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고구마 줄기
“누나는 아까 엄마는 외계인을 구하러 갔어요.”
“……!”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태경은 잠시 멘붕에 빠졌다.
“어, 엄마는 외계인?”
“네. 맞아요.”
잘못 들었나 싶은 마음에 다시 한번 되물었지만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는 외계인? 장난감인가? 아니면 먹는 거? 그게 뭐지?’
엄마면 엄마고 외계인이면 외계인이지 엄마는 외계인이란 말이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원장님? 원장님?”
뒤쪽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최 팀장이 슬며시 부르며 손짓하자 태경이 다가갔다.
접수처 직원뿐만 아니라 소식을 듣고 온 임정숙 간호사와 의진, 그리고 최모나와 이찬희까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뭐야? 왜 다들 모여 있어?”
“선생님, 쟤 보통 애가 아니라면서요?”
이찬희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조금 전에도 잠깐 화장실 가다가 봤는데 인체 모형 보고 의학용어 죄다 말하던데 저 깜짝 놀랐잖아요.”
“정말? 저 아이가 의학용어를 다 말했습니까?”
“네, 최 쌤 제가 여기서 똑똑히 봤는데 아주 그냥 무슨 망설임 없이 쭉쭉 이야기하고 애가 말할 때 단어 선택도 남다른 게 보통이 아니에요.”
“오! 역시. 선생님 쟤 정체가 뭐예요?”
이찬희가 여전히 인체모형 앞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보며 말했다.
“정체는 무슨 정체야. 그냥 아이잖아. 그나저나 이 선생, 최 선생. 너희 응급실 이렇게 비워도 돼?”
“아!”
“아니요. 안 됩니다. 안 그래도 방금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태경의 표정을 살피던 최모나가 이찬희의 가운을 잡고 응급실로 들어갔다.
“저기, 선생님. 일반적인 또래 아이들이랑 좀 다른 거 같던데…….”
“ASD(Autism Spectrum Disorder, 자폐 스펙트럼 장애)같은데 맞아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임정숙 간호사와 의진이 조심스러운 말투로 연이어 말했다.
“어. 자폐 스펙트럼 맞는 거 같아.”
태경은 처음 승우와 인사를 나누고 몇 마디 대화할 때부터 승우가 보통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보통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적인 것들이 승우에게도 고스란히 보였기 때문이다.
쉽게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과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상동증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 표현이 일반 사람과 다르다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승우는 일반 자폐 아이들과 한 가지 더 다른 점이 있어. 눈치챘겠지만,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이야.”
자폐나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 중 특정 분야에서 상당히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뜻한다.
“서번트라면 그 왜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천재적인 사람들 그거 말씀하시는 거죠?”
최 팀장이 신기한 듯 물었다.
“맞아요.”
“어쩐지 아까 인체 모형 보면서 말하는 게 범상치 않더라고요.”
“내가 그쪽 전문가가 아니라 백 퍼센트 장담할 수는 없지만, 승우는 순간적인 기억력이 놀라울 정도로 좋고 머릿속에 저장하는 능력도 탁월한 거 같아.”
“저도 그런 거 같아요. ASD를 가진 아이들이 특정 분야에 꽂혀서 그쪽에 대한 지식이 뛰어난 경향이 있는데, 승우는 아마 사람 몸인 거 같아요.”
“내 생각도 그래.”
“아니, 근데 어떻게 우리 병원까지 오게 된 거래요?”
“살기는 누나랑 같이 살고, 데려다준 건 어느 아주머니가 데려다줬다고 하는데……. 맞다!”
태경은 말하다 말고 뭔가 생각난 듯싶었다.
“혹시, 엄마는 외계인이란 말이 뭔지 알아요?”
조금 전, 승우가 답했던 이상한 말이 떠오른 태경은 직원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승우가 말한 건데 난 무슨 소리지 모르겠네. 신조어인가?”
“혹시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만화 영화 그런 거 아닐까요?”
옆에서 심각하게 고민하던 최 팀장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팀장님도 참. 무슨 만화 영화예요. 그런 게 아니라 아이스크림 이름이에요.”
“아이스크림 이름!”
“네. 그 왜 저희 가끔 간식으로 먹는 32가지 아이스크림 브랜드 있죠? 거기서 나오는 초콜릿 아이스크림 이름이에요.”
“아이스크림 이름을 참 요상하게도 짓네. 근데 갑자기 아이스크림은 왜 꺼낸 거래요?”
“그게 누나가 엄마는 외계인을 구하러 갔다고 하네요.”
“네?!”
“누나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는 건가? 그게 무슨 소리예요?”
“글쎄요. 지금으로서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니, 근데 이제 시간도 늦었는데 원장님, 저 애를 어쩌죠?”
최 팀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아이를 쳐다보자 직원들의 시선이 도미노처럼 승우에게 향했다.
“일단은 잠깐! 지금 몇 시죠?”
태경은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더니 인체 모형 앞에 있는 승우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승우에게 뭔가를 말한 뒤 아이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장님, 어디 가세요?”
“식당 갑니다.”
“갑자기 식당은 왜 가시는 거지?”
“승우 저녁 먹이러 가는 거 같아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의진이 말했다.
“우리가 아이를 어떻게 할지만 생각했지 저녁을 먹었는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네요.”
“그러네. 아직 저녁도 못 먹었겠다.”
“누가 아니래요. 병원에 있었으면 당연히 저녁 못 먹었을 텐데……. 이럴 때 보면 우리 원장님이 참 섬세한 분이세요.”
“맞아요.”
직원들이 괜히 승우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 사이 태경은 식당으로 들어왔다.
드르륵-
“승우야. 여기 의자에 잠깐만 앉아있어. 선생님 금방 올게.”
“네. 금방 오세요.”
태경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두 명의 주방 직원이 채소를 다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네, 원장님 안녕하세요.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혹시 여사님 어디 가셨나요?”
“화장실 갔는데 곧 올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와? 원장님 뭐 필요한 거라도 있는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방장 오계순이 등장했다.
“여사님, 바쁘시죠?”
“저녁 뒷정리 다 끝나고 내일 거 간단히 준비하는 거라 지금은 괘안아요. 근데 밖에 아가 혼자 앉아 있던데…….”
“밖에 있는 아이는 승우라는 아이인데요. 여사님 일 끝나고 힘드실 텐데 죄송하지만 제가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우리 원장님 부탁이라면 내가 뭐든 들어 들어야지.”
어지간하면 부탁하지 않는 태경의 성격을 알고 있는 오계순은 무슨 부탁인지 듣기도 전에 바로 수락했다.
“아이가 아직 저녁을 못 먹어서 그런데, 밥 좀 주실 수 있으세요?”
“아 밥 차려주는 게 무슨 부탁이라고 어렵게 말을 하십니꼬. 괘안아예. 근데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아가 밥을 못 먹다니. 그게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립니까?”
“저도 지금 그 이유를 찾는 중이에요. 그리고 여사님, 승우가 사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좀 특별한 면이 있어요.”
“특별한 면이요?”
“네.”
태경은 승우의 자폐 스펙트럼에 대해 알고 있는 부분을 자세히 설명했다.
“아! 내가 가방끈이 짧아 깊게는 모르지만 쉽게 말해 자기 세계가 있는 아이들 그런 거 아닙니까?”
“예, 여사님 맞습니다.”
“혹시 내가 주의해야 할 사항이나 알아 두어야 할 거라도 있습니꼬?”
태경은 오계순에게 몇 가지를 알려 준 뒤 밥을 먹을 때까지 잠시 승우를 부탁했다.
“승우야. 선생님 일 좀 보고 와야 할 거 같은데 여기 할머니랑 밥 먹고 있을 수 있어?”
“네, 있어요. 승우 씩씩해요.”
“그래. 선생님이 보기에도 승우는 씩씩한 거 같아. 그럼 밥 맛있게 먹고 있어.”
“네. 밥 맛있게 먹고 있을게요.”
“이름이 승우가?”
“네. 승우예요.”
“강새이 인물도 좋고 잘 생겼데이. 그래 우리 승우 뭐 좋아하나? 할미가 먹고 싶은 거 맹글어 줄게. 다 말해 봐라. 뭐, 돈까스라도 해 줄까? 아니면 고기 구워 줄까?”
“아니요.”
“별로가? 가만있자. 그럼 뭐가 좋을꼬?”
오계순이 어떤 맛있는 반찬을 해 줄까 고민하던 그때 승우의 입에서 예상외의 대답이 나왔다.
“고구마 줄기”
“뭐라꼬?”
“고구마 줄기 볶음이요.”
“엄마야. 그 먹을 줄 아나?”
고개를 끄덕이는 승우를 보며 오계순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구마 줄기 볶음이 몸에도 좋고 좋은 음식이었지만, 초등학생 아이들 입에서 선뜻 나올만한 반찬은 아니었기에 놀랄 것이다.
“신기하데이. 또? 또 뭐, 묵고 싶은 거 있나?”
“소고기뭇국이요.”
“소고기뭇국? 또 말해 봐라.”
“계란말이랑 분홍색 소시지.”
“그래, 그래. 이 할미가 요리는 좀 하거든? 맛나게 해 줄게.”
“어머, 형님? 웬 애가 있어요?”
“어느 선생님 아들이에요?”
주방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아이 목소리에 밖으로 나왔다.
“아이다.”
“그럼 입원한 분 아들인가?”
“그러겠지.”
“그것도 아이다. 그게 뭐 중요하긋나. 그보다 아가 지금까지 밥을 안 묵었단다.”
“이 시간까지?”
“애들은 밥때 조금만 지나도 배고파서 안 되는데……. 배 엄청 고프겠다.”
“내 말이 그 말이다. 얼른 아 밥 차려줘야긋다.”
“나도 같이 해요.”
“됐다. 내 혼자 해도 된다. 퇴근 시간 다 됐는데 어여 드가라.”
“형님도 참, 애 밥 차리는 게 뭐 힘들다고 혼자 하려고 해요. 우리랑 같이 해요.”
“그래요. 각자 찬 하나씩만 하면 금방 뚝딱 만들겠네.”
“하긴 그 말도 맞다. 참. 우리 고구마 줄기 좀 남았나?”
“채소 칸에 좀 있어요.”
“잘됐다. 아가 그게 먹고 싶다 안 카나.”
“그래요? 입맛이 어른이네.”
“승우야, 여기 할미들이 얼른 만들어 줄게. 조금만 기다려.”
“네. 맛있게 만들어 주세요.”
“대답도 예쁘게 잘하네.”
“근데 형님? 이 시간에 왜 애가 혼자 병원에서 있는 거예요?”
“실은 내도 잘 모른다. 좀 아까 원장님이 아 밥을 좀…….”
오계순과 직원들이 주방으로 걸어가며 대화하던 그때였다.
“……해요.”
갑자기 승우가 한 말에 세 사람이 놀라며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 * *
“아! 그러세요? 알겠습니다. 늦은 시간에 실례 많았습니다. 들어가세요.”
“뭐라고 하세요?”
태경은 전화를 끊은 최 팀장을 향해 물었다.
“그게 아무 상관도 없는 아이라고 하네요.”
태경은 승우에 대해 생각하던 중 아까 대기실에서 소란을 피울 때 아이를 챙기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래서 보안 사무실에 있는 CCTV를 확인하여 할머니의 연락처를 알아낸 뒤 연락을 취했다.
“오늘 병원에서 처음 본 아이랍니다. 아들이 장염 때문에 병원에 왔다는 소식 듣고 손주 봐주려고 급하게 병원에 오신 거래요.”
그 할머니는 손주 옆에 앉아 있던 승우가 목소리 높이는 남자에게 한마디 하다 괜히 싫은 소리를 들을까 싶어 얼른 아이를 보호한 거뿐이라고 전했다.
“아까 화면 좀 돌려봐 주시겠어요?”
“네, 원장님.”
“그러네요. 할머니 말씀이 맞네요.”
화면에는 할머니가 치료받은 아들과 손주와 함께 병원을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팀장님, 승우가 병원 들어올 때 단발머리 아주머니가 데려다줬다고 했거든요. 그리고 아이도 있다고 했고요. 확인해서 우리병원 환자면 연락처 좀 확인해서 연락 한 번 해 주세요.”
“네, 원장님 알겠습니다.”
철컥-
“뭐, 좀 알아냈어요?”
밖으로 나가자 복도에 있던 의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별 소득이 없네. 그 할머니는 모르는 사이래.”
“하긴, 소란 피우는 남자 한마디에 아이를 보호할 정도의 할머니라면 자기 손주를 병원에 두고 가진 않았겠죠.”
“그러니까. 일단 승우를 병원에 데려다줬다는 그 사람과 연락을 한 번 해 보려고.”
“그래요. 그게 좋겠네요. 선배?”
“어. 왜?”
“저기요? 여사님이 부르는 거 같은데요?”
의진이 대화를 하다말고 맞은편을 가리키자 오계순이 다급한 표정으로 손짓하며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