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화. 책임지겠습니다
“혹시 202호에 살고 있는 승우라는 아이 아십니까?”
“당연하죠.”
“물론입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동시에 대답하며 김 경사를 쳐다봤다.
“형사님이 승우를 왜 찾는 건데요?”
“승우 보호자인 누나를 찾고 있습니다.”
“누나라면 선민인데…….”
“선민이는 왜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른 아침부터 형사가 남매를 찾아온 이유가 궁금했다.
“형사님, 무슨 일이길래 그러세요?”
“혹시 애들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그래요?”
“실례지만 두 분은 남매와 어떤 사이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가족이세요?”
“아닙니다.”
“가족은 아니지만, 남편이랑 제가 애정하는 아이들이에요.”
“아내와 저는 우리는 윗집 사는 이웃입니다. 가끔 승우를 봐줘서 남매랑은 친하게 지내는 사이고요.”
“승우가 보통 아이들과 좀 다른 거 알고 계시나요?”
김 경사는 남매를 잘 안다는 노부부의 말을 듣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확인 차원에서 저 질문을 던졌다.
현재 승우 누나의 행방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친한 노부부라도 덥석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알다마다요. 승우는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아이잖아요.”
“우리 승우가 자폐는 있지만 얼마나 총명하고 머리가 좋은지 모릅니다. 참 사랑스러운 아이예요.”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 아무리 형사님이라도 설명을 해 줘야 우리도 도움을 드리죠.”
“아내 말이 맞습니다. 계속 질문만 하시면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현재 승우 누나의 행방을 찾고 있습니다.”
“선민이의 행방이요?”
“지금 그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반응했다.
“어제 승우 군이 여울동 우리병원에 혼자 남은 걸 병원 의료진이 발견했습니다.”
“……!”
“아니, 이게 다 무슨 소리예요. 승우가 왜 병원에 혼자 있어요.”
“형사님, 승우한테 별일은 없는 거죠?”
노부부는 마치 진짜 손주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걱정스러운 표정과 함께 어이없어했다.
“네, 아이한테는 별일 없습니다.”
김 경사는 승우가 괜찮다는 말과 함께 두 사람에게 자초지종을 알리며 누나에 관해 물었다.
“그래서 승우의 그 말을 듣고 병원 원장님이 도움을 청해서 제가 직접 찾아오게 된 겁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솔직히 아이들 상황이 아니지. 선민이 상황이 어렵긴 했어요. 그동안 월세도 밀려 있었고 회사 끝나면 야간 알바도 다니고 그러다가 갑자기 회사에서 잘리기까지 했으니, 겉으로 크게 티는 안 냈지만, 속으로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선민이가 워낙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 애라 더 그랬을 겁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김선민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며 대변했다.
“그런데 형사님? 선민이 절대 그럴 애가 아니에요. 그건 제가 장담해요. 내가 이만큼 나이 먹고 사람을 잘 알아서 드리는 말이 아니라 지금까지 옆에서 쭉 지켜보고 겪어 봤기 때문에 하는 말이에요.”
“이 사람 말이 맞습니다. 친구도 안 만나고,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아끼면서 오롯이 동생만 보고 산 아이예요. 마치 자식을 키우는 엄마처럼 동생을 대한다니까요. 얼마나 대견한데요. 우리가 선민이를 오래 본 건 아니지만, 극단적인 마음을 먹을 만한 아이는 절대 아닙니다.”
“두 분 말씀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김 경사는 뭔가 아이러니했다.
승우가 했던 그 말 자체만 두고 생각해 보면 김선민이 극단적인 선택이나 동생을 버렸다고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봤다는 노부부의 말을 들으면 또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까 김선민 씨가 승우랑 함께 체험학습을 간다고 하셨죠?”
“맞아요. 어제 일찍 마주쳤는데 새 직장으로 가기 전에 승우랑 여행을 갔다 온다고 해서 잘 갔다 오라고 했어요.”
“지금 집에는 없을 겁니다.”
노부부의 말대로 현재 김선민이 집에 없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확인이 필요했다.
“혹시 집주인이 여기 살고 있습니까?”
“네, 맨 위층이 집주인 집이에요.”
김 경사는 바로 집주인에 집을 찾아 상황을 설명하며 협조를 부탁했다.
“어머! 세상! 아침 댓바람부터 이게 무슨 일이야. 자다 깨서 내가 별소리를 다 듣네. 할머니, 여기 형사님이 하는 말이 진짜예요?”
“진짜지. 안 그러면 바쁜 형사님이 뭐 하러 이 시간에 왔겠어? 그러니까 자네가 협조 좀 해 드려.”
“그래요. 제가 뭘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지금 김선민 씨의 행방 확인이 우선이라서 그런데 집을 좀 확인해 볼 수 있을까요?”
“혹시 전화는 해 보셨어요?”
“네, 해 봤습니다.”
김 경사는 조금 전, 노부부가 알려 준 김선민의 핸드폰 번호로 전화했지만 뜻밖에 소리만 들려왔다.
-고객의 사정으로 당분간 착신이 정지되었습니다.
바로 핸드폰이 정지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 있는지 반드시 확인이 필요한 상태였다.
“저기 그런데 아무리 내가 집주인이라도 그렇지 이건 좀 그러네. 그리고 내가 드라마에서 보니까 요즘에는 경찰도 남의 집에 함부로 막 들어가고 그러면 안 된다고 하던데…….”
“그에 따른 책임이 제가 다 지겠습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혹시라도 모를 일에 대해 이거저거 따질 시간이 없었다.
“형사님 말씀 못 들었어? 책임진다고 하시잖아. 그리고 지금 절차니 뭐니 그딴 게 중요해? 선민이가 연락이 안 된다고 하잖아?”
집주인이 뜸을 들이며 망설이자 할머니가 호통을 치며 닦달했다.
“철현 엄마! 좀 도와드려.”
“어휴! 그래 나도 모르겠다. 사람이 더 중요하지. 따라오세요.”
결국 집주인은 비상 열쇠를 챙겨 김 경사와 함께 202호로 내려갔다.
철컥-
“자요! 근데 정말 문제 생기면 형사님이 책임지시는 거 맞죠?”
“예,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김 경사는 다시 한번 확실하게 말하고 집주인이 열어 준 남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집은 몇 발짝에 확인이 다 될 정도였고 모두의 걱정과 달리 김선민은 집 안 어디에도 없었다.
“협조 감사합니다.”
김 경사는 아쉬움 마음과 함께 정리정돈이 잘된 깨끗한 집을 나왔다.
“두 분 혹시 김선민 씨가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 기억하세요?”
“그럼요. 기억하죠.”
그 뒤, 노부부와 집주인에게 김선민이 마지막으로 입고 있던 옷차림과 정보를 수집한 뒤 그녀가 일했다는 물류센터로 향했다.
“김선민 씨, 도대체 어디에 가 있는 겁니까? 하!”
* * *
우리병원에는 전날, 연락이 닿지 않았던 승우를 병원까지 데려다줬던 여자가 연락받고 병원에 직접 찾아왔다.
“저 아이가 맞나요?”
태경은 아직 자고 승우를 가리키며 여자에게 물었다.
“네, 맞아요.”
“혹시 아이를 데려다주셨을 때 상황을 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아들이랑 병원으로 오는데 병원 정문 밑에 벤치 있죠?”
“도롯가에 있는 벤치요?”
“네, 맞아요. 거기 젊은 여자랑 아이가 앉아 있었어요. 그 여자분이 병원 가는 길이면 동생 좀 데려다주실 수 있느냐고 하더라고요.”
여자는 최대한 기억을 끄집어내며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기도 곧 병원 갈 건데 오다가 지갑을 떨어뜨려서 빨리 찾으러 가야 한다면서 부탁하더라고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사람이 다급해 보이더라고요. 어차피 나도 병원에 가는 길이라서 그래서 아이를 데려다줬어요.”
“뭔가 다른 말을 하거나 특별히 이상하다고 생각한 점은 없었나요?”
“다른 말이나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 하나 있네요.”
말을 하던 도중 여자는 뭔가 생각난 듯싶었다.
“울었던 거 같아요.”
“울었다고요? 아이가요?”
“아니요, 여자분이요. 모자를 쓰고 있어서 자세히는 못 봤지만, 표정이 좀 힘들어 보이기도 하고 살짝 본 얼굴이랑 목소리가 한 참 운 거 같았어요. 그리고 분명 급하다고 했는데 제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 쪽으로 가다 뒤를 돌아보니까 동생을 계속 보다가 반대로 뛰어가더라고요. 그 뒤에는 저 아이 대기실에 앉혀 놓고 저도 아들이랑 기다리다 환자가 너무 많아서 접수 취소하고 다른 병원으로 가려고 그냥 나왔어요.”
“그렇군요. 병원까지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애 키우는 엄마라 소식 듣고 걱정돼서 출근 전에 왔어요. 큰 도움 못 드려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아이가 얼른 누나를 찾았으면 좋겠네요. 수고하세요.”
결국 승우를 데려다줬다는 여자까지 만나 봤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그래도 조금 전 김 경사로부터 집에 누나가 없다는 소식을 들은 태경은 어제보다 마음이 한결 놓였다.
물론 연락이 닿기 전까지 아직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지만, 모두가 걱정했던 대로 승우 누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 시간 지난 뒤 김 경사가 병원을 찾았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원장님, 어디 계세요? 응급실에 계시나요?”
“아니요. 김 경사님?”
급하게 응급실 쪽으로 향하는 김 경사를 임정숙 간호사가 불러 세웠다.
“네.”
“원장님, 진료실에 계세요?”
“진료실이라면 환자 보고 계시나요?”
“네. 다음 외래 환자가 없어서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오래 걸려도 괜찮습니다. 저보다 환자가 우선이잖아요. 참! 아이는 좀 어때요?”
“승우요?”
“네.”
“아침밥 잘 먹고 원장님이 선물해 준 책 좀 보다가 지금은 의국실에서 친구랑 놀고 있어요.”
“친구요? 우리병원에 또래 친구가 있나요?”
“네, 친구가 생겼어요. 케빈이라고 승우가 이름도 지어 줬어요.”
“케빈! 외국 친구인가?”
한껏 엄마 미소를 보이며 접수처로 향하는 임정숙을 보며 김 경사는 의국실 앞으로 다가갔다.
“천재라고 하더니 외국어도 잘하나 보네.”
혼잣말하며 유리문 너머로 안쪽을 보던 김 경사는 케빈의 정체를 알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헛웃음을 보였다.
“아니, 수 간호사님? 지금 저걸 케빈이라고 하신 거예요?”
“그럼요. 승우가 이름까지 붙여 준 친구라니까요.”
“아니, 저건 그냥 모형이잖아요.”
“누가 봐도 케빈 맞잖아요.”
김 경사가 황당함을 금치 못했던 케빈의 정체는 바로 대기실에 있던 인체 모형이었다.
승우가 워낙 모형을 좋아해서 태경이 마음껏 갖고 놀라고 아예 의국실로 자리를 옮겨 준 것이다.
안 그래도 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 뒤쪽으로 뇌가 훤히 보이는 적나라함 때문에 아이들이 가끔 울음을 터트려 어떡하나 싶던 차에 잘됐다고 생각했다.
“쟤는 저거 안 무섭나? 난 볼 때마다 소름 돋던데…….”
“무섭긴요. 귀엽지 않아요?”
그사이 진료를 마친 태경이 아직도 황당해하고 있는 김 경사에게 다가와 말했다.
“저게 귀엽다니 원장님도 역시 천생 의사시네요.”
“모형 말고 승우요. 저 모형에다가 이름을 붙여 줬다는 게 귀엽잖아요.”
“승우는 귀엽죠.”
김 경사는 태경을 따라 진료실로 들어가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제가 누나에 대해 이것저것 좀 알아봤는데요.”
“아침부터 고생하셨는데 좋은 소식이었으면 좋겠네요.”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이 있는데 어떤 거부터 들으시겠어요?”
“안 좋은 소식부터 듣죠. 그게 나을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