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34화 (333/472)

334화. 테스트

“내 살다 살다 의국실을 다 들어오는 날이 있네.”

의국실로 막 들어온 김건형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회장님이 병원 이사장이신데 지금까지 의국실을 못 가 보셨어요?”

“내가 아무리 병원 이사장이라고 해도 아무 곳이나 함부로 들어가면 되나? 안 되지. 그럼 뭐, 수술실도 막 들락날락하게? 높은 사람이라도 지킬 건 지켜야지.”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런데 병원 의국실이 이렇게 생겼……!”

“아이쿠!”

앞서 걸어가던 고 팀장이 별안간 말을 끊고 걸음을 멈추자 뒤따라오던 김건형이 넓은 그의 등에 이마를 부딪쳤다.

“왜, 갑자기 걸음은 멈추고 난리야?”

“회장님 ……가 있는데요?”

“뭐라고?”

“애요. 애가 있어요.”

“애가가 뭔데 말까지 더듬고 그래?”

“아니, 그러니까 애가가 아니라…….”

김건형이 잘 못 알아듣고 헛소리하자 고 팀장이 옆으로 자리를 옮기며 정확하게 다시 말했다.

“애요. 애! 아이가 있다고요. 아이! 여기, 보이시죠?”

“……!”

진짜였다.

들어올 때는 책상 때문에 보이지 않았는데 고 팀장의 말대로 정말 웬 남자아이가 그것도 바닥에서 놀고 있었다.

“아이가…… 있네?”

“그거 보십쇼? 제 말이 맞죠?”

“그래.”

김건형과 고 팀장은 바닥에서 놀고 있는 승우를 보며 잠시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근데 아이가 왜 의국실에 있지?”

“의료진 아이이거나 아니면…….”

“아니면?”

“응급사고가 나서 치료받는 환자의 아이가 아닐까요?”

고 팀장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기가 병원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김건형과 고 팀장은 바닥에서 편한 자세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승우를 조심스럽게 피해 한쪽에 나란히 앉았다.

“아이가 혼자서도 잘 노네요.”

“의국실에 이게 다 있네.”

승우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는 김건형은 책상 위에 보이는 큐브를 보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큐브는 세 칸, 네 칸, 여섯 칸까지 모두 세 종류가 있었다.

“고 팀장? 자네, 이게 뭔 줄 아나?”

“큐브잖습니까? 요즘 아이들은 놀 거리가 많은 시대지만 저 어릴 때만 해도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런 게 꽤 인기가 많았어요. 중학교 때 한참 큐브 좀 돌렸습니다. 그런데 회장님도 큐브를 아세요?”

“손주들 어릴 때 갖고 놀라고 사다 줬거든. 그래서 기억하고 있지.”

김건형은 손주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 듯 세 칸짜리 큐브를 손에 들고 말을 이었다.

“이게 생각보다 맞추는 게 쉽지 않아. 어렵더라고.”

“그건 회장님이 잘하지 못하셔서 그런 거 같은데요?”

“그러면 자네는 할 수 있어?”

“그럼요. 이건 그래도 좀 쉽습니다.”

고 팀장은 김건형이 들고 있던 세 칸짜리 큐브를 손에 들더니 여유로운 표정으로 몇 분 안에 완성했다.

“보세요. 금방 했죠?”

“자네가 이런 재주도 있는지 몰랐네. 그럼 이것도 가능한가?”

세 칸 큐브를 맞춘 고 팀장을 보며 김건형이 네 칸짜리 큐브를 들고 이리저리 두서없이 돌린 뒤 건넸다.

“제가 그래도 중학교 때 큐브 좀 꽤 돌리던 놈이었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말과 달리 고 팀장은 네 칸짜리 큐브를 한 면밖에 맞추지 못하고 고전했다.

“큐브 좀 돌렸다며?”

“원래 네 칸부터는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한 칸만 맞춘 것도 얼마나 어려운데요.”

“됐네. 됐어.”

“진짜예요. 이것도 아마 김 원장이 맞추려고 갖다 놓은 걸 겁니다. 그만큼 일반인들은 맞추기 힘들다는 말이죠.”

“하긴 김태경은 이런 것도 잘하겠지.”

그렇게 큐브 하나로 두 사람이 열띤 토론을 주고받던 그때였다.

“선생님 거 아닌데요.”

바닥에서 한참 그림에 집중하고 있던 승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뭐라고?”

“큐브는 김태경 선생님께 아니고 제 거예요.”

“여기 이 큐브들이 다 네 거라고?”

“네, 맞아요. 다 제 거예요.”

고 팀장의 물음의 승우는 그를 한번 쓱 쳐다보더니 다시 시선을 뒤쪽으로 넘긴 채 답했다.

“네가 이걸 할 줄 안다고?”

“정확히는 큐브를 맞출 줄 알아요.”

“그래? 너 그럼 아까 아저씨가 한 거 봤어?”

“네. 그림 그리다가 봤어요.”

“그것보다 빨리할 수 있어?”

“아저씨는 3 곱하기 3 큐브를 2분 43초 만에 맞췄지만, 전 그보다 빠르게 맞출 수 있어요.”

“나보다 빠르게? 에이! 너 그거 진짜야? 거짓말하면 안 돼.”

“거짓말은 나쁜 거예요. 전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그래? 그럼 어디 한번 해 볼래?”

고 팀장은 상당히 진지한 표정으로 큐브를 어지럽게 섞더니 전혀 기대하지 않는 표정으로 승우에게 건넸다.

“이거 할 수 있어?”

“네, 할 수 있어요.”

승우는 꼼지락거리던 열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추더니 건네받은 큐브를 한번 눈으로 스캔했다.

“그럼 아저씨가 시간 재볼 테니까……!”

그리고 고 팀장이 휴대폰의 타이머를 찾고 있던 사이 이미 다 맞춰진 큐브가 그의 눈앞에 보였다.

“뭐야! 너 이거 벌써 다 맞춘 거야?”

“네, 다 맞췄어요.”

“아니, 몇 초밖에 안 지난 거 같은데…….”

“4초”

놀란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고 팀장 대신 김건형이 답했다.

“네? 4초라고요? 설마요. 4초면 챔피언 기록이랑 맞먹는 기록인데요.”

“4초 맞아. 내가 시계를 보고 있었어. 얘? 너 혹시 이것도 맞출 수 있니?”

지금까지 승우에게 관심이 없어 보이던 김건형이 바로 옆에 있는 4 곱하기 4짜리 큐브를 들어 보였다.

“네, 할 수 있어요.”

“너, 이것도 할 수 있다고?”

의심 섞인 말투로 묻는 고 팀장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승우는 또다시 큐브를 쭉 보니 금방 맞췄다.

조금 전, 고전하던 고 팀장과는 비교도 안 되는 실력이었다.

“말도 안 돼! 너 그럼 이것도 할 수 있어?”

고 팀장이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6칸짜리 큐브를 어지럽히고 다시 한번 건넸지만, 역시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너 혹시 큐브 대회 챔피언이니? 챔피언 맞지?”

“아니요. 그냥 갖고 논 거예요.”

“회장님 보셨어요?”

“나도 눈 있어. 넌 이름이 뭐니?”

“승우요. 고승우입니다.”

“이름이 멋지네. 녀석 재주가 아주 좋구나.”

“칭찬 감사합니다.”

승우는 고개를 살짝 숙인 뒤 김건형에게 인사했다.

“내 이름은 김건형이다.”

“김건형 할아버지도 이름이 멋지세요.”

“그래? 고맙구나.”

그 뒤 승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바닥에 엎드리고 앉아 원래 그리고 있던 그림에 집중하려 했다. 그러자 아이에게 궁금증이 생긴 김건형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다가갔다.

“……!”

그런데 뒤에서 승우의 그림을 슬쩍 엿보던 김건형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얘? 승우야 너, 지금 뭘 그리는 거니?”

“스켈레톤이요.”

“뭐? 스, 스켈레톤?”

“네, 영어로 스켈레톤이라고 하며 우리나라 말로는 골격이라고 해요.”

그랬다. 인체의 신비를 너무나 사랑하는 승우는 오늘도 인체에 관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특히나 며칠 전 태경에게 선물 받은 인체 관련 서적을 보며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을 때마다 그림으로 남겼다.

오늘은 사람의 골격에 관한 내용을 읽고 그 부분을 그림으로 그리던 중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면과 후면을 모두 그린 그림은 정말이지 소름 끼칠 정도의 디테일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걸 네가 그렸다는 거야?”

“네, 제가 그렸어요.”

“승우야. 네가 그린 그림이 뭔 줄 알고 그린 거니?”

“네. 조금 전에 말한 대로 골격을 그린 거예요. 골격은 사람의 몸을 지탱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며 뼈, 연골, 인대로 이루어져 있어요. 여기는…….”

승우는 김건형이 자기 그림에 관심을 두자 잔뜩 신나서 묻지도 않은 말을 시작했다.

“머리뼈고 그 밑으로는 아래턱뼈, 하악골이 있어요. 그리고 척추 전체가 이 부분이고, 여긴 경추 C1부터 C7가 있어요. 또 그 아래에는…….”

승우는 마치 강의하는 사람처럼 검은색 색연필로 모든 뼈의 한글 이름과 영어를 적어 가며 두 사람에게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이 부분은 발가락뼈예요.”

만족스럽게 전신 골격의 설명을 모두 마친 승우는 그림 그리던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정리한 뒤 케빈에게 다가갔다.

“…….”

“……!”

태연한 승우와 달리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어안이 벙벙한 김건형과 고 팀장은 잠시 할 말을 잊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아니,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고 팀장 내가 헛것을 본 거야?”

“아니요. 회장님 저도 분명히 봤습니다.”

“얘, 승우야?”

“네.”

김건형이 부르자 케빈의 갈비뼈를 맞추고 있던 승우가 뒤를 돌아보며 답했다.

“방금 말한 건 어떻게 알았어? 누가 가르쳐 준 거야?”

“아니요. 책에 다 나와 있어요.”

“책?”

“네. 도서관에 가면 멋진 책들이 많이 있어서 다 볼 수 있어요.”

“네가 사람 몸에 관심이 많구나?”

“네, 인체는 신비로운 우주와 같아요. 한 사람의 생명은 곧 우주와도 같고요. 우리의 몸은 경이롭고 아름다워요.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말을 마친 승우는 또다시 케빈에게 집중했고, 김건형은 피식하며 헛웃음을 보였다.

“회장님. 저 아이 천재가 아닐까요? 제가 보기에는 확실한데요?”

“…….”

“천재가 아니고서야 큐브를 눈 깜짝할 사이에 딱딱 맞추고 의대에 가야 알 수 있는 의학용어를 막힘없이 말하는 것도 모자라 저 그림 실력은 또 어떻고요. 방금 말할 때 단어 선택도 남다른 거 들으셨죠? 이건 천재 말고는 설명할 단어가 없습니다. 아이가 뭔가 특이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천재가 분명해요. 안 그렇습니까? 회장님.”

“시끄럽고. 고 팀장 자네 그거 좀 꺼내 봐?”

“네? 그거라니요?”

“아, 왜. 자네 취미 생활 있잖아? 그것 좀 꺼내 보라고.”

“아! 이거요.”

김건형의 말에 고 팀장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손바닥만 작고 얇은 책을 하나 꺼냈다. 그가 꺼낸 건 시사, 영어, 교양, 문화, 역사 등 다양한 분야가 섞인 가로세로 낱말 퀴즈였다.

외부 일정이 많은 김건형을 보필하면서 자연스럽게 대기시간이 길었던 고 팀장은 그때마다 퀴즈를 풀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항상 책자를 갖고 다녔다.

“그래. 그 퀴즈 책자.”

“그런데 이건 뭐 하시려고……! 설마 승우한테 문제 내 보려고요?”

“머리가 제법 비상한 거 같은데 과연 어디까지 비상한지 간단하게 확인 좀 해 보자고. 책 이리 내놔 봐.”

“왜요?”

“뭐?”

“회장님이 저 아이를 왜 테스트하시려는지 궁금해서요.”

“갑자기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 얼른 책이나 이리 줘.”

김건형은 고 팀장이 손에 쥐고 있던 책을 쏙 빼더니 승우가 놀고 있는 케빈 옆에 자리를 잡았다.

“승우야, 할아버지 좀 잠깐 쳐다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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