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17화 (316/472)

317화. 진짜 이름

“원장님, 그런데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분이시면 이렇게 은밀하게 적은 인원으로 하신 거예요?”

직원 중 한 명이 수술 시작할 때부터 궁금했던 걸 참지 못하고 물었다.

“궁금해요?”

“그럼요.”

“사실 저도 궁금해요.”

“아마 수술방에 모인 사람 다들 궁금할걸요.”

직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들 한마디씩 하며 궁금해했다.

“그게……. 알면 다쳐서 안 돼요.”

“아! 원장님 너무하십니다.”

“농담하지 마세요.”

“농담이 아니라 진담입니다. 아무튼 다들 수고했어요.”

잔뜩 기대하는 직원들의 궁금증을 더욱 고조시킨 태경은 수술방을 나와 이후락을 만나러 갔다.

“과장님, 많이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원장님이 고생하시고 박 대리가 고생한 거죠.”

보호자 대기실이 아닌 따로 마련한 공간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후락은 태경이 들어오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박 대리 수술은 어떻게 됐습니까?”

“수술은 잘됐어요. 구획증후군을 예방하기 위해 일부분은 일부러 봉합을 잘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내일 퇴원 전에 박 대리님의 상태를 보고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태경은 수술 전반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했고, 이후락은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제가 있는 곳이 워낙 비밀이 일상인 곳이라 처음 박 대리가 다치고 나서는 사실 많이 난감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원장님을 만나 수술까지 잘되고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저야 당연히 할 일을 한 건데요. 박 대리님이 잘 견뎌 준 거죠. 과장님도 고생하셨어요.”

“제가 한 게 뭐가 있나요.”

“그런데 과장님 잠을 좀 자야 하실 텐데……. 괜찮으시면 병원 당직실이라도 사용하시겠어요?”

“아닙니다. 박 대리 옆에서 함께 있을 생각입니다. 내일이면 다시 부대로 갈 텐데 그전까지는 제가 간호해야죠.”

“사원들을 많이 아끼시네요.”

“평소에는 엄하게 하지만 몸이 아프고 힘들 때는 제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돌보고 있습니다.”

“대단하시네요.”

“아닙니다. 그래야 우리 사원들도 버틸 힘이 생기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

“박 대리님 마취 깨어나며 이따 또 들르겠습니다. 불편하신 점 있으면 저한테 바로 알려 주세요.”

“지금 같아서는 전혀 불편한 게 없는데요. 여러모로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친 이후락은 박 대리가 있는 입원실로 향했고 태경은 진료실로 향했다.

* * *

“아, 내 팔아~”

“좀 괜찮아?”

환자를 보고 온 최모나가 응급실 스테이션 구석에서 팔을 주무르고 있는 이찬희에게 다가갔다.

“아니. 최 쌤 나 이러다가 팔 빠지는 거 아니겠지?”

최모나를 보자 가만히 팔을 만지던 이찬희는 일부러 더 앓는 소리를 냈다.

“사람 팔이 무슨 나무 조각도 아니고 그렇게 쉽게 안 빠지거든.”

“아니야. 개모나 네가 못 봐서 그런데 나 진짜 두 팔이 뽑히기 직전이었다니까. 아니 무슨 사람이 다리가 일반 사람이랑 다른 게 장난 아니었다니까.”

“근데 환자는 누구였어? 아까 보니까 수술 준비도 빠르게 진행되고 듣자 하니 선생님이 환자에게 각별히 신경 쓰시는 거 같다고 하던데…….”

환자의 병명이 궁금할지언정 환자 당사자는 그렇게 궁금해하지 않던 최모나도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수술받은 환자가 누군지 궁금했다.

“그걸 모르겠어. 선생님이 따로 환자 언급을 안 하시니까 나도 그렇고 다른 직원들도 다들 물어보고는 싶은데 눈치 게임 하는 거 같더라고.”

“그럼 아까 수술방에서도 말씀 안 하신 거야?”

“나, 나올 때까지는 정신없어서 물어볼 생각도 못 했어.”

“유명인인가?”

“글쎄……. 얼굴을 살짝 봐서 그런지 그건 잘 모르겠네. 아무튼 그거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진짜 팔이 빠질 만큼 고생했다니까.”

이찬희는 최모나를 보며 또다시 힘든 내색을 대놓고 표출했다.

“그래, 고생했다.”

“그렇다니까 나 진짜 고생했어. 이따 병동 회진도 돌아야 하는데…….”

“회진은 이따 내가 돌게. 그때 잠깐이라도 좀 쉬어.”

“뭐! 네가 돈다고?”

“어. 이 쌤 힘들다며.”

“됐어. 나만 힘드나? 너도 힘들지. 나 어시 할 동안 응급실 환자 보느라 바빴을 텐데 괜찮아.”

“보시다시피 응급실이 그렇게 빡세지 않아서 괜찮았어.”

“말만 들어도 고맙다.”

“말만이 아니라 진심이야. 그리고 이거 붙여.”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피던 최모나는 잠시 머뭇머뭇하더니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이찬희 앞으로 툭 던졌다.

“이게 뭐야?”

“뭐긴 뭐야. 보면 몰라? 파스잖아.”

“알지. 여기 한글로 파스라고 쓰여 있잖아. 그게 아니라 갑자기 웬 파스냐 이 말이지.”

“팔 아프다며.”

“나 말 아프다고 해서 준비한 거야? 그럼 이 약은 뭐야?”

광대가 점점 올라가는 이찬희는 파스와 함께 딸려온 작은 알약을 들어 보였다.

“아까 저녁 먹은 거 소화 안 되는 거 같다고 했잖아. 소화제야.”

“개모나 너 왜 이렇게 스윗해. 내가 지나가는 말로 잠깐 했는데 그걸 다 기억하고 있던 거야?”

“뭘! 기억해. 너가 하도 떠들어 대니까 귀에 들려서 준 거야. 괜히 확대해서 하지 마.”

“나에 대한 개모나의 관심이 이 정도라니…….”

생각지도 못한 최모나의 행동에 무한 감동을 한 이찬희는 두 손으로 알약과 파스를 움켜쥐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개모나가 나에게 약과 파스를 주다니. 이런 게 바로 사랑의 힘인가?”

“하! 참나! 사랑은 무슨 사랑이야? 오버 좀 하지 마.”

“아니, 이건 오버가 아니라. 트루 러브이자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라고 할 수 있지. 모나야~?”

“뭐래, 미쳤어? 느끼하게.”

“이름밖에 안 불렀는데 뭐가 느끼해. 우리 개모나에게 이런 참사랑이 있다니……. 나 정말 감격했다.”

이찬희의 오바스러운 능청이 싫지 않던 최모나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려던 그때였다.

“뭐가?”

인기척도 없이 쓱 다가온 태경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뭐가, 참사랑인데?”

“……!”

조금 전, 진료실에서 자료를 보고 응급실로 넘어온 태경은 구석에서 대화하는 두 사람을 보고 다가온 것이다.

한참 달달한 분위기를 꽃피우던 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태경의 등장에 깜짝 놀라 순간 말문까지 막혀 버렸다.

“내가 분명 참사랑 어쩌고를 들은 거 같은데?”

“아! 그게…….”

“차, 참기름!”

이찬희가 잠시 머리를 굴리던 사이 최모나가 머릿속에 생각나는 단어를 급하게 내뱉었다.

“참사람이 아니라 참기름이라고 했습니다.”

“참기름?”

“네. 선생님이 잘못 들으신 겁니다. 아까 저녁 반찬으로 나온 청포묵에 참기름 냄새가 좋다고 말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래?”

“네, 최 선생 말이 맞아요.”

태경이 전혀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을 짓자 이찬희가 빠르게 여자 친구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오 여사님 음식 솜씨가 진짜 끝내주시잖아요. 참기름 냄새가 자꾸 어찌나 코를 찌르든지 직접 짜신 건가…….”

“오! 참기름 좋지. 내 생각에는 여기서 참기름 냄새가 나는 거 같은데……. 두 사람 어떻게 생각해?”

“신환이요.”

“환자분이 오셨네요. 수 쌤, 제가 갑니다.”

태경의 계속된 장난에 두 사람이 살짝 난감하던 사이 임정숙 간호사가 응급실에 환자가 왔음을 알렸다.

“전 그럼 환자에게 가 보겠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최모나가 이때다 싶어 얼른 환자에게 향했다.

“왜, 자꾸 웃고 계세요?”

태경이 자기를 빤히 쳐다보며 말없이 계속 웃자 이찬희가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러게. 이상하게 두 사람을 보면 자꾸 웃음이 나네.”

“제가 그렇게 웃긴 사람이 아닌데요.”

“찬희야 너 지금 충분히 웃겨. 그건 그렇고 팔은 좀 괜찮아?”

“네, 팔이 심하게 후들거리는 거 빼고는 괜찮습니다.”

이찬희는 장난스럽게 팔을 축 늘어트리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좀 쉬고 있으라니까 왜 일하고 있어.”

“수술방에서 나와서 충분히 쉬었습니다.”

“오늘 이 선생 고생했어.”

“아닙니다. 저기 그런데 선생님?”

“왜? 혹시 환자가 누구인지 물어보려고?”

“오! 어떻게 아셨어요? 맞아요.”

수술방에서 먼저 나온 이찬희 역시 박 대리의 정체가 궁금하긴 매한가지였다.

“내가 아까도 수술방에서 말했지만, 알려고 하지 마.”

“왜요? 그만큼 대단한 사람이에요? 우리 오일 머니 환자분보다 더 대단한가요?”

“찬희야?”

“네, 선생님.”

“내가 여기서 입을 여는 순간, 우리 둘 다 다치는 수가 있어.”

“네?!”

“그러니까 더 이상 궁금해하지 마라.”

환자들이 있는 베드로 향하는 태경을 보며 이찬희는 여전히 궁금한 표정으로 조용히 혼잣말했다.

‘뭐지? 혹시 조직원들인가?’

* * *

다음 날-

한바탕 정신없던 새벽이 지나고 우리병원에도 다시 아침이 찾아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찬희와 최모나는 퇴근했고, 태경은 병동과 응급실을 오가며 환자들을 돌봤다. 그리고 점심 즈음 퇴원을 앞둔 박 대리를 다시 찾았다.

“다 끝났습니다.”

박 대리의 상태를 꼼꼼하게 체크하고 수술할 때 완전히 닫지 않은 부분을 확인한 뒤 깔끔하게 봉합했다.

이보다 더 꼼꼼하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신경 썼다. 이로써 태경이 할 수 있는 모든 처치를 완벽히 마무리했다.

박 대리에게서 나던 다섯 번째 바이탈인 분뇨 냄새도 몸이 회복됨에 따라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어제도 잘 참더니 오늘도 잘 참네요.”

“어제는 진짜 이러다 죽겠구나 싶은 정도였는데, 오늘은 마취를 해 주셔서 그런지 하나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박 대리님이 워낙 잘 참아 줘서 저도 처치를 잘할 수 있었고 수술까지 잘될 수 있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아닙니다. 원장님께서 잘 치료해 주셔서 바로 다 나은 것…….”

박 대리는 순간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침묵했다.

생살을 찢는 고통도 참고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거 같지 않던 사람이 별안간 울컥한 듯 감정을 억지로 누르는 게 보였다.

“아! 죄송합니다.”

“죄송하긴요. 박 대리님, 괜찮으세요?”

“순간 긴장이 좀 풀린 것 같습니다.”

“봉합하는 것 때문에 긴장했어요?”

“그게 아닙니다. 사실 전,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는 부대 안에서 늘 긴장하며 사는 게 당연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고된 훈련을 하고 그러다 임무가 주어지면 그에 맞게 수행하고 마음이 앞서는 감정은 배제하고 철저한 명령과 복종이 우선시되는 삶이었습니다.”

박 대리는 차분히 자신의 심정을 담백하게 전했다.

“그러다 이번 임무 중에 부상당하고 이렇게 큰 부상이 처음이라 그런지 겉으로 내색은 못 했지만 속으로 상심도 많이 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원장님이 제게 응급처치하고 치료하시는 걸 보면서 예전에 사회인이었을 때 누렸던 좋은 기억이 떠올라 울컥했습니다. 그때는 저도 평범했고 남들처럼 감정 표현도 할 줄 알던 사람이었습니다.”

박 대리는 생전 처음 본 태경이 자신의 부상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 가며 응급상황을 잘 대처해 준 것이 고마웠다.

“이런 말을 들으면 웃으시겠지만, 짧은 시간 원장님 때문에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부상으로 상처받은 마음까지 위로받았습니다. 원장님 덕분에 마음 다잡고 씩씩하게 복귀 잘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치료밖에 한 게 없는데 박 대리님이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까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네요. 앞으로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와요.”

“나중에 시간 되면 꼭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그래요. 나중에 환자가 아니라 일반인 신분으로 찾아오면 제가 박 대리님 맛있는 밥 한 끼 사 줄게요.”

“밥 말고 술 사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술 좋죠. 술 한잔해요.”

“이권승. 제 이름은 이권승입니다.”

철저히 신분을 가려야 하는 박 대리는 부대에 들어간 뒤 처음으로 진짜 이름을 말했다.

자신의 목숨을 살려 준 태경에게 박 대리가 아닌 진짜 이름을 알려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권승. 좋은 이름이네요. 꼭 기억할게요.”

태경에게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한 박 대리는 한층 홀가분해 보였다.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고 이후락이 부대 사원들과 들어와 박 대리를 이송할 차로 옮겼다.

새벽에 병원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감염 환자들을 위해 준비한 비상문과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밖으로 나갔다.

“원장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과장님도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저랑 한 약속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럼요. 박 대리도 제 자식 같은 놈입니다. 쾌차할 때까지 잘 보살필 테니 염려하지 마세요.”

“네, 조심히 잘 들어가세요.”

“아! 그리고 혹시나 제가 와이프랑 병원에 방문해도 모른 척해주셔야 합니다.”

“그럼요.”

“감사합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이후락과 인사를 하고 들것에 실린 박 대리가 짧게 손을 흔든 뒤, 그들을 태운 차가 빠르게 병원을 나갔다.

“원장님 VIP는 갔나요?”

“네, 다 갔습니다. 이제 CCTV 다시 오픈하세요.”

“그런데 말입니다. 저한테만 살짝 VIP가 누군지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아주 무서운 분들이라 큰일 납니다.”

이후락과 박 대리를 배웅하고 들어오는 태경을 보며 최 팀장이 물었지만, 끝까지 그들이 누군지 발설하지 않았다.

태경은 진료실로 향하며 다시 한번 박 대리를 떠올렸다.

20대, 아직 한창 꿈을 꾸고 친구들과 놀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 나이였다.

그 어린 나이에 나라를 위해 일하는 박 대리와 다른 사원들이 항상 안전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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