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화. 8차선 도로
00 초등학교-
“저기, 실례지만 여기 1층 상담실이 어디인가요?”
헐레벌떡 학교를 찾은 김선민은 상담실을 찾고 있었다.
이미 왔던 적이 있는 학교였지만, 상담실은 처음이었기에 지나가는 직원에게 얼른 물어보기로 했다.
“상담실이요? 저기 코너 돌아서 우측으로 조금 내려가시면 팻말 보일 거예요.”
“감사합니다.”
직원이 알려 준 곳으로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자 바로 상담실이란 팻말이 보였다.
“……!”
순간 손잡이를 잡으려던 김선민은 손을 빼더니 휴대폰으로 자기 얼굴을 확인했다.
어찌나 급하게 뛰어왔던지 사무실에서 묶었던 머리가 흐트러진 상태였다. 대충 빠르게 용모를 정리한 뒤 급히 상담실 안으로 들어갔다.
드르륵-
“그쪽이 여기, 얘……?”
미닫이문을 빠르게 열고 들어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중년 여자가 눈에 불꽃을 튀며 쳐다봤다.
한껏 볼륨에 힘을 준 머리 스타일과 과한 브로치가 돋보이는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턱 끝으로 승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되는 사람이에요?”
“만우 어머님, 승우 누님분이세요.”
“누나? 어쩐지 어려 보이더라니…….”
담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년 여자는 김선민을 위아래로 훑으며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누나든 뭐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오면서 대충 이야기는 들었죠?”
“네. 정말 죄…….”
“됐고요.”
김선민이 빠르게 사과부터 하려 했지만, 중년 여자는 도무지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만우야? 너, 손 좀 한 번 들어 봐. 아들! 손들어 보라고.”
“아, 게임 하고 있었는데……. 됐지?”
“이거 보이죠?”
중년 여자는 손가락에 감은 붕대를 가리키며 김선민과 조용히 책을 보고 있는 승우를 째려봤다.
“우리 아들 병원 가서 손가락 꿰매고 왔어요.”
“……!”
봉합했다는 소리에 김선민은 움찔했다. 아까 담임 선생님한테 전화를 받을 때만 해도 종이에 손을 베인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종이에 손을 베여 피가 난 것도 일이었지만, 병원까지 가서 봉합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기에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듣기로는 그쪽 동생한테 질문을 했는데 걔가 계속 무시했다는 거야. 주변에 친구들도 있고, 같이 놀자고 물어본 건데 계속 무시를 하니까 우리 애가 얼마나 민망하겠어. 안 그래? 그래서 책 그만 보고 말을 하라고 했더니만, 세상에 얘가 책을 확 뺐다가 우리 만우 손가락이 베인 거지.”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이 문제가 아니라……. 이거 봐요! 우리 아들이 어떤 아들인지 알아? 늦둥이에 우리 집안 장손인 애라고. 우리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 키우는 귀한 아들인데 우리 애 손에 이거 흉터 남으면 어떡할 거예요? 네?”
중년 여자의 아들인 덩치 큰 아이가 손가락을 봉합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속사정이 있었다.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여자는 손가락의 피가 나는 아들을 보며 상당히 기막혀했다.
‘어머님 많이 놀라셨죠? 제가 지혈해서 조금 있으면 피가 멈출 거예요.’
‘이봐! 그쪽은 양호 선생이지 의사가 아니잖아요.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교내 양호 선생님이 지혈을 잘해 줬지만, 여자는 무시하며 아들을 데리고 인근 병원으로 갔다.
씩씩거리며 병원에 갔지만 의사 또한 지혈을 잘하면 붙을 거라고 소독 잘하고 물이 닿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다. 하지만 여자는 깊게 베인 아들의 손가락을 보며 빨리 낳을 수 있게 굳이 봉합해달라고 우겼다.
의사는 정확히 1바늘이라고 그 한 번을 위해 마취 주사를 맞으면 애가 더 힘들 거라고 했다.
그렇지만 여자는 예쁘게 잘 붙을 수 있게 봉합해 달라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의사는 여자의 고집에 봉합을 해 줬다.
살짝 깊이감이 있게 베인 건 사실이었지만, 심각한 건 아니고 알아서 잘 붙을 상처를 굳이 봉합해 달라고 한 건 여자였다.
그러면서 여자는 마치 이 모든 사달이 승우 때문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이거 꿰매는 거 아프다고 어찌나 힘들어하던지……. 내가 속상해서 눈물 날 뻔했다니까.”
“만우 어머님 정말 죄송합니다.”
김선민은 지금까지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서 있는 채로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사과를 계속했다.
“승우 누님, 좀 앉으세요.”
계속 서 있는 김선민을 보며 승우 옆에 앉아 있던 담임이 일어나 자리를 안내했다.
“만우 어머님, 제가 모든 치료비는 다 부담할게요.”
“아니, 말을 참 이상하게 하네. 내가 언제 그쪽한테 치료비 물어달라고 했어요? 딱 보니까 돈도 없게 생겼으면서…….”
여자는 김선민이 들리도록 살짝 말끝을 흐리며 필터 없이 막말을 이어 갔다.
“이봐요! 그쪽 나보다 돈 많아? 누구 앞에서 돈 자랑이야?”
“아니요. 제 말은 그게 아니라…….”
“보통 이런 일 있으면 사과가 먼저 아니야? 당신, 동생이란 아이는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 없다고. 알아?”
“저기, 만우 어머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그건…….”
“담임 선생님 지금 혹시 저쪽 편 드시는 건가요? 그래요?”
보다 못한 담임 선생님이 상황을 중재하며 나서려고 하자 중년 여자가 못마땅한 눈빛을 보냈다. 게다가 이제 막 부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신입 선생님이 상대하기에는 벅찬 상대였다.
“아니요. 어머님 제가 누구 편을 드는 게 아니라요.”
“됐어요! 그리고 저 말 아직 안 끝났거든요? 선생님은 학교에서도 애들이 말할 때 이렇게 말을 끊나요?”
“네! 아, 아니요.”
“그러면 내 말 끝날 때까지 기다리세요. 그나저나 내가 아까도 말했다시피 나는 누나의 사과를 받고 싶은 게 아니라 아이가 직접 우리 애한테 사과했으면 좋겠는데…….”
“승우야, 만우가 손가락을 다쳤는데 사과해야지. 우리 승우 사과할까?”
“…….”
김선민은 승우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굽히고 눈높이를 맞춘 채 달래듯이 말했지만, 책을 보고 있는 승우는 반응이 없었다.
이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승우는 마치 보이지 않은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우리 착한 승우, 친구한테 사과하자.”
“…….”
아이의 시선은 여전히 책에 꽂혀 있었고 입술을 닫혀 있었다.
“야! 느림, 아니 고승우! 너 때문에 나 손가락 피나서 꿰맸는데 너 사과 안 하냐?”
“어머, 어머! 세상에 꼼짝도 안 하네.”
“야! 네가 나 아프게 했잖아?”
“저기, 만우야. 그렇게 소리 지르면 승우가 놀랄 수 있어. 미안하지만 소리 지르지 말고 말해 줘.”
“기막혀!”
별안간 덩치 큰 아이가 소리를 지르자 움찔한 승우를 보고 김선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중년 여자가 코웃음을 치며 황당해했다.
“아니, 그쪽 애 놀란 것만 보이고 우리 애 아파서 놀란 거 안 보여요? 그리고 입에 풀칠한 것도 아니고 애를 도대체 어떻게 가르쳤길래 사과 하나도 알 줄 몰라.”
“죄송합니다. 승우야, 우리 친구에게 사과하자. 응?”
“야, 너희 누나 말 들었지? 얼른 사과하면 내가 봐줄게.”
“친구 아니야. 넘어뜨렸어.”
덩치 큰 아이가 살살 약을 올리며 계속 사과를 재촉하자 책을 보고 있던 승우가 드디어 입을 떼며 작게 말했다.
“승우 넘어졌어? 왜 넘어졌는데?”
김선민이 물어보자 승우는 책을 보면서 손가락으로 덩친 큰아이를 정확히 가리켰다.
“만우야, 너 쟤 넘어지게 했어?”
“아니, 나한테서 책 뺏고 씩씩거리면서 자리에 앉다가 지 혼자 넘어졌어.”
“거짓말이야. 거짓말하면 나쁜 아이야.”
뻔뻔한 대답을 듣고 있던 승우가 조용히 속삭였지만,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없었다.
“세상에 지금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기껏 하는 말이 거짓말이야? 너 정말 안 되겠구나?”
“만우야? 그리고 만우 어머님. 승우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을 거예요.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다시 한번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 생기지 않도록 승우한테 주의 줄게요.”
“이래서 부모 없이 자란 애들은 티가 난다니까. 그리고 쟤 ……맞죠? 그러니까 저러지.”
“……!”
부모 없이 컸다는 말보다 중년 여자의 뒤이어 들려온 단어가 김선민의 가슴을 쿵 하고 내려치는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던 표정은 그 말을 들은 순간 어김없이 무너져 내렸다.
“만우 어머님. 말씀이 조금 지나치시네요.”
결국 보다 못한 담임 선생님이 한마디 했다.
중년 여자는 소위 잘사는 집의 잘난 사모님이었다.
이미 초등학교를 졸업한 두 딸은 학교 회장 출신이고, 여자 역시 학부모회 회장 출신으로 치맛바람이 대단했다.
게다가 학교에 가끔 발전 기부금도 내는 사람이라 일반 선생님들은 쉽게 뭐라고 할 수 있는 학부모가 아니었다.
올해 갓 부임한 담임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담임은 더 이상 양심을 속일 수 없었기에 할 말을 하고자 했다.
“담임 선생님. 설마 지금 저한테 하신 말씀인가요?”
“네, 그리고 사실 만우가 먼저 책을 보고 있는 승우를 괴롭혔어요.”
“뭐라고요? 담임이라는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뭐! 들으신 그대로……. 야! 너 내가 누구인지 몰라?”
“아니요. 알고 있습니다. 만우 학생 어머님이시잖아요.”
“너, 지금 저 바보 같은 남매 편드는 거야? 어!”
“말씀 삼가세요. 승우 똑똑한 아이예요.”
“이게 지금 누가 누굴 가르치고 있어? 너 당장 사과 안 해?!”
드르륵-
중년 여자가 얼굴을 붉히며 상담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를 지르던 그때, 교감이 안으로 들어왔다.
“만우 어머님.”
“하! 교감 선생님. 저 선생이 저한테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어머님 죄송합니다. 뭔가 작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오해는 무슨 얼어 죽을 오해예요? 나 저딴 선생한테 우리 만우 못 맡깁니다.”
“그럼요. 제가 그 마음 다 압니다. 일단 마음 푸시고 저랑 말씀 나누세요.”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은 교감은 중년 여자를 달래며 담임에게 김선민과 승우를 데리고 나가라는 손짓을 보냈다.
“야! 너희 다 거기 서지 못해? 어디 가?”
담임 선생님은 목소리를 높이는 중년 여자의 말을 무시한 채 두 사람을 데리고 상담실을 빠르게 나갔다.
“우리 승우 우유 좋아하지?”
담임 선생님은 잠시 교무실에 들어가더니 급하게 갖고 온 우유를 승우에게 건넸다.
“네. 우유 좋아해요. 200mL 우유에는 칼슘 200mg, 나트륨 100mg, 탄수화물 9g, 지방 8g, 포화지방 5g, 당류 9g, 트랜스지방 0.5g 미만, 콜레스테롤 25mg, 단백질 6g의 영양이 있으며 우유에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그 단백질에는 카세인이라는…….”
“승우야, 선생님이 우유 주셨는데 먼저 ‘감사합니다.’라고 해야지.”
묻지도 않은 우유의 정보를 줄줄 말하는 승우를 보며 김선민은 달래듯 말했다.
“감사합니다라고 해야지.”
“그래. 감사합니다. 해.”
“선생님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그보다 누님분 많이 놀라셨죠?”
“아니에요. 그보다 저희 때문에 선생님이 괜히 곤란해지신 것 같아서 어떡하죠?”
“전혀요.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제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해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사실 김선민은 덩치 큰 아이가 손가락을 다친 게 승우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자기의 세계를 무너뜨리지 않은 이상 적어도 승우가 먼저 반응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 부모에게 강하게 이야기하지 않은 건 말을 해도 믿어 주지 않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려 했던 것이다.
“오늘은 일단 승우 데리고 집에 가시는 게 어떠세요?”
“네, 저도 그게 좋을 거 같아요.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승우야, 선생님께 인사해야지.”
“안녕히 계세요.”
“그래, 우리 승우 내일 보자.”
김선민은 승우의 손을 잡고 학교를 나왔다.
“승우야, 배 안 고파?”
“안 고파.”
“그럼 간식 먹을래?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엄마는 외계인 아이스크림.”
“알았어. 아이스크……. 네, 여보세요.”
상담실 안에서 있었던 무거운 분위기를 잊은 채, 아이스크림 이야기를 하던 중 휴대폰이 진동하자 김선민이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민선 씨, 난데 지금 어디야? 문제 좀 생겼어. 그게…….
“네!? 실장님 지금 바로 갈게요.”
회사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은 김선민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빨리 전화를 끊었다.
“승우야, 미안한데 아이스크림 이따가 저녁에 먹으면 안 될까? 누나가 꼭 사 올게.”
“꼭 사 올게. 약속?”
“그래, 약속 고마워.”
김선민은 아이스크림 약속을 잠시 미루고 승우를 맡기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학교를 지나 큰 사거리가 있는 횡단보도에 초록 불이 켜져 있는 게 보였다.
정확히 횡단보도 표시판에 숫자 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승우야, 누나가 급하니까 오늘은 조금만 빨리 가자.”
평소 같으면 다음 신호를 기다렸다 갔을 테지만 워낙 급한 상황이 생겨서 8차선 사거리의 긴 신호 텀을 기다릴 새가 없었다.
“우리 조금만 뛰자.”
승우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마음이 급한 김선민의 마음과 달리 승우는 따라오질 않았다.
“흰색……. 흰색!”
“승우야, 나중에 하자.”
횡단보도 위 흰 선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승우는 오늘 그 패턴을 반복했다.
“아! 아! 싫어!”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은 김선민은 승우를 안고 몇 초 남지 않은 횡단보도를 힘들게 뛰었다.
“하아! 힘들다.”
두 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네자 기다렸다는 듯이 신호가 바뀌고 김선민은 숨을 내쉬며 승우를 내려놓았다.
“흰 선! 7개 못 밟았어.”
그런데 그 순간, 계속 혼잣말하던 승우가 말릴 틈도 없이 몸을 돌려 횡단보도로 뛰어들었다.
그것도 이미 수많은 차들이 달리는 8차선 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