 허송세월 보내고 싶지 않아. 저 학생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진짜 열심히 살 거야.”
“그래, 그거 진짜 좋은 생각이다.”
“들어가.”
김일상은 힘차게 손을 흔들며 병원을 나섰다.
“일상아, 잘 들어가고 연락해라!”
이찬희는 며칠 전까지 축 처져 있던 친구가 다시 기운을 차린 거 같아 다행이었다.
* * *
“아까 다 봤지?”
온종일 장례식장을 찾는 우리 병원 사람들을 맞이했던 할머니는 손녀의 사진을 보며 혼잣말했다.
“널 기억하기 위해서 많은 분이 오셨잖아. 참 감사하다. 그렇지? 마지막 가는 길마저 외로우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다.”
“실례합니다.”
그렇게 한동안 고채량의 사진을 보며 재단 위에 쌓인 꽃을 정리하던 할머니는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고채량 학생 장례식장 맞죠?”
“예, 맞아요. 들어오세요.”
이번에도 우리병원 직원이라고 생각했던 할머니는 남자를 안내했다.
묵직한 발걸음으로 들어온 남자는 국화꽃 한 송이를 재단 위에 올린 뒤 묵례를 하며 고인을 애도했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르신께 드릴 게 있습니다. 이거…….”
“아니요. 더는 못 받아요.”
문상하러 온 직원들의 마음만 받기로 했던 할머니는 처음 몇 번을 빼고는 더 이상 조의금을 받지 않고 있었다.
“그럼 이거라도…….”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조의금이 아닙니다.”
또다시 내민 봉투를 보며 할머니가 거절 의사를 밝히자 남자가 조용히 말했다.
“이건 받으셔야 해요. 손녀분께서 남긴 편지입니다.”
이 남자는 우리병원의 직원이 아니라 고채량이 머물던 모텔 사장이었다.
생각지 못한 사건으로 정신이 없던 사장은 뒤늦게 307호실을 청소하다 편지를 발견하고 전달하기 위해 할머니를 찾아온 거였다.
“채량이가 쓴 편지라고요?”
“네, 맞습니다.”
할머니는 남자가 건넨 편지가 손녀의 유서라는 걸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