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화. 태경의 멘붕
접수처 직원은 대기실 의자에 혼자 남은 아이에게 다가갔다.
“안녕!”
“안녕…… 하세요.”
“우리 친구는 이름이 뭐야?”
“제 이름은 승우입니다.”
“승우구나.”
“승우야 안녕. 누나는…….”
“누나?”
책을 보고 있던 아이가 누나라는 말에 고개를 들고 갸웃하자 접수처 직원은 민망한 듯 웃으며 정정했다.
“하긴. 누나는 좀 아니다. 그렇지? 이모가 좋겠다. 이모는 여기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승우 지금 엄마 기다려?”
“아니요.”
“아빠 기다리니?”
“아니요.”
“그럼 지금 누구 기다리는 중이야? 할머니? 할아버지?”
“아니요. 아무도 안 기다려요.”
엄마도 아빠도 그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다는 아이의 답변에 접수처 직원은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도 안 기다린다고?”
“네, 안 기다려요.”
“…….”
순간 자기가 잘못 들었나 싶었던 직원은 너무나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책만 보며 답하는 아이를 보며 천천히 접수처로 돌아갔다.
“언니, 저 응급실 좀 다녀올게요.”
“응? 응급실은 갑자기 왜?”
“쟤요. 아무도 안 기다린대요.”
“그게 무슨 소리야? 보호자가 없다는 거야?”
“네…….”
“보호자가 없이 병원에 왔다고? 어디 아파서 혼자 온 건가?”
“좀 평범하진 않은데 또 아픈 애 같지는 않고……. 아무래도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응급실에 가서 확인해 보려고?”
“네.”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건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접 확인을 하는 게 마음이 편할 거 같았다.
“그래. 그게 좋겠다.”
“갔다 올게요.”
접수처 직원은 응급실로 들어가 베드에 있는 환자마다 돌아다니며 확인했다.
챠륵-
“환자분. 실례지만 혹시 혼자 오셨나요?”
“네, 저 혼자 왔는데요.”
“알겠습니다.”
챠륵-
“환자분. 실례지만 응급실에 혼자 오셨어요?”
“아니요. 신랑이랑 왔는데요? 왜요?”
“보호자분이랑 같이 오셨나 해서요. 감사합니다.”
챠륵-
“실례합니다. 환자분. 혹시 병원에 보호자분이랑 오셨을까요?”
“아니요. 보호자는 아니고 우리 애랑 같이 왔는데요.”
“아이랑 같이 오셨다고요?”
“네, 배는 아프지 신랑은 출장 중이라서 어디 맡길 때도 없고 아무리 요즘 초등학생들이 다 컸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 애들이잖아요. 이 늦은 시간에 혼자 두기도 뭐해서 데리고 왔죠.”
“그럼요. 이 시간에 혼자 두면 안 되죠. 혹시 초등학생 아이가 남자아이예요?”
“……네. 그런데 아까부터 왜 그러세요? 여기 직원이세요?”
“예. 접수처 직원이에요. 다름이 아니라 대기실에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혼자 책을 보고 있길래 보호자분이 계신가 확인하고 있었어요.”
“어머, 그래요? 우리 애인가 보다.”
“그래요?”
자기 아들인 거 같다는 환자의 말에 접수처 직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화장실 간다고 해서 얼른 갔다 오라고 했거든요. 우리 애가 원래 책을 좋아해서 한 번 책을 읽으며 다 볼 때까지 안 일어나거든요.”
“책 많이 읽으면 좋죠. 애가 계속 혼자 있어서 걱정했는데 그래도 보호자분이 있다고 하니까 다행…….”
“엄마!”
정말 다행이라는 표정과 함께 말을 하고 있던 그때 환자의 아들이 커튼 안으로 들어왔다.
“찬호야? 무슨 화장실을 그렇게 오래 있었어. 엄마가 걱정했잖아.”
“아니, 소변 보려고 갔는데 신호가 와서 좀 걸렸어.”
“큰 거 봤어? 변비라더니 다행이네. 너 혹시 엄마처럼 설사하는 건 아니지?”
“설사 아니야.”
“저, 환자분. 이 아이가 아들이에요?”
“네. 내 아들이에요.”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치료 잘 받고 조심히 들어가세요.”
챠륵-
“이상하네. 그러면 도대체 쟤는 어떻게 된 거야.”
“왜? 밖에 무슨 일 있어?”
접수처 직원이 아이러니한 표정으로 응급실 복도를 걸어가며 혼잣말하자 임정숙 간호사가 다가왔다.
“수 쌤!”
“아니, 무슨 일이길래 베드마다 다 확인하고 다니는 거야?”
“누가 아니래요. 그게 어느 애 때문에 그래요.”
“애?”
“네, 대기실에 초등학생 남자 아이가 있거든요. 근데 그 애가…….”
직원은 임정숙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래? 애가 혼자 있다고?”
“네. 그래서 확인하려고 들어왔는데 보호자가 없네요.”
“혹시 병동 쪽 애 아닐까?”
“병동이요?”
“응. 시간이 좀 늦긴 했지만, 병동에 입원한 환자 아이일 수도 있잖아.”
“그러네요. 그럴 수도 있겠어요.”
“그리고 일일이 돌아다니지 말고 팀장님께 말해서 방송해.”
“그거 좋은 방법이네요. 고마워요. 수 쌤.”
응급실에서 나온 직원은 곧장 최 팀장을 통해 병동에 안내 방송을 내보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와 관련 있는 사람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쯤 되니 뭔가 좀 이상했다.
“팀장님 어떡하죠?”
“아니, 보호자도 없이 애가 어떻게 온 거지?”
“제 말이요.”
“혹시 가출한 거 아닐까?”
“가출이요? 초등학생이 무슨 가출이에요?”
“모르는 소리 마. 뉴스 못 봤어? 초등학생 중에 가출하는 애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고 하잖아.”
“아! 그게 아니라 이제 알았다.”
최 팀장의 말은 듣지도 않고 곰곰이 생각하던 직원은 뭔가 떠오른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팀장님. 아무래도 쟤 길 잃어버린 거 같아요. 애가 뭔가 좀 평범하지도 않았거든요.”
“평범하지 않다고?”
“어떻게 됐어요?”
최 팀장과 접수처 직원들이 아이를 보며 대화를 이어 가던 그때, 진료실에서 나온 태경이 물었다.
조금 전, 직원이 방송한다고 최 팀장에게 말할 때 태경도 옆에 있었기에 이 상황을 알고 있었다.
“원장님, 그게 아무도 저 아이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이가 가출했거나 길을 잃고 병원에 들어온 게 아닐까요?”
“방송했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다면 일단 우리끼리 생각하지 말고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죠.”
“저기……. 원장님. 그게 대화가 좀 쉽지 않을 거 같은데요?”
“왜요? 아이가 말하는 게 좀 힘든가요?”
“아니요. 그건 아닌데 뭐랄까 좀 독특? 특이? 아무튼 뭔가 좀…….”
“내가 한 번 대화해 볼게요. 아이 이름이 뭐라고 했죠?”
“승우요.”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접수처 직원을 보며 태경은 아이에게 곧장 다가갔다.
조금 전까지 대기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아이는 한쪽에 있는 인체 해부 모형 앞에 있었다.
해부 모형은 상당히 적나라한 것으로 몸속 장기와 뼈까지 전부 볼 수 있는 형태였다.
태경은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옆자리에 자리했다. 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저도 모르게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다섯 번째 바이탈을 확인하며 안심했다.
“승우 안녕!”
“안녕하세요.”
“승우, 인체 모형 보고 있었구나?”
“네, 인체 모형 보고 있어요. 멋있어요.”
“다른 친구들은 무서워하던데 승우가 뭘 좀 아네. 인체가 원래 신비롭고 멋지거든.”
지금까지 누가 말을 걸어도 시선을 주지 않던 승우가 고개를 돌려 태경의 대답을 듣고 그를 쳐다봤다.
“……네, 멋있어요. 인간의 내면은 우주와도 같이 신기하고 놀라워요.”
한결같이 덤덤한 표정에 작은 등불이 켜진 듯 승우는 평소와 달리 조금 신나 보였다.
“우주와도 같다고?”
“네.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 몸속에는 뼈도 있고 수많은 장기가 우리를 숨 쉬게 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사람의 뼈는 태어날 때는 305개지만, 자라면서 206개가 돼요.”
“세상에! 승우 진짜 멋있다. 혹시 여기는 뭐라고 하는지 알아?”
태경이 머리 안쪽 장기를 하나 가리키며 묻자 그 이상의 대답이 줄줄이 사탕처럼 따라왔다.
“이건 대뇌라고 해요. 그리고 여긴 간뇌라고 하며 시상과 시상하부로 나뉘고 간뇌는 뇌간으로 나뉘어서 중뇌, 뇌교, 연수가 있고 여기는 소뇌예요.”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태경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몸속을 볼 수 있는 상체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승우가 눈을 반짝이며 묻지도 않은 장기 이름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어 가며 전부 말했다.
“와! 안이 다 보인다. 여긴 간이고 여긴 문맥, 여긴 담낭 여긴 십이지장이에요. 그리고 이쪽은 췌장이고 안쪽에 주름진 이곳은 위라고 하며 사람이 먹은 음식물을 소화해요. 그리고 밑에는 대장과 소장 결장 직장 항문이 있어요. 그리고 옆에는…….”
놀랍게도 승우는 그 뒤로 사람의 모든 장기와 뼈의 이름까지 전부 말했다.
태경은 단 한 번도 아이의 말을 끊지 않은 채 그걸 전부 집중해서 들어 줬다.
짝- 짝- 짝-
“기특해라. 선생님이 승우한테 배워야겠는데?”
“아니, 어떻게 초등학생 애가 저런 걸 알죠?”
“그러니까요. 외우라고 해도 못 외울 단어를 전부 다 말하네요. 신기해라.”
승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태경이 손뼉을 치자 뒤쪽에서 지켜보던 직원들도 놀라 감탄하며 함께 손뼉을 쳤다.
“그러고 보니까 자기소개를 안 했네. 나는 우리 병원 의사 김태경이라고 해.”
“김. 태. 경. 의사 선생님.”
“맞아. 내 이름이 김태경이야. 승우야. 선생님 한번 쳐다볼래?”
잠시 태경과 눈을 마주치던 승우는 가운에 쓰여 있는 태경의 이름을 확인하더니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이름 김태경 나이 xx 출생학교 xx 초등학교 xx 중학교 xx 고등학교 xx 대학교 의대를 졸업했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외과와 뼈에 관한 치료를 하는 정형외과 그리고 위급한 사람들을 진료하는 응급의학과까지. 이렇게 자격증을 세 개나 딴 트리플 보드의 소유자이며 머리가 상당히 좋아 주변에서 천재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거의 좋아하는 연예인에 관한 정보를 말하는 것처럼 승우는 태경의 정보를 줄줄이 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직원들은 아까보다 더 놀라며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팀장님, 방금 들으셨죠?”
“들었어.”
“전, 방금 소름까지 돋았다니까요.”
“쟤 진짜 뭐지? 원장님에 대해서 어떻게 저렇게 잘 알죠?”
“그러게. 원장님과 무슨 관계라도 있나?”
“어머! 웬일이야? 팀장님? 나 진짜 생각났어요. 혹시 쟤 원장님의 숨…….”
“뭐! 숨겨진 아들 이딴 말 하려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접수처 직원이 기가 찬 표정으로 동료 직원의 말허리를 자르며 대신 말했다.
“선영 씨, 내가 막장 드라마 좀 그만 보라고 했지? 맨날 점심시간마다 막장 드라마만 보더니 기껏 한다는 말이 원장님 아들이야?”
“그렇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원장님이 그럴 사람은 아니지. 좀 심했어.”
귀담아듣고 있던 최 팀장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맞장구쳤다.
“하긴 그렇긴 해요. 언니 말대로 막장 드라마 좀 그만 봐야겠어요. 계속 봤더니 꿈에도 나오더라고요.”
“그래 끊어. 그런 것도 가끔 봐야 재미있지. 계속 보면 정신 건강에 해롭다.”
“맞아요.”
직원들이 아이에 대한 이런저런 추측을 멈추고 아이와 대화하고 있는 태경에게 집중했다.
“와! 승우 선생님에 대해 잘 안다. 그런데 승우는 선생님을 어떻게 잘 알아?”
“핸드폰으로 퀴즈 프로에 나온 거 봤어요. 선생님 멋있어요.”
“아, 방송을 봤구나. 고마워라. 선생님이 보기에는 승우가 훨씬 멋있는데?”
“감사합니다.”
승우는 기분이 좋은지 특유의 제스처인 손가락 브이를 까딱하며 인사했다.
“그런데 승우야?”
“네, 선생님.”
“승우는 여기 병원에 어떻게 왔어? 혼자 왔어?”
“데려다줬어요.”
“승우를 데려다줬다고?”
“네.”
“누가 데려다줬는지 선생님한테 말해 줄 수 있어?”
“아주머니.”
“어떤 아주머니?”
“아이를 데리고 있던 검은색 치마에 흰색 운동화를 신고 빨간 가방을 들고 있던 단발머리 아주머니가 데려다줬어요.”
“그랬구나. 그럼 그 아주머니는 어디 계셔?”
“아까 아이와 함께 병원 밖으로 갔어요.”
“승우는 누구랑 같이 살아?”
“누나랑 같이 살고 있어요.”
“누나는 어디 있어? 같이 안 왔어?”
“누나는 아까 엄마는 외계인 구하러 갔어요.”
“……!”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태경은 잠시 멘붕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