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32화 (331/472)

332화. 너! 김선민 맞지?

한차례 소동이 지나가고 진정된 승우는 평소의 모습을 찾았다.

“승우야. 여긴 뭐야?”

출근한 최모나는 인체 모형과 놀고 있는 승우의 곁으로 다가갔다.

“여긴 판크리아스(pancreas)라고 하고 우리나라 말로는 췌장이라고 해요.”

“세상에. 승우 진짜 똑똑하다.”

“감사합니다.”

“인사도 씩씩하게 잘하네.”

철컥-

“개모나 하이! 승우도 하이!”

힘찬 목소리와 함께 이찬희가 의국실로 들어와 인사하며 승우의 시그니처 행동인 브이를 보이자 승우가 살짝 미소를 보였다.

“안녕하세요.”

“승우 진짜 대단한 거 같아. 여기 장기 물어보면 영어 발음까지 완벽하게 말한다.”

“이야! 승우가 나보다 낫다.”

“진짜. 그거 완전 인정.”

“승우야, 이거 머리가 막 분리되고 그런데 안 무서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짝-

가운을 입고 온 이찬희가 승우한테 장난을 걸자 최모나가 등짝 스매싱을 날렸다.

“아오! 아파.”

“예쁜 말 쓰세요. 이 쌤.”

“승우야, 얘가 그렇게 좋아?”

“얘 아닌데요?”

“응?”

“얘가 아니라 케빈이에요.”

“그래. 맞아. 승우가 이름 지어 줬어. 케~빈이라고. 어때, 이 쌤? 이름이 글로벌하고 멋있지?”

“인체모형에 케빈이라고?”

최모나가 무서운 눈빛으로 쳐다보자 이찬희가 바로 분위기 파악을 하며 말을 바꿨다.

“오! 케빈, 이름이 진짜 멋지다. 우리 케빈 굿보이. 승우야 선생님도 케빈이랑 친구 할까?”

“아니요.”

“승우야, 그럼 선생님은 우리 케빈이랑 친구 할 수 있을까?”

이찬희에게 단호했던 승우는 최모나를 슬쩍 한 번 쳐다보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야? 나는 안 되고 개모나는 된다고? 승우야, 너 서운하다.”

“서운해도 할 수 없어. 승우야, 이것 봐라! 선생님이 승우 주려고 어제 집에서 선물 가져왔다. 짜잔!”

시무룩한 이찬희를 뒤로하고 최모나는 가운에서 꺼낸 눈알 모양의 젤리를 자신 있게 내밀었다.

“야! 개모나? 너는 애한테 그런 젤리를 주면 어떡해? 놀라…….”

“우와!”

행여 승우가 놀라면 어떡할까 싶던 이찬희의 생각과 달리 승우는 진심으로 좋아했다.

“눈이다! 눈! 멋지다.”

“어라! 좋아하네.”

“당연하지. 승우가 인체에 관심이 많잖아.”

“신기하네. 개모나 혹시 하나 더 있어?”

“왜?”

“나도 눈알 젤리 주고 승우한테 점수 따서 케빈이랑 친구 하려고. 하나 더 있으면 줘 봐.”

“하나밖에 없어. 저거 은근히 구하기 힘들다.”

이찬희가 아쉬운 표정으로 승우를 쳐다보며 핸드폰으로 젤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 시각, 태경은 병원 정문 쪽에서 승우의 담임을 배웅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조금 전, 김 경사에게 승우의 소식을 들은 담임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곧장 병원으로 왔다.

혼자 병원에 남은 아이가 걱정됐던 담임은 승우에게 함께 집으로 가자고 말했다.

‘안 갈래요. 저 병원에 있어야 해요.’

하지만 누나랑 약속했다며 승우는 완강히 거부했다.

‘승우야? 그러지 말고 선생님이랑 같이 가자. 선생님 집에서 누나 기다리면 돼.’

‘싫어요. 누나가 여기서 있으라고 했어요. 여기 있어야 누나 만날 수 있어요. 선생님, 승우 여기 있고 싶어요.’

한 번 아니면 끝까지 아닌 승우의 고집을 알고 있는 선생님도 더 이상 설득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승우가 병원에 있는 게 더 편안한가 봐요.”

“그런 것보다 병원에 있어야 누나를 만난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 같아요.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평소 친한 이웃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데려가려고 했을 때도 똑같이 말했거든요.”

태경의 말대로 윗집 노부부 역시 승우가 걱정돼 한걸음에 달려왔지만,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데려가지는 않았다.

“원장님 바쁘시겠지만, 승우 잘 좀 부탁드릴게요.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아까 드렸던 제 번호로 언제든지 연락하시면 제가 바로 달려올게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저, 그리고 혹시 만약에……. 만약에 말이에요. 누님이 승우를 데리러 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보육시설로 가게 되나요?”

“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보육시설에 맡겨진다고 하네요.”

태경은 이 부분이 염려되어 김 경사에게 미리 물어봤었기에 알고 있었다.

“……그렇군요.”

“선생님, 승우한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니까 미리 걱정하지 마세요.”

“맞아요. 승우 누나는 그런 사람이 절대 아니에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반드시 승우 데리러 올 거예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 이만 가 볼게요.”

“살펴 가세요.”

담임과 인사를 나눈 태경은 병원으로 들어가며 승우를 도울 방법이 있는지 계속 생각했다.

* * *

지방의 어느 공원-

“또 막혔네. 또 막혔어.”

공원 화장실을 청소하는 청소부가 꽉 막힌 변기를 뚫으며 툴툴거렸다.

“아니, 변기 앞에 여성용품 버리지 마세요. 라고 써 붙었으면 좀 버리지 말지. 왜 이렇게 자꾸 변기 안에 버리는 건지. 원……. 이제야 뚫렸네.”

시원하게 변기를 뚫은 청소부가 다음 칸으로 이동해 문을 열려 했지만 잠겨 있었다.

똑똑- 똑똑-

철컥-

안에 사람이 있나 확인하기 위해 노크를 몇 번 하자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안에 사람이 있었구나. 미안해요. 난 또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아니요. 괜찮아요.”

“저기! 저기요?”

여자가 나가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 청소부가 다시 나와 방금 나온 여자를 급히 불렀다.

“아가씨?”

“네?”

청소부의 부름에 손에 묻은 물기를 털고 나가려던 김선민이 뒤를 돌아봤다.

“여기, 모자 아가씨 거 아니에요?”

청소부가 화장실 위쪽 고리에 걸려 있는 검은색 야구 모자를 꺼내 흔들었다.

“아!”

그제야 김선민은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며 머리에 모자가 없음을 인지했다.

“네. 제 거 맞아요. 감사합니다.”

“그렇죠? 자요!”

김선민에게 모자를 건네던 청소부는 그녀의 얼굴을 잠시 빤히 쳐다보더니 뒷말을 이었다.

“저기 아가씨 혹시 여기서 잤어요?”

“네!? 아니요. 아닌데요. 모자 감사합니다.”

“이상하다. 분명 어제도 본 거 같은데…….”

급하게 모자를 챙긴 김선민은 청소부의 혼잣말을 뒤로한 채 빠르게 화장실을 나왔다.

방금 전, 청소부 했던 말대로 그녀는 사실 숙박비가 없어 공원 화장실에서 잠을 청했다.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잘렸기 때문에 퇴직금을 받을 수도 없었다.

지금 수중에 있는 돈이라고는 서울로 올라갈 때 사용할 차비가 전부였다.

이것도 며칠 전, 집에 있던 중고 물건을 거래해서 급하게 마련한 돈이었다.

꼬르륵-

공원을 나가려는데 눈치 없이 뱃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서울에 있을 때는 입맛이 없어 밥을 앞에 두고도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돈이 없어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배가 고팠다.

‘물이라도 먹자.’

편의점을 쳐다보다 지갑에 있는 차비를 꺼내던 김선민은 결국 공원에 있는 식수대에서 물로 배를 채웠다. 그리고 공원 옆에 있는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그녀가 생전 처음 보는 동네에서 노숙하는 이유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정말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만나야 할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한 호수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계속 아파트 단지를 돌고 정문과 후문을 수시로 오가며 그 사람이 지나가지는 않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어제는 그 사람을 보지 못했기에 오늘은 마음이 더 급했다.

정문에 있던 김선민은 다시 단지를 돌며 후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딱 승우 나이 또래 아이들이 앞을 지나가자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야! 우리 집에 가서 게임 할래?”

“무슨 게임?”

“축구 게임.”

아이들의 대화를 듣던 김선민은 안 그래도 보고 싶던 승우가 더 보고 싶어 미칠 것만 같았다.

“보고 싶다. 우리 승우. 승우야, 누나가 미안해…….”

“실례합니다.”

그렇게 승우를 떠올리다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데 누군가 등 뒤에서 김선민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전, 여기 경비원인데요.”

설명을 듣지 않아도 경비원 복장을 한 모습이 누가 봐도 아파트 경비원이었다.

“아, 네…….”

“제가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순찰하다 봐서 그런데 여기 사시는 분 아니시죠?”

“네, 여기 안 살아요.”

“그러면 왜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까 경비실로 연락이 와서 그래요.”

어제오늘 똑같은 옷을 입고 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는 김선민을 보고 단지 주민이 경비실에 민원을 넣었다.

여기 사는 사람도 아니고 민원이 들어온 이상 경비원은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저씨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그런 뜻으로 물어본 거 아닙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아파트가 생긴 지도 얼마 안 됐고 여기는 가족 단위에 아이들이 많이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부모님들이 보안에 엄청 신경을 써요. 그리고 요즘 세상에 겉으로 봐서 멀쩡한 사람이라고 해서 속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똑같은 옷을 입고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이틀 동안 단지를 돌아다녔으니 주민들 입장에서는 이상할 법도 했을 것이다.

“실은 제가 사람을 찾고 있어요.”

“사람이요?”

“네, 이 아파트에 산다고 들어서 만나려고 왔거든요. 저기 혹시…….”

김선민은 잠시 주저하더니 핸드폰에서 얼굴이 자세히 나온 남자 사진을 하나 보여 줬다.

“이렇게 생긴 사람인데요.”

마음이 절박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경비원에게 물었다.

“이 사람 본 적 있으세요?”

“가만 보자.”

경비원은 목에 걸어 놓은 돋보기안경을 쓰며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하! 이게 본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여기 워낙 많은 사람이 살아서요.”

표정과 말투가 어쩐지 거짓말을 하는 거 같지는 않았다.

계속 사진을 들여다보던 경비원을 보고 있던 김선민은 뭔가 결심한 듯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건넸다.

그러면서 무언가 한참 동안 설명했고 그 말을 들은 경비원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더니 손사래를 치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 정말 죄송한데 사람 하나 살린다고 생각하시고 좀 도와주세요.”

거절하는 경비원을 향해 김선민은 머리가 땅에 닿을 듯이 고개를 숙이며 간절하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하! 이거 참…….”

그러자 난감한 표정을 짓던 경비원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녀의 부탁을 수락했다.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나한테 부탁한다고 되는 것도 아닐 텐데. 그리고 아가씨는 날 뭘 믿고 이런 부탁을 해요?”

“여기서 근무하시니까 사람들도 많이 볼 거 같고 제가 그만큼 절박해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에헤이 참나. 자꾸 뭐가 죄송하대. 저기 내가 그쪽 부탁 들어줄 테니까 대신 여기 꼼짝 말고 잠깐만 있어 봐요.”

“……?”

“이상한 거 아니에요. 5분? 딱 5분이면 되니까 어디 가지 말고 있어요.”

그 자리에 반드시 있으라고 신신당부한 경비원은 빠르게 뛰어가더니 정말 5분 안에 돌아왔다.

“휴! 나이 드니까 뜀박질도 힘드네. 자요!”

숨을 몰아쉰 그는 검은색 작은 봉지를 김선민에게 건넸다.

“이게 뭐예요?”

질문을 하며 봉지를 열어 보던 김선민은 순간 멈칫하며 손끝이 떨렸다.

“……!”

“아까 처음에 이야기하는데 배가 고픈지 아가씨 배꼽시계가 울리더라고. 우리 아내가 아침마다 싸 주는 건데 양이 많아서 다 못 먹어요.”

경비원이 준 봉지 안에는 투명한 랩에 싸인 주먹밥 두 개가 들어있었다.

꼬르륵-

민망하고 죄송한 마음에 경비원의 호의를 거절하려 했지만, 계속해서 울리는 배꼽시계 때문에 거절할 수 없었다.

“보니까 우리 첫째랑 나이도 비슷한 거 같고 그래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

“기분 상했다면 미안해요.”

“아니, 아니에요. 감사해서 너무 감사해서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몰라서 그랬어요.”

주먹밥을 보자마자 마음이 울컥한 김선민은 터질 것만 같은 눈물을 간신히 붙잡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주먹밥 나눠준 게 뭐 그리 감사할 일이라고. 지금이야 세상이 팍팍해졌지만, 나 어릴 때만 해도 어려운 일 있으면 서로 돕고 사는 게 당연했어요. 저기 왼쪽으로 돌아가면 그늘이 잘 진 큰 나무가 있거든요. 그 밑에 벤치에서 편하게 먹어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라서 민원도 안 들어올 거예요.”

“잘 먹을게요.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다시 한번 꾸벅 인사를 한 김선민은 경비원이 알려 준 곳으로 가서 벤치에 앉았다.

주먹밥을 보자 저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맛있겠다.’

답답한 모자를 벗고 주먹밥 한 개를 움켜쥔 그녀는 주먹밥을 한 입 크게 베어 먹었다.

특별할 것 없이 단순히 멸치볶음과 견과류가 조금 들어 있는 주먹밥이 그 어떤 비싼 음식보다 맛있었다.

‘맛있다.’

입에 있는 걸 모두 삼키고 다시 한번 주먹밥을 삼키려 하던 그때였다.

“이봐요? 저기…….”

방금 전, 벤치에 앉은 김선민 근처를 지나가던 여자아이와 중년 여자가 가까이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어머! 맞네! 맞아.”

김선민의 얼굴을 빤히 보며 다가오던 여자가 거리를 좁히더니 확신의 찬 목소리로 덧붙였다.

“너! 김선민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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