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화. 별사탕
눈시울을 점점 붉어지더니 이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김선민은 승우가 볼 수 없도록 등을 돌려 방향을 바꿔 앉았다.
‘할머니, 근데 있잖아. 나…….’
그러면서 속으로 혼잣말하기 시작했다.
‘나 더는……. 더는 못 버틸 거 같아. 너무 힘들어서…….’
승우를 등지고 돌아앉은 김선민의 여린 어깨가 점차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할머니, 나 전부 놓고 싶어. 이제 정말 못 하겠어. 너무 힘들어. 나는 할머니처럼 잘할 자신도 없고 잘하지도 못해.’
그녀는 하늘나라의 고인이 된 할머니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듯 지금까지 혼자 쌓아 두었던 속내를 계속 속삭였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사람들의 시선도 너무 힘들고 나 혼자 감당하기 너무 힘들어. 그냥……. 그냥 전부 놓고 싶어. 할머니……. 나 그만하고 싶어. 전부 다 끝내고 싶어.’
고개를 숙인 채 혼잣말하며 숨죽여 울던 김선민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떨리는 시선이 냉장고 위를 향했다.
그곳에는 하얀색 약통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졸피x이라고 쓰여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스틸x스라고 쓰여 있었다.
잠시 고개를 돌려 승우를 힐끗 쳐다본 김선민은 다시 약으로 시선을 옮기며 속으로 말했다.
‘저거면 다 편해질 수 있지 않을까?’
당장 다음 달 월세와 생활비, 승우에게 들어가는 비용과 또다시 갚아야 할 이자들과 짊어지고 가야 할 여러 가지 문제들까지.
정말이지 보이지 않는 올가미에 점점 더 숨이 턱 막히는 거 같았다.
그냥 모든 게 다 싫고 끝내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지쳐 버릴 대로 지쳐 버린 그녀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끊임없이 올라와 결국 최악의 생각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내가 없으면 승우를 돌봐줄 사람도 없잖아. 남들과 달라서 사람들이 외면할 텐데……. 그래. 차라리 나랑 같이 가는 게 승우도 편할 거야. 그럴 거야…….’
드르륵-
극단적인 생각을 정리한 김선민이 의자에서 일어나 냉장고 위에 있는 약통으로 손을 뻗던 그때였다.
“슬픔!”
별안간 들려온 목소리가 약통을 잡으려는 손을 멈칫하게 만들었다.
김선민이 그 상태 그대로 고개를 돌리자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승우가 거실 한쪽에 붙어 있는 감정 카드 앞에 서 있었다.
감정 카드는 감정 표현이 서툰 승우를 위해 타인과 잘 소통할 수 있도록 김선민이 직접 만든 카드였다.
카드 안에는 승우 얼굴을 한 캐릭터가 정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쁨, 두려움, 불쾌, 슬픔, 화남까지 총 다섯 가지 큰 틀 안에서 50개의 감정이 표정 밑에 한글과 영어로 적혀 있었다.
“슬픔이야.”
몸을 앞뒤로 살짝 흔들며 슬픔 쪽 카드를 유심히 보던 승우가 손을 뻗어 찍찍이로 붙어 있는 카드를 떼며 말하기 시작했다.
“슬프다.”
첫 번째 뽑은 카드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카드였고,
“괴롭다.”
두 번째는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카드였다.
“속상하다.”
그리고 마지막 카드를 뽑았다.
그렇게 세 장의 카드를 뽑아 손에 쥔 승우는 여전히 냉장고 위로 손을 뻗은 채 고개만 돌리고 있는 누나에게 향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꺼낸 손톱보다 작은 별사탕 한 개와 세 장 카드를 김선민에게 내밀었다.
“슬프고 괴롭고 속상해. 하지만 그래도 누나가 좋아. 힘내.”
“……!”
“할머니가 그랬어. 슬프고 눈물이 날 때는 별사탕을 한 개 먹으라고.”
승우의 모습이 남들이 타인을 위로할 때 짓는 그런 리얼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건네는 말은 위로의 말이었다.
“별사탕을 먹으면 달콤함이 괴로움을 이길 거야.”
“흑!”
동생이 하는 말을 듣고 있던 김선민은 약통을 집으려던 손을 내리며 얼른 동생을 끌어안았다.
“흐흑!”
“누나. 울지 마. 울면 안 돼.”
“그래. 안 울게. 승우야. 미안해. 누나가 못나서 정말 미안해.”
승우는 허공 위로 두 손을 번쩍 들며 어색한 듯 움직였지만, 예전처럼 누나의 품을 벗어나려 애쓰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래, 안 울게.”
그 뒤,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른 김선민은 다시 한번 냉장고 위로 시선을 옮긴 뒤 승우를 쳐다보며 뭔가 큰 결심을 한 듯 보였다.
“승우야. 누나가 미안해.”
“누나는 안 미안해. 승우한테 미안한 거 없어.”
“아니야, 미안한 일이 생길 거 같아서 누나가 미리 사과하는 거야.”
“미리 사과……?”
승우는 누나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고 김선민은 뭔가 결심한 듯 다부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승우야?”
“응.”
“우리 승우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뭐지?”
“외계인. 엄마는 외계인.”
“그렇지. 근데 앞으로 외계인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없대.”
“왜?”
“사람들이 많이 먹어서 아이스크림 만드는 곳에서 남아 있는 게 없대. 그래서 누나가 승우 주려고 저기 아이스크림 만드는 공장 가서 가져오려고 하는데 괜찮아?”
“응. 괜찮아.”
“누나가 아이스크림 가지러 가면 승우 혼자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괜찮아?”
“승우 씩씩해. 혼자서도 할 수 있어.”
“그래. 우리 승우 똑똑하지. 잘 할 수 있을 거야. 승우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 어디지?”
“제일 좋아하는 곳은……이야.”
“그래 맞아. 승우 내일 거기 갈 거야. 좋지?”
“좋아. 승우 좋아. ……좋아.”
“승우야 여기 한 번 볼까? 이 사람 누군지 알아? 이분은 멋지고 훌륭한 분이야.”
김선민은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찾아가며 동생한테 설명했다.
“멋지고 훌륭한 분.”
“그래 맞아.”
그 설명은 계속 반복적으로 이뤄졌고 한참 동안 이어진 설명이 끝난 뒤에야 승우는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직 승우가 잠들어 있는 이른 아침 김선민은 담임 선생님과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승우랑 현장 체험학습을 가기로 하셨다고요?
“갑자기 급하게 연락드려서 죄송해요. 제가 이직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사이에 승우랑 바람을 쐬고 오고 싶어서요.”
-그러세요. 승우한테도 누님한테도 좋은 거 같아요. 얼마나 가시는데요?
“기간은 일주일 정도면 될 거 같아요.”
-좋네요. 그런데 일단 관련 서류를 작성해서 보내 주셔야 하는데…….
“그러면 제가 이따 잠깐 들를게요.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김선민은 자는 승우의 볼을 쓸어내리며 이마에 살짝 뽀뽀한 뒤 알 수 없는 말을 속삭였다.
“승우야, 미안해. 지금 내 행동을 네가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누나 미워하지 마.”
* * *
우리병원-
“원장님!”
기분 좋게 중환자실을 나오는 태경을 누군가 다급한 목소리로 불렀다.
“우리 원장님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좋죠. 걱정했던 암 환자도 수술방 가서 열어 보니 전이가 없고, 위급했던 중환자실 환자도 고비를 잘 넘겼으니 의사로서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럼, 그럼. 당연하지. 그래서 말인데 저기 있잖아요. 원장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이…….”
“아니요. 말씀하지 마세요.”
태경이 말을 딱 끊어 버리자 잠시 당황하던 상대방은 다시 뒤를 쫓아가며 불렀다.
“워, 원장님?”
보통 병원에서 직원들이 부르면 응급상황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즉각 반응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원장님?”
바로 목청을 높이는 주인공이 이동훈이기 때문이다.
“아니, 원장아? 후배님? 태경아?”
늘 병원 내에서는 깍듯하게 태경을 대하던 그는 마음이 급한 나머지 사석에서 부르는 호칭이 단계별로 튀어나왔다.
“야! 김태경, 너 정말 이럴 거야? 나 정말 서운하다.”
“서운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결국 가던 길을 멈춘 태경이 쫓아온 이동훈에게 말했다.
“아니, 원장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나 정말 속상하다.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주라. 응?”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아니 그 이상 생각해도 제 결정은 똑같습니다.”
“너무한다.”
“너도하셔도 어쩔 수 없어요.”
이동훈이 마치 사탕을 사 달라는 아기처럼 떼를 쓰는 이유는 바로 수술 때문이었다.
“나도 제대로 된 수술 준비하고 싶다고.”
항암을 꾸준히 잘 받은 이동훈은 며칠 전부터 정식으로 우리병원에 출근하고 있었다.
아직은 치료 때문에 다른 의료진보다 일하는 시간이 적었지만, 의사로서 복귀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동훈은 감개무량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다.
태경이 정한 수술 스케줄이 너무했기 때문이다. 대다수가 치질 수술이었고 가끔 맹장 수술도 참여했다.
“내가, 이런 수술하려고 복직한 건 아니잖아.”
“이런 수술이요? 아니 선생님. 지금 전국의 치질 환자들과 충수염 환자들을 무시하시는 건가요?”
“무시라니 그런 뜻 아니야.”
“척추마취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시잖아요.”
“내가 더 잘 알지. 아는데…….”
물론 자신이 힘들까 봐 비교적 간단한 수술부터 시작하라는 태경의 따뜻한 그 마음을 알겠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나도 제대로 된 수술에 참여하고 싶다고.”
“압빼(Appendicitis, 충수염) 하셨잖아요.”
“40분짜리 간단한 거였잖아. 태경아. 나 항암 하면서 쉬는 동안 체력 보충도 하고 공부 많이 했다. 운동도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열심히 하고 있고.”
“잘하고 계시네요. 앞으로도 그렇게만 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좀 진짜 수술에 참여시켜 줘. 내가 마취 담당하고 정 선생 마음 편히 산부인과 진료 보면 얼마나 좋아. 응?”
“정 선생은 지금도 마음 편해요.”
“너 진짜 이럴 거야?”
“예, 이럴 겁니다.”
“야! 김태경!”
참다못한 이동훈은 태경의 귓가에 대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도 제대로 된 수술 들어가고 싶다고.”
“알았어요. 선생님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생각 좀 해 볼게요.”
“원장님, 약속한 거다. 그 생각을 말이야 긍정적으로 하라고.”
“그럼요. 어서 퇴근이나 하세요.”
“오케이. 그럼 나는 원장님이 일정 잘 조율해 주실 거라고 백 퍼센트 믿고 기분 좋게…….”
“선생님!”
이동훈이 다시 한번 확인하려던 그때 임정숙 간호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복도를 뛰어왔다.
“선생님, 일이 좀 생겼어요.”
“무슨 일이요?”
“병원에 환자가, 아니지. 환자들이 왔는데 그게 좀 문제가 될 거 같아요.”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어지간하면 당황하지 않는 베테랑 간호사인 임정숙이 당황한 듯 보였다.
“임 선생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환자가 많이 오면 좋은 거잖아요.”
같이 듣고 있던 이동훈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렇죠. 그런데요. 그 범주를 좀 벗어나 버려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시간 없어요. 빨리 저 따라오세요.”
임정숙은 급한 손짓을 보이며 두 사람과 함께 응급실로 향했다.
“…….”
급히 응급실로 들어온 태경은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선생님 저 좀 봐주세요.”
“여기요!”
“아오! 배 아파. 저 또 나올 거 같은데 수액 들고 가서 볼일 봐도 되죠?”
“전 언제 봐주실 거예요?”
“엄마! 빨리 나가자.”
“나 잡아 봐라.”
“아이들 뛰지 않게 주의 한 번씩만 부탁드려요.”
여기, 저기,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에는 성인들과 초등학생 또래 아이들이 가득했다.
최모나와 이찬희, 의진은 물론이고 오늘 출근했던 다른 과 의료진까지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지금 접수처 쪽 상황도 비슷해요.”
임정숙 간호사의 말을 들은 태경이 응급실 입구 쪽으로 걸어가 확인하니 그쪽도 상황은 비슷했다.
“김보륜 님?”
“네, 저요. 저예요.”
“접수 안 하신 분 여기 대기자 명단에 성함과 생년월일 적어 주셔야 접수됩니다.”
“이무훈 님?”
“네!”
“이쪽으로 오세요.”
대부분 성인 환자였고, 초등학생 아이들은 아픈 부모를 따라 병원에 온 상태로, 응급실과 접수처를 꽉 채우며 서로 먼저 봐 달라고 한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흡사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아까 선생님 수술실 들어가실 때부터 한두 분씩 오더니 금방 이렇게 됐어요. 그리고 같…….”
“환자들 증상이 같고요.”
임정숙 간호사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태경이 확신한 듯 말했다.
“네, 선생님. 맞아요.”
“다들 엔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