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35화 (334/472)

335화. 도깨비방망이

김건형은 고 팀장이 손에 쥐고 있던 책을 쏙 빼더니 승우가 놀고 있는 케빈 옆에 자리를 잡았다.

“승우야, 할아버지 좀 잠깐 쳐다볼래?”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게 쉽지 않은 승우는 언제나처럼 잠시 눈을 맞춘 뒤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 바쁘니?”

“아니요. 지금부터 케빈이랑 놀려고 하는데 그렇게 바쁘지는 않아요.”

“케, 케빈?”

역시나 인체모형에 이름을 붙여 주며 친근하게 답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김건형의 얼굴 위로 살짝 당황함이 스쳤다.

“네, 제 친구 케빈이에요.”

하지만 이내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승우의 눈높이로 생각하며 장단을 맞췄다.

“아. 그렇구나. 친구가 숨기는 것도 없이 가슴 속까지 훤히 다 보여 주고 아주 좋은 친구네.”

“네, 케빈은 멋져요.”

“할아버지 눈에는 승우가 더 멋져 보이는데? 안 그래, 고 팀장?”

“그럼요. 제가 보기에는 승우가 최고 멋집니다. 따봉!”

고 팀장이 승우를 보며 엄지를 추켜세우고 쌍 따봉을 보여 주자 승우가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는지 똑같이 따라 했다.

“따……봉.”

“승우야? 할아버지가 승우가 똑똑해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네, 괜찮아요.”

“할아버지 질문이 어렵거나 모르거나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알았지?”

“네.”

승우는 손으로 케빈의 장기를 조립하며 답했다.

“고 팀장, 이거 어때?”

“예? 아니, 회장님 아무리 테스트지만 그건 좀 심한 거 같은데요? 제가 보기에는 문제 뜻도 이해 못 할 거 같은데…….”

김건형이 무작위로 책을 펼친 뒤 문제 하나를 내려 하자 고 팀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만큼 문제의 난이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여기 문제가 생각보다 어려워요. 저도 못 맞춘다니까요. 괜찮을까요? 회장님.”

“일단 내 보면 알겠지. 승우야 잘 들어 봐.”

“네.”

“돌연변이의 일종으로 염색체의 일부분이 180도 회전하여 특정 부분이 거꾸로 되어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

“그거 보세요. 문제가 어렵다니까 그러시네.”

승우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고 팀장은 다시 한번 문제 타령을 하고 나섰다.

“문제가 어렵나…….”

“다시 말해 주세요.”

김건형이 다른 문제를 찾으려는 찰나 승우가 다시 말했다.

“못 들었어요.”

케빈에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를 잘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랬구나. 다시 한번 말해 줄게.”

“역위.”

김건형이 다시 문제를 말하자 고 팀장의 우려와 달리 승우는 문제를 듣자마자 바로 답을 말했다.

“저, 정답.”

“정답이에요? 회장님. 승우 진짜 장난 아닌데요. 다른 문제도 한번 내 보세요.”

“승우야, 다음 문제 낼게.”

“네. 문제 주세요.”

“한 종류의 입자가 여러 개 모여 원소를 이룰 때, 이 입자 한 개를 가리키는 용어는 무엇일까요?”

“정답은 원자요.”

“정답.”

“회장님 저도 한번 내 볼게요.”

여전히 케빈의 몸을 조립하며 태연하게 정답을 말하는 승우가 신기한 고 팀장은 직접 문제를 내겠다며 책을 가져갔다.

“조선 성종 24년에 성현, 유자광, 신말평 등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음악책의 이름은?”

“악학궤범. 악학궤범은 성종 1493년 유자광, 성현, 신마평, 박곤, 김복근 들이 편찬한 악전이에요. 또한…….”

단순히 정답만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승우는 완벽한 부연설명을 하며 두 사람을 상당히 놀라게 만들었다.

“하!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믿기지 않네요. 다른 문제 하나만 더…….”

“됐어!”

입을 다물지 못하는 고 팀장이 다른 페이지를 펼치며 문제를 내려 하자 김건형이 책을 뺏으며 말렸다.

“하지 마. 더 이상 볼 것도 없어. 보통 머리가 아니야.”

“맞습니다. 회장님. 보통이 아니라 천재가 확실합니다.”

“승우야. 미안한데 아까 인체 골격 설명해 준 거 있잖니? 그걸 할아버지한테 다시 한번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두 번도 세 번도 할 수 있어요.”

“그래? 그리고 할아버지가 핸드폰으로 승우가 설명해 주는 걸 좀 찍어도 될까?”

“네, 찍어도 괜찮아요.”

“고 팀장, 지금부터 승우가 하는 말 동영상으로 찍어.”

“예, 회장님.”

그 뒤, 승우는 아까 자신이 그렸던 골격 그림을 가져와 토씨 하나 빠지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 설명했다.

할아버지 미소를 띠며 열띠게 반응하는 김건형의 모습에 신나 케빈을 이용해 모든 장기를 전부 설명하는 열의까지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30분 넘게 모든 설명이 끝나고 김건형은 고 팀장에게 찍은 영상을 누군가에게 전송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동영상을 전송한 지 10분 정도 지나자 영상을 본 당사자에게 바로 전화가 왔다.

“회장님, 도 교수님 전화 왔습니다.”

김건형은 의국실 안쪽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빨리 왔군. 이리 줘 봐. 여보세요. 도 교수, 나요.”

-예, 회장님. 안녕하세요.

“갑자기 연락해서 미안하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보내 주신 영상은 확인했습니다.

김건형이 보낸 영상을 보자마자 전화를 한 사람은 누가 그룹 소속인 대학교 교수로, 누가 영재교육센터의 총 책임자였다.

자본이 풍부한 김건형은 일찍부터 가장 큰 자산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 앞장섰다.

특히 어린 영재들 교육에도 관심이 많아 영재센터를 설립하고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도 교수는 설립 초창기 멤버로, 지금까지 수많은 영재를 분별하며 그들의 멘토 역할을 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래, 본 소감이 어때?”

-그런데 회장님. 영상 속에 있는 애는 누구인가요?

“병원에 왔다가 우연히 보게 된 아이야.”

-우연히요? 이 아이를 우연히 보셨다는 말씀인가요?

“그렇다니까. 아이랑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보니까 보통 영특한 게 아니야. 그래서 얼른 영상을 찍어서 보냈어. 고 팀장은 옆에서 천재라고 난리도 아닌데, 도 교수가 자네가 보기에는 어때?”

-짧은 영상으로 판단하긴 섣부를 수 있고 정확한 테스트로 필요하겠지만, 일단 자폐 스펙트럼에 서번트 증후군으로 보입니다.

“서번트라면 결국 천재 기질은 있다는 소리군.”

-앞서 말씀드렸지만, 정확한 건 아이를 직접 보고 테스트를 해 봐야 합니다.

“이봐! 도 교수? 자네가 우리나라에서 이쪽 분야 최고인데 뭘 그리 겸손하게 말을 아껴? 지금까지 경험상 대충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잖아. 솔직히 어때?”

-제 판단으로는 천재 맞습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더 뛰어난 거 같습니다.

“그래? 조만간 일정 조율해서 아이가 방문할 수 있게 하겠네. 잘 좀 부탁해?”

-네, 회장님. 저도 그 친구가 궁금합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허허! 허! 허! 허!”

전화를 끊은 김건형은 케빈과 놀고 있는 승우를 쳐다보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어찌나 시원하게 웃는지 속이 다 뻥 뚫리게 웃었다.

“회장님, 교수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고 팀장이 맞았어. 지니어스 그 자체래.”

“제가 천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승우의 천재성을 들은 고 팀장 역시 뭐가 그렇게 좋은지 크게 웃었다. 한껏 신나서 웃고 있는 고 팀장을 뒤로한 채 김건형은 다시 승우에게 돌아갔다.

“승우야?”

“네?”

“할아버지가 궁금한 게 있는데 승우는 왜 병원에 있니?”

김건형은 승우에 대해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누나 기다려요.”

“누나?”

“네.”

“누나가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어? 엄마나 아빠는?”

“전 누나랑 둘이 살고 있어요. 누나는 지금 엄마는 외계인 구하러 가서 누나 올 때까지 병원에서 기다려야 해요.”

“…….”

“……!”

누나와 둘이 살고 있다는 말에 김건형과 고 팀장은 울컥한 마음이 올라와 잠시 침묵했다.

“그랬구나. 그런데 누나는 엄마는 외계인? 그걸 왜 구하러 간 거니?”

“제가 그걸 좋아해요. 그래서 누나가 구하러 갔어요.”

“그래? 승우가 좋아하는구나. 승우는 또 뭘 좋아하니?”

“케빈이요. 학교 친구들은 절 이상하게 보고 제 말을 잘 들어 주지 않아요. 이유없이 절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런데 케빈은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들어 줘요. 그래서 좋아요. 케빈 같은 친구가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는 승우의 진가를 알아보는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길 거야. 그러니까 학교 친구들이 뭐라고 하든지 절대 기죽지 마. 알았지?”

“네, 감사합니다.”

“승우야, 혹시 도깨비방망이가 뭔지 아니?”

“네. 동화책에서 읽었어요. 원하는 건 다 들어주는 뿔이 달린 방망이요.”

“그래. 맞아. 이 할아버지한테 그거랑 비슷한 게 있는데, 혹시 승우 뭐 필요한 거 있니?”

“아니요. 필요한 거 없어요.”

“필요한 게 없어? 그럼 좋아하는 건? 장난감이나 뭐 갖고 싶은 것도 없는 거야?”

“책을 좋아하지만, 책은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볼 수 있어서 괜찮아요. 그리고 할머니가 조금 모자란 듯 살아야 간절함도 알고 감사함도 안다고 했어요. 내 손에 없는 걸 바라기보다는 현재에 만족하며 열심히 살아가면 복이 온다고요.”

“뭐라고? 할머니께서 아주 훌륭한 말씀을 하셨구나.”

“저는 그냥 우리 누나가 힘들어하지 않고 저랑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래. 대답해 줘서 고맙다.”

승우에게 몇 가지 질문을 마친 김건형은 의국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고 팀장?”

“네, 회장님.”

“아까 승우가 그린 그림 있지? 그거 김 관장에게 사진 찍어 보내서 그림 쪽으로도 재능 있는지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회장님. 오늘 저녁에 박 회장님과 최 회장님 그리고 이 회장님과 약주 선약 있으신 거 잊지 않으셨죠? 지금 출발하셔야 할 거 같은데요.”

“취소해.”

김건형은 승우에게 눈을 떼지 못한 채 심드렁하게 답했다.

“네?”

“취소하라고. 아직 김 원장도 못 만났고, 그거보다 여기 있는 게 훨씬 의미 있고 더 재미있어.”

“그래도 다들 회장님 오시길 기다리고 계실 텐데요.”

“거기 가 봐야 늘 똑같아. 서로 지 자랑하기 바쁘고 아무 영향가도 없는 자리야. 모임에 한 번 빠진다고 별일 안 생겨. 비서실장한테 연락해서……. 아니다 내가 직접 할게.”

한 번 마음 먹으면 바로 실천에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김건형은 바로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회장님.

“나 오늘 모임 일이 생겨서 참석 못 하니까 그렇게 전해.”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네 혹시 엄마는 외계인이라고 아나?”

-예? 엄마는 외계인이요?

“그래. 초등학생이 좋아하는 건데 이름이 엄마는 외계인이야. 그게 뭐가 됐든 최대한 많이 구해 놔. 그리고 인체모형 있지? 그것도 가장 최근에 나온 거로 가장 좋은 거로 준비해.”

-…….

생전 처음 들어보는 오더에 비서실장은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왜 대답이 없어?”

-예, 회장님 말씀하신 대로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승우한테 주려고요?”

옆에서 통화를 들은 고 팀장이 물었다.

“사람이 말이야 애고 어른이고 겸손하고 심성이 고우면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가도 생겨. 저 어린 게 얼마나 마음이 예뻐.”

“그러니까요. 그런데 아까 도 교수님이 승우보고 자폐아라고 하셨죠?”

“자폐니 뭐니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온전한 정신에 온전한 신체 갖고 태어난 사람 중에 사람 구실 못하는 것들도 많아. 그런 사람보다는 승우가 훨씬 더 가치 있는 사람이야.”

“맞는 말씀입니다. 전 아까 누나랑 둘이 산다는 말을 듣고 안쓰러워서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한창 부모님께 어리광을 부려야 할 나이에 누나와 단둘이 살아가는 승우가 짠할 수밖에 없었다.

철컥-

“회장님?”

두 사람이 할아버지와 큰아빠의 마음으로 승우를 걱정하던 그때, 임정숙 간호사가 의국실로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원장님이 응급환자 진료 때문에 좀 길어졌어요. 거의 다 끝났으니까 진료실로 가세요.”

“오래는 무슨,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고 팀장 자네는 여기서 승우랑 좀 놀아 주고 있어. 뭐 맛있는 것도 좀 사 주고. 사는 김에 직원들 간식도 좀 사.”

“네, 회장님. 알겠습니다.”

김건형은 고 팀장에게 블랙카드를 내밀며 의국실을 나가는 순간까지 흐뭇한 미소로 승우를 쳐다보다 진료실로 자리를 옮겼다.

철컥-

“회장님. 잘 지냈어요?”

진료실로 들어온 태경이 김건형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김 원장, 내가 지금 자네한테 묻고 싶은 게 아주 많아. 기다리다 목 빠지는 줄 알았어. 얼른 와서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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