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41화 (340/472)

341화. 천재는 아니에요

“저 때문에 많이 놀라셨죠?”

속에 맺힌 응어리를 토해 내듯 한껏 울고 난 김선민은 마음이 후련하고 편한 기분이었다.

“아니요. 좀 괜찮아요?”

“네, 선생님께 다 털어놓고 나니까 속이 후련하네요. 저기, 선생님 이거…….”

미안함이 가득한 김선민은 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잠시만요.”

순간 태경은 김선민의 행동을 말리려고 빠르게 질문을 이어 나갔다.

“궁금한 게 있는데 왜 우리 병원에 승우를 맡긴 거예요?”

김 경사에게 김선민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주변에 다른 병원도 있는데 왜 우리병원이었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이건 태경뿐만 아니라 병원 직원들도 다들 궁금해했다.

“혹시 쓰러진 날 병원으로 실려 와서, 그래서 우연히 우리 병원에 맡긴 건가요?”

“안 그래도 궁금하시겠다 싶었는데 그 이유는 아니에요. 그때 윗집 어르신들도 사정이 있어서 맡길 곳이 없던 건 맞지만, 그렇다고 우연히 우리병원에 승우를 맡긴 건 아니에요.”

“그럼 왜……?”

“선생님 때문에요.”

“네? 나 때문이라고요?”

“네. 맞아요.”

김선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급실에 오기 전에도 제가 우리병원에 몇 번 진료를 보러 온 적이 있었어요.”

“아, 그래요? 내가 기억을 못 했나 보네. 미안해요.”

몇 번 진료를 봤다는 말에 태경은 환자를 기억하지 못한 거 같아 미안했다.

“아니요. 기억 못 하시는 게 당연해요. 두 번 다 간단한 증상이었고 한 번은 다른 선생님이 진료를 보셨었어요. 제가 말이 많지도 않고 그렇게 특징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딱히 기억에 남지는 않으셨을 거예요. 실은 선생님이 좋은 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김선민이 처음 우리병원을 알게 된 건, 윗집 할머니 때문이었다.

‘어른들도 그렇지만 애들 아플 때는 특히 더 좋은 선생님께 진료받는 게 중요해. 여울동에 우리병원이라고 있거든. 혹시라도 승우나 선민이 아프면 그리로 가. 알았지?’

할머니는 주변 사람들에게 태경에 관한 미담을 많이 듣고 직접 진료 본 딸 내외의 이야기도 들었기에 우리병원에 대한 신뢰가 높았다.

‘먼저 우리 아저씨도 응급실 다녀왔는데 의사, 간호사 할 거 없이 다들 친절하시더라고. 그리고 거기 원장님이 TV에도 나오고 유명한 분이시래.’

‘네, 감사합니다. 할머니.’

그 말을 들은 김선민은 예전에 TV와 너튜브에서 본 유명 의사가 태경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러다 과로로 응급실에 쓰러졌고, 그때 태경이 보여 준 따뜻한 배려심 때문에 승우를 맡기기로 결심한 것이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시면서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가라고 하셨잖아요.”

진료비를 내지 못해 마음이 편치 않아 민망한 손길로 어렵게 내민 만 원도 한사코 거절하며 늦은 시간이니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다.

그래서 저렇게 마음이 따뜻하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라면 승우도 잘 돌봐 줄 거 같았다.

물론 그날 그 한 번으로 태경의 대해 모든 걸 알 수는 없었다.

남들이 듣기에는 무모하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각박한 현실에서 의사 김태경이 보여 준 마음은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맡기게 됐어요. 우리 승우가 인체도 좋아하고 병원이란 곳에 무서움이 별로 없어서 더 잘됐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며칠 동안 선생님도 직원분들도 고생 많으셨을 텐데 정말 죄송하고 또 감사해요.”

“아니에요. 저도 우리 직원들도 전부 승우 때문에 많이 웃고 마음도 행복했어요. 고생한 거 하나도 없으니까 마음 쓰지 말아요.”

“그리고 이거 받아주세요.”

김선민은 아까 건네려던 봉투를 다시 건넸다.

“그때 말씀드린 약속 지키려고요.”

“이거 진료비죠?”

“네. 진료비 맞아요.”

“괜찮으니까 그냥 넣어 둬요. 김선민 씨가 승우한테 돌아온 거로 이미 진료비 충분히 받았어요.”

“아, 아니요! 선생님. 그러지 마세요. 다른 건 몰라요. 이 돈은 꼭 받아 주세요. 승우까지 봐주시고 진료비도 안 받으시면 저 마음 불편해서 안 돼요. 제발 받아 주세요.”

“음! 그러면 이렇게 하죠.”

슥-

태경은 책상 서랍에서 김선민과 마찬가지로 봉투를 꺼내 밀었다.

“내가 진료비를 꼭 받아야 한다고 했죠?”

“네, 꼭 받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좋아요. 정 그렇다면 김선민 씨 진료비 받을게요.”

“정말이세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김선민은 태경이 끝까지 진료비를 받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까지 하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상황상 좋은 선물을 해 드릴 순 없었기에 진료비라도 꼭 드리고 싶었다.

“대신!”

김선민이 안도하던 그때 태경이 방금 서랍에서 꺼낸 봉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똑같이 김선민 씨도 이 봉투를 받으면 나도 진료비를 받을게요.”

“이게 뭔데요?”

열어보라는 태경의 손짓의 봉투를 열던 김선민은 놀란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봉투 안에는 돈이 들어 있었다.

“이 돈을 왜 저한테…….”

“승우에게 주는 우리병원 장학금이라고 할까요?”

태경은 두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건 돈이라는 생각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회의했다.

아무리 모든 결정권이 있고 병원의 책임자라고 해도 태경은 자기 마음대로 하기 싫었다.

병원은 많은 직원이 함께 만들어 가는 곳이므로 그들의 의견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직원들 모두 의견이 같아 병원에 들어온 후원금 중 일부를 장학금이란 명목으로 전달하기로 하고 미리 준비해 둔 것이다.

“큰 금액 아니에요.”

방금 말한 대로 큰 금액은 아니었다.

물론 많은 금액을 줄 수도 있었지만, 승우가 아픈 것도 아니고 병원 기기를 사는 것도 아니었기에 많은 금액을 전달할 수는 없었다.

후원금은 병원 발전이나 정말 힘든 환자들 위주로 사용할 목적이기에 이 부분은 어쩔 수 없었다.

“아니요. 선생님 저와 승우한테는 너무 큰 금액이에요.”

지폐를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김선민은 봉투 안의 금액이 적은 금액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제가 폐가 끼쳤는데 저 이 돈 못 받아요. 이 돈까지 받으면 저 정말 양심 없는 사람이에요.”

“그 돈으로 승우한테 필요한 걸 사요. 컴퓨터도 좋고 승우가 좋아하는 책도 많이 사고 그러면 좋잖아요.”

“아니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거 같아요. 이미 충분해요.”

빈말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이미 태경과 우리병원 직원들에게 충분히 받을 만큼 받았다고 생각했다.

“자꾸 그러면 나도 진료비 안 받아요.”

태경은 진료비 봉투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그건 받으셔야 해요.”

“그러니까 그 봉투도 받아요. 나도 고집이 엄청나서 김선민 씨가 안 받으면 진료비 끝까지 안 받을 겁니다.”

“그럼…… 잘 받을게요.”

결국 고민하던 김선민은 장학금을 받기로 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그런데 승우 아빠한테 아직 연락 온 건 없는 거죠?”

“……네. 경비 아저씨께 편지를 부탁하긴 했는데 연락 안 와도 괜찮아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영훈을 찾아갔지만, 지금은 그때와 마음이 달랐다.

승우를 위해 씩씩하게 뭐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승우가 왜 그렇게 씩씩한가 했더니 김선민 씨를 닮아서 그런 거네요.”

“그런가요?”

“그리고 일자리 구할 때까지 우리 병원에서 일해 보는 건 어때요?”

“아니에요. 저 취직자리 알아볼 때까지 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려고요.”

“식당 일이 쉽지 않을 텐데 괜찮겠어요?”

“세상에 쉬운 일은 없잖아요. 그리고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식당 일 생각보다 재미도 있어요.”

김선민은 일단 진료비를 위해 일했던 24시간 식당에서 일할 생각이었다.

식당에서 일하면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도 있었고, 그만큼 승우가 함께 있을 수도 있었다.

우리병원에서 일한다면 편하겠지만, 아낌없이 도와주는 사람들 속에 있다 보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나약해질 것만 같았다.

김선민은 더 이상 나약해지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세상과 맞서며 승우에게 당당한 엄마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맞다. 승우가 병원에서 친해진 할아버지가 한 분 계시는데 그분이 승우를 꼭 다시 봤으면 하셨어요. 그러면서 김선민 씨한테 꼭 물어봐 달라고 부탁하시더라고요.”

“승우를요? 누구신데요?”

“어쩌면 김선민 씨도 아는 분일 수도 있어요.”

“제가 아는 사람이요?”

“이분이에요.”

“…….”

의아한 표정으로 태경이 준 명함을 보던 김선민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아는 사람 맞죠?”

“누가 그룹 김건형. 누, 누가……!”

받은 명함을 천천히 보던 김선민은 깜짝 놀라 다시 확인했다.

“누가 그룹 김건형 회장!!!”

눈을 깜빡이며 다시 확인해 봐도 똑같았다.

확실히 누가 그룹 회장의 명함으로, 그것도 김건형의 개인 명함이었다.

아무한테나 주지 않고 쉽게 받을 수 없는 그 명함을 김선민이 받은 것이다.

“선생님 이분이 정말 그 누가 그룹의 그 회장님 맞으세요?”

“맞아요.”

“이런 대단한 분이 왜……?”

대한민국에서 누가 그룹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김선민 역시 취업을 한참 준비했을 당시 가장 가고 싶던 회사가 누가 그룹이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유명한 회사의 회장님이 어떻게 승우를 알게 된 건지 그리고 명함을 왜 준건지 납득이 되질 않았다.

“키다리 아저씨 알아요?”

“키다리 아저씨라면……. 소설에 나오는 그 키다리 아저씨요?”

“맞아요. 회장님께서 승우의 키다리 아저씨. 아니구나? 키다리 할아버지가 정확하겠네요. 키다리 할아버지가 되겠다고 하셨어요.”

“선생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제가 이해가 잘 안 돼요.”

“승우의 후원자가 되어 후원하시겠다고 하셨어요.”

“후, 후원자요? 우리 승우를요? 왜요? 혹시,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가정을 지원해 주는 그런 건가요?”

생각해 보니 누가 그룹이라면 주변에 좋은 일도 많이 하고 그럴 거 같았다. 아무래도 승우가 자폐 스펙트럼까지 있어서 더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큰 기업들은 어려운 가정이나 아이들을 지원해 주는 게 많더라고요.”

“그렇기는 한데. 승우 경우는 그 경우와는 조금 달라요.”

“다르다니요?”

“승우가 천재잖아요. 그래서 회장님이…….”

“컥!!”

차를 마시며 태경의 말을 듣던 김선민은 별안간 사레가 들렸다.

“크흠!”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그런데 선생님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제가 천재라고 들은 거 같은데…….”

“맞아요. 김선민 씨도 알고 있겠지만, 승우는 천재 기질이 있어요. 물론 전문 기관에 정확한 검증을 해야…….”

“선생님? 잠시만요.”

김선민은 민망한 웃음과 함께 태경의 말을 멈추고 이어 말했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뭔가 착각하신 거 같아요. 우리 승우가 똘똘하긴 하지만, 천재는 아니에요. 아무래도 선생님과 그 회장님께서 승우를 예쁘게 봐주신 거 같아요.”

“…….”

“설마 농담하시는 게 아니라 진짜예요?”

태경이 말없이 빤히 쳐다보며 침묵하자 김선민은 아까보다 더 당황하며 물었다.

“농담하는 게 아니라 진짜 맞아요.”

“그러니까, 승우가……. 우리 승우가 처, 천재라는 거예요?”

“네, 천재예요.”

“……!”

진지함을 넘어 조금 심각해 보이기까지 하는 태경의 표정을 보며 김선민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정말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천재라니……. 승우가 정말 천재라고?’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쉽게 납득이 되질 않았다.

‘승우가 천재잖아요.’

김선민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태경이 했던 말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