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48화 (347/472)

348화. 반전의 검사 결과

띠리릭-

상당한 체격을 자랑하는 중년 남자가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거실로 들어왔다.

“아함! 당신이에요?”

“뭐야, 당신 안 잤어?”

안방에서 자다 일어난 아내가 나오자 남편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까지 기다리다가 깜빡 잠들었나 봐요.”

“나 때문에 깼네. 뭐 하러 일어나.”

“훈련 갔다 오는 날인데 어떻게 안 일어나요.”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간 집에 돌아온 남자는 공새찬의 아버지로, 운동부 실업팀의 감독이었다.

그는 주기적으로 가는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길이었다.

“훈련은 잘됐어요?”

“그럼. 저번 시즌에 성적이 좋아서 그런지 선수들이 다들 파이팅이 넘쳐.”

“잘됐네요. 근데 오늘은 평소보다 더 늦게 끝났나 봐요.”

“코치들이랑 저녁 먹고 훈련이랑 선수들 이야기하다 보니까 좀 늦었어.”

“고생했어요. 피곤할 텐데 어서 씻고 자요.”

“알았어. 당신도 얼른 자. 나 씻고 들어갈게.”

“맞다. 당신 새찬이한테 갔다 왔다고 했나?”

“저번 주에 갔다 왔죠.”

“그 녀석 이상한 낌새나 그런 거 없었어?”

“당신도 참. 이상한 낌새가 있을 게 뭐 있어요. 새찬이 이제 정신 차렸으니까 이제 의심 좀 그만해요. 당신이 하도 그래서 내가 주차장이랑 집 안도 잘 봤는데 오토바이랑 키는 코빼기도 안 보였어요.”

며칠 전, 아들 집에 갔던 공새찬의 어머니는 집 안을 청소해 주면서 온 집안을 구석구석 살펴봤다.

행여 오토바이와 관련된 물건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우려했던 마음과 달리 그런 물건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오기 며칠 전부터 공새찬이 근처 친구네 집에 오토바이부터 시작해 촬영 카메라에 헬멧까지, 보고 혼날 만한 물건을 전부 옮겨 놨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들키지 않았던 것이다.

“학교는? 그 녀석 학교는 잘 다니고 있대?”

“네, 열심히 잘 다니고 있대요. 내가 보니까 이제 정신 차린 거 같아요. 오토바이 이야기는 한 번도 안 꺼냈다니까요.”

“그러면 다행이고. 만약 또 한 번 오토바이 타면 새찬이 그놈은 사람도 아니야. 그때는 진짜 나 죽고 지도 죽는 거야.”

“알았으니까 그만하고 얼른 씻기나 해요.”

남편이 화장실을 가자 속옷을 가지러 방에 들어갔던 아내는 늦은 시간 울리는 휴대폰 벨 소리에 통화 버튼을 누르며 거실로 나왔다.

“어, 딸.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엄마. 저기…… 좀 일이 생겼어.

“일이라니?”

-그러니까 그게…….

“너 진짜 무슨 일 있는 거야? 어디 아파?”

크면서 말썽 한번 부린 적 없이 운동만 열심히 했던 딸이기에 갑작스러운 전화에 어머니는 딸이 아픈 건 아닌가 싶었다.

철컥-

“왜? 새윤이가 아파?”

아내의 높아지는 통화 소리에 화장실에서 씻으려던 남편이 속옷 차림으로 급하게 밖으로 나왔다.

-아픈 거 아니야. 아빠 옆에 계셔?

“응. 전지훈련 갔다 오신 지 얼마 안 됐어. 너 진짜 무슨 일인데 이렇게 뜸을 들여. 엄마 걱정되잖아. 빨리 말해.”

-엄마, 스피커폰으로 아빠랑 같이 들으세요.

“새윤아. 아빠다. 무슨 일이야?”

-제, 일은 아니고 두 분…….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알았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얼른 말하기나 해.”

-새찬이가 지금 응급실에 있어요.

“새찬이가 응급실에 있다니, 새윤이 너 그게 무슨 일이야?”

“오토바이냐?”

아내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뺏은 남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마디를 던졌다.

-…….

“새윤아? 오토바이냐고?”

-네, 아빠. 그동안 몰래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나 봐요. 아까 끌고 나갔다가 신호를 위반하고 사고를 냈어요.

“어휴! 내가 미쳐. 많이 다쳤대?”

이번에는 놀란 엄마가 남편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뺏으며 말했다.

-조금 전에, 의사 선생님과 말씀 나눴는데 자세한 거는 검사하고 결과 나와야 할 거 같아요. 제가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보이긴 했어요.

“어느 병원이야?”

-여울동 우리병원이요.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어쩐지 너무 조용하길래 불안 불안하더니만……. 내 이 자식을!”

화가 머리끝까지 난 공새찬의 아버지는 벗어 둔 옷을 빠르게 주워 입더니 거실 한쪽에 있던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엄마 아빠 갈 테니까 끊어. 어머! 세상에! 여보? 왜 그래요.”

그 모습에 놀란 아내가 급히 전화를 끊으며 남편을 말리려 들었다.

“새찬이 지금 사고 나서 병원에 있잖아요.”

“그 자식 사고 나서 병원에 있는 게 처음이야? 내가 오늘 그 새끼 가만 안 둘 거야.”

“여보 좀 진정해요.”

“이게 진정할 일이야? 나 말리지 마.”

쾅-

“어머, 여보!! 이거 일 났네. 일 났어.”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화가 난 남편은 그대로 현관문을 박차고 집을 나갔다.

* * *

응급실-

“최 쌤, CT 올라왔어요.”

“네, 확인할게요.”

“이 환자요, 제가 아까 듣기로는 사고 나고 5m 미터 정도 날아갔다고 하던데 정말 억세게 운이 좋네요.”

스테이션에 있던 간호사가 모니터를 보고 있는 최모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다리만 골절이 된 거죠? 진짜 운이 좋은 사람이네. 맞다! 최 쌤도 아까 그 문신 보셨어요? 몸에 문신이 꽤 있더라고요. 뭔가 양아치 같은 느낌이 나던데 안 그래요?”

“…….”

간호사의 물음에도 최모나는 아무 대꾸 없이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최 쌤?”

기분 탓인지 진지함을 넘어 심각해 보이는 최모나를 보며 간호사는 선뜻 이해가 가질 않았다.

골절이 좋은 결과는 아니지만,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환자의 결과를 이렇게 심각하게 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까 말한 대로 5m를 날아가서 이 정도면 사실 평생 운을 다 사용한 정도가 아니라 천운이었다.

“최 쌤, 골절에 너무 심각하신 거 아니에요?”

“골절이면 그런데 아무래도 골절이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네?!”

“선생님. 최모나입니다.”

모니터를 보고 있던 최모나는 얼른 태경에게 콜을 넣었다.

“조금 전에 보고드린 TA 환자 CT 올라왔는데 좀 이상합니다. 오셔서 보셔야 할 거 같아서요.”

잠시 후, 중환자실에 있던 태경이 응급실로 와서 CT 결과가 올라와 있는 모니터를 집중해서 확인했다.

“골절됐네.”

“최 선생이 보기에는 어때?”

“우선 이쪽이 세 조각으로 골절됐습니다.”

태경이 CT를 내리자 무릎 아래 긴 뼈가 정확히 세 조각으로 골절된 상태였다.

“맞아. 그런데 이게 큰 문제는 아니고. 여기!”

태경은 골절된 뼈가 아닌 주변 근육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 보여?”

“네, 선생님. 밝은 파편이 있습니다.”

태경이 가리킨 근육 중간에는 희미하고 가늘게 빛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밝은 빛이 보였다.

방금 전에 말한 그 파편들이었다.

“최 선생, 이게 뭔지 알겠어?”

“그게……. 혹시 조영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모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맞아.”

조영제는 CT를 더 잘 보기 위해 혈관에 투여하는 약물이다.

조영제로 인해 장기 전반이나 혈관이 밝아 보일 수는 있으나 이렇게 따로 덩그러니 밝아 보일 수는 없었다.

“조영제가 덩그러니 저렇게 밝아 보이려면 딱 하나의 경우가 있어야겠지? 조영제가 새어 나오고 있다는 뜻이야. 그럼 그게 뭐겠어?”

왜 조영제가 저곳에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최모나는 태경의 말을 듣자마자 뭔가 떠올랐다.

“아! 설마 혈관 아닙니까?”

“그래 맞았어. 혈관이야.”

“지금 이 환자는 사고로 혈관이 끊어진 상태야.”

그랬다.

사고 당시 외적으로 큰 부상이 없어 보였고 병원에서 검사받기 전 의료진도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검사 결과는 반전이었다. 단순히 골절이 문제가 아니라 혈관이 찢어져 있던 것이다.

“선생님, 혈관이 찢어졌다면 이 환자 다리가…….”

“자칫하면 발부터 썩고 다리를 절단해야 할 수도 있어. 아니지……!”

태경은 말을 하다 말고 급히 공새찬에게 달려갔다.

스테이션에서부터 느껴지던 다섯 번째 바이탈은 3단계로 환자가 있는 처치실에 들어오자 그 냄새가 가득했다.

손을 뻗은 태경은 공새찬의 발끝, 동맥이 흘러야 하는 곳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없어. 박동이……없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느껴져야 할 박동이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초음파! 빨리 초음파 갖고 와 봐요?”

다급한 외침에 직원들이 초음파를 갖고 가자 환자 발 안쪽으로 동맥 길에 초음파를 작동시켰다.

화면상에 혈류량이 보이다가 태경이 초음파 기계를 어느 지점에 도달하자 혈류가 보이지 않았다.

“이 환자, 지금 빨리 수술 준비시켜요. 빨리!”

“네, 알겠습니다.”

그 말에 주변에 있던 의료진이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누나의 얼굴에는 점점 걱정이 짙어지고 있었다.

“뭐야? 뭔데? 저 뭐, 큰일 났어요?”

“선생님, 제 동생 안 좋은 건가요?”

그사이 고통을 호소하다 잠이 들었던 공새찬은 눈을 뜨며 물었고, 누나 역시 태경에게 다가와 무슨 일인지 궁금해했다.

“지금 환자분은 하지의 동맥 일부분 손상되었습니다.”

“하지 동맥이요?”

“하지 뭐? 누나 이 선생님 뭐라고 하는 거야?”

“정신 사나우니까 너 좀 가만있어. 선생님 지금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이에요?”

“쉽게 말해 발까지 혈액 공급이 안 되고 있어요.”

“그게 심각한 건가요?”

“이 상태로 계속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 그땐…….”

설명하는 태경의 표정도 듣고 있는 누나와 공새찬의 표정도 모두 진지하던 그때였다.

“야! 이 새끼야!!”

모두를 놀라게 한 고함이 응급실에 쩌렁 울리며 가까이 들려왔다.

“너 이 자식! 뭐 잘했다고 누워있어? 저 새끼 저거 몸에 문신까지 한 거야?”

한 글자 한 글자마다 분노가 느껴지는 말투의 주인공은 연락받고 급히 달려온 공새찬의 아버지였다.

“아, 아버지?”

까불 까불거리던 공새찬은 아버지를 보자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보호자분 진정하세요.”

“이러지 말고 나가서 저랑 얘기하세요.”

“이거 놔요! 나 오늘 저 자식 죽이려고 여기 온 겁니다. 저거 사람도 아니에요.”

한 손에 골프채를 들고 온 그를 보고 보안요원인 장득칠과 최 팀장이 따라오며 말렸지만, 쉽지 않았다.

공새찬의 아버지는 장득칠 못지않게 키도 크고 덩치도 상당했다.

그런 사람이 골프채를 들고 처치실로 다가오자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보! 말로 해요. 말로. 예?”

“그래요. 아빠. 일단 골프채부터 좀 내려놓고 말로 하세요.”

“저놈은 말로 해서 들은 놈이 아니야.”

딸은 물론 아내까지 그를 말리며 애원했지만, 아들에게 크게 실망한 아버지는 쉽게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너 새찬이 이 자식 너, 당장 안 나와? 뭘 잘했다고 거기 쳐 누워 있어?”

“아, 아버지 잘못 했어요. 일부러 사고 낸 거 아니에요. 죄송해요.”

“잘못? 네가 잘못을 알아? 잘못을 아는 새끼가 아빠 엄마 속이고 휴학까지 하면서 오토바이를 또 사서 타! 네가 그러고도 사람 새끼냐? 어! 너 언제 사람 될래?”

“죄, 죄송해요. 아버지. 엄마? 누나? 아버지 못 들어오게 좀 말려 줘!!”

행여 아버지가 처치실 안으로 들어올까 싶어 공새찬은 잔뜩 겁에 질려 긴장하고 있었다.

“여러 말 할 거 없어. 오늘 너 죽고 나도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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