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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바이탈-307화 (306/472)

307화. 주르륵이 아닌 콸콸

그렇게 이유를 물어보려던 찰나 가운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이 빠르게 울렸다.

“잠시만요. 네, 이찬희입니다.”

-이 쌤. 아까 그 복수 환자요.

“그 환자가 왜요?”

응급실 간호사에게 걸려 온 전화는 20분 전에 복수 천자를 했던 고명환 환자 이야기였다.

-그 환자 복수가 좀 이상해요.

“이상하다니 뭐가요?”

-복수가 한 1L 나오더니 안 나오던데요?

“예! 그럴 리가요? 한가득이던데…….”

얼핏 봐도 고명환 배에 복수가 가득했기에 이찬희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요. 와서 봐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아마, 환자가 움직였을 거예요. 알았어요. 지금 내려갈게요.”

이것 또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환자가 움직이거나 카테터가 살짝 빠지면서 나오던 복수가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는 가서 카테터를 이리저리 움직여 주면 나오곤 했다. 통상적으로는 그랬다.

“응급실 콜?”

“네. 나중에 다시 물어볼게요.”

“그래, 얼른 가 봐.”

이찬희는 의진에게 묻고 싶던 질문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먼저 응급실로 향했다.

“허. 참! 이상하네.”

응급실에 온 이찬희는 곧장 고명환 환자 앞에서 카테터를 요리조리 움직여 보고 있었다.

“잘 나오다가 갑자기 이러네.”

“저기……?”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고명환 환자가 조용히 이찬희를 불렀다.

“선생님?”

“네, 환자분.”

이찬희는 계속해서 배에 꽂혀 있는 카테터를 움직이면서 답했다.

“아마 다시 넣으셔야 할 거예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한 번 더 주변으로 해서 천자를 할게요.”

통상 있을 법한 일에 고명환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이찬희 역시 다시 한번 천자 준비를 서둘렀다.

새 기구들과 새 재료들을 준비하고 다시 천자를 시도했다. 두꺼운 바늘이 고명환 환자 배를 뚫자 그가 움찔했다.

‘어! 이상하네…….’

뭔가 이상했다. 아까와는 달리 나와야 할 복수가 나오지 않았다.

“환자분 잠시만요. 몇 번 더 해 볼게요.”

“네.”

이찬희는 조심스럽게 바늘을 뺀 뒤 다시 그 옆을 찔렀지만, 복수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바늘을 뺐다가 그 아래를 찔러 봤다.

“……!”

그럴 때마다 고명환은 움찔하며 표정이 조금씩, 조금씩 일그러져갔다.

“으!”

고명환이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을 듯이 이찬희를 노려봤다. 그도 그럴 것이 배벽을 뚫는 것은 상당히 아프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아픈 것이다.

그것도 마취하지 않고 생살에다가 몇 번을 찌르니 우스갯소리로 농담을 보태 좋던 사이도 원수가 될 법한 일이었다.

이찬희는 의료진으로서 그 아픔을 알고 있기에 그 역시 환자 못지않게 점점 다급해졌다.

아니, 다급했기보다는 당황했다는 말이 더 맞았다.

‘왜 이러지?’

당황한 이유는 이 술기가 어려운 게 아니었고 지금까지 많은 환자를 했지만 이렇게 안 나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늘 하던 대로 술기를 잘했는데 이런 상황이 닥치니까 이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수가 잘 나오다가 이러니 더 이상했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해 보자.’

이찬희는 여기서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술기를 잘했기에 당연히 잘 나올 거라는 생각에 또다시 시도하기로 한 것이다.

“환자분, 마지막으로 여기 한번 찔러 볼게요.”

마지막으로 찔러 본 곳은 평상시의 복수 천자를 할 때보다 높은 위치였다. 통상적으로는 시도하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푹-

“윽!”

그리고 찌르자마자 외마디 소리가 바로 튀어나왔다.

“아이고! 선생님. 이제 그만해요. 너무 아프잖아!”

고명환이 투정 섞인 목소리로 짜증을 냈지만, 술기에 집중하고 있던 이찬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왜냐하면 단순히 집중하고 있어서라기보다 더 당황스러운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카테터로 피가 나오고 있었다.

“……!”

복수 천자의 가장 무서운 부작용은 이것이다.

복강 내의 장기들이 복수에 의해서 둥둥 뜨기 때문에 찌를 가능성이 상당히 낮지만, 그래도 항상 그 가능성은 있다.

그래서 어려운 술기는 아니었지만, 위험한 술기인 것이다.

장기를 찌를 경우 혈액이 멈추지 않고 복강 내로 계속 나올 수도 있으며, 장을 찌를 경우 장의 내용물이 나와서 응급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따라서 복수 천자를 했을 경우 두 가지를 잘 봐야 한다.

첫째, 카테터로 피가 나오는지와 둘째, 가스가 오는지가 그것이다.

그런데 누런 복수가 아니라 시뻘건 피가 그것도 주르륵 나오고 있었다.

누가 봐도 주르륵이지만, 복수 천자를 하면서 처음 피를 본 이찬희 눈에는 주르륵이 아닌 콸콸 쏟아지는 거로 보였다.

‘x됐다!’

“아! 선생님 너무 아파요.”

고명환이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번에도 실패했죠?”

“그게……. 잠시만요.”

분명 이찬희는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하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카테터를 뽑고 바로 그 옆을 다시 찔렀다.

순간 환자의 복수를 온전히 빼고 싶은 마음과 환자의 짜증 섞인 말들에 당황해서 이상 행동을 한 것이다.

피가 보이자마자 태경에게 보고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악! 그만 찔러요!”

이번에도 복수는 나오지 않았다. 이찬희는 이재서 당황했던 머리가 맑아짐과 동시에 정신을 차리고 카테터를 뽑으려고 했다.

이제는 태경에게 얼른 보고하고 사태를 수습한 뒤 혼나는 게 맞는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런데 순간 소리가 들렸다.

슈욱-

작지만, 분명히 그 소리를 들었다.

“…….”

가장 두려워하던 가스가 나오는 소리였다. 가스가 나왔다는 건 장을 찔렀다는 것이다.

장내 가스 말고 복부에서 가스가 나올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하! 정신 차리자.’

이찬희는 천천히 카테터를 뺐다. 그와 동시에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환자분, 잠시만 기다리시면 저희 원장님이 오셔서 봐주실 겁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고명환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챠륵-

“이 쌤? 어떻게…….”

이찬희는 환자의 상태를 묻는 간호사의 말이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응급실을 미친 듯이 뛰어나갔다.

“임 쌤!”

그러더니 접수처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임정숙 간호사를 다급하게 불렀다.

“……생님! 선생님 지금 어디 계세요?”

“방금 전에 외래 환자 진료 끝나고 진료실에 계세요.”

철컥-

“서, 선생님!”

그 말을 들은 이찬희는 미친놈처럼 진료실 안으로 뛰어들어와 태경의 앞에 섰다.

“왜? 응급실에 환자 있어?”

“저, 그게 그러니까…….”

“찬희야?”

“예. 선생님.”

“너, 사고 쳤지?”

“네!?”

태경이 이찬희를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고 벌써 같이 지낸 날이 꽤 지났다. 말투뿐만 아니라 눈빛과 작은 표정만 봐도 어느 사정인지 대충 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네…….”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A부터 Z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다 말해봐.”

“네. 아까 응급실에 60대 남자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그 환자에게 파라센테시스(Paracentesis, 복수 천자)를 술기를 했는데…….”

이찬희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정확히 전부 보고했다.

“야! 이놈아!”

가만히 집중하던 태경이 후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목소리를 높였다.

“알 만한 녀석이 왜 그래!”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가자.”

“네.”

태경은 짧게 다그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실을 나갔다.

지금 이찬희를 혼낸다고 좋아질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환자가 우선이었다.

태경의 발걸음이 점점 급해지고 있었다.

정말로 장이 뚫린 것이라면 응급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 이쪽입니다.”

챠륵-

“안녕하세요. 환자분. 우리병원 원장 김태경이라고 합니다.”

베드 옆으로 다가가자 고명환과 눈이 마주친 태경이 특유의 부드러운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그와 동시에 그에게서 풍기는 다섯 번째 바이탈이 4단계라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4단계치고는 응급실 전체에 진동할 정도로 냄새가 심하진 않았다.

예상대로라면 응급실에 들어서기 전부터 독한 냄새가 풍겼어야 했는데, 비교적 약한 4단계였다.

“아, 네. 원장님이시군요. 안녕하세요.”

굳이 원장이란 단어를 듣지 않아도 고명환 역시 다년간의 병원에 다닌 경험으로 태경이 높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알 수 있었다.

“자! 우리 환자분, 제가 잠깐 배 좀 만져 볼게요.”

태경은 고명환의 배를 여기저기 만져 봤다. 꾹꾹 이곳저곳을 눌러도 보고 타진으로 통통 쳐 보기도 했다.

“환자분?”

“네.”

“지금 많이 힘드신 것 같은데 아까 저희 의료진이 복수를 잘 빼 드리려고 여러 번 찌르다가 안이 다쳤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뭐, 뭐요!?”

“그래서 지금 피검사와 기타 영상 검사를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 싫어요. 지금 복수나 다시 잘 빼 주면…….”

“저희가 실수한 것이니 모든 의료비는 무료로 진행될 겁니다.”

“……!”

비용이 무료라는 태경의 말에 고명환은 살짝 움찔하며 반응했다.

“그럼 진행해 드리고, 혹시 입원이나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 우선 CT와 혈액 검사 먼저 진행할게요.”

“저기요, 원장님? 방금 수술이라고 하셨나요?”

“네, 내부 장기에 손상이 있으면 수술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손상이라니……. 그럼, 그 손해배상 같은 거 나옵니까?”

“법에 따라서 요구된다면 당연히 나옵니다.”

“……!”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찬희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런 대화가 보통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후 고명환은 응급실 간호사의 안내를 받으며 검사를 받으러 갔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이찬희는 잔뜩 풀이 죽은 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죄송한 마음이었다.

“환자가 정말 소송이라도 걸면 그땐…….”

“괜찮아. 내가 책임질게.”

어쩔 줄 몰라 하며 말을 하는 후배를 보며 태경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이찬희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책임진다는 말이 단순히 위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한 말이라는 걸 알기에 더 죄송한 마음이 깊었다.

“네가 한 거는 널 믿고 응급실을 맡긴 내가 한 거야. 그리고 소송 걸어서 잘못된 것이 있으면 당연히 배상해야지. 그게 무서워서 얼버무리고 환자에게 정보전달을 안 할 필요는 없어.”

“…….”

“그냥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인정하면 돼. 괜찮아. 물론 우리병원에서만 그렇게 해. 네가 다른 곳에서 근무하다가 이런 일이 있을 때, 그때는 너가 알아서 판단하고.”

이찬희는 다른 병원에 갈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을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지금은 그저 태경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왜냐하면, 다른 병원은 이럴 경우 배상을 우리 병원처럼 병원 차원에서 하는 게 아니라 너보고 하라고 할 거야.”

“아…….”

“내가 전에 있던 병원은 거의 그랬거든. 난 지금 원장이잖아. 그래서 병원비도 내 재량 안에서 다 해 줄 수 있는 거지. 사실 모든 의사가 나처럼 하고 싶을 거야. 하지만 돈이……. 그리고 병원 방침이 그렇기 때문에 나처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거지. 뭐, 하여튼 죄송한 마음은 나중에 말하고 환자부터 보자.”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무거운 대화가 끝나고 환자의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시간이 흘렀다.

한 시간 뒤-

“그런데 이거 좀…….”

고명환의 결과를 보고 있는 태경의 표정이 뭔가 아리송했다.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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