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11화 (310/472)

311화. 지금 병원이신가요?

“누구야? 최 쌤? 이 쌤? 아님 같이?”

“들어올 때 됐으니까 직접 보세요.”

직원들은 각자 일을 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흩어진 채 눈동자만 입구로 향했다.

점차 가로등에 그림자 실루엣이 비치더니 누군가가 정문으로 들어왔다.

“최 선생님이네.”

“최 쌤이에요?”

병원으로 들어온 사람은 최모나였다.

“네. 최 쌤 혼자 왔어요.”

태경을 비롯한 많은 사람의 예상대로 최모나와 이찬희는 같이 들어오지 않았다.

두 사람이 짧은 시간 꽤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선택한 방법이었지만, 우습게도 직원들은 이미 그들의 생각을 간파한 뒤였다.

“……!”

“큭!”

“다, 다들 왜 그러십니까?”

병원에 들어온 최모나는 주변에 서 있는 직원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어머, 최 쌤? 뭐가요?”

“그러게. 우리가 뭘 어쨌다고 그러세요?”

“제가 들어오는데 다들 너무 빤히 쳐다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에이, 기분 탓이겠죠. 최 쌤? 소개팅은 잘했어요?”

“소개팅이요?”

“김말순 환자분 동생 만나러 나간 거 아니었어요?”

“아! 그거 때문에 다들 이렇게 모여 계셨습니까? 저 그 소개팅 안 했습니다. 친오빠가 근처 와서 잠깐 만나고 오는 길이예요.”

“그런데 왜 혼자 들어오세요?”

“혼자 오지 누구랑 같이 옵니까.”

“아까 최 쌤 나가고 이 쌤도 나갔는데……. 두분 같이 있던 거 아니었어요?”

“우리는 최 쌤이 이 쌤이랑 같이 들어올 줄 알았거든.”

접수처 직원에 이어 의진까지 최모나에게 이찬희의 소식을 물었다.

“아니, 이 선생을 왜 저한테 물어보십니까?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전 저희 친오빠를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평소 감정 표현이 그렇게 크지 않은 최모나가 상당히 억울한 것처럼 말하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다녀왔습니다.”

모두의 의심이 확신이 되는 아주 기막힌 타이밍에 눈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찬희가 씩씩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병원으로 들어왔다.

그것도 얼굴 표정이 어찌나 해맑던지 누가 봐도 좋은 일이 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 쌤, 아까 갑자기 가운도 안 벗도 급하게 뛰어가던데 어디 갔다 오는 길이예요?”

“난 이 선생님 뛰는 모습 보고 무슨 우사인 볼트인 줄 알았잖아요.”

“……!”

예상과 달리 직원들의 관심이 한꺼번에 쏠리자 이찬희는 잠시 당황했다.

“이 쌤! 어디 갔다 오셨냐고요?”

“아! 저요? 제가 어디를 갔다 왔냐하면요. 그게…….”

머뭇머뭇하던 이찬희의 시선이 최모나를 향하자 최모나가 빠르게 눈으로 사인을 보냈다. 그 사인은 절대 직원들의 추궁에 넘어가지 말라는 일종의 암묵적 사인이었다.

“어머! 왜 말을 못 하실까?”

“혹시 이 쌤이랑 최 쌤. 두 분이 같이 계셨던 거 아닌가요?”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최 팀장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물었다.

“절대 아니거든요!”

“절대 아닙니다!”

그러자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절대 아니라는 대답이 마치 절대 맞는다는 대답으로 들리는 것만 같았다.

“큭!”

“뭐야, 뭐야! 둘이 왜 이렇게 잘 맞는 거예요?”

“저렇게 대답하니까 마치 두 분이 짠 거 같잖아요.”

순간 직원들은 웃음이 빵 터졌고, 두 사람은 잠시 얼굴을 마주 보며 당황했다.

“무슨 생각을 하시든 절대 아닙니다. 그만 일하러 가 보겠습니다.”

“저, 저도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 쌤, 잠시만! 그래서 이 쌤은 어디 갔다 왔는지 왜 말을 안 해 주시는데요?”

“저요? 친구요. 저번에 엉덩이 낭종 치료받으러 왔던 일상이 있죠? 그 친구가 와서 잠깐 나갔다 왔어요.”

“친구분이 찾아왔다고요? 갑자기?”

“그러게요. 얼마나 급했던지 갑자기 찾아왔네요. 그럼 저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당황한 최모나는 옷을 갈아입으러 의국실로 들어갔고 이찬희는 오지도 않은 친구를 소환하며 응급실로 급히 들어갔다.

“두 사람 너무 귀엽지 않아요?”

“그러니까요.”

“우리 이 쌤과 최 쌤 지켜 주자고요.”

“그래요. 당분간 모른 척해요. 그리고 팀장님과 장 보완님은 야식 당첨입니다.”

최모나와 이찬희의 강한 부정에도 불구하고 직원 중에 두 사람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최모나?”

한쪽에서 이 상황을 전부 지켜보고 있던 태경이 급하게 의국실을 나서는 최모나를 불러 세웠다.

“네, 선생님.”

“찬희한테 LT(liver transplantation, 간 이식) 공부해야 한다는 거 들었지?”

“네, 고명환 환자 이야기 전부 들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열심히 하는 거 좋지. 근데 이상하네…….”

“네?”

“두 사람이 같이 있지 않았다고 하면서 어떻게 들었을까?”

“카, 카톡이요. 아까 이 선생이 카톡을 보냈습니다. 보여 드릴까요?”

“뭘 또 그렇게까지. 카톡으로 보냈구나. 그래 알았어. 파이팅!”

당황해서 눈이 휘둥그레진 최모나는 재빨리 응급실로 향했고 태경은 웃음을 꾹 참으며 즐거워했다.

“가만 보면 선생님이 제일 짓궂으신 거 아세요?”

임정숙 간호사가 너무하다는 듯이 말하며 다가왔다.

“둘이 시치미 딱 잡고 있는데 자꾸 놀리고 싶네요.”

“그래도 두 분 반응을 보니까 잘된 거 같아 기분 좋네요.”

“그러게요.”

“어머나! 다들 모여 계시고 뭐 좋은 일 있으세요?”

태경과 임정숙 간호사가 대화하는 사이 외래 진료를 예약한 환자가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네, 원장님도 우리 수간호사 선생님도 안녕하셨죠?”

“그럼요. 바로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철컥-

“원장님, 저 여기 누우면 되죠?”

“네.”

여자는 익숙한 듯 진료 베드에 올라가 바지를 내리고 벽을 보고 모로 누웠다.

“어때요?”

“잘 아물고 있네요.”

“선생님. 근데 실밥이 아직 다 안 떨어진 거 같아요.”

여자는 조심스럽게 진료 베드에서 내려와 도넛 모양 방석에 앉았다.

인근에서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는 그녀는 얼마 전, 10년 동안 참고 미뤘던 치질 수술을 한 상태였다.

“좌욕하면서 자연스럽게 떨어지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변 보는 건 좀 어떠세요?”

“선생님 말씀이 딱 맞았어요. 퇴원하고 온 그날은 무슨 연필이 나올 것만 같고 똥꼬가 찢어질 거 같아서 세상에 저 울다시피 변을 봤잖아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괜히 치질 수술해서 이 고생을 사서 하나 싶었는데……. 세상에 며칠 지나니까 점점 나아지더라고요.”

“그렇죠? 치질 수술하면 많이들 겁부터 내시는데, 수술보다 그 후에 변 보는 거 때문에 더 힘들어하세요.”

“맞아요. 수술이야 뭐 마취하고 하니까 아픈 줄도 모르죠. 그런데 선생님. 제가 머리털 나고 세상에 변을 보면서 구렁이를 처음 뽑았다니까요.”

“그러세요? 잘하셨네요.”

“어머, 내가 원장님 앞에서 참 별말을 다 하네요. 제가 좀 푼수기가 있어요. 죄송해요.”

“아니요. 괜찮아요.”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손님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김소향은 병원에 올 때도 늘 말이 많은 편이었다.

환자가 많거나 바쁠 때면 태경도 이야기할 시간이 없지만, 오늘처럼 늦은 시간이나 여유가 있을 때는 환자들과 적당한 대화는 졸음도 쫓을 수 있었다.

특히나 김소향처럼 성격이 호탕하고 밝은 환자들과의 대화는 기분이 유쾌했다.

“저번에는 남편분과 함께 오시더니 오늘은 직접 운전해서 오셨나 봐요.”

“미용일 한 시간 일찍 마감하고 집에 있다 혼자 왔어요. 바깥양반이 워낙 낚시에 미쳐 있는 사람이라 마누라가 아픈데도 낚시를 갔다니까요.”

“낚시 좋죠. 저도 기회가 되면 한번 해 보고 싶은데 시간이 없네요.”

“원장님, 그런 말씀 하지도 마세요.”

김소향은 격하게 손사래를 치며 태경을 말렸다.

“제가 우리 남편 처음 만났을 때 자기는 유일한 취미이자 삶의 낙이 가끔 낚시하러 가는 거라고 하면서 그것만 이해해 주면 좋겠다고 하길래 그런다고 했죠. 전 그때만 해도 이 남자가 이 정도로 낚시에 진심일 줄은 몰랐거든요. 주말이고 평일이고 갑자기 낚싯대 들고 낚시하러 훌쩍 간다니까요.”

김소향은 낚시라면 학을 떼듯이 말했다.

“낚시를 많이 좋아하시나 보네요. 그때 뵈니까 인상이 참 좋으시던데요.”

“낚시에 미친 것만 빼면 인상도 좋고 사람도 좋아요. 평생 한눈도 안 팔고 작은 회사지만 한 직장에서 지금까지 진득하게 일하고……. 그놈의 낚시가 문제라니까요. 그래도 어떡하겠어요. 술이나 노름에 미친 것보다는 낚시에 미친 게 낫다고 하면서 사는 거죠.”

“그 정도면 훌륭하신데요. 좋은 남편을 두셨네요.”

“그렇죠? 미우나 고우나 내 남편인데 최고다 그러면서 살아요. 호호! 제가 바쁜 우리 원장님 붙잡고 너무 수다를 떨었네요. 죄송해요.”

“별말씀을요. 좌욕 잊지 말고 잘하시고 오늘 처방전 드릴게요. 약이랑 식이섬유도 잘 챙겨 드세요. 다음 외래 때 뵐게요.”

“감사합니다. 원장님, 빈말이 아니라 머리 커트하러 한 번 오세요. 제가 예쁘게 잘라 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김소향 환자가 진료실을 나가고 잠시 뒤, 임정숙 간호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볼 때마다 에너지 넘치는 분이에요.”

“김소향 환자요?”

“네. 오늘은 주제가 뭐였어요?”

“남편분의 낚시요.”

“안 그래도 조금 전에 안내해 드리면서 저한테도 낚시 여행 갔다면서 한소리 하시더라고요. 참 재미있는 분이세요.”

“그러게요. 오늘은 외래 예약 끝이죠?”

“네, 예약 환자는 김소향 환자가 마지막이었어요.”

“그럼 저 논문 좀 살펴볼게요.”

“네, 선생님. 그리고 이거요.”

임정숙 간호사는 두툼한 햄버거 세트를 책상 위에 올렸다.

“아까 야식 내기한 거요. 팀장님이랑 장 요원님이 쏜 거예요.”

“출출했는데 잘됐네요. 잘 먹겠다고 전해 주세요.”

“네.”

“그건 그렇고 두 사람은 좀 어때요?”

“이 쌤이랑 최 쌤이요? 말도 마세요. 평소보다 말도 덜하고 은근히 데면데면하고 있는데 보고 있으면 얼마나 웃긴지 몰라요.”

“안 봐도 알겠네요. 응급 오면 콜 주세요.”

“네, 선생님.”

임정숙 간호사가 진료실을 나가고 태경은 의학 서적과 논문 사이트에 들어가 자료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 시간 동안 응급 콜을 제외하고는 태경은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모니터에 집중했다.

그렇게 또 한 시간이 지날 즈음 잊고 있던 햄버거를 먹기 위해 잠시 모니터에서 눈을 뗐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가, 식어도 맛있네.”

햄버거를 다 먹고 잠시 스트레칭하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나던 태경을 휴대폰 진동 소리가 붙잡았다.

Rrrrrrrrrr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시지?”

휴대폰 화면을 보던 태경은 늦은 시간에 걸려 온 발신인을 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김태경입니다.”

-원장님. 저, 감덕찬입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JQ 백화점 사건 때 큰 활약을 했던 국회의원 감덕찬이었다.

-잘 지내시죠?

“네, 의원님도 잘 지내시죠?”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갑자기 이 시간에 전화 드려서 놀라셨죠?

“아니요. 괜찮습니다. 바쁘신 분이니까 이해합니다.”

-저보다야 원장님이 더 바쁘시죠. 혹시 지금 시간 좀 되시나요?

“네, 지금은 그렇게 바쁘지 않습니다.”

-그럼 지금 병원이신가요?

“네,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

태경은 대답을 하면서 순간 시계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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