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화. 20분
“다, 다리가……. 내 다리가 없어진다니……. 말도 안 돼. 내 다리…… 다리…….”
얼마나 놀랐던지 그는 계속 혼잣말을 이어 갔다.
“이럴 시간이 없어요.”
“이봐! 김 대리?”
“네, 과장님.”
김태경의 말에 이후락은 조용히 상체를 뒤로 기울더니 운전석을 향해서 소리쳤다.
“지금부터 원장님 수술하신다. 운전 부드럽게 해!”
“네, 알겠습니다.”
신속한 상황판단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 부하직원의 다리에 칼을 갖다 대는데도 가타부타 말을 더하지도 않고 한 번의 질문이 다였다.
혹시라도 이후락이 수술에 있어 제동을 걸면 어쩌나 했는데 그러지 않아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아마도 이렇게 빠르게 결정해야 하는 상황을 많이 겪었던 것 같다.
“원장님? 제가 도울 일은 없겠습니까?”
“그럼, 핸드폰으로 불을 비추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후락은 자신의 핸드폰뿐만 아니라 조금 아까 돌려받은 태경의 핸드폰까지 모두 조명을 밝게 해서 박 대리의 다리에 있는 상처 부위를 비췄다.
“이 정도면 될까요?”
“네, 괜찮습니다.”
태경은 환자의 다리에 집중했다. 다리는 크게 4개의 근육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이 부분의 근막 모두에 근막 절개선을 넣어야 한다.
문제는 이 근막이 다리 안쪽에도 있다는 것이다. 즉 아무런 마취 없이 근육을 파헤치는 고통을 환자가 참고 견뎌 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중세 시대의 수술처럼 말이다. 말이 쉽지 그 고통을 견뎌야 하는 환자도 술기를 해야 하는 의사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따라서 태경이 해야 하는 일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원하는 수술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잠시만요.”
핸드폰 불빛을 열심히 비추고 있던 이후락은 뭔가를 들어서 태경에게 내밀며 말했다.
“원장님, 여기 리도카인(lidocaine, 국소마취제로 사용함) 있습니다. 예전에 있던 의료진이 이걸 자주 사용하는 걸 봤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리도카인은 피부 표면만 마취가 가능하며 압력이 높아진 상태에서 약의 투여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가요?”
“네, 어차피 무의미해요. 바로 하겠습니다. 박 대리님. 지금 상황이 좋지 않아 다리에 바로 절개해야 해서 많이 아프실 겁니다.”
“겨, 견뎌 보겠습니다.”
박 대리는 마음의 준비를 한 듯 비장한 표정으로 각오를 다졌다.
“정신 차리세요. 그럼 시작합니다!!”
“네! 아아아아아아! 아아악 아~~악!”
태경이 빠르게 다리에 길게 절개선을 넣자마자 굵은 성인 남자의 비명이 크게 터져 나왔다.
듣고만 있어도 환자의 통증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 비명이었다. 당연했다.
아무리 고강도 훈련을 한 사람이라고 해도 생살을 째는데 아픔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종이에 피부를 조금만 베어도 아픈데 메스로 절개했으니 그 고통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박 대리, 괜찮아?”
“후우! 후! 이 과장님 이거 고문 훈련보다 더 아픕니다. 눈앞이 아찔한 게 순간 별이 보이는 거 같았습니다.”
“할 수 있어. 박 대리! 아프면 참지 말고 소리 더 질러, 괜찮아. 살에 칼 좀 닿았다고 안 죽어. 원장님이 자네 낫게 해 주시려는 거야. 상황 파악하고 정신력으로 몸을 지배해!”
“네! 으아!! 으아아악!!”
이후락의 격려가 끝나자마자 다시 한번 차 안에 비명이 울렸다.
“박 대리님, 잘하고 계세요.”
태경은 빠른 피부절개 이후에 보이는 대로 멸균 거즈로 흐르는 피를 닦았다. 이렇게 협소한 장소에서 빠른 수술을 하는 태경도 대단하지만 사실 정말 대단한 사람은 박 대리였다.
“으아아! 후!”
저렇게 비명을 지르면서도 아픈 다리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얼마든지 움직이고 발버둥 칠 수 있음에도 수술에 방해가 될까 봐 견디는 것이다. 일반인이라면 저렇게까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 대리님, 조금만 힘내 주세요.”
태경도 이 점을 알기 때문에 치료에 더 박차를 가한다.
거즈로 절개 부분을 닦아서 빠르게 구조물들을 확인하고 있지만, 일반인이 볼 때는 붉은색 다리에 선지 덩어리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모습이었다.
이미 내부의 골절로 인해 출혈이 발생했고 일부는 굳어졌기 때문이다.
여러 군데의 절개선을 넣을 수 있지만, 향후의 수술을 위해 그리고 예후를 위해 가능한 적은 절개를 넣었다. 그리고 메스의 날카로운 부분이 아닌 반대 부분으로 피부밑 조직들을 빠르게 분리해 나간다.
거즈로 닦아 가면서 태경은 하나의 근막을 확인했다.
여기서 근육에 가능한 상처를 안 주고 근막만 빠르고 정확하게 가로로 절개한다. 그리고 가위를 그 안에 집어넣고 근막을 위아래로 길게 절개한다.
“하!”
여기서부터 너무나 고통스러운지 박 대리는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팔을 떨기 시작했다.
“으으!”
“야! 인마! 박 대리, 정신 차리고 소리를 질러!”
“네! 과, 과장님 괜찮습니다!”
“너 이렇게 만든 놈 가서 갚아 줘야지 인마. 정신 차려!”
“네, 다시 그 임무 제가 맡게 해 주십쇼!”
“당연하지. 정신 잃지 마. 아프면 소리 지르고!”
사고가 아닐 거라는 걸 대충 눈치챘지만, 정말 소름 돋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태경은 이제 반대쪽 피부에 절개선을 넣는다.
이쪽은 사페노어스 베인(saphenous vein, 복재정맥)이 있는 곳으로 잘못하면 대량 출혈이 발생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게 잘해야 한다.
태경은 평소 주행 경로를 대략 파악하고 절개선을 넣었다.
물론 감이나 지식은 현실과 괴리가 있으므로 10cm 정도 넣다가 손가락을 집어넣어서 대략적인 구조물을 다시 확인하는 작업을 한다.
“아아악! 아까보다 더 아픕니다. 더 아프다고! 으아악!!”
고통으로 절인 얼굴을 한 박 대리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그의 말이 맞았다.
이미 한쪽의 근육 덩어리 부분을 감압했으므로 일정 부분 혈류가 돌 것이고, 아까보다 감각이 더 온전해졌기 때문에 통증이 더 커진 것이다.
반대쪽 나머지 근육의 구획에도 아까와 같은 방법으로 감압한다.
적당한 깊이의 절개 그리고 가위를 넣고서 빠른 감압이 두 번 더 반복되었다.
근육을 파헤치는 동안 통증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신속하게 하는 방법밖에 없으므로, 박 대리의 비명을 무시하고 빠르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거야말로 지금 환자의 고통을 빨리 끝낼 수 있는 방법이기에 지체할 수 없었다.
시간상 20분 만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수술방에서는 절대 이렇게 빠르게 할 수가 없다. 아니 할 필요도 없었다.
태경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 다행이고, 무엇보다 환자가 박 대리라는 것도 다행이었다. 그 둘의 협동이 만든 결과였다.
“하아! 하…….”
박 대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방전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이 상황에서 기절하지 않고 저 정도인 것만 해도 말도 안 되는 거였다.
가만히 지켜보던 이후락이 앞 좌석에다가 소리친다.
“김 대리?”
“네, 과장님.”
“죽지 않을 정도로만 속도 높여서 밟아. 추월해서 병원으로 빨리 가자!”
“네! 알겠습니다.”
“저 원장님. 우선 잘 끝난 겁니까?”
“네, 이게 다 환자분 덕분에요. 박 대리님이 잘해 주셨어요.”
“옆에서 지켜봤지만, 참 대단한 놈입니다.”
“병원에 도착하는 대로 안쪽 수술을 빨리할 것이기 때문에 일단 피부 봉합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태경은 큰 바늘을 꺼내서 듬성듬성 피부가 너덜거리지 않게 붙여만 놓았다.
이제 우리병원에 들어가서 빠르게 수술을 진행하면 된다. 그 어떤 마취 없이 생살을 절개하며 고성이 오가던 긴박했던 상황이 일단 마무리됐다.
이 모든 일이 달리는 차 안에서 짧은 시간에 일어났다는 것이 당사자인 박 대리와 이후락은 믿기지 않았다.
“박 대리님 잘 참았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아, 아닙니다. 원장님이 더 고생하셨습니다.”
태경이 박 대리를 격려하며 그의 발가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까와는 달리 붉은색이 돌아온 것이 보였다. 그리고 분뇨 냄새를 누르던 포르말린 냄새도 잦아들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원장님? 제가 이쪽 일을 하면서 간이 커져서 그런지 어지간한 일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사람인데, 오늘 원장님을 보면서 꽤 놀랐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별말씀을요. 제가 아닌 다른 어떤 의료진이었다고 해도 이렇게 했을 겁니다.”
“글쎄요. 저도 의료진들 꽤 봤지만, 그건 사람마다 다른 것 같네요. 아무튼 감덕찬 의원님이 왜 원장님을 추천했는지 알 거 같습니다.”
“그런데 과장님. 병원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김 대리, 병원까지 얼마나 걸릴 거 같아?”
“30분 내도 도착합니다.”
“조금만 가면 될 거 같습니다.”
“네.”
태경은 이후락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병원에 가는 동안 계속해서 박 대리를 살폈다.
어느덧 새벽길을 달린 차가 병원에 도착했다. 태경은 이후락을 보면서 말했다.
“과장님, 제 핸드폰 주시죠.”
“여기 있습니다. 금액은 모두 현찰로 드릴 테니 모쪼록 아무 기록도 남지 않게만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네, 무슨 말씀을 하실지 잘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신 저도 꼭 할 말이 있습니다. 약속 하나만 해 주세요. 반드시 들어주셔야 합니다.”
“약속이요? 좋습니다. 말씀하세요.”
“원하시는 대로 수술 후 최대한 빨리 박 대리님을 퇴원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퇴원 후 의료진이 동반된 곳에서 완치될 때까지 박 대리님이 끝까지 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세요. 그게 제 조건입니다.”
“네, 물론입니다. 그건 염려하지 마세요.”
태경은 이제 박 대리를 들것에 들고서 평소 환자가 드나들던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부대 사람들을 안내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출입구라 그런지 잠겨 있자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 * *
우리병원-
“수 쌤?”
“네.”
환자를 보고 온 이찬희는 스테이션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임정숙 간호사에게 물었다.
“수 쌤은, 선생님 어디 가신지 아시죠?”
태경이 병원을 나간 지 벌써 몇 시간이 지났다. 이쯤 되니 다들 어디를 간 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글쎄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에이! 수 쌤은 아시잖아요.”
“제가 선생님 가신 곳을 어떻게 알아요. 그냥 가신다고만 하셨지 저도 몰라요.”
“그래요? 알았습니다. 저, 병동 갔다 올게요.”
“네. 다녀오세요. 고 선생? 7번 베드 수액 속도 조절했지?”
“네, 수 쌤.”
“땡큐. 아, 깜짝아!”
이찬희가 응급실을 나가고 업무를 체크하던 임정숙 간호사는 언제 왔는지 바로 옆에서 얼굴을 들이밀고 서 있는 최 팀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팀장님 왜 그러고 계시는 거예요? 나 진짜 깜짝 놀랐잖아요.”
“임 선생. 지금 놀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것 좀 보세요.”
“뭘 또 보라고 그러세요.”
심각한 얼굴로 최 팀장이 보여준 건 너튜브에 있는 사건 사고 동영상 모음으로, 그중에서도 납치에 관한 내용이었다.
“여기 보이죠? 임 선생, 혹시 우리 원장님도 어딘가에 납…….”
“팀장님,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계세요! 이런 것 좀 그만 보세요. 납치는 무슨 납치에요.”
“아니, 아까 시커먼 덩치들에게 끌려간 것도 그렇고 아무리 국회의원 연락이라지만 몇 시간째 연락도 안 되고 뭔가 찜찜하잖아요.”
“연락이야 선생님이 한동안 안 될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임 선생 혹시, 감 의원님 연락처 알아요?”
“왜요? 직접 연락이라도 해 보시려고요?”
“알면 해 봐야죠.”
“제가 국회의원 연락처를 어떻게 알아요. 팀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얼른 가서 일 보세요. 저도 일해야 해요.”
“휴! 알겠어요.”
최 팀장은 여전히 찜찜한 표정으로 응급실을 나오며 계속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남자들 덩치도 그렇고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는데……. 아니, 원장님이 감감무소식인데 다들 너무 태평한 거……!”
한참을 혼자 구시렁거리며 화장실을 가던 최 팀장은 별안간 울리는 핸드폰을 보며 움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