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화. 오토바이광
“부탁이요?”
“네, 원장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진지하게 말씀하시니까 뭔가 긴장되는데요? 무슨 부탁인데요? 혹시 몸이 안 좋으세요?”
작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다섯 번째 바이탈은 아무 냄새가 없었지만, 그래도 태경은 물어 왔다.
늘 생각했던 문제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몸이 아파도 다섯 번째 바이탈 냄새가 안 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항상 환자의 검진과 증상에 신경을 쓰고 있다.
“직업병이라 늘 달고 다니는 허리, 목, 손목이 안 좋은 거 빼고는 다른 곳은 감사하게도 아픈 곳이 없네요.”
“같은 자세로 오래 일하는 게 몸에 무리가 많이 가니까 중간중간 스트레칭도 하시고 시간 없더라도 운동 꼭 하세요.”
“그래야 하는데 이게 한 번 집중하면 통 의자에서 엉덩이 떼기가 쉽지 않아요. 내 정신 좀 봐. 부탁드릴 게 있다면서 어느새 원장님 말씀에 집중하고 있네요.”
“부탁이 뭔지 말해 보세요.”
“원장님. 제 드라마가 요즘 시청률 잘 나오는 거 혹시 아세요?”
“직원들이 작가님 드라마 인기 있다는 소리를 한 건 들었습니다.”
“동 시간대 시청률 1위예요.”
“그래요? 축하드려요. 대단하시네요.”
“좋은 제작진을 만나서 이번에도 운이 좋았어요. 혹시 보신 적은 없으시죠?”
“죄송합니다. 제가 TV를 잘 안 봐서 잘 몰라요.”
“왠지 그러실 거 같았어요. 제가 갑자기 드라마 이야기를 꺼낸 건 원장님께서 드라마 마지막 회 카메오로 나와 주셨으면 해서요.”
“예? 작가님 드라마에 카메오로요?”
기껏해야 의학적인 고증일 거라고 생각했던 태경은 도무지 말도 안 되는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제가 지금 질문을 잘못 들은 거죠?”
“아니요. 아주 정확히 잘 들으셨어요.”
“제가 볼 게 뭐 있다고 드라마에 나와요.”
“어휴. 비주얼은 충분하신데요. 그리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렵거나 힘든 거 아니에요.”
현재 방영 중인 작가의 드라마는 의사 여주인공과 검사 남주인공의 일과 사랑에 관한 내용이었다.
의사와 검사들의 일상을 세세하게 녹여 내린 것이 드라마의 특징이었으며, 매회 인기 배우는 물론 유명인들의 카메오를 보는 것도 화제였다.
“대사 딱 한 줄과 한 장면 정도 나가는 거고요. 여주인공이 새로 일하게 된 병원 원장님 역할이에요. 그리고 우리병원에서 촬영했으면 하는데……. 당연히 환자분들에게 피해 없이 병원 건물만 나오고 정문 쪽 거리에서 하면 될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오늘 찾아온 거예요.”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설명하며 진지한 작가와 달리 태경은 크게 귀담아듣지 않고 있었다.
“작가님 출연 제의는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제가 그런 쪽으로는 소질도 없고 지금은 병원 일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해서요.”
“그럼요. 원장님의 환자 사랑은 제가 익히 알고 있죠. 그래도 원장님도 하루 중 잠시 쉬는 시간도 있으시잖아요. 그때 저희가 방해 안 되게 빠르게 촬영할게요.”
“아무리 그래도 카메오는 힘들 거 같은데요.”
“분명 병원에도 도움 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대학병원에서도 드라마 촬영한다고 하면 홍보에 도움 된다고 그렇게 반대하지 않잖아요.”
“전 의사지 배우가 아닙니다.”
“그래서 출연 제의를 한 거예요. 몇 회 전에는 현직 검사님도 카메오로 나오셨어요. 반응도 좋았고요.”
“작가님 전…….”
“일단 오늘은 알겠습니다. 저 이만 가 볼게요.”
드르륵-
태경이 또다시 거절 의사를 말하려 하자 작가는 빠르게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드라마 마지막 회 촬영하려면 아직 충분히 여유 있어요. 그때까지 생각 좀 해 주세요. 그럼 이만 가 볼게요.”
“네, 조심히 가시고 카메오 출연은 다른 분 알아보세요.”
“그건 안 되죠. 저랑 감독님 원픽은 무조건 원장님이에요. 또 올게요. 수고하세요.”
후다닥 인사를 하고 나간 작가는 최 실장과 임정숙 간호사에게 태경을 설득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나갔다.
* * *
오피스텔-
“자! 오늘은 이렇게 한정판으로 나온 나이키 톰삭스 마xx드 언박싱은 끝났고, 바로 뒤에 이어지는 멋진 영상도 기대해 줘. 그럼 다음에 또 올게. 안녕!”
“오케이. 종료 눌렀다.”
대학가 근처에 있는 오피스텔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 두 명이 뭔가 촬영하고 있었다.
“어때? 잘 나왔어?”
“새끼, 인플루언서라 다르긴 다르네. 카메라 보고 오글거리는 거 존x 잘함. 큭큭.”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다.”
“야, 새찬아? 너 근데 이 운동화 이거 어떻게 구했냐?”
“내가 늘 사는 해외 판매자한테 몇 달 전부터 부탁했어.”
“미친 이거 찐이야? 저번에 보니까 구백만 원 좀 넘던데…….”
“당연 찐이지. 이 형아가 괜히 인플루언서가 아니라고. 광고가 있잖아. 광고!”
공새찬은 별그램 팔로워 수가 상당한 MZ세대 인플루언서이다.
“하긴 별그램에 너튜브 수익에 광고까지 받으면 이 자식. 너, 돈 졸라 많이 벌겠네?”
“너튜브는 이제 개설해서 아직 수익이 좀 크진 않아. 야, 근호야 내려가서 내 애마 좀 볼래?”
“뭐야! 오늘 왔음?”
“어. 아까 너 오기 전에.”
“오호! 그럼 봐야지.”
공새찬은 친구와 함께 오피스텔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헐~! 미친놈 기어이 새로 뽑았네?”
“형이 큰맘 먹고 셋째 장만하셨다.”
“튜닝까지?”
“고럼. 예쁘게 옷도 입혀 줬지. 어때?”
“야, 미쳤다.”
친구가 눈을 떼지 못하고 사진을 찍어 대며 부러워하는 건 바로 오토바이였다.
멋과 스피드를 좋아하는 그가 환장하는 게 있었으니 바로 패션과 오토바이였다.
그는 인플루언서로 버는 돈을 옷과 오토바이를 사는 데 썼다.
특히 오토바이를 튜닝해 한동안 타고 다닌 뒤 웃돈을 주고 되팔아 더 좋은 모델을 구입했다.
“어때. 예쁘지 않냐?”
“솔직히 개쩔음. 진짜 멋지네. 근데 새찬이 너 진짜 대단하다.”
“갑자기?”
“아니, 솔직히 나 같으면 이제 오토바이 무서워서 못 탈 거 같은데 아직도 이렇게 좋아하는 게 신기해서.”
중학교 때 동네 형이 태워 준 오토바이에 맛을 느낀 공새찬은 그때부터 오토바이광이 됐다.
고등학교 때는 아르바이트로 처음 오토바이를 구입할 정도였다. 하지만 부모님께 걸려 오토바이를 압수당했다.
그 뒤, 몰래 키를 훔쳐 타다가 사고가 나서 다리를 다쳤다. 또다시 부모님께 혼이 나고 몸이 회복될 때까지 오토바이를 타지 않았다.
하지만 몸이 회복된 공새찬은 다시 오토바이를 탔고 1년 뒤 또 다시 사고를 당해 팔을 다쳤다.
그렇게 고등학교 3년 동안 몇 번이나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큰 사고로 이어진 적은 없었지만, 부모님은 크게 화를 냈고 오토바이를 처분한 뒤 다시는 타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받아냈다.
“그렇게 사고 나고도 탈 정도로 오토바이가 좋냐?”
“교통사고 난 사람들이 사고 나고 운전 안 하냐?”
“지랄! 개떡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너, 그나저나 부모님은 아직 모르시지?”
“당연하지. 나 이번에 걸리면 진짜 울 아버지한테 농담 아니라 죽을지도 몰라. 너도 울 아버지 성격 알잖아.”
“아버지 성격을 아는 놈이 아직도 이러고 있냐?”
부모님의 관심을 덜 받고 자유로워지는 방법으로 공부를 선택한 공새찬은 대학에 입학해 자취방을 얻었다.
그 뒤, 1년째 휴학 중이었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과 부모님이 주는 용돈으로 패션과 오토바이에 투자해 인플루언서가 됐다.
부모님은 아직 아들의 이런 삶을 알지 못했다.
“너희 아버님 그렇게 무서운데 아직도 이러고 있는 거 보면 너도 철들라면 멀었다.”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라.”
“난 위험한 건 딱 질색이라서 이대로 만족한다. 그리고 새찬이 너, 오토바이 타고 위험한 영상 좀 그만 올려.”
“위험한 거 아니거든. 그냥 운동화 신고 오토바이 타는 영상인데 그게 뭐가 위험해.”
“너, 밤에 차 없을 때 막 달리고 그러잖아. 오토바이는 항상 조심해야 해. 민구 놈도 오토바이 사고 나서 한동안 개고생하고 다시는 안 타잖아.”
“새끼, 잔소리는 열라 심하네.”
“딱 한 번 했다. 근데 너 아직도 타투 안 걸렸냐?”
“아직은.”
20살 이후 타투를 시작한 공새찬의 몸에는 제법 많은 타투가 있었다.
“집에 갈 때는 잘 가려서 입지. 이번 겨울에 목젖 근처에 레터링 하나 더 할까 생각 중이다.”
“네 몸에 네가 하겠다는데 내가 뭐라고 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서 더는 안 했으면 한다.”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 단짝인 공새찬의 성공한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점점 안 좋은 모습으로 변해 가는 건 좋지 않았다.
“정도껏 해. 뭐든지 과하면 보기 안 좋아.”
“알았어. 잔소리 때문에 귀에 딱지 앉겠다.”
“네 꼴을 보니 내가 답답해서 그런다. 맞다! 너 다음 학기에는 복학할 거지? 꼭 해라.”
“아니, 나 자퇴 생각 중이야.”
“뭐!? 왜?”
“공부하기도 싫고 지금 하는 일 좀 판 좀 키워 볼까 하고.”
“미친놈아, 그래도 학교는 졸업해. 지금 인기가 끝까지 가는 것도 아니잖아. 그것도 다 한때야.”
“잔소리봇이세요? 그만하고 타. 시승하러 가자.”
공새찬은 검지에 오토바이 키를 뱅글뱅글 돌리며 말했다.
“됐어. 나 이따 여친이랑 영통 하면서 토익 스터디해야 해.”
“지랄. 여친이랑 무슨 스터디를 해?”
“우린 하거든. 그것도 아주 열심히. 취직하려면 지금부터 열심히 해야지.”
“알았다. 하여간 여친은 끔찍이 여겨요. 그럼 난 시승하러 간다.”
“야, 이 시간에? 너무 늦었는데 내일 가.”
“나 원래 이 시간에 다녀. 도로에 차도 없고 촬영하기도 편해. 걱정하지 마. 이 형님, 프로다.”
“그래도 항상 조심해.”
“나 안 다쳐. 지금까지 사고 나서 크게 다친 적 한 번도 없었잖아.”
“방정맞은 소리 그만해.”
“그만큼 오토바이랑 내가 운명이란 소리지.”
“헛소리 좀 그만하고 헬멧 꼭 쓰고 조심하고 또 조심해. 차 없다고 신호 위반하지 말고. 속도 높이지 말고. 어?”
“그래, 알았다. 주말에 맛있는 거 먹자. 내가 쏠게.”
“그건 콜! 간다.”
친구와 헤어진 공새찬은 새로 산 오토바이에 카메라 세팅을 끝냈다.
얼굴이 보이는 정면에 하나, 운동화가 보이는 발판 쪽에 하나, 그리고 오토바이 양옆으로도 하나씩 설치했다.
잘 차려입은 옷과 비싼 운동화를 신고 오토바이를 탄 뒤 멋지게 편집한 영상을 올리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조회수가 제법 잘 나왔다. 날로 외국 구독자들도 늘었기에 찍는 맛이 있었다.
-오토바이 큰 관심 없었는데 님 타는 거 보니까 나도 타고 싶네요.
-보면 옷도 그렇고 오토바이 튜닝도 그렇고 편집까지 장난 아닌 게 이 사람 센스가 엄청난 듯.
게다가 사람들이 남긴 댓글을 볼 때마다 마치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기분까지 들었다.
좋아하는 오토바이를 타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 공새찬은 이보다 더 쉬운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출발해 볼까.”
헬멧을 착용한 공새찬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부앙-
“이거지!!!”
골목을 나온 오토바이는 금세 차도로 진입했다. 늦은 시간이라 차도에는 차량이 많지 않았다.
“얘들아, 형아 지금 새로운 애마랑 멋진 신발 신고 라이딩하러 나왔는데 진짜 기분 끝내준다. 영상 잘 찍어서 올려 볼게. 기분 죽인다.”
새로 뽑은 오토바이가 마음에 든 공새찬은 점점 올라가는 속도에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속도는 계속 올라가고 신호등은 어느새 빨간불로 바뀌었지만, 오토바이는 멈추지 않고 달렸다.
“아! 빨간불이었네.”
공새찬의 오토바이는 여전히 높은 속도로 달렸고, 다음 번 신호가 막 바뀌었지만 한가한 도로 위 그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신호를 무시한 채 사거리를 막 통과하던 그 순간,
쾅-
바뀐 신호를 보고 진입하던 차와 공새찬의 오토바이가 충돌하고 말았다.
끼이익-
엄청난 속도로 달리던 오토바이는 큰 충돌음과 함께 아스팔트 차도로 미끄러졌다.
오토바이에서 튕겨 나간 공새찬은 그대로 허공 위를 날랐고,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턱-
“이, 이봐요? 괜찮아요!”
신호를 지키며 운전하던 운전자는 갑작스러운 사고에 놀란 얼굴로 차에서 내려 공새찬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