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31화 (330/472)

331화. 한 길 사람 속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이 있는데 어떤 거부터 들으시겠어요?”

“안 좋은 소식부터 듣죠. 그게 나을 거 같네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실종신고는 힘들 거 같습니다.”

“아……. 그래요.”

태경은 어느 정도 예상했었지만, 막상 직접 들으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원장님.”

“그게 왜 김 경사님이 죄송할 일인가요. 개의치 마세요.”

아까 김 경사에게 집에 승우 누나가 없다는 연락을 받은 태경은 혹시 실종신고를 할 수 있는지를 물었었다.

하지만 미성년자 실종신고와 달리 성인 실종신고는 간단하지 않았다.

성인 실종은 아동 실종 신고와 다른 부분들이 있었다. 게다가 가족이나 함께 사는 사람이 아닌 이상 사실상 신고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 상대로 문자 알림이라도 보내려고 했는데 그놈의 절차가 뭔지 이럴 때 발목을 잡네요. 사실 승우가 누나에 대해 실종 신고를 해 주면 좋은데 그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서 힘들 거 같습니다.”

“그렇죠. 누나가 사라졌다는 말을 들으면 승우가 충격을 받을 테니까요. 좋은 소식은 뭔가요?”

“승우 누나, 그러니까 김선민 씨에 대해 꽤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어요. 윗집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두 분 도움이 컸습니다. 다니던 회사에도 갔었고 승우 학교에 가서 담임 선생님도 만나봤는데, 선생님 말로는 누나가 갑자기 연락해 와서 일주일 정도 체험학습을 간다고 했답니다.”

“그럼 체험학습을 신청해 놓고 승우를 병원에 둔 거네요.”

“예. 그런 거 같습니다. 아! 내 정신 좀 봐. 가장 중요한 걸 이제 말하네요.”

“……?”

“김선민 씨가 야간에 알바했다는 물류센터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친한 동료와 연락이 됐는데 김선민 씨가 이틀 전에 쓰러져 병원 응급실에 왔었다고 하더군요.”

“응급실이라며 설마…….”

“원장님이 생각하시는 그 설마가 맞습니다.”

“우리병원 응급실이요?”

“예. 그 동료 말로는 본인이 직접 데려다줘서 정확히 기억한다고 했어요. 그때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는 거 보니 확실한 거 같았습니다.”

“그게 언제죠? 아까 이름이 김선민이라고 했나요?”

“예. 김선민이요.”

승우 누나가 병원에서 진료를 봤다는 말을 들은 태경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실을 나갔다.

CCTV를 확인하기 위해 먼저 김선민이 진료비를 몇 시쯤 계산했는지 접수처로 향했다. 그 시간에 맞춰 CCTV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김선민 씨. 김선민……. 찾았다.”

그런데 접수처 직원의 다음 말을 듣는 순간 태경은 CCTV를 볼 필요가 없게 됐다.

“찾았어요?”

“네, 원장님. 어! 그런데 김선민 씨 이분 그 사람이네요. 원장님 혹시 기억하세요? 젊은 여자 환자였는데 진료비 뽑으러 갔다가 바쁘다고 원장님께 진료비 줬던 환자요.”

“왜 기다리다 우리가 찾으러 가려다가 원장님이 좀 기다려 보라고 했던 환자 있잖아요. 그 사람이에요.”

“아! 그 환자?”

옆에 있던 다른 접수처 직원도 기억난 듯 한마디 거들었다.

“진료비 거스름돈 이천 원인가 삼천 원 남았다는 그 젊은 여자 말하는 거지?”

“네, 언니 맞아요.”

“원장님 기억 안 나세요?”

“아니요. 기억났어요.”

기억이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을 만큼 그것도 정확히 기억났다.

실신해서 병원에 왔던 상당히 젊은 여자로, 가벼운 영양실조도 있던 환자였다.

그 때문에 수액을 끝까지 맞고 가길 권했지만, 급한 일이 있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다 현금인출기 앞에서 병원비가 없어 울고 있던 김선민을 발견하고 태경이 몰래 병원비를 내주었다.

무엇보다 온몸으로 죄송해하며 축 처진 채 돌아서던 힘없는 뒷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할 정도였다.

‘그 여자가 승우의 누나였다니…….’

“원장님? CCTV 확인 안 해 보십니까?”

“네, 확인 안 해도 될 것 같네요.”

“……?”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김 경사에게 태경은 병원비를 내준 사실을 빼고 설명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사실 김선민 씨, 주변 사람들 말을 들어 보니까 다들 극단적인 마음을 먹을 사람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집을 봐도 그럴 사람은 아닌 거 같았습니다.”

“김선민 씨 집이요?”

“네. 진짜 끝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집이 그렇게 깨끗하고 정돈이 잘되어 있기는 힘들거든요.”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김 경사도 경찰로서 지금까지 여러 사건을 맡으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었고 그중에는 자살 사건도 꽤 있었다.

우발적인 선택을 한 사람도 있었고 계획적인 선택을 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들의 공통점은 집 또는 방이 깨끗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마음에 병이 들어 삶이 지쳐 집과 방을 치울 여력도 그들에게는 없던 것이다.

“그래서 집을 둘러보면서 내심 속으로 안도했어요. 그리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수면제나 항우울증약도 발견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선민 집 냉장고 위에는 수면제가 있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 자리에 약이 없었기에 김 경사는 약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하필 우리병원에 동생을 맡긴 걸까요?”

옆에 있던 최 팀장이 물었다.

“제 생각에는 우발적인 거 같습니다. 윗집 어른들 말씀으로는 자기 부부 말고는 따로 동생을 맡길 곳이 없다고 했거든요. 직전에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으니까 생각나는 게 병원뿐이었을 수도 있고요.”

“듣고 보니 김 경사님 말이 맞는 거 같네요.”

“그런데요. 경사님 말씀대로 누나가 극단적인 생각을 한 게 아니라면 그렇게 아끼는 동생만 병원에 맡겨 놓고 본인은 어디를 간 걸까요?”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접수처 직원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돈 때문일 거예요.”

“결국 돈이죠.”

그러자, 태경과 김 경사 두 사람이 동시에 답했다.

“제가 장담하는 데 돈 때문이 맞을 거예요.”

한쪽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임정숙 간호사가 업무용 태블릿 PC를 충전하며 말을 이었다.

“아이 하나 키우는 것도 생각보다 돈이 정말 많이 들어요. 게다가 승우의 경우라면 그보다 더 돈이 필요했을 거예요. 저도 김선민 환자 기억하는데 그 젊은 사람이 혼자 동생을 키우는 게 막막했을 거예요.”

“어휴! 돈에 울고 돈에 웃고 정말 돈이 뭔지.”

“가끔 이런 사람들 보면 로또 1등에 당첨돼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선영 씨 로또 1등 당첨되기가 벼락 맞기보다 어렵다고 하잖아. 그거 보통 어려운 일 아니야. 팀장님 봐. 3년 동안 계속 샀는데 만 원을 넘겨 본 적이 없으시잖아.”

“그것도 그래요. 결국 누나만 기다리고 있는 아이만 딱하네요.”

“저기 원장님…….”

한쪽에서 계속 심각한 표정으로 의국실을 쳐다보던 최 팀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아무래도 그 누나라는 사람 말입니다. 동생을, 그러니까 승우 군을 버린 게 아닐까요?”

“……!”

최 팀장 말 한마디에 태경을 포함한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팀장님도 참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러게요. 아까 김 경사님 말씀 못 들으셨어요? 누나가 동생을 끔찍이 아낀다잖아요!”

“원장님도 그렇고 안 그래도 다들 승우 문제 때문에 심란하고 걱정하고 있는데 애를 버렸다니……. 무슨 그런 말을 하세요. 얼른 취소하세요.”

“맞아요. 팀장님. 말이 씨가 된다고요. 수 쌤 말대로 취소하세요. 빨리 퉤퉤퉤 세 번 하고 취소하시라고요.”

접수처 직원들과 임정숙 간호사는 최 팀장을 향해 볼멘소리를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도 당연히 안 그러길 바라지만, 사실 상황들이 그렇게 돌아가는 거 같으니까 안타까워서 그러지.”

“됐고, 빨리 취소나 하세요. 빨리요!”

“취소.”

“퉤퉤퉤도 하시고요.”

“퉤. 퉤. 퉤.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그런데 팀장님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눈치 보며 말하는 최 팀장을 보던 김 경사가 담담하게 거들었다.

“김선민 씨가 승우를 진심으로 아낀다는 거 알고 있지만, 그와 별개로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까 수 간호사님 말대로 가족도 없이 젊은 여자가 홀로 동생을 키우기에는 현실이 그만큼 녹록지 않으니까요.”

-다음 소식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 또 발생했습니다.

때마침 대기실에 틀어놓은 TV 속 뉴스에서는 흘러나오는 앵커의 말이 모든 이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얼마 전, 아이를 지하철역에 버렸던 사건 기억하십니까? 그 일이 일어난 지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비슷한 사건이 또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친부모가 아이를 대형 쇼핑몰에 버렸는데 부모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아이를 버렸다고 진술했습니다. 자세한 내용 고경민 기자가 전해드리겠습니다.

“아니, 하필 뉴스에는 왜 또 저런 소식이 나오는 거야.”

임정숙 간호사는 얼른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돌렸다.

“제가 일하고 있는 여성청소년과에도 저런 사건이 한 달에 몇 건씩 접수되고 있어요.”

“거봐요. 내가 아주 틀린 말을 한 건 아니라니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잖아요. 만약 그 누나가 진짜 승우를 버린 거면 우리도 뭔가 대책을 간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최 팀장이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이던 그때였다.

“아니에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의국실에서 나온 승우가 우연히 어른들의 말을 들은 것이다.

“승우야?”

“어머! 어떡해? 승우가 다 들었나 봐.”

“우리 누나는 승우를 버리지 않았어요.”

“승우야, 승우 말이 맞아. 그게 아니라…….”

태경이 얼른 승우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달래보려 했지만, 놀란 아이의 마음은 쉽게 진정될 거 같지 않았다.

“누나는 좋은 사람이에요. 누나는 날 사랑해요. 흐흑!”

캥거루 가방을 어깨에 메고 손에 케빈의 심장 모형을 들고 있는 승우는 급기야 울먹이며 말을 잇기 시작했다.

“승우는 이 세상에서 누나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고 누나의 심장 같은 사람이야. 누나는 승우를 보면 하루의 피로가……. 흐윽! 하루의 피로가 사라져. 승우는 친구들과 다른 사람이 아니라 조금 더 특별한 사람이라는 거 잊지 마. 누나가 우리 승우의 친구도 되어 주고 선생님도 되어 주고 하늘에 해처럼 늘 따뜻하게 승우를 안아 줄게. 누나는……. 흐흑! 누나는 승우를 아주 많이 사랑해.”

순수한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흐윽……. 누나가 우리 누나가 밤마다 꼭 안고 해 준 말이에요. 누나는 엄마는 외계인을 구하고 다시 온다고 했어요. 누나는 날 버리지 않았어요. 누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흐윽!”

매일 밤 자장가처럼 승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김선민이 해 준 말이었다. 승우는 그 말을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외우고 있던 것이다.

“그래, 승우야. 승우 말이 맞아. 어른들이 말실수했어. 선생님이 사과할게. 미안해.”

“흐아앙!”

태경은 어느새 눈물이 터져버린 승우를 꼭 안아 주었다.

“마, 말은……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 흉기와도 같다고 했어요. 배려 없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남겨서 아파요. 흐흑! 말은 신중하게 해야 해요. 나는 상처받기 싫어요. 선생님 여기…….”

승우는 오른손으로 가슴을 만지며 말했다.

“여기가 마음이 아파요. 나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요. 흐흑!”

“미안하다. 승우야. 마음 아프게 해서 정말 미안해.”

“선생님 누나, 보고 싶어요. 누나아! 언제 와. 흐앙!”

태경은 승우의 가슴을 천천히 쓸어내린 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이를 품에 꼭 안아 주었다.

그 모습을 본 직원들은 울컥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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