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08화 (307/472)

308화. 가설

고명환의 결과를 보고 있는 태경의 표정이 뭔가 아리송했다.

“이상하다.”

사실 이찬희에게 보고받았을 당시에 가스가 빠지는 소리와 피가 흘렀다는 말을 듣고 장기가 뚫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런데 모든 수치가 장기 손상에 합당하지 않았다.

물론 환자가 간부전이 있으므로 혈액 검사상 그와 관련된 소견들은 보이지만 장기 손상과 관련된 수치들은 정상이었다.

게다가 염증 수치도 정상이었다.

CT상에서 아직 장기 손상 시 나타나는 복강 내 공기 등은 보이지 않았다.

결과를 함께 보고 있는 이찬희는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역시 이 상황이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CT상 장기에서 무언가 새어 나온 듯한 것은 보이지 않았으며 혈액이 새어 나오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CT상 없다는 것이 항상 100퍼센트 맞는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지금 보고 있는 결과상으로는 그랬다.

고명환의 CT상 한가득한 복수에 소장이 둥둥 떠 있고 중간중간 배벽을 따라서 소장이 붙어 주행하고 있기도 했다.

“찬희야?”

“네, 선생님.”

“이상하지?”

“네……. 지금 CT만 보면 아까 그 소리를 제가 잘못 들은 건가 싶기도 합니다. 핏자국은 있으니까 맞는 건 같은데…….”

이찬희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아까의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혹시 환자 복부를 보면서 특이한 거 못 찾았어?”

“특이한 거라면 수술 자국 외에는…….”

“그래. 그리고 여기 CT 봐 봐. 이상하지 않아?”

“아, 저는 잘…….”

“이건 내가 생각하는 하나의 가설인데, 환자의 복부에 수술 자국 있지?”

“네.”

“그리고 이 CT 봐 봐. 원래는 복수에 소장이 둥둥 떠 있어야 하는데 여기, 그리고 여기…….”

태경은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정확히 집어 가며 말을 이었다.

“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장이 배벽에 붙어 있지?”

“어! 네. 맞습니다.”

“물이 더 있어야 하는데 왜 배벽에 붙어 있을까?”

“아!”

이제야 생각이 난 듯 이찬희는 자기 머리를 가볍게 치며 답했다.

“수술 후 유착! 유착입니다.”

“그래. 너무 기초적인 내용이지? 저 환자는 유착으로 인해 배 벽에 소장이 붙어 있는 곳이 곳곳에 있고, 그로 인해 배의 구획이 나누어진 거야. 그래서 복수를 빼면 그 구획에 있는 복수만 나오고 안 나왔던 거지.”

“아…….”

“그리고 하나의 가설을 더 세워 보면 네가 무리해서 소장과 혈관을 찌른 것은 맞을 거야.”

“근데 환자 상태가…….”

“소장의 벽이 배벽에 붙어 있어서 뚫려도 복강 내로 새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

“그런 일도 가능합니까?”

“거듭 말하지만, 가설이야. 장기 내에 내용물이 새어 나온 사람이 저렇게 편안히 잠을 잘 수가 있겠어?”

태경의 말을 듣고 있던 이찬희의 시선이 고명환에게 향했다.

검사받고 결과를 기다리던 그는 어느새 잠이 든 상태였다. 그것도 아주 편안하게 살짝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

“정말 자네…….”

“자! 그럼 확인해 볼까?”

“네?”

“가설을 세웠으니 그게 맞는지 확인해 봐야지.”

“그럼 수술해서 배를 엽니까?”

“이 자식이!”

딱-

듣다 못 한 태경이 이찬희의 등짝에 사랑의 매를 날렸다.

“기어코 매를 벌어요. 오늘 계속 멍하더니 너 정신 안 차려!”

이찬희는 상당히 해맑은 표정으로 민망한 듯 태경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누가 외과 아니랄까 봐 배 여는 걸 바로 생각하냐?”

“죄송합니다.”

“저 환자 간부전 환자이고 혈액검사 봐 봐. 안 그래도 복수로 채혈량 부족하고 신부전 전 단계인 환자가 지금 당장 전신마취와 복부 개복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아니요.”

“우리는 항상 어떤 술기나 수술할 때 환자의 손익계산을 해야 해. 이 상태에서 전신 마취하면 저 환자 못 깨어날 수도 있어.”

“아! 그러면…….”

“뭐겠어?”

“소노(Sonography, 초음파)입니다.”

“그래, 초음파지. 응급실 초음파는 두었다 국 끓여 먹을 거야? 이럴 때 써야지. 가서 확인해 봐!”

“네, 선생님.”

“제대로 확인해.”

“네, 똑바로 확인하겠습니다.”

이찬희는 한껏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씩씩하게 답했다. 고명환 환자가 괜찮을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태경이 한 말이기 때문에 그 희망에 흔들림은 없었다.

이렇게 건강이 안 좋은 환자를 자신의 실수 때문에 수술하게 될까 봐 잔뜩 걱정됐던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

“환자분, 지금 초음파 검사를 하겠습니다.”

“초음파요……?”

아직 잠이 덜 깬 고명환은 약간 비몽사몽인 채 답했다.

“네, 환자분의 상태를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서 초음파가 필요해요.”

“알겠어요.”

이찬희는 초음파 기계에 젤을 묻힌 뒤 꼼꼼하게 보기 시작했다.

“어때?”

잠시 뒤, 태경이 이찬희 뒤로 다가와 화면을 보며 물었다.

“역시 선생님 말씀 그대로입니다. 복강 내에 특이 소견도 없고 소장이 배벽에 고정된 곳이 곳곳에 있습니다.”

“봐 봐.”

태경이 고명환의 배벽을 치자 초음파 화면에서 소장이 덩달아 움직이지만, 곳곳에 고정된 곳이 보였다.

“자, 그럼.”

그 뒤, 태경이 바로 장갑을 착용하더니 카테터와 바늘을 평소 복수 천자를 하는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 찔렀다.

“초음파를 보면 여기 주변에 장기가 없고 복수가 많으며 상대적으로 구획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 보이지?”

“네!”

“그럼, 여기서 복수를 빼고 양에 따라 알부민(albumin, 복수를 천자하여 배출할 시 채워 주어야 하는 혈장 성분)을 주고, 그래도 모르니 오늘 하루는 입원시켜 드리고 지켜보자.”

“네, 알겠습니다.”

“원장님?”

태경이 어찌나 순식간에 술기를 했던지 차마 찌르는지도 모르던 고명환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하나도 안 아프게 잘하시네요.”

“아닙니다.”

“원장님, 저기 제가…….”

“어디 불편한 곳 있으세요?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아니요. 불편한 곳 하나도 없습니다. 장기도 뚫리지 않았다고 하니 다행이다 싶네요. 그런 게 아니라 그러니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고명환은 상당히 우물쭈물하며 자꾸만 말끝을 흐렸다.

검사받기 전까지 보였던 당당하고 고집스러운 그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환자분, 하고 싶은 말 있으신 거죠?”

방황하던 눈동자가 태경을 주시며 고명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으니까 말씀하세요.”

“……살고 싶어요.”

고명환이 어렵고 어렵게 꺼낸 말은 지극히 당연한 살고 싶다는 말이었다.

60대인 그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눈빛으로 아주 간절하게 다시 한번 분명히 말했다.

“저…… 정말 살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요?”

“환자분, 간부전은 정말 무서운 병이에요. 환자분께 지금부터 제가 지금 몸 상태를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아니요. 원장님. 조금 전에 눈 감고 있다가 두 분 대화하는 거 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건 들어도 어차피 전 몰라요. 이미 전에 병원에서도 그 전에 병원에서도 수도 없이 많이 들었어요. 아까 옆에 누워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원장님 엄청 유명한 분이시라고……. 저 좀 살려 주세요. 저 진짜 살고 싶어요.”

“…….”

태경의 옆에 서 있던 이찬희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무리 안타까워도 거짓 위로는 절대 의사가 하면 안 된다. 간부전 환자를 살게 하는 방법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물론 딱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얼마나 살고 싶으면 저렇게 애타게 말을 할까? 안됐네……!’

이찬희가 속으로 고명환을 안타까워하던 그때 전혀 예상 못 한 태경의 답변이 들려와 깜짝 놀랐다.

“네, 최선을 다해 볼게요.”

“네!? 그게 정말인가요?”

이찬희는 물론 당사자인 고명환까지 놀란 반응을 보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럼 우리 병원에서 치료받아보세요. 제가 끝까지 함께할게요.”

“그, 그런데 제가 돈이……. 그만한 돈이 없어요.”

최선을 다한다는 말에 화색이 돌던 고명환은 막상 치료에 들어갈 돈이 생각나자 금방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민망해했다.

“돈은 괜찮아요. 우리병원에는 사회사업으로 연계된 것이 많습니다. 뭐, 제도상 안 돼도 괜찮아요. 우리병원 제정이 좀 튼튼하거든요.”

이사장인 김철기에게 모든 전권을 위임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럼 저 살 수는 있을까요?”

“딱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혹시 알고 계세요?”

“아니요.”

“그럼 제가 차차 말씀드릴게요. 우선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입원하세요. 고명환 환자분, 우리 이제 같은 편입니다. 저랑 우리 의료진이랑 간 부전이라는 적을 잘 무찔러 보죠.”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고집불통이던 사람이 태경의 진심 어린 말에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누군들 살고 싶지 않겠는가?

산다는 것.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너무나 당연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그 당연함이었다. 그런데 그 당연함이 병 때문에 환자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복수나 빼 달라며 심드렁했던 고명환은 사실 누구보다 간절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딸아이 얼굴 한 번 보고 가려다가 우연히 들른 병원에서 희망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부탁은 제가 드려야죠. 제가 더 많이 잘 부탁드립니다.”

“네, 그러면 또 뵐게요.”

태경도 고명환도 둘 사이에 훈훈한 분위기가 가득했지만, 이찬희는 어리둥절 그 자체였다.

“서, 선생님?”

대화를 마치고 응급실을 나가는 태경을 이찬희가 부르며 쫓아갔다.

“아까, 아니 방금 전에…….”

“내 말이 어리둥절하고 많이 이상했지?”

“네.”

“고명환 환자 살리고 싶어서 그래.”

“……!”

이찬희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랐다.

모름지기 의사라면 아픈 사람을 보고 살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고명환의 경우는 조금 특별한 경우였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방금 그 말씀은……?”

“우리 LT 하자.”

“……!”

방금 태경의 말을 들은 순간 안 그래도 놀라 있던 이찬희는 더 놀라고 말았다.

LT는 liver transplantation(리버 트랜스플랜테이션)의 줄임말로 간 이식을 뜻하는 단어였다.

“가족들과 다 상담하고 혹시 줄 가족이 있으면 해 보자.”

“가, 간 이식 말인가요? 정말로…….”

처음이었다.

간 이식은 이찬희도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장기이식은 모든 수술의 정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간 이식은 정말 어렵고 또 어려운 영역이었다.

간 이식이라는 말만 들어도 이찬희가 놀라고 멍해지는 이유였다.

“내일부터 너랑 최모나 둘 다 간 이식 공부해서 보고해!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공부하고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제대로 해. 알았어?”

“예, 선생님. 제대로 정말 제대로 하겠습니다.”

한마디 던지고 가는 태경의 뒷모습을 보는 이찬희는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간 이식이라니…….”

마음이 벌렁거리고 진정이 되질 않았다. 물론 당장 수술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앞으로 수술까지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그래도 놀란 마음은 쉽게 진정이 되질 않았다.

“잠깐! 아까 고명환 환자가 자식들이 몇 명이라고 했지? 세 명? 네 명? 분명 저 안에 한 명은 맞겠지.”

보통 부모가 간 이식할 경우 공여자는 자식일 경우가 많았다. 이찬희는 분명 저 중의 한 명은 고명환의 간과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 간 이식이라니…….”

그렇게 여전히 놀란 표정과 혼잣말을 하며 응급실로 돌아가고 있던 그때였다.

철컥-

“이찬희! 따라와!”

별안간 진료실에서 나온 태경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이찬희의 목덜미를 잡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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