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화. 저랑 구면일 텐데요
-그럼 지금 병원이신가요?
“네,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
태경은 대답을 하면서 순간 시계를 봤다.
밤 11시. 4선 의원씩이나 한 사람이 이 시간에 전화할 정도면 뭔가 급한 일이란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원장님, 병원에서 자리를 비우셔도 괜찮으십니까?
감덕찬의 말을 들은 태경은 잠시 생각했다. 물론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유일하게 생각하는 건 병원 내의 환자 상태였다.
급한 환자는 없는지, 응급실의 상황은 괜찮을지, 본인의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을지 등에 관한 것이었다.
“네, 괜찮습니다.”
병원 내 상황을 꼼꼼하게 생각한 태경은 침묵을 깨고 답했다.
“혹시 어떤 일로 그러시나요?”
-의사를 찾는 이유야 하나 아니겠습니까.
“아! 그렇죠.”
감덕찬희 말에 태경은 정신이 확 들었다.
이 시간에 그것도 보통 사람도 아닌 감덕찬이 환자 관련으로 전화를 직접 했다는 거였다.
“어디로 가면 되나요? 환자 상태는요? 의식은 있나요? 사고입니까?”
-그게 사실 원장님, 죄송합니다…….
“네!?”
환자의 상태를 묻는 말에 다짜고짜 돌아온 죄송하다는 말에 잠시 당황한 태경은 바로 뒤에 들려온 감덕찬의 말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환자에 관한 그 어떤 것도 말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
-제가 하는 말이 당황스럽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장님. 그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지금 괜찮으시면 저희가 모시러 가도 될까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정확히 30분 후 병원 앞에 저희 사람들이 모시러 갈 겁니다. 그 차를 타고 오시면 됩니다.
“네, 의원님. 그러면 이따 뵙겠습니다.”
태경은 이상했다.
환자의 상태를 알아야 미리 필요한 것을 구비할 수 있을 텐데 말해 줄 수 없다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의료진 없이 본인만 가도 괜찮은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가는 곳의 설비 또한 문제이다. 환자를 볼 수 없는 곳이면 다음으로 어떻게 진행할지도 의문이었다.
“갑자기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결국 생각할수록 답은 하나였다. 감덕찬 의원이 아무 이유 없이 행동할 사람은 절대 아니라는 결론이기에 그가 말한 대로 하기로 했다.
어찌나 생각을 깊게 했던지 벌써 약속한 시각이 훌쩍 다가오고 있었다. 태경은 재빨리 진료실을 나가 응급실로 향했다.
“나 잠깐 자리 비워야 하니까 이 선생이랑 최 선생 응급실 자리 비우지 말고 잘 보고 있어.”
“무슨 일 있으십니까?”
“선생님, 이 시간에 어디 가시는데요?”
“확실히 일은 일인데 나도 어디 가는지 몰라.”
“네?”
“무슨 말씀이신지…….”
이찬희와 최모나는 어리둥절했지만, 어쩐지 진지하다 못해 심각함까지 느껴지는 태경의 표정을 보며 더는 묻지 못했다.
그 뒤 태경은 두 사람에게 나머지 전달 사항을 알려 주고 임정숙 간호사와 이야기를 마친 뒤 감덕찬이 말한 주차장이 있는 뒷문으로 나갔다.
뒷문으로 나오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정확한 시간에 검은색 고급 SUV 차량이 주차장 안으로 들어와 태경의 앞에 멈췄다.
탁-
“안녕하십니까?”
차에서 내린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는 두 사람이 태경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그들은 검은색 구두에 검은색 슈트 거기에 검은 넥타이까지 매고 있었고, 심지어 한 명은 선글라스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올블랙한 두 남자는 외국 영화에 나왔던 캐릭터를 연상케 했지만, 영화처럼 유쾌한 캐릭터는 절대 아니었다.
“김태경 원장님 맞으십니까?”
“아, 네……. 맞습니다. 제가 김태경입니다.”
“감덕찬 의원님과 통화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실례지만 몸에 무기가 될 만한 걸 소지하고 계시진 않으신지 잠시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가득한 태경이 잠시 할 말을 잇지 못하자 또다시 남자가 말했다.
“금방 끝납니다.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확인 끝났습니다. 그리고 핸드폰 통신장비가 있으시다면 잠시 저희가 보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두 남자의 말은 짧고 정중했지만 명백한 명령의 문장이었다.
“핸드폰을요?”
“예. 그렇습니다.”
태경은 또다시 당황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급하게 메시지를 남긴 뒤, 갖고 있던 핸드폰을 그들에게 맡겼다.
“감사합니다.”
두 남자의 기세에 눌린 태경은 뭐라고 반문하지도 못했다.
태경이 이상한 게 아니었다. 기가 센 사람이라고 해도 이 상황이었다면 그 누구라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그만큼 두 사람에게서 풍기는 분위기조차 묵직함이 느껴질 정도로 뭐가 달랐다.
“다 됐습니다. 긴장하지 마시고 타시면 됩니다.”
“네.”
일단 대답하긴 했지만, 도저히 긴장을 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차에 타기 전 두 남자에게 신체 은밀한 부위까지 전부 검문당하고 핸드폰까지 가져갔는데 긴장을 안 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할 정도였다.
태경은 조심스럽게 차에 탑승했다. 그런데 차량 안은 더 이상했다.
“…….”
뒷좌석의 양쪽 문과 뒷문은 완전히 밖을 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서로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운전석과 조수석 뒤로 가림막이 있어 바깥 풍경의 식별이 거의 힘들었다.
가림막 가운데 핸드폰 정도만 건네받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구멍이 있었다. 그 구멍을 통해서 약간의 대화만 가능할 뿐이었다.
‘뭐 이런 차가 다 있냐?’
태경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지금 분위기상 물어봐도 저 두 사람은 말해 줄 것 같지 않았다.
“이제 좀 오래 가셔야 합니다. 편히 주무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행선지는 알려 줄 수 있나요?”
계속된 궁금증에 태경은 가는 곳만이라도 알고 싶어 그들에게 물었지만, 역시나 대답은 뻔했다.
“죄송합니다. 원장님.”
“알겠습니다.”
이제 태경은 그러려니 했다.
아까 검문까지 당하고 핸드폰을 압수당했을 때는 순간 어디 납치라도 당하는 건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생각까지 들었었다. 하지만 곧장 전화를 한 사람이 감덕찬 의원이란 사실에 마음을 놓기로 했다.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낯선 것들로부터 오는 긴장감이 있었지만, 고민해도 소용없기에 일부러 잠을 청하기로 했다.
그리고 딱히 잠을 자는 것밖에는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태경이 탄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간 그 시각,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다.
“워, 원장님……!”
여느 때처럼 병원 안에 별일이 없나 병동을 돌던 최 팀장이 2층을 지나가며 창밖을 쳐다보다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저게 지금 무슨 장면이야?’
2층 창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있던 최 팀장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우리 원장님 납치당한 건가? 그런 거야? 하긴, 이 시간에 갑자기 어디를 가신다는 거부터 뭔가 이상하잖아.’
급기야 최 팀장은 태경이 납치당한 건 아닌지 생각하며 빠르게 1층으로 내려갔다.
“임 선생?”
그러더니 급하게 임정숙 간호사를 찾았다.
“임 선생, 큰일 났어요.”
“무슨 큰일이요?”
“잠깐 이쪽으로…….”
최 팀장은 응급실로 향하던 임정숙 간호사를 데리고 접수처 뒤쪽 사무실로 들어갔다.
“팀장님. 무슨 일인데요.”
“아무래도 원장님이 잡혀간 거 같아요.”
“예!? 원장님이 뭐가 어떻게 돼요?”
임정숙 간호사는 제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잡혀가요? 원장님이?”
“그렇다니까 그러네. 내가 조금 전에 병동을 돌다가 2층에서 정확히 봤어요.”
최 팀장은 자신이 본 걸 그대로 설명했다.
“거짓말 아니고 이게 전부 진짜라니까. 임 선생이 들어도 이상하죠?”
“뭐, 이상하긴 한데 그대로 일단 큰일은 아닐 거예요.”
“그걸 임 선생이 어떻게 알아요?”
“아까 선생님이 잠깐 말씀해 주시고 가셨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뭔데요?”
“…….”
“아무튼 그런 게 있어요.”
“임 선생은 알고 있죠?”
임정숙 간호사가 대충 둘러대고 나가려고 하자 최 팀장이 다시 붙잡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시커먼 양복을 입은 덩치가 이만한 남자들과 같이 갔는데 아니지, 끌려간 거나 마찬가지지. 그런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원장님이 우리 병원 기둥이신데 내가 걱정을 안 하게 생겼어요?”
“감덕찬 의원님 연락받고 가신 거예요.”
최 팀장의 성화에 임정숙 간호사는 연락한 사람이 누군지 알려 줬다.
“감 의원님이요?”
“네. 이제 됐죠?”
“감 의원님이라면 안심할 수는 있지만 이 시간에 저런 사람들이랑 어디를 가시는 걸까요?”
“그건 저도 모르죠. 그리고 선생님이 잠시 연락 안 될 수도 있다는 연락도 하셨어요.”
태경이 휴대폰을 맡기기 전 임정숙 간호사와 의진에게 연락을 했기에 알고 있었다.
“팀장님. 아직 다른 직원들한테는 말하지 마시고 그렇게만 알고 계세요.”
“내가 입이 얼마나 무거운지 임 선생도 잘 알잖아요. 이거, 이거 어쩌면 오일머니 환자보다 더 대단한 분을 만나러 가는 건 아닐까요?”
“자세한 건, 저도 모른다니까요. 그럼 응급실 갑니다.”
“뭔가 있어…….”
최 팀장은 사무실에 혼자 남아 태경이 향한 곳이 어디일지 계속 생각했다.
* * *
“김태경 원장님?”
본인도 언제 잠이 든 건지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린 태경이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도착하셨습니다.”
“!?”
운전석과 보조석에 있던 남자들이 차에서 내려 뒷문을 열자 태경이 완전히 잠에서 깨며 차에서 내렸다.
“…….”
태경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이곳이 어디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주변은 상당히 고요했고, 차가 멈춘 양쪽으로 울창한 나무가 빼곡히 펼쳐졌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자 삭막할 정도로 정갈한 건물 몇 개만 보였다.
어두워서 명확하지는 않지만 산 중턱에 위치한 것으로 보였다.
태경은 핸드폰이 없어서 지금이 몇 시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원장님. 답답할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보안을 신경 쓰다 보니 오시는 길이 불편하셨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태경은 두 남자와 함께 정면에 보이는 건물로 걸어갔다.
겉에서 보기에 창문이 하나도 없는 시멘트 건물 가운에 유일하게 있는 문 앞에 두 남자의 걸음이 멈추고 태경도 덩달아 걸음을 멈췄다.
두 사람이 문을 열겠구나 싶던 찰나 문이 열리며 안쪽에서 남자 한 명이 나왔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태경과 함께 왔던 두 남자가 건물 안에서 나온 남자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였지만, 그의 시선은 온통 태경을 향했다.
중년의 남자 역시 두 남자처럼 체격이 좋았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김태경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태경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뒤 반갑게 웃으며 말했고 태경도 화답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 밖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원장님, 저희 처음이 아닙니다. 저랑 구면일 텐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