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42화 (341/472)

342화. 진짜 누나 맞지?

태경은 승우의 상태를 서번트 신드롬과 함께 자세히 설명했다.

“어머! 세상에…….”

설명은 전부 들은 김선민은 너무 놀라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도 몰랐다.

“몰랐어요?”

“네, 전혀요. 정말 몰랐어요.”

기억력이 좋은 것도, 큐브나 퍼즐에 소질이 있는 것도, 인체를 달달 외우는 것도 그저 머리가 좋은 거라고만 생각했다. 천재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자폐 성향의 아이 중엔 기억력이나 지적 능력이 한쪽으로 발달한 경우가 있다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사실 김선민도 승우와 둘이 함께 살게 된 초반에 승우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승우를 이해하기 위해 자폐 아동 가족 모임에 참석한 적 있었다.

그때 자폐 아이를 오래 키웠다는 어느 분께 승우의 좋은 머리에 관해 이야기했더니 그분이 웃으면서 했던 말이 기억났다.

‘누나라서 그런지 잘 모르네. 서번트 신드롬은 자폐 아동 중에서 그렇게 흔한 게 아니에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거지. 우리 애도 기억력이 얼마나 끝내주는데……. 그런 일 흔하지 않아.’

김선민은 그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과한 상상을 했구나 싶었다.

게다가 상담이나 재활 시설을 꽤 다녔어도 그쪽 선생님들도 그런 말 한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승우는 그런 시설에 가면 집에서 가져간 책만 보고 잘 협조하지 않았다.

뭔가 그런 한정된 공간에서 느껴지는 딱딱한 분위기를 싫어하는 거 같아 그 뒤로는 억지로 데려가지 않았다.

항상 더 해 주지 못하고 부족하게 키운 거 같아 마음이 아팠는데, 승우가 천재라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많이 놀랐나 봐요.”

“네…….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요.”

“그럴 수도 있어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는 김선민의 반응을 보며 태경은 의외로 덤덤했다.

서번트 증후군이 있는 아이를 둔 부모들이 아이의 기질을 잘 모르고 키우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영재 중에도 성인이 되어 영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선생님, 방금 문득 든 생각인데 할머니 때문에 승우가 발전한 게 아닌가 싶어요.”

“할머님께서도 모르셨을까요?”

“따로 저한테 말씀하신 게 없어서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 일기장에 그런 내용은 없었어요?”

“일기장 권수가 워낙 많아서 아직 다 보지 못했어요.”

똑똑-

“원장님?”

두 사람이 한창 이야기하던 중 임정숙 간호사가 노크했다.

“네. 들어오세요.”

철컥-

“환자 왔어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엄청 귀한 손님이 곧 오실 거 같은데 어떡할까요?”

“엄청 귀한 손님이요?”

“네, 김선민 씨를 보고 싶어 하는 귀한 손님이요.”

“저, 저를요?”

“네.”

귀한 손님이라는 말에 놀라 되묻는 김선민을 향해 임정숙 간호사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승우가 김선민 씨 찾아요.”

“승우 일어났어요?”

‘승우’라는 말에 김선민이 오뚝이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시계가 새벽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승우가 일어날 시간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본인이 온 것도 모를 텐데 찾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싶었다.

“쉬 마려워서 일어나서 지금 화장실에 갔어요. 그런데 승우가 누나가 왔느냐고 묻던데요.”

조금 전-

‘누……나. 누……!’

의국실에서 자고 있던 승우는 잠꼬대하다가 눈을 떴다. 그리고 아직 잠기가 가득한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더니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 정리.”

승우는 당연한 듯 침대 위에 삐뚤어진 베개를 똑바로 놓고 이불까지 말끔히 정리했다.

소변이 마려워서 화장실을 가려고 잠시 일어난 거지만 이런 행동이 승우에게는 당연했다.

‘할머니? 할머니는 왜 이렇게 정리를 잘해요?’

‘할머니는 옛날에 부모님께 이렇게 배웠어. 정리하면 머리도 맑아지고 다른 일을 할 때도 기분 좋게 할 수 있거든. 그래서 정리를 하는 거야.’

함께 오래 산 할머니의 생활 습관을 보고 배운 탓에 일종의 몸에 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침대를 정리한 승우는 김건형이 보낸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붙인 그림을 쳐다봤다. 그렇게 자기가 그린 누나의 그림을 쳐다보다 의국실을 나갔다.

철컥-

‘승우야?’

한창 자고 있어야 할 승우가 의국실을 나오자, 응급실에서 나오던 임정숙 간호사가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왜 나왔어? 어디 불편해?’

‘아니요. 화장실 가려고 나왔어요. 어제 물을 너무 많이 마셨나 봐요.’

‘그랬구나. 조심히 잘 갔다 와.’

‘그런데 간호사 선생님 저 질문이 있어요.’

‘질문? 뭔데?’

‘있잖아요. 혹시 우리 누나 왔어요?’

‘뭐?’

‘아까 자는데 누나 목소리가 들린 거 같아서요. 그리고 누나가 절 부르면서 쓰다듬은 거 같은데……. 이게 꿈인지 진짜인지 모르겠어요.’

늘 누나 생각을 하며 보고 싶던 승우는 아까 김선민이 했던 말을 잠결에 듣고 물어본 것이다.

‘그럼 선생님이 원장님께 누나가 왔는지 물어볼 테니까 승우는 일단 화장실 다녀올래?’

‘네, 화장실 다녀올게요.’

승우가 계속 자고 있었다면 굳이 깨워서 누나가 왔다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미 잠이 깬 상태에서 그것도 누나가 온 게 아니냐고 정확히 묻는 아이의 말을 임정숙 간호사는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승우가 아무래도 아까 잠결에 누나 목소리를 들은 거 같아요. 그래서 일단 화장실부터 다녀오라고 했어요. 승우 화장실에서 나왔네요. 제가 데리고 올게요.”

“……네.”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 김선민은 살짝 열린 문 앞으로 걸어갔다.

“왜 이렇게 떨리는지 모르겠어요.”

김선민은 두 손을 움켜쥐며 안절부절못했다.

“선생님, 저요. 승우랑 둘이 살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오래 떨어져 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며칠 만에 보는 건데도 오랜만에 보는 거 같아요.”

“그만큼 승우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네, 정말 그런 거 같아요.”

“승우야. 여기 문 활짝 열어 볼래?”

그사이 임정숙 간호사와 승우가 문 바로 뒤에 온 소리가 들렸다.

“정말? 정말 진료실 안에 우리 누나가 있어요?”

“응. 있어. 아까 승우가 자는 사이에 누나가 왔었거든. 승우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어.”

“정말요?”

“그럼 정말이지.”

“…….”

“왜? 문 안 열어 볼 거야.”

“아니요. 누나가……. 누나가 없으면 어떡해요.”

몇 번이나 확신 있게 말하는 임정숙의 말에도 불구하고 승우는 좀처럼 문 열기를 망설였다.

혹시라도 꿈을 꾸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과 함께 기대했다가 누나가 없으면 어쩌나 싶은 걱정도 들었다.

“누나?”

임정숙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승우는 김선민을 부르며 진료실 문을 열었다.

“누나 있……!”

“승우야?”

떨어져 있던 며칠 동안 잘 참던 김선민 역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문을 확 열었다.

“누, 누나아~~~~!”

빠르게 열린 문 사이로 김선민을 본 승우는 단 몇 발짝인 짧은 거리를 뛰어가 엄마의 품에 꼭 안겼다.

“누나……진짜 누나 맞지?”

“응. 누나 맞아.”

김선민 역시 그동안 보고 싶었던 아들을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승우야, 누나가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나 이제 엄마는 외계인 많이 안 좋아해. 누나만 있으면 돼.”

“누나도 승우만 있으면 돼.”

“누나, 이제 아무 데도 안 갈 거지?”

“그럼 이제 계속 승우랑 같이 있을 거야.”

김선민과 승우는 자석처럼 꼭 붙어서 한동안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 뒤, 두 사람은 승우가 자고 있던 의국실로 향했다.

“누나? 이건 내 친구 케빈이고 여기는 할아버지가 선물해 주신 새로운 친구 찰스랑 토니야.”

김선민이 돌아온 게 신난 승우는 새로운 친구는 물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쉬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이건 원장 선생님이 그림 그릴 때 사용하라고 선물해 주셨어. 나 그림도 많이 그렸다. 이거 봐? 멋지지?”

“와! 진짜 우리 승우 그림 솜씨는 누나가 제일 잘 알지. 최고로 잘 그렸어. 그런데 승우야 안 잘 거야?”

아직 졸음이 느껴지는 승우의 눈빛을 보며 김선민이 사랑스럽게 물었다.

“지금 안 자면 낮에 또 잠이 오고 그러면 밤에 잠 안 올 수도 있어.”

“자고 일어났는데 누나가 없으면 어떡해?”

그동안 아이답지 않게 씩씩하고 의젓하게 김선민을 기다렸지만, 승우도 결국 아직은 어린애였다.

다시 잠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 누나가 옆에 없을까 봐 조금 걱정스러웠다.

“아니야. 누나가 우리 승우 이렇게 꼭 안고 같이 잘 거야. 이제 됐지?”

“응. 이제 됐어.”

김선민은 승우와 함께 침대에 누워 불안해하지 않도록 안아 줬다. 그러면서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등도 쓰다듬으며 보고 싶었던 마음만큼 아이에게 애정을 주었다.

어느새 스르륵 눈이 감긴 승우는 잠이 드는 이 순간까지도 김선민의 품 안에서 떨어지지 않고 잠이 들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은 잠에서 깼다.

편한 집도 아니고 익숙하지 않은 곳이었지만, 승우와 함께여서 그런지 김선민은 개운한 기분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우리 승우 잘 잤어?”

“응, 누나가 옆에 있어서 더 잘 잤어.”

그 뒤, 눈을 뜬 두 사람은 오 여사와 식당 식구들이 차려 준 아침을 먹고 김건형을 만나기 위해 병원 식구들과 인사를 전했다.

조금 전, 태경에게 연락받은 김건형은 김선민과 연락 후 바로 두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한번 결정하면 추진력이 엄청난 김건형은 승우를 위해서라도 빨리 만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승우야, 선생님들께 인사드려야지.”

“원장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한테 케빈을 주시고 또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셔서 감사해요. 간호사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식당 할머니? 그리고 이모들 모두 감사합니다.”

승우는 태경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병원에서 마주쳤던 직원 모두에게 다가가 한 사람씩 차례대로 인사했다.

“이찬희 선생님, 저랑 놀아 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뒤쪽에 서 있던 이찬희에게 손짓한 승우는 그에게 귓속말로 작게 속삭였다.

“선생님이 최모나 선생님 좋아하는 거, 저 다 알아요. 두 분 행복하세요.”

이찬희가 깜짝 놀란 사이, 승우는 김선민의 옆자리로 돌아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선생님 승우랑 저, 가 볼게요.”

“그래요. 아이스크림이 들은 냉장고랑 인체 모형은 집으로 보내 줄게요.”

“네, 저랑 승우한테 베풀어 주신 은혜 잊지 않을게요. 승우 보란 듯이 잘 키워서 선생님 같이 베풀 줄 아는 사람 되도록 할게요. 정말 진심으로 모든 분에게 감사합니다.”

“그래요. 나랑 우리병원 가족들도 승우랑 함께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어요. 앞으로 좋은 일들만 가득할 거니까 씩씩하게 잘 살아요.”

“네, 선생님. 꼭 그럴게요.”

“그리고 우리 승우도 씩씩하게 잘 지내고 가끔 선생님들 보러 놀러 올 거지?”

“아니요. 가끔 말고 자주 놀러 올래요.”

“그래. 자주 놀러 와.”

“네. 누나 그래도 되지?”

“그럼 당연하지.”

“선생님 이거요. 선물이에요.”

승우는 작은 봉지를 태경에게 건넸다.

“선생님 선물이야? 고마워.”

“그럼 안녕히 계세요.”

“또 뵐게요.”

“승우야 잘 가.”

“선민 씨, 놀러 와요.”

직원들은 아쉬운 표정과 함께 두 손을 꼭 잡고 병원을 나서는 김선민과 승우에게 인사를 전했다.

두 사람의 표정은 하늘에 떠 있는 햇살처럼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고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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