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16화 (315/472)

316화. 다리를 뽑겠다는 마음으로

“그 남자들 덩치도 그렇고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는데……. 아니, 원장님이 감감무소식인데 다들 너무 태평한 거……!”

한참을 혼자 구시렁거리며 화장실을 가던 최 팀장은 별안간 울리는 핸드폰을 보며 움찔했다. 그러더니 얼른 안으로 들어가 상당히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원장님?”

-네, 팀장님. 접니다.

“아니, 원장님 괜찮으신 거죠? 몸을 다치셨거나 어디 감금당하신 건 아니죠? 제가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모릅니다.”

최 팀장은 집 나간 가족이 돌아온 것처럼 격한 반가움과 걱정스러운 마음을 드러냈다.

-아무 일 없고 괜찮습니다.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제가 정말 우리 원장님 걱정을…….”

-팀장님! 지금 이럴 시간이 없어요.

“네? 무슨 일 있으세요?”

그러고 보니 핸드폰 너머 태경의 목소리가 상당히 다급한 걸 느낄 수 있었다.

-저, 지금 병원입니다.

“병원이시라고요? 지금요? 어디 계시는데요? 안 보이시는데…….”

-비상시에 사용하는 출입문 열어 주시고, 우리 감염 환자를 위해 설치한 엘리베이터도 당장 가동해 주세요. 그리고 거기서부터 수술방까지 모든 CCTV는 내일 점심까지 전부 꺼 놓으시고요.

“CCTV를 전부요?”

-네, 급해요.

“어……. 네. 알겠습니다.”

최 팀장은 도대체 무슨 일인데 생전 가동을 하지 않던 비상문과 엘리베이터까지 여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태경이 저런 말을 괜히 할 사람도 아니고 분위기가 분명 환자와 관련 있다고 생각했기에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정확히 3분 뒤 비상문이 열렸다.

“문이 열렸네요. 이쪽으로 이동하죠.”

태경은 열린 비상문으로 이동하며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접니다.”

-네, 원장님.

이번에 전화를 건 사람은 임정숙 간호사였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세요. 급하게 환자를 수술해야 합니다. 근무자 중에…….”

태경은 임정숙에게 입이 무거운 직원들 중심으로 극소수에게만 은밀하게 수술 준비를 하라고 시켰다.

“수술이 끝나고도 오늘 일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을 사람들로 배치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찬희랑 최모나는요?”

-최 쌤은 자상 환자 봉합하고 있고, 이 쌤은 급한 환자 끝나고 나머지 환자들 체크하고 있어요.

“그럼, 이찬희보고 들어오라고 하죠. 급하니까 최대한 다들 서둘러 달라고 하세요.”

-네, 선생님.

그렇게 태경의 말이 끝난 지 30분도 안 되어서 박 대리의 모든 수술 준비가 완료됐다.

Rrrrrrrr

“네. 김태경입니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이후락과 대화 중이던 태경이 휴대폰 벨 소리에 전화를 받았다.

-원장님, VIP 수술 준비됐습니다.

전화를 한 직원은 평소와 다른 태경의 지시사항에 수술받는 환자를 고위직으로 오해해 VIP라고 생각했다.

태경은 박 대리에 대해 말을 할 필요가 없기에 굳이 수정하지 않기로 했다.

“과장님. 그럼 저는 이만 수술방으로 가 보겠습니다.”

“네, 원장님.”

“수술이 마무리되면 바로 설명해 드릴게요.”

“모쪼록 우리 박 대리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후락이 고개를 푹 숙이며 90도로 인사했다.

그 뒤, 태경은 수술방으로 들어와 수술 가운을 입고 평소와 다르게 다리를 드러낸 채 누워 있는 박 대리 곁으로 갔다.

오른쪽 정강이만 내놓고 있고 다른 부위는 멸균된 수술포로 덮여 있는 상태였다.

태경은 이미 절개된 피부에서 듬성듬성 봉합해 놓은 피부 봉합을 모두 메스로 잘라 냈다.

“자 C-arm 들어오세요.”

박 대리의 경우 워낙 급하게 수술이 진행됐기 때문에 따로 CT 촬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수술방에서 바로 X-ray를 모든 방향에서 촬영 가능한 씨암(C-arm, 2m가 넘는 기계로, 큰 반원으로 되어 있어서 반원의 시작과 끝점의 사이에 있는 곳에서 X-ray 촬영이 가능한 기계, 수술 테이블보다 더 크기 때문에 주변을 크게 감싸게 됨)을 이용하기로 했다.

태경의 말에 오랫동안 일한 근무자가 기기를 운용한다. 잠금을 해제하고 멸균이 깨지지 않도록 조심히, 아주 조심히 이동했다.

“자! 여기 찍어 주세요. 조금 더 위로 찍어 주시고 방향 틀어서 다시 한번 찍어 주세요.”

“네, 원장님.”

태경이 C-arm 촬영을 지시할 때마다 다른 근무자들은 방사선을 막기 위해 납복을 입은 채 최대한 떨어져 있었다.

방사능은 무조건 막아야 하고 그렇게 하는 게 옳은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래야 했다.

태경 역시 그래야 했지만, 그 당연한 것을 잊을 만큼 집중했기 때문에 납복을 입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티비아(tibia, 정강이 뼈)가 골절되었지만, 다행히 분쇄는 아니고 바로 연결할 수 있겠네요. 이 선생, 밑으로 가서 환자 다리 잡고 당겨 봐. 우선 골절 라인부터 맞추자.”

“네, 선생님.”

이찬희가 발목 부분을 잡고 있는 힘껏 당겼지만, 태경이 바로 제동을 걸었다.

“아니,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네?”

“근육이 워낙 강해서 안 될 거야. 그렇게 그냥 하면 안 되고 네 몸무게를 힘껏 전부 실어서 해야 해. 한마디로 이 다리를 뽑겠다는 마음으로. 그래야 간신히 될 거야.”

“아……. 그 정도로요. 알겠습니다!”

태경의 말에 이찬희가 발목을 잡고 아예 뒤로 몸을 누울 듯이 젖혀 버린다. 정말이지 젖 먹던 힘까지 더해 온 힘을 다 실어 박 대리의 발목을 잡았다.

“자! 이제 C-arm 찍어 줘요. 한 번 더. 이 선생, 딱 좋아 더 댕겨.”

“네…….”

“한 번 더 찍어 주세요. 좋아 지금 상태 그대로 유지해 줘.”

“네?! 선생님, 지금도 너무 힘듭니다.”

저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 이찬희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당기고 있었다.

“잘하고 있어. 힘든 거 아는데 그래도 유지해야 해. 유지할 수 있지?”

“네……. 선생님. 해 보겠습니다.”

“그래. 이게 다 환자를 위해서야. 조금만 더 힘내자.”

태경이 이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런 경우 골절된 위아래로 기둥을 박고서 다리 밖으로 고정을 해 주는 방법을 주로 쓸 수 있다.

하지만 박 대리의 경우 골절 라인에 분쇄된 뼛조각이 없고 깔끔한 편이라서 플레이트(plate, 판. 뼈의 골절된 곳을 포함하여 뼈에 바로 붙여 고정함.)를 댈 수 있기 때문이다.

판을 댈 수 있는데 굳이 피부를 열어 놓고 두 번 수술하는 것은 환자를 위해서도 좋지 않았다.

물론 일반 환자라면 기둥을 꼽을 수도 있겠지만, 박 대리는 다시 태경이 볼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서 더욱더 판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 드릴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위잉- 윙-

태경이 건네받은 의료용 드릴을 작동시키자 목공소에서나 들리는 소리가 수술방 안에 가득 울렸다.

“어이쿠! 왜 이렇게 단단해.”

농담이 아니었다. 드릴을 이용하고 있는데도 정말로 박 대리의 뼈가 꽤 단단했다.

보통 일반 사람은 드릴을 갖다 대면 뼈가 쉽게 뚫리는 데 반해, 박 대리는 군인이고 훈련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뼈가 단단했다.

위이잉-

한참을 드릴을 잡고 있던 끝에 겨우 구멍을 뚫을 정도였다.

“휴! 이제야 하나 뚫었네.”

판의 구멍마다 모두 나사를 박아야 하므로 판을 골절된 곳의 위아래에 길게 대고서 구멍마다 모두 드릴로 뚫는다.

윙- 윙-

태경은 잘 뚫리지 않는 뼈를 뚫기 위해 힘을 쓰고, 이찬희는 뼈 라인을 잘 맞추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다리를 힘껏 당기고 있었다.

이찬희가 어찌나 강한 힘으로 당기던지 이마에 땀이 나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가고 있었다.

태경도 알고 있고 그런 후배가 안쓰러웠지만, 환자의 수술을 위해서는 별 방법이 없어서 애써 외면하고 자기 할 일에 집중했다

“자 깊이 측정할 거 주세요.”

“네?!”

“이거요.”

“아, 뎁스 게이지요.”

태경이 오랜만의 정형외과 수술이라서 망각한 기구 이름은 뎁스 게이지(depth gauge, 드릴로 뚫은 뼈의 두께를 측정하여 나사의 길이를 정할 때 쓰는 도구)였다.

“엄청 두껍네. 55… 아니……. 55짜리 우선 있나요?”

나사의 구멍 하나하나 길이를 측정한 태경이 반대쪽 구멍으로 최대한 적은 나사가 나오도록 길이를 맞추어서 나사를 끼웠다.

이번에는 드릴이 아니라 태경이 손수 기구로 나사를 돌려 넣고 있었다.

굳이 힘들게 수작업을 하는 이유는 손의 감각으로 어느 정도 들어갔는지, 힘을 더 주어야 하는지 등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으!”

물론 그만큼 오래 걸리고 이찬희는 힘들어 죽을 맛이었다.

‘와! 진짜 돌아 버리겠네.’

항상 수술이 있으면 그 어떤 수술이든 무조건 들어오고 싶어 했던 이찬희였다. 그건 최모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두 사람에게 태경의 수술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그만한 가치와 배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 괜히 들어왔어.’

그런데 이찬희는 지금 처음으로 수술방에 들어온 걸 후회하고 있었다.

‘죽겠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너무 힘이 들고 어느새 박 대리의 다리를 잡고 있는 팔이 저리기까지 하며 내 팔이 아닌 것만 같았다.

더 이상은 이 상태로 5분도 못 버틸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의지와 상관없이 점점 팔이 달달 떨리고 힘이 빠지고 있던 그때였다.

“됐다!”

드디어 그만해도 된다는 태경의 사인이 떨어진 것이다.

그 말과 동시에 잔뜩 찡그리고 있던 이찬희 얼굴에 점차 화색이 돋았다.

“이제……. 힘 빼도 될까요?”

“그래, 찬희야. 빼도 돼. 힘들지?”

“하! 농담이 아니라 선생님 저……. 진짜 죽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 알아. 그거 보통 힘든 게 아니야. 이 환자라서 더 힘들었을 거야. 고생했다. 나머지 피부와 근육은 내가 마무리할게. 넌 가서 쉬어.”

“아닙니다. 저도 마무리할게요.”

“그 팔로?”

마음은 끝까지 수술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태경의 말대로 힘을 잔뜩 준 팔이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괜찮으니까 무리하지 말고 얼른 가서 쉬라고 할 때 쉬어.”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먼저 가 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쌤 수고했어요.”

“다들 조금만 더 힘내세요.”

이찬희는 수술방 근무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먼저 나갔다.

물론 이런 일이 일반 대학병원이었다면 불가능했지만, 상체가 땀으로 범벅이 된 이찬희를 보고 있자니 쉬라는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이 쌤이 진짜 고생했네요.”

“그럼요. 큰 거 해 줬어요. 아마 팔이 꽤 저릴 거예요. 자! 그럼 우린 마무리에 집중합시다.”

“네, 선생님.”

근육을 한 결 한 결 층층을 모두 연결해 주는 것은 태경에게 너무 쉬운 일이었다.

그 뒤 이어진 피부 봉합 역시 평소에 하는 복부 봉합에 비하면 쉬웠기에 일사천리로 신속하게 마무리가 됐다.

물론 콤파트먼트(compartment syndrome, 구획증후군)를 예방하기 위해 듬성듬성해 놓았으며, 아직 닫지 않는 피부 부분은 멸균된 거즈를 적셔서 습하게 막아 놓았다.

하루나 이틀 정도 상처와 혈액순환을 확인하고 병동에서 피부를 닫아 주기만 하면 모든 처치는 끝이 난다.

“다들 수고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새벽에 급하게 진행됐는데 다들 잘해 줘서 고마워요.”

“원장님, 그런데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분이시면 이렇게 은밀하게 수술을 진행하신 거예요?”

직원 중 한 명이 수술 시작할 때부터 궁금했던 걸 참지 못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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