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화. 한 번에 두 가지 수술
행여 아버지가 처치실 안으로 들어올까 싶어 공새찬은 잔뜩 겁에 질려 긴장하고 있었다.
“여러 말 할 거 없어. 오늘 너 죽고 나도 죽어.”
“아버지 살려 주세요. 엄마, 빨리 아버지 좀 말려 봐!!”
아버지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공포감에 공새찬은 순간 사고로 인한 고통도 잊을 정도였다.
“여보! 여기 병원이에요. 우리만 있는 거 아니라고요.”
“그래요. 아빠, 새찬이 일단 치료부터 받아야 하니까 혼내는 건 그다음에 하세요. 네?”
“보호자분, 일단 고정하시고 이것 좀 저희 주세요. 그러다 사람 다쳐요.”
“다 필요 없어! 저게 쓰레기지 사람이야?”
장득칠과 최 팀장이 간신히 골프채를 뺏긴 했지만, 아내와 딸의 만류에도 공새찬 아버지의 분노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아들을 보는 그의 눈빛은 마치 원수를 보는 것처럼 날이 잔뜩 서 있었다.
전후 사정을 모른 채 골프채를 들고 씩씩거리는 모습만 보면 누가 봐도 공새찬의 아버지가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도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조금 무뚝뚝한 면은 있어도 딸과 아들에게는 다정하려고 노력하고 항상 응원하는 그런 멋진 아버지였다.
그런데 공새찬이 오토바이를 타면서 부자 사이가 틀어졌다.
‘여보, 새찬이 사고 났대요.’
‘뭐야? 또 오토바이를 또 탔어! 걔 진짜 어쩌려고 그래? 이 녀석이 진짜!’
그도 그럴 것이 벌써 오토바이로 인한 사고가 여러 번이었다.
공새찬의 아버지가 가족 중에 특히 더 이렇게 화를 내는 건, 젊은 시설 가장 친한 친구를 오토바이 사고로 잃었기 때문이었다.
개똥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는 10년 이상 오토바이를 타면서 신호위반 한 번 한 적 없고 모든 보호 장비를 갖추고 안전하게 타던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졸음운전을 하던 운전자의 부주의로 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친구들과 낚시 여행을 가려고 차로 이동하던 중 일어난 사고였기에 공새찬의 아버지는 사고를 직접 목격했다.
신체 곳곳이 말로 설명하기도 힘들 정도로 심하게 훼손됐으며 그 형태를 알아볼 수도 없었다.
너무도 끔찍한 친구의 모습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급하게 옮겼던 인근 병원 의료진조차 참담한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건 친구는 이번 여행을 끝으로 다시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으려고 했었다.
‘개똥이 너도 이제 늙었어. 그러니까 그놈의 오토바이 좀 그만 타.’
‘안 그래도 우리 와이프 올해 소원이 나 오토바이 그만 타는 거란다. 그래서 이번에 여행 갔다 오면 팔려고.’
‘그래? 그것참 잘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팔려고 하니까 아까워. 몰래 탈까?’
‘헛소리 그만하고 내가 제수씨한테 이르기 전에 여행 끝나면 바로 팔아 버려. 내가 꼭 확인한다.’
‘농담이야. 안 그래도 친한 사장님한테 말해 놨어. 우리 와이프 마음 편하게 살게 해 줘야지.’
친구는 결국 아내와의 약속을 못 지키고 그렇게 끔찍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런 사정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이 오토바이를 타는 게 치가 떨릴 정도로 싫었던 것이다.
특히 사고가 났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혹시라도 예전 친구처럼 그런 끔찍한 사고를 당한 건 아닌지 가슴이 철렁할 때가 많았다.
그렇게 늘 마음 졸이고 있다 아들이 약속을 깨고 사고를 냈으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놀랍게도 공새찬은 아버지가 친한 친구를 오토바이 사고로 잃은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항상 그때뿐이었다. 그러니 아버지 입장에서 화가 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빠!!! 새찬이 때문에 속상하시고 화나신 거 아는데요. 쟤! 지금 상태가 위험하대요.”
“위, 위험하다니? 새윤아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 싶은 딸이 버럭 소리를 높이고 아버지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그러자 남편을 말리고 있던 아내가 깜짝 놀라 딸을 쳐다봤다.
“새찬이 많이 안 좋은 거야?”
“그런 거 같아.”
“차라리 잘됐어. 저놈 그냥 어디 부러진 채로 살라고 해. 멀쩡한 몸으로 오토바이 탄다고 지랄하다 지 몸 지가 저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고쳐 놓으면 또 오토바이 타러 나갈 놈이야. 저놈이.”
“여보!!! 당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새찬이가 위험하다잖아.”
“위험하긴 뭘 위험해? 골절 좀 된 거 갖고 사람 그렇게 쉽게 안 죽어.”
“맞습니다.”
더 이상 상황을 지켜볼 수 없던 태경이 공새찬 아버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방금 보호자분이 한 말처럼 골절로 사람이 쉽게 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공새찬 환자의 경우 단순히 골절이 문제가 아닙니다.”
“선생님! 우리 새찬이 많이 안 좋은가요?”
“엄마, 이분 원장님이신데 새찬이 발까지 혈액 공급이 안 된다고 하셨어.”
“뭐! 발에 피가 안 통한다는 말씀인가요?”
자식에게 안 좋은 일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공새찬의 어머니는 점점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이대로 계속 혈액 공급이 되지 않으면 그땐 발에 괴사가 일어납니다.”
“괴, 괴사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요?”
“공새찬 환자의 다리를 절단해야 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
“그게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 절단이라니요?”
절단이라는 말에 반쯤 등을 돌리고 서 있던 공새찬의 아버지도 살짝 놀란 듯 움찔했다.
옆에 있던 어머니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 같은 얼굴로 사색이 되었다.
“선생님! 우리 애 아직 어린데 다리를 절단할지도 모른다니요. 그러면 안 돼요.”
“싫어!! 나 다리 절단해야 하는 거야? 안 돼?? 엄마 나 좀 살려 줘.”
처치실 안에서 듣고 있던 공새찬도 사태의 심각성을 이제야 깨달은 듯 전보다 더 겁에 질린 채 소리쳤다.
“저 다리 잘리는 거 싫어요. 저 좀 살려 주세요. 저기요? 선생님들 제 다리 좀 빨리 어떻게 좀 해 줘요.”
“뭘 잘했다고 큰 소리야. 넌 입 다물고 있어. 마음 같아서는 수술이고 나발이고 그냥…….”
“여보! 당신도 좀 그만해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남편의 화가 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들의 다리가 절단될지도 모르는 판국에서 계속 화만 내는 남편이 못마땅했다.
“화가 나서 그렇지. 화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당신만 화나요? 나도 쟤 때문에 화나요. 그런데 새찬이 우리 아들이잖아요. 다리가 걸린 문제라고요. 일단 수술하고 난 다음에 죽이든 살리든 당신 마음대로 하고, 지금은 화 좀 가라앉히고 소리 좀 그만 질러요.”
“휴! 내 팔자야!”
아버지는 답답한 마음을 한숨으로 내뱉으며 태경에게 물었다.
“그래서 수술하면은 저 녀석 다리는 괜찮은 겁니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우리 새찬이 수술하면 좋아질 수 있는 거죠? 그렇죠?”
“유일한 해법은 끊어진 혈관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연결이 가능하다는 말씀인가요?”
“연결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설령 가능해도 쉽지 않습니다. 정맥도 연결되어야 하고 길이도 맞아야 합니다.”
“선생님 우리 애 꼭 좀 살려 주세요. 제가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저와 의료진이 노력하겠습니다.”
어머니는 두 손을 모으며 간절히 말했고,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아버지는 입을 꾹 다물며 별말이 없었다.
“엄마! 나 다리 없어지면 어떡해?”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야. 지금은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수술 잘 받고 온다는 생각만 해.”
“그래, 일단 네 몸이 우선이니까 다른 생각은 하지 마.”
가족들은 잔뜩 겁에 질린 공새찬을 응원하며 달랬다.
그 뒤, 수술을 위해 수술 동의서를 받고 빠르게 수술 준비가 끝나자 공새찬은 수술방으로 옮겨졌다.
“선생님, 공새찬 환자 마취됐습니다.”
의진이 꼼꼼하게 마취를 시작하고 태경은 일회용 수술 가운을 걸쳤다.
오늘은 정형외과적 수술과 일반외과적 수술이 혼재된 수술이다.
세 조각으로 골절된 뼈는 맞춰서 고정해 주어야 하고, 끊어진 혈관도 연결해 줘야 한다.
사실 혈관을 먼저 연결해야 하겠지만, 그럴 경우 골절된 뼈를 맞추다가 다시 끊어질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시간이 촉박하지만 어쩔 수 없이 골절 수술부터 진행하기로 했다.
혈관 공급이 네 시간 이상 되지 않으면 일부 세포가 죽어서 썩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한 시간! 한 시간이다.’
사고 시간을 고려할 때 세 조각으로 부러진 골절 수술을 한 시간 이내로 끝내야 했다.
“다들 알겠지만, 오늘은 부러진 뼈도 고정하고 혈관도 연결해야 하니까 다들 집중해 줘요. 특히 골절 수술은 한 시간 안에 끝내야 해요.”
“네, 원장님.”
“알겠습니다.”
태경의 말에 수술방에 모인 의료진의 눈빛이 환자에게 집중됐다.
“그럼 수술 시작합니다. 메스!”
순식간이었다.
“보비.”
평소에 세심하고 꼼꼼한 태경과는 사뭇 달랐다.
슥-
빠르게 가르고 신속하게 자르며 들어갔다. 게다가 사소한 출혈은 무시했다.
그만큼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평소에 지혈하면서 시야를 확보하던 방식이 아니라 안 보이면 멸균 거즈로 닦고 그냥 들어가 버렸다.
‘엄청 빠르다.’
‘확실히 평소랑 다르셔.’
태경의 집도를 보는 의료진 또한 그 다름을 느끼며 원활한 수술이 될 수 있도록 그 속도에 맞춰 빠르게 움직였다.
“클램프(clamp, 위 모양의 집게로 끝이 갈고리로 되어 있어서 부러진 뼈를 집어서 고정할 수 있음) 주세요.”
분리된 세 조각 중 위의 두 개의 면을 빠르게 맞추고 연결 부위는 클램프를 이용해서 고정한다.
시간상 출혈을 완전히 잡지 못해서 피로 인해 시야가 온전하지 못했다.
물론 옆에서 이찬희가 석션(suction, 흡입하는 기구로 피 등을 빨아들임)을 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잘 보이지는 않았다.
즉 태경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전히 손의 감각으로 맞추고 있었다.
수술을 들어오기 전, 최모나는 자진해서 이찬희와 어시를 바꾸며 공새찬의 상태를 자세히 설명해 줬다.
외과적 수술만 있다면 상관없었지만, 뼈를 고정하고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정형외과 수술이 함께 진행되기에 본인보다 힘이 좋은 이찬희와 어시를 바꾼 것이었다.
환자의 원활한 수술을 위한 결정이었다.
드르륵-
클램프 고정하는 소리가 나고 태경은 다시 아래 두 개의 뼈를 맞추려고 찾고 있었다.
“이찬희?”
“네, 선생님.”
“클램프로 위에 고정한 골절 면을 몇 개 더 고정시켜. 큰 클램프로!”
“알겠습니다!”
지금 수술방에서는 드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시스턴트랑 써전이 각기 다른 부위에서 수술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시간이 촉박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드르륵-
“선생님, 됐습니다.”
“이쪽 여기, 와서 당겨 봐. 골절라인이 잘 안 맞네.”
“여기 말인가요?”
“그래. 네 쪽으로 더 당겨. 아니, 더! 더!”
물론 씨암(C-arm, 실시간 X-ray)을 보면서 맞추고 각도를 보면서 하면 힘이 덜 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힘으로 밀어붙일 때이다.
“더! 더! 그렇지 지금 상태 유지하고 좀 더! 클램프! 빨리.”
-드르륵
“잠깐 놔 봐. 유지됐네. 클램프 남은 거 다 주세요.”
태경이 여러 개 고정기구로 맞춘 뼈를 고정한다. 그러고 나서 50cm 정도 되는 기다란 핀을 꺼냈다.
무릎을 열고 나서 이제 그 커다란 핀을 먼저 찔러 넣은 가이드(guide, 방향 지침)를 따라서 골절된 뼈 중심에다가 망치로 있는 힘껏 온 힘을 다해 때려 박았다.
탕! 탕! 탕! 탕!
공사장에서나 들을 법한 둔탁한 소리가 수술방에 가득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