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화. 수호자
“힘들었겠어요.”
“네, 선생님. 저 힘들었어요. 그런데 절 힘들게 했던 그들보다 더 힘든 게 있었어요.”
“더 힘든 거요?”
“네. 승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 그게 진짜 힘들었어요. 몸이 회복되고 바로 할머니 집을 나왔거든요.”
아직 어린 손녀의 갑작스러운 임신과 출산에 친할머니 또한 정신이 없었다.
‘할머니 죄송해요.’
항상 자기를 자랑스럽게 여겼던 할머니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준 거 같아 김선민은 마음이 무거웠다.
‘됐다. 이미 벌어진 일 그렇게 곱씹어 봐야 네 마음만 다쳐. 네 잘못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잘못도 있지. 그 어린 걸 혼자 둘 생각을 했으니…….’
‘…….’
‘선민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너 몸 회복되면 바로 서울로 올라가서 검정고시부터 봐.’
‘그, 그럼, 승우는요?’
‘승우는 할미 호적에 올릴 거다.’
‘할머니 하지만…….’
‘여러 말 할 거 없어. 넌 지금부터 승우 네 동생이라 생각하고 살아. 내가 알아보니까 예전보다 법이 간소화돼서 나중에 호적 정리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더라. 그러니까 지금은 무조건 할미 말 들어.’
‘하, 할머니…….’
‘내가 늙었어도 아직 승우 하나는 잘 키울 수 있어. 어린 너보다는 할머니가 나아. 선민이 너 똑똑한 머리 썩히지 말고 올라가서 공부에 전념해. 그래서 대학 가. 아범이 너 대학 가는 거 보고 싶어 했고 너도 대학 가고 싶잖아. 네가 자리 잡을 동안만 할머니가 승우 맡아 줄게.’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어린 손녀가 아이를 키우는 걸 할머니는 원치 않았다.
아이를 키운다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알았기에 할머니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리고 굳이 자기 호적에 승우를 아들로 올린 것 역시 김선민의 앞날 때문이었다.
아들과 남동생. 두 단어의 뜻은 분명 달랐다.
나중에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날 때 김선민이 승우 때문에 그 사람과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길 바랐다.
분명 학생의 신분으로 임신한 건 잘못이지만, 이 한 번의 잘못으로 앞길이 구만리 같은 손녀가 인생을 힘들게 사는 걸 바라지 않았다.
며칠을 고민하던 김선민도 결국 할머니의 뜻을 따랐다.
차마 아이를 지울 수 없어 출산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아이를 기를 자신이 없었다.
그녀 역시 부모님의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나이였기에 모정이라는 단어는 아직 낯설었다.
“아빠와 살던 집을 정리한 돈으로 고시원에 들어가 공부했고,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바로 입시를 준비했어요.”
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었던 김선민은 실기 학원에 다니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낮에는 수능 공부 밤에는 실기에 매달렸다.
자연스럽게 승우를 보러 갈 시간이 없었다.
“정말 이를 악물고 공부했던 거 같아요. 내가 좋은 대학에 가야지 할머니께 보답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내 미래에도 승우에게도 도움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가 따랐다.
코피를 쏟아 가며 공부와 실기를 준비한 김선민은 서울에서 디자인으로 유명한 대학에 합격했다.
게다가 그냥 합격도 아니고 전액 장학금까지 받으며 학교에 다니게 된 것이다.
“대학 합격하고 할머니가 정말 많이 기뻐하셨던 기억이 나요. 엄청 많이 우셨거든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좋은 결과를 맺은 손녀가 대견하셨을 거예요. 김선민 씨, 참 대단한 사람이네요.”
“아니요. 대단한 사람은 선생님 같은 분이시지 전, 아니에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승우보다는 제 욕심으로 더 공부에 매달렸던 거 같아요.”
김선민은 자기 스스로가 부끄러운 듯 잠시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전 승우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정말 말 그대로였다.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그 자체가 정말 즐거웠다.
아버지의 예고 없던 사고와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고등학교 생활을 하지 못했던 김선민에게 대학 생활은 별천지와 같았다.
‘할머니? 별일 없지?’
‘그럼 내가 별일이 있을 게 뭐 있어?’
‘승우는? 승우도 잘 있고?’
‘그럼. 잘 있지?’
‘내가 이번 주 주말에 내려갈게.’
‘아이고. 됐다! 오가고 차비가 얼마인데 오지 마. 그 시간에 공부해. 장학금 받았다고 만족하지 말고 시험 성적 잘 받아. 요즘은 그래야 좋은 회사 가잖아.’
‘알았어요. 시험 잘 볼게. 그래도 시간 되면 갈게요.’
김선민은 처음에는 그래도 한 달에 몇 번 주말에 시골집을 찾아가고는 했었다. 하지만 점점 학교생활과 아르바이트에 몰두하다 보니 할머니와 승우를 보러 갈 시간이 없었다.
사실 핑계였다.
시간이 있어도 대학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학교생활에 집중하면 할수록 아이 엄마라는 사실보다는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에 집중할 수 있어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학교생활에 집중하고 있던 그때 승우에게 나타난 변화를 김선민은 알지 못했다.
‘선민아, 이번에 좀 내려올 수 있어?’
‘이번에? 나 공모전 준비 때문에 바쁜데?’
‘그래?’
‘왜? 집에 무슨 일 있어?’
‘아니야. 아무 일 없어.’
‘승우는?’
‘잠들었지.’
‘할머니, 정말 별일 없는 거지?’
‘없어.’
평소와 달리 할머니의 통화 목소리가 이상하게 머뭇거리는 것만 같았지만, 김선민은 그저 할머니가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그때 승우의 자폐 성향을 알게 되신 건가요?”
“네, 사실 할머니는 승우가 7개월 8개월 때부터 뭔가 좀 이상한 거 같다고 느끼셨대요.”
할머니는 예전부터 다른 할머니들이 손주를 데려올 때나 동네 아기들을 자주 봐주고는 했다. 게다가 몇 년 전까지 보육원에서 봉사하셨기에 아기들에 대해 나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승우를 키우는 데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승우가 커 갈수록 뭔가 이상했다.
점점 이름에 반응하는 아기들과 달리 승우는 자기 이름에 반응이 별로였다.
또한 반복적으로 신체를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고, 옹알이가 늦었으며 웃는 모습을 보기 힘들고 눈을 마주치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때까지만 해도 승우가 자폐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확히 자폐를 알게 된 건, 건넛집에 살며 할머니와 형님 동생 하던 동네 이웃 할머니 덕분이었다.
유일하게 동네에서 김선민의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이웃 할머니는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다른 지역에서 오랜 시간 소아과 전문의로 일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이웃 할머니가 승우의 행동을 보고 후배가 있는 대학병원에 예약을 잡아 준 것이었다.
그쪽 지역에서 나름 유명한 전문가가 있었고, 오랜 시간 진료한 끝에 자폐 스펙트럼 진단이 내려졌다.
승우의 자폐 진단으로 할머니는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지만, 김선민은 훨씬 뒤에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승우야? 할머니? 나 왔어.’
김선민은 오랜만에 시골집을 방문했다.
‘할머니 이거 보이지? 나 이번 공모전에 또 수상했다. 졸업하고 여기 인턴으로 들어갈 수도 있어.’
‘그래? 우리 강아지 장하네.’
‘근데 할머니 무슨 일 있어? 얼굴이 왜 그렇게 안 좋아?’
‘선민아? 그게 승우한테 조금 문제가 있어.’
‘문제? 무슨 문제?’
더 이상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한 할머니는 김선민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승우가 다른 아이와 조금 다르게 더 특별하대.’
‘특별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자폐 성향이래.’
‘뭐? 자……자폐! 승우가 자폐아이라는 거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할머니를 보며 김선민은 눈물이 흘렀다.
내가 낳은 아이가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할머니가 더 나이가 들면 그때는 자기가 승우를 돌봐야 하는데, 자폐아인 아이를 책임질 생각에 눈앞이 막막해졌다.
‘선민아, 걱정하지 마. 할머니가 다 알아서 할게. 승우는 남들과 다른 게 아니라 좀 더 특별한 거야.’
‘할머니! 그게 남들과 다른 거야.’
‘아니야. 내가 우리 승우 남들처럼 똑같이 그렇게 살게 만들 거야.’
망연자실한 김선민과 달리 할머니는 그때도 달랐다. 손녀 대신 이번에도 본인이 승우를 위해 손과 발을 걷어붙였다.
마음이 시끄러운 김선민은 전보다 더 시골집에 발길을 주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취업이란 핑계를 대면서 더 뜸했다.
‘누나~ 누나!’
수화기 너머 보고 싶다는 승우의 말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가질 않았다.
시간이 흘러 김선민은 원하던 회사 디자인팀에 입사할 수 있었다.
정말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점점 시간이 지나고 승우도 점점 컸다.
시골집에 승우를 보러 전보다는 자주 내려갔지만, 김선민은 아직도 내 아이라는 절절한 모정이란 마음을 느끼지는 못 했다.
‘선민아? 나야.’
그러던 어느 날, 이웃 할머니에 전화를 받게 됐다.
‘안녕하셨어요?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놀라지 말고 들어. 할머니가 쓰러지셨어.’
그 즉시 병원으로 실려 간 할머니는 각종 검사를 받았지만, 이미 치료할 시기를 놓쳐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병원에 실려 간 지 며칠이 되지 않아서 거짓말처럼 할머니는 눈을 감았다.
아빠도 그렇고 할머니의 죽음도 너무 갑작스러웠다.
특히 믿고 의지하던 할머니의 부고는 김선민에게 더 큰 충격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슬퍼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승우의 보호자는 자신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승진을 앞두고 있던 김선민은 승우를 돌보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의 많은 업무량을 소화하면서 아이를 케어하기란 현실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폐 성향의 승우랑 함께 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해하고 인내하고 반복하고 가르치고 애정과 사랑을 더 많이 줘야 했다.
‘승우야, 잠시만.’
‘그거 위험해.’
‘기다려야지.’
늘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고 승우의 예고 없는 행동에 놀랄 때가 많았다. 많이 힘들었고, 많이 울었다.
그때마다 김선민을 일으켜 세운 건 할머니의 일기장이었다.
할머니는 승우가 자폐 진단을 받은 그 시점부터 쓰러지기 전날까지 승우에 관한 육아일기를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소아과 출신이었던 이웃 할머니에게 수시로 도움을 청했다.
또한 승우의 손을 잡고 늘 시내 도서관에 들러 책과 친해지게 하고, 늦은 나이에 컴퓨터를 배우고 전문 서적을 읽어 가며 승우를 성장시켰다.
그 일기가 노트로 수십 권이나 되었다.
훗날 승우를 키울 손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던 할머니의 마음이 담긴 소중한 일기였다.
그 일기를 보면서 김선민은 승우에게 더 다가가지 못했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후회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이게 문제였다.
보통 아이와 다른 승우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의욕이 앞섰다.
그동안 모았던 돈으로 자폐 아이 치료로 유명한 곳을 찾아다녔고, 좋은 걸 보여 주고 먹는 것도 몸에 좋은 것만 해 주었다.
그만큼 돈은 빠르게 바닥을 보였고, 처음 마음과 달리 육체적으로 심적으로 점점 지쳐 갔다.
그렇게 지친 마음으로 지내던 끝에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김선민은 나쁜 마음을 먹었다.
아이와 살아갈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 승우와 함께 삶을 포기하려 했는데, 그 마음을 잡아 준 건 승우였다.
마음이 바닥을 치고 땅속까지 내려가던 그때 내 아이가 건넨 위로가 차가운 마음에 불을 밝혔다.
김선민은 다시 마음을 독하게 먹고 승우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녀도 서서히 엄마가 되어 모정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싹을 틔우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김선민은 승우를 병원에 맡기고 염치없는 걸 알면서도 이영훈에게 찾아갔던 것이다.
그를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양육비 때문이었다.
통장은 진작 바닥을 드러냈고 더 이상 돈이 나올 구멍이 없었다.
그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한 번만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사람 말고는 이런 부탁을 할 사람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요, 선생님. 한때 나쁜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승우를 낳은 건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어요. 지금은 제 목숨보다 더 소중하거든요.”
모든 이야기를 마친 김선민은 태경을 보며 짧게 말했다. 그리고 지난날이 떠올라 잠시 울컥한 듯 마음을 달랬다.
‘고생이 많았네…….’
이야기를 전부 들은 태경은 어쩐지 마음이 무거웠다. 부모님의 이혼과 아버지, 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어린 나이에 출산까지.
20대. 아직 한참 어리고 젊은 나이였다.
그런데 청춘을 즐길 새도 없고 아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린 친구가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김선민 씨?”
“네, 선생님.”
“유치하고 웃긴 소리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꼭 해야겠네요.”
“네……?”
“이런 말이 있죠? ‘엄마’는 신께서 낸 수호자다.”
“…….”
“내가 성공할 때도 실패할 때도, 세상이 나를 등지고 누군가가 나를 조롱하고 이유 없이 비난할 때도 무조건적으로 나를 믿어 주고 지켜 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신께서 우리에게 보낸 엄마라는 존재라고 해요. 승우한테 김선민 씨는 수호자예요.”
“내가 승우의…… 수호자.”
“본인이 많이 서툴고 아이한테도 미안하다고 했지만, 그동안 김선민 씨가 승우를 사랑으로 키웠다는 거 알고 있어요.”
“……?”
“내가 어떻게 알았냐고요? 승우를 보면 알 수 있거든요. 아이들은 거짓말은 못 해요. 승우의 표정이 가장 행복할 때는 바로 누나의 이야기를 할 때예요. 그리고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요. 이 땅의 모든 엄마가 그러하듯이 김선민 씨도 엄마는 처음이잖아요.
서툴고 힘들고 울고 싶고 가끔은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거예요. 그리고 아무리 엄마가 수호자라고 해도 엄마도 힘들어요.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엄마도 아이도 함께 성장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지금까지 승우랑 열심히 살아 줘서, 잘 버텨 줘서 고마워요. 승우 어머님 애 많이 썼어요.”
“하! 흑…….”
순간 억지로 참고 있던 김선민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승우의 수호자라는 말과 잘 버텨 줘서 고맙다는 말이 그녀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저 말 한마디일 뿐인데 지금까지 고생을 알아주는 것만 같아 진정되질 않았다.
마치 힘들었던 지난날들을 위로받는 것만 같았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한 번 터진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나왔다.
“……흑!”
마음이 쉬이 진정되지 않은 김선민은 얼굴을 두 손에 묻고 엉엉 울었다.
말없이 휴지를 책상 위에 올려둔 태경은 김선민이 마음껏 울 수 있도록 진료실과 연결된 처치실로 잠시 자리를 피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