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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바이탈-347화 (346/472)

347화. 야!! 이 새끼야!!

“이, 이봐요? 괜찮아요!”

신호를 지키며 운전하던 운전자는 갑작스러운 사고에 놀란 얼굴로 차에서 내려 공새찬에게 다가왔다.

“으아! 아프긴 졸라 아픈데 그래도 아직은 괜찮은 거 같아요.”

무려 5미터 가까이 날아간 공새찬은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다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아니, 빨간불에 그렇게 달리면 어떡해요?”

“죄송해요. 제가 신호를 못 봤어요.”

공새찬은 차마 신호를 무시했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못 봤다고 답했다.

“어디 심하게 아픈 곳 없어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근데 제가 원래 운이 졸라 좋거든요. 별 이상 없을 거예요.”

“그쪽 지금 사고 크게 났어요. 오토바이 운전 그렇게 하다 잘못하면 죽는다고요. 그쪽만 죽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다치게 할 수 있어요.”

사태 심각성을 모르는 건지 장난하듯 말하는 공새찬을 보며 중년 남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예. 죄송합니다. 그런데 아저씨 저 119에 신고 좀 해 주실래요?”

“알았으니까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요.”

운전자는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다친 사람을 빨리 병원으로 이송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보세요. 119죠? 여기, oo동 oo 마트 쪽 사거리인데요. 네. 맞아요. 사고가 나서 사람이 다쳤어요. 빨리 좀 와 주세요.”

잠시 뒤, 119가 빠르게 도착해 공새찬을 싣고 출발했다.

“저기 대원님…….”

구급차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새찬이 구급 대원을 불렀다.

“네, 환자분. 많이 아파요?”

“네, 열라 아프긴 한데요. 그게 아니라 저…… 여기 아래 주머니에 핸드폰 좀 꺼내 주시면 안 될까요?”

“여기 있어요.”

구급 대원은 공새찬이 가족에게 연락하려고 핸드폰을 꺼내달라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곧이어 들려온 다음 말에 차 안에 있던 두 명의 구급 대원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대원님 저 죄송한데 사진 한 장만 찍어 주시면 안 될까요?”

“네, 뭐라고요? 사진이요?”

순간 분명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한 구급 대원이 다시 한번 물었다.

“지금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한 거 맞아요?”

“네, 제가 인플루언서인데요. 제 모습 찍어서 SNS에 올려야 하거든요.”

점점 늘어나는 팔로우 수에 하루라도 사진을 올리지 않으면 찜찜한 공새찬은 지금 모습을 찍어서 올리면 ‘좋아요’를 많이 받겠구나 싶었다.

그는 규정 속도를 어기고 신호위반까지 하다 사고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이 심각한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

공새찬의 말을 들은 구급 대원들은 어이없는 표정과 함께 기가 막혔다.

“이봐요! 환자분. 지금 사고 나서 병원 가는 길이예요.”

“예. 저도 알아요.”

“그걸 아는 사람이 다친 모습이 뭐 좋다고 사진을 찍어요. 그냥 가만히 누워 있어요.”

“저, 괜찮은 거 같은데…….”

“아까 운전자 말 들어보니까 공새찬 씨 날아갔다고 했어요. 그게 겉은 멀쩡해도 속이 다쳤을 수도 있다는 소리예요. 알겠어요?”

“구급 대원님? 저 오토바이 탄 지 꽤 됐고, 자랑은 아니지만 그사이 사고도 여러 번 났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크게 다친 적은 없어요. 지금도 헬멧 써서 머리는 안 다쳤잖아요.”

“알았으니까 병원까지 이대로 가요. 알겠어요?”

“아…… 네.”

결국 싸한 분위기를 감지한 공새찬은 사진을 찍지 못하고 얌전히 있어야 했다.

“그래요? 네. 알겠습니다.”

“뭐래?”

구급대원들은 인근 병원에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oo 병원은 안 되겠는데요?”

“거기 응급실은 뻑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

“TA라고 하니까 베드 자리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러지 말고 다리 건너갈까요?”

“그러면 너무 멀어서 안 돼. 여울동으로 가.”

“여울동이면 우리병원이요?”

후배 구급대원의 말에 고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응급실에 연락 한번 해볼게요.”

“하지 말고 그냥 가.”

“그냥이요?”

“연락했다가 자리 없다고 하면 어떡해. 그러면 시간 너무 지체돼서 안 돼.”

고참 구급 대원이 자꾸 시간이 지체된다고 하는 건 공새찬이 오토바이 사고 환자기 때문이다.

대원들 역시 그동안 오토바이 사고를 많이 봤고 그 위험성을 알기에 서두르려는 것이었다.

“그건 그래요.”

“그러니까 오늘은 연락하지 말고 그냥 가.”

“근데 우리병원도 요즘 응급실 야간에 정신없다고 하던데 괜찮을까요?”

“거긴 원장님이 다르시잖아.”

이쪽 지역에서 일하는 구급대원들은 이미 태경의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구급대원들은 환자를 싣고 병원에 갈 때 미리 연락하고 가지만 그렇지 못 한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 응급실에 환자가 꽉 차 있으면 부득이하게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할 때도 있다.

물론 아주 위급한 상황일 때는 환자를 받아 주지만, 대체로 그때 담당 의사의 결정이 중요했다.

그런데 우리병원의 경우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빼고는 119에 실려 온 환자를 거부한 적이 없었다.

그건 다 태경의 지시 때문이었다.

항상 의료진에게 급한 환자를 그냥 보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환자 한 명이라도 더 받아서 이익을 내려는 게 아니라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환자를 위하는 태경의 마음을 잘 알기에 의료진은 그의 말을 잘 따랐다.

그리고 태경 역시 직원들의 처우를 잘해 주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로 불만을 가지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가만 보면 우리병원 원장님은 참 특이하세요.”

“워낙 환자 생각을 많이 하잖아. 환자 체크 잘하고 빨리 우리병원으로 가자고 해.”

“네, 알겠습니다.”

다른 응급실에 연달아 거부당하자 구급대원들은 우리병원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운전석에 있는 대원에게 이를 알렸다.

* * *

우리병원-

“우리병원 응급실입니다. 네?!”

스테이션에서 전화를 받던 간호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갑자기요? 연락을 미리 좀 주시지 그러셨어요? 잠시만요. 최 쌤?”

간호사가 베드에서 환자를 보고 나오던 최모나를 불렀다.

“네.”

“119인데 TA래요. 거의 다 왔다는데 어떡할까요?”

“TA인데 환자 돌려보낼 수는 없죠. 우리 쪽도 아직은 괜찮으니까 오라고 하세요.”

“네.”

전화를 끊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새찬과 구급대원들이 응급실에 도착했다.

“환자 도착했습니다.”

“으아악! 아아!”

그사이 공새찬은 구급차에 실려 올 때보다는 아픔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아주 심하게 죽을 정도로 아파하진 않아 보였다.

“이쪽 처치실로 들어가겠습니다.”

대기하고 있던 최모나가 베드에 붙어 처치실로 함께 이동했다.

“환자분, 어디가 아프세요?”

“선생님, 인계하겠습니다.”

함께 들어온 구급 대원이 환자 상태에 관해 자세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차대 오토바이 TA(traffic accident, 차 사고)입니다. 발견 당시 의식은 있었고, 헬멧은 착용했습니다. 현재 보이는 외상은 오른쪽 상지와 하지에…….”

“사고 당시 LOC(의식소실)는 없었습니까?”

구급 대원의 설명이 끝나고 최모나의 질문이 이어졌다.

“네, 없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제 저희가 할게요. 감사합니다.”

“네, 수고하십쇼.”

구급대원들이 처치실을 나가고 최모나가 공새찬의 머리맡으로 가는 동안 다른 근무자들은 우선 환자의 상, 하의를 가위로 잘랐다.

그리고 양팔 혈관에 라인을 설치하고 누군가가 옆으로 초음파를 갖고 왔다.

그 뒤, 팔에 혈압계를 감고 나머지 준비도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아……. 누구세요?”

얼굴을 찡그리고 있던 공새찬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환자분, 여기 어딘지 알겠습니까?”

“아! 씨x 존x 아프네. 아까는 이렇게 안 아팠던 거 같은데……. 젠장!”

“이봐요? 환자분 여기 어디인지 말할 수 있습니까?”

“알아요. 병원이잖아요. 누나가 의사예요? 뭐, 나 많이 다쳤어요?”

날티를 팍팍 풍기는 가벼운 말투에 최모나를 포함한 의료진들은 잠시 어이가 없었다.

“누나 아니고 의사입니다. 우선은 검사를 진행할 겁니다. 지금으로 봐서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지만, 검사를 해 보고 정확히 설명해 줄게요.”

“아니, 누나 괜히 겁주지 말고 검사 많이 해서 돈 많이 내게 하지도 마세요. 저 오토바이 사서 지금 거지예요.”

“이보세요. 환자분? 여기 누나라는…….”

또다시 누나라는 말에 보다 못한 임정숙 간호사가 한마디 하려던 그때였다.

“야!! 이 새끼야!!”

단전에서 끌어올린 사자후에 최모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공새찬 너 진짜 미쳤구나.”

그러자 처치실 밖에 웬 여자가 서 있었다.

“아, 환자 가족이고 친누나분이시래요.”

방금 처치실로 들어온 간호사가 놀란 의료진에게 알려 줬다.

“누, 누나? 누나가 어떻게 여길?”

“시끄럽고 공새찬 너, 의사 선생님께 말버릇이 뭐야? 똑바로 말 안 해? 어디 싸가지 없이 누나야 누나는! 빨리 사과 안 드려?”

“죄송……해요.”

“똑바로 안 할래? 똑바로 해!”

“죄송합니다.”

누나의 등장에 공새찬은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최모나를 향해 사과했다.

“괜찮습니다. 다음부터 주의해주세요.”

최모나는 바이탈도 모두 정상이고 생명의 지장이 없다는 판단이 들자 보호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처치실 밖으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기 누워 있는 철없는 놈의 누나입니다.”

조금 전, 처치실이 떠나가라 소리쳤던 모습과 달리 다소곳하게 인사한 누나는 20대 후반의 여자였다.

한눈에 봐도 공새찬의 누나는 보통 여자가 아니었다.

웬만한 남자보다 넓은 어깨와 근육이 자리 잡은 팔이 전문적으로 운동을 한 사람이라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우선 검사를 더 해 봐야겠지만, 공새찬 씨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우측으로 외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골절이 동반됐을 것으로 보여요. 따라서 전신 CT를 우선 진행할 거고 필요하다면 바로 수술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선생님. 생명에 지장만 없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팔다리 하나 정도는 부러져도 크게 상관없으니 치료만 잘 부탁드릴게요.”

최모나는 무서울 정도로 태연한 누나의 말에 살짝 놀랐다.

게다가 그녀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대부분 보호자는 골절이라면 굉장히 슬퍼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태연함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친누나라고 하니까 그냥 넘어가지만, 남도 이렇게 태연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최모나의 이런 감정을 알았는지 누나가 납득할 만한 그 사정을 설명했다.

“제 태도랑 말투 때문에 많이 놀라셨죠?”

“예……? 아닙니다.”

“사실 저놈이 아직 인간이 덜돼서 그래요. 고등학교 때문에 그렇게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지금까지 사고가 여러 번 났어요.”

“아, 그러셨군요.”

“저 여기 오기 전에 사고 현장에 갔었는데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차와 정말 크게 충돌했더라고요. 만약 이번에 다 정상이면 또 오토바이를 탈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마음이 좀 복잡하네요.”

누나의 얼굴에는 근심 걱정이 가득했다.

“그것도 얌전하게 제대로 잘 타면 모르겠는데 험하게 타고 다니니까 속이 조마조마해요. 다음에 혹시 또 사고가 나면 그땐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래서 차라리 어디 다쳐서 못 탔으면 좋겠어요.”

“아…….”

설명을 들은 최모나는 그제야 누나의 심정이 이해됐다.

아마 전국의 응급실 의사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면, 그중에 하나는 오토바이는 조심 또 조심하라는 말일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고가 나면 목숨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이 아무리 보호 장비를 잘 착용하고 아무리 신호를 잘 지켜 탄다고 해도 차와 충돌하면 오토바이 운전자는 더 크게 다치게 된다.

신체 곳곳이 골절되는 건 물론 충돌로 장기가 튀어나온 사람, 신체 일부가 아주 으스러진 사람 등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끔찍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물론 오토바이로 사고 난 사람들이 모두 위험한 건 아니지만, 차 운전자보다 더 크게 다치는 경우가 많은 건 사실이었다.

가끔은 모든 의료진이 달라붙어 살리고 싶어도 살릴 수 없을 정도로 다쳐서 오는 환자도 꽤 있었다.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와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 그리고 선생님. 죄송해요.”

공새찬의 누나는 별안간 고개 숙여 사과했다.

“네? 아니요. 보호자분이 죄송할 문제는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조금 있으면 저희 부모님이 오실 건데, 아버지 때문에 좀 시끄러울 수도 있어서요.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드린 거예요.”

“별말씀을요. 괜찮습니다.”

껄렁한 동생과 달리 정중하게 사과하는 누나였다.

부모님이 알면 당연히 걱정과 함께 화가 날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최모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공새찬의 아버지의 분노로 응급실이 발칵 뒤집힐 거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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