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화. 귀 닫고 눈도 감고
“여보?”
“당신은 가만히 좀 있어. 이봐요. 아가씨?”
여자는 남편이 들고 있던 봉지에서 무언가를 급하게 꺼내 김선민 앞으로 내밀었다.
“이거 보이죠?”
여자가 조금은 격한 손짓으로 들이민 건 파스였다.
“이거 뭔 줄 알죠?”
“……네.”
김선민은 작은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거 그쪽 동생 돌보느라 팔다리 허리 아픈 우리 엄마 붙여 주려고 이 늦은 시간에 편의점 가서 사 온 거예요.”
“…….”
“그래. 나도 애 키우는 엄마고, 그쪽이 사정이 있으니까 딱 봐도 대학생 같은데 젊은 여자가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싶었어요. 동생까지 맡기면서 직장 다니면서 야간 알바까지 한다는 소리 듣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대단하네. 싶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동생 맡긴다고 했을 때는 너무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하면 되겠지 했어요. 그런데 이거 아니잖아.”
“…….”
김선민은 두 손을 꼭 잡고 고개를 숙이며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가끔가다 한 번은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내가 울 엄마 아빠 보러 올 때마다 그쪽 동생이 부모님 집에 있냐고.”
“여보!”
“당신, 가만히 좀 있어요. 나도 오늘은 한마디 하려고 작정했으니까 말리지 마.”
“거! 사람 참…….”
민망한 남편이 아내를 말리려 들었지만,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여자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공짜로 애 맡기지 않는다는 거 나도 알아요. 근데, 세상사는 게 돈이 다가 아니잖아. 나 우리 애들 키울 때도 부모님 늙을까 봐 애 함부로 맡기지도 않았어요. 그쪽도 동생이랑 둘이 사니까 알 거 알죠? 애 키우는 게 세상 힘들다는 거.”
“네, 알고 있어요.”
“그걸 아는 사람이 이래요? 어! 그것도 멀쩡한 애도 컨트롤하기 힘든데 말귀도 잘 못 알아듣는……. 밥도 주는 대로 안 먹고 이상한 고집에 갑자기 지 혼자 놀래서 난리 치지 않나. 우리 엄마가 그쪽 동생 밥도 차려 주고 아빠랑 둘이 싹 씻겨 주고 그러다가 아까 무슨 심사가 틀어졌는지 갑자기 난리를 치는데, 내가 얼마나 황당하던지. 하! 참 기가 막혀.”
“죄송합니다.”
김선민은 죄인 같은 표정으로 사과의 말을 반복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 엄마 아빠 골병들면 그쪽이 책임질 거야!”
“정말……. 죄송해요.”
솔직히 그 정도로 이웃집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승우를 힘들게 돌보고 계실 줄은 김선민도 정말 몰랐다.
사실 처음에는 승우를 돌봐줄 방과 후 선생님도 구해 봤고, 베이비시터도 구해 봤다. 다들 처음에는 의욕도 높고 적극적이었다.
‘제 일이 아이 돌보는 일인데 걱정하지 마세요.’
‘비슷한 아이 경험이 있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단 이틀을 넘기는 사람이 없었다.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힘들 거 같아요.’
‘내가 여러 아이를 다 겪어 봤지만, 감당하기 힘드네요.’
다들 승우를 버거워하며 감당하기 힘들어했다. 그러다 어느 날 급한 일 때문에 30분 정도 승우를 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평소 두 남매를 귀여워하는 윗집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봐주게 된 거다.
김선민은 혹여 할머니 할아버지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승우 때문에 힘들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에 급하게 일을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하아! 하! 할머니? 할아버지? 힘드셨죠? 죄송해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정류장에서부터 뛰어오며 윗집으로 향했지만, 두 분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우리 하나도 안 힘들었어.’
‘승우가 얼마나 잘 놀았는데.’
힘들지 않았다는 할머니의 말과 함께 눈앞의 예상 밖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 말 그대로 승우는 할아버지와 함께 조용히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두 분이 또래 아이들과는 다른 승우의 세계를 무너뜨리지 않고 잘 다가갔기에 별문제가 없었다.
그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가 승우를 종종 봐주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김선민은 두 분에게 힘들지 않으시냐고 여러 번 물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늘 웃는 얼굴로 힘든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힘든 일이 있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늘 승우가 얌전하다 착하다 똑똑하다는 말만 하셨기에 힘든 일이 없는 줄만 알았다.
“제가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할게요.”
“다 필요 없고요. 다시는 두 번 다시는 그쪽 동생 우리 부모님에게 맡기지 말아요. 알았죠?”
“……네. 그렇게 할게요. 폐를 끼쳐드려 다시 한번 죄송해요.”
김선민은 빈말이 아니라 정말 죄송한 마음이었다.
딸이 된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기에 서운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만약 한 번만 더 애 맡기면 그땐 이 정도로 안 끝나요?”
“이 정도로 안 끝나다니……. 수선이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어떻게 알았는지 여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윗집 할머니가 기막힌 표정으로 말을 하며 등장했다.
“엄마? 뭐 하러 나왔어.”
“뭐 하러 나오긴! 창문 밖에서 네 목소리가 자꾸 들리길래 혹시나 해서 나왔지. 너는 나랑 아빠가 괜찮다는데 왜 승우 누나한테 뭐라고 해.”
“아니에요. 할머니 따님분 말씀하시는 게 다 맞아요. 그동안 힘드셨을 너무 죄송하고 감사해요.”
“엄마, 들었지? 앞으로는 승우라는 애 봐주지 마.”
“됐어. 아빠랑 엄마가 좋아서 하는 건데 네가 왜 그래.”
“아까 못 봤어? 밥 먹으라고 밥 차려 줬더니 안 먹는다고 아주 난리를 쳤잖아.”
“난리는 무슨 난리야! 애가 늘 먹던 음식이 아니라서 낯설어서 그런 거야. 평소에는 안 그래.”
“이유가 뭐가 됐든, 난 엄마 아빠가 그 애 보는 거 싫다고. 그리고 그 보기 싫은 스티커도 좀 떼.”
“이 보기 좋은 걸 왜 떼.”
그렇게 두 모녀의 의견대립 속에서 김선민이 난감해하던 그때였다.
“누나!”
할아버지와 함께 내려온 승우가 김선민을 부르며 다가왔다.
“쟨 또 왜 내려온 거야?”
“시끄러워! 애 들어!”
할머니는 딸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이었다.
“김 서방. 수선이 데리고 먼저 집에 들어가. 어서.”
“네, 장모님. 여보? 얼른 들어가자.”
“알았어! 아가씨, 나랑 한 말 꼭 지켜요.”
한 번 더 강조하는 여자를 보며 김선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 승우랑 한 약속. 약속!”
“무슨 약속을 했는지 승우가 아까부터 계속 약속 이야기를 하더라고.”
할아버지는 누나의 손을 잡으려는 승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게 승우한테 아이스크림을 사 온다고 약속했거든요.”
“그랬구나. 아이스크림 녹겠다. 얼른 승우 데리고 들어가.”
“할머니, 할아버지. 정말 죄송해요. 그동안 제 생각만 한 거 같아요.”
빨리 들어가라고 손짓하는 할머니와 인자하게 웃고 있는 할아버지를 향해 김선민은 죄송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런 말 하지 마. 민선이 너 자꾸 왜 그래. 죄송한 게 있어야 죄송하지.”
“할아버지랑 나는 우리 자식들 셋 다 키우고 손주들도 이제 공부한다고 잘 보지도 못해. 그래서 달랑 둘이 남아서 외롭고 심심했어. 다 늙어서 딱히 재미있는 일도 없고. 그런데 승우랑 민선이 볼 때마다 애들 키울 때 생각도 나도 우리 손주들 생각도 나고 얼마나 좋은지 몰라. 그러니까 죄송하다는 말도 생각도 하지 마. 이 세상에 혼자 잘난 사람도 혼자 사는 사람도 없어.”
“그럼. 우리 딸이 가끔 욱해서 그렇지 속은 그리 모진 사람은 못 돼. 아무튼 너무 마음 쓰지 마. 괜히 싫은 소리 듣게 해서 우리가 미안해.”
“아니에요. 할아버지 할머니, 그런 말 마세요.”
“아이스크림 먹고 승우 얼른 재워야지. 빨리 들어가.”
김선민은 끝까지 괜찮다며 도리어 자기와 승우를 걱정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더 안 좋았다. 결국 근심만 늘어난 채 승우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털썩-
집에 들어온 김선민은 신발을 벗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올해 들어 힘들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사실 오늘처럼 이렇게 힘든 날은 또 처음이었다.
학교 상담실에서의 일과 횡단보도에서 아찔했던 순간, 그리고 회사에서 잘린 일과 조금 전 일까지. 정말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들었다.
아니, 단순하게 힘들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될 거 같았다. 김선민은 순간 이대로 증발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후!”
“약속한 아이스크림.”
깊은 한숨이 허공으로 흩뿌려진 그때, 승우의 목소리가 한숨을 위로 퍼졌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어?”
“승우는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맞다. 승우 아이스크림 줘야지. 아이스크림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흐르는 물에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어.”
“맞아. 그럼 일단 가서 손을 먼저 씻고 오면 누나가…….”
김선민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살짝 물기를 머금은 예쁜 두 손이 꼬물거리듯이 얼굴 쪽으로 올라왔다.
“씻었어.”
대답한 승우는 입술을 앙다물며 김선민 뒤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벌써? 저번처럼 그냥 물만 묻히고 온 거면 안 되는데. 정말 씻었어?”
김선민이 부드러운 말투로 주의를 주자 꼬물거리던 두 손으로 브이를 만든 두 손가락을 짧게 구부렸다 폈다 반복했다.
이 행동은 일종의 사인 같은 의미로, 승우가 기분이 좋을 때나 질문에 대답 대신 할 때나 나오는 행동 패턴이었다.
“정말?”
“정말.”
“그럼 누나가 좋은 향기 나는지 냄새 맡아 봐도 돼?”
승우는 대답 대신 고개와 브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럼 맡아 본다.”
허락을 구한 김선민이 승우의 손을 코에 가져대자 향긋한 라일락 냄새가 콧속에 퍼졌다.
“진짜 손 씻었네. 잘했어. 아이스크림 준비할 동안 잠깐 기다릴까?”
승우는 거실에 있는 작은 소파에 앉아 늘 메고 다니는 캥거루 가방에서 큐브를 꺼냈다.
“그래. 큐브 하고 있어.”
몸을 앞뒤로 살짝 흔들며 큐브를 하는 동생을 확인한 김선민은 아이스크림을 준비했다.
늘 사용하는 깨지지 않는 작은 유리그릇에 초콜릿 맛 아이스크림과 초콜릿이 코팅된 초코볼을 섞어 준비했다.
“그걸 벌써 다 맞췄어? 대단하다.”
김선민은 큐브를 다 맞춘 승우를 칭찬하며 준비한 아이스크림을 작은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승우는 큐브의 끝과 그릇 끝부분의 선을 맞춘 뒤 인사를 하며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잘 먹겠습니다.”
“그래, 맛있게 먹고 양치도 하자.”
식탁 의자에 앉은 김선민은 아이스크림을 먹는 승우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언제나처럼 초코볼의 개수가 여덟 개임을 확인한 승우는 그제야 아이스크림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김선민의 시선이 작은 거실에 놓여 있던, 승우를 꼭 껴안은 채 인자하게 웃고 있던 할머니 사진으로 옮겨졌다.
오늘처럼 힘든 날이면 유난히 할머니가 생각났다. 그러면서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했던 말이 떠올랐다.
‘승우랑 잘 살아. 힘들 거야. 힘든 거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고 갈수록 힘에 부치는 날도 많을 거야. 네가 살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산다고 생각해.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버텨. 버티고 버티다 그래도 힘들며 이를 악물어서라도 버텨. 귀 닫고 가끔 눈도 감고 그러고 살아. 승우만 보고 살아. 너 자신을 절대 놓지 마. 알았지?’
눈시울을 점점 붉어지더니 이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김선민은 승우가 볼 수 없도록 등을 돌려 방향을 바꿔 앉았다.
‘할머니 근데 있잖아.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