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화. 작디작은 도미노 100개
탕! 탕! 탕! 탕!
공사장에서나 들을 법한 둔탁한 소리가 수술방에 가득 울리기 시작했다.
무식하게 힘만 쓰는 단계로 보이지만 지금 이 단계는 정말 상당히 중요한 단계였다.
일정한 방향으로 박지 않으면 자칫 뼈 안에서부터 밖으로 뚫고 나올 수도 있었고, 간신히 맞춰 놓은 골절 라인이 틀어질 수도 있었다.
그만큼 중요했고 그만큼 온전히 감각과 힘의 영역이다.
‘어쩜 저렇게 힘 조절을 잘하실까? 저것도 다 경험이고 능력이겠지?’
망치질에 집중하는 태경을 보며 이찬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탕! 탕탕! 탕!
신나게 망치질을 하던 태경이 골절된 뼈의 옆면을 유심히 보더니 좌우로 다시 한번 뼈를 훑어봤다.
그리고서는 망설임 없이 망치를 들고 연신 두들기며 힘차게 박아 넣었다.
탕! 탕! 탕! 탕! 탕! 탕!
어느새 세 조각으로 골절되었던 뼈가 완전히 고정되었다.
“선생님, 고정됐습니다.”
“그러게. 잘 고정됐네.”
45분.
절개에서부터 지금까지 정확히 4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정말이지 터무니없이 빠른 시간이었다.
‘45분이라니. 한 시간도 안 걸렸잖아? 말도 안 돼!’
이찬희는 수술방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감탄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환자를 만나고 더 익혀야 저렇게 감각적으로 잘할 수 있을까 싶었다.
‘저러니까 신화대에서 괴물로 불렸지. 참! 대단하신 분이야.’
이상하게 오늘따라 의사로서 태경에 대한 존경심이 평소보다 훨씬 크게 느껴지는 이찬희였다.
생각해 보면 김건형이 주기적으로 찾아와 태경을 탐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새삼스럽지만 이런 스승 밑에서 배울 수 있고, 자신과 최모나가 참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이찬희?”
“네, 선생님.”
“뭘 그렇게 놀란 표정을 짓고 있어?”
“어떻게 안 놀라요. 45분 만에 뼈를 다 맞췄는데 어떻게 안 놀라요? 선생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대단할 거 하나도 없어. 자! 이제 초음파 들어오고 마이크로(micro, 길이의 단위로 미세한 조작이 필요한 수술 도구들을 통상 일컫는 표현) 기구들 다 들어오세요. 빨리요!”
“네, 알겠습니다.”
그 말에 기구를 옮기는 간호사의 손길이 빠르게 움직였다.
방금까지 망치와 톱 등, 마치 목공소를 떠올리게 하던 수술 도구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혈관 수술을 위한 기구들이 나열되기 시작했다.
초음파도 수술방 밖에서 들어오고 멸균된 수술 필드에서 사용할 수 있게 멸균 비늘로 덧입혀 쌓여졌다.
“초음파!”
이제 골절된 곳에서부터 아래로 태경이 초음파를 이용해 면밀히 혈관을 관찰했다. 그러자 미약하게 흐르던 혈류가 끊기는 곳이 보였다.
‘여기다!’
그 지점을 빠르게 멸균된 펜으로 표시했다.
“메스! 아니, 바로 보비!”
“여기 있습니다.”
이번에는 아까 골절된 뼈를 고정할 때와는 전혀 달랐다.
출혈이 나면 하나하나 잡아 가면서 파고들었다.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박리하면서 나아가자 아주 얇디얇은 동맥이 보였다.
“상태가 안 좋네요.”
“외상 때문에 그렇지.”
이미 외상으로 인해 일부분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끊어진 두 곳의 혈관을 이으려면 어쩔 수 없이 양쪽 혈관을 잡아당겨야 한다.
여기서도 순전히 감각의 영역이었다.
너무 많이 당기면 또 위의 어딘가에서 끊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반대로 너무 약하게 당기면 연결된 곳이 끊어질 수도 있었다.
가장 어려운 말인 적당히 당겨서 적당한 강도로 혈관을 조심히 이어야 한다.
한마디로 힘의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한다는 소리다.
그런데 그 적당한 힘의 밸런스를 아무도 모른다. 순전히 집도의가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로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조심해야 할 것은 연결 시 너무 강하게 하거나 좁게 연결하면 안에서 동맥의 와류가 생기게 되고 그 와류로 혈전이 생길 수도 있다.
혈전이 생기면 어렵게 연결해 놓은 혈관이 다시 막힐 수도 있기에 조심해야 하는 것은 물론, 염두해야 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시간 또한 촉박했다.
사실 이미 어느 정도 세포가 죽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태경은 고민할 틈이 없었다.
“자, 불독 클램프(bulldog clamp, 집게 모양으로 균일한 힘으로 혈관을 잡아서 혈류를 차단하는 기구)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선생님.”
태경은 이제 끊어진 곳에서 몸쪽 혈관을 기구로 잡아 출혈이 더 이상 생기지 않게 했다.
그리고서 끊어져 떨어져 나간 발까지 이어져 있는 혈관을 집어서 유심히 봤다.
“……!”
“선생님, 왜 그러세요? 뭐가 잘 못됐습니까?”
옆에 있던 이찬희가 미간을 좁히며 혈관을 보고 있는 태경에게 물었다.
“안 되겠어. 지금 혈관 길이가 부족해. 그라프트(vascular graft의 준말, 인공혈관) 주세요.”
“네, 원장님. 사이즈는 얼마로 할까요?”
“그냥 있는 거 다 갖고 와요.”
태경은 마음이 급했다.
“어서 빨리!”
수술방에 모인 의료진 역시 그 마음을 다들 알기에 오더가 떨어지자마자 누군가가 튀어 나가듯이 빠르게 뛰었다.
그중 남자 간호사가 급하게 수술방 밖에 물품이 있는 구석까지 뛰어가서 인공혈관들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 어디쯤 있었는데……. 분명히 아!”
한시가 급한 타이밍에 급하게 인공혈관을 찾던 남자 간호사는 아예 인공혈관이 모여 있는 서랍장 자체를 빼내 통째로 들고 수술방 안으로 뛰어왔다.
스르륵-
수술방 문이 열리자 그는 들고 온 서랍을 태경에게 보여 줬다.
“원장님, 여기 있습니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저기 숫자 5라고 되어 있는 거…….”
서랍 안을 빠르게 훑어본 태경이 말을 이었다.
“이거요?”
“네, 그거 까 줘요. 그리고 실은 7번(혈관을 봉합하는 데 주로 사용되는 굵기의 실로, 실의 양쪽에 바늘이 있고 실의 굵기는 머리카락 정도 된다) 주세요.”
“저도 마이크로 포셉(micro forcep, 아주 작은 포셉으로 혈관 등의 미세 수술 시 사용됨) 주세요.”
곧이어 이찬희가 태경이 봉합하기 편하게 인공혈관과 동맥 사이의 끝이 맞닿도록 붙여 놓았다.
“이찬희, 떨지 마!”
찰나의 순간, 후배의 떨리는 손을 캐치한 태경이 소리쳤다.
이찬희가 일부러 그런 것도 실수도 아니었고 실력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아주 작고 얇은 곳에 힘을 주다 보니 순간적으로 미세하게 손끝이 떨린 것이다.
“네! 선생님.”
태경은 아주 작은 실과 바늘을 굉장히 조심스럽게 혈관에서 한 땀 그리고 하얀색인 인공혈관에서 한 땀 봉합하고 조심스럽게 당겨서 연결하고 있었다.
여기에도 당연히 미세한 힘 조절이 필요하다.
과하면 혈관이 찢어지고 약하면 그 틈새로 연결 시 혈액이 새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힘 조절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지금 태경은 끊어진 혈관을 기준으로 먼 쪽의 혈관과 인공혈관을 연결하고 있었다.
그 뒤로는 미세한 봉합의 반복이었다.
조심조심 한 땀 한 땀 아주 미세한 작업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중간중간 시계를 쳐다봤다.
사실 태경은 공새찬 때문에 애간장이 타고 있었다.
물론 신호를 위반하고 오토바이를 과속해서 운전한 건 잘못이지만, 그래도 앞길이 창창한 젊은 청년이 발 없이 살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 이제 위로 가자.”
“네.”
이제 인공혈관과 몸쪽으로 끊어진 혈관을 연결해 주면 된다.
방법은 아까와 같지만 사실 이 술기는 해 본 사람만이 안다.
유사한 경험으로 아주 작은 핀셋으로 아주 작디작은 도미노를 한 100개쯤 그냥 세우는 것도 아니고 촘촘하게 일정한 간격으로 세우는 과정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실수하면 환자의 발은 없는 것이다.
“하…….”
태경은 온 신경을 집중해서 했더니 평소보다 목덜미가 심하게 당겨 잠시 고개를 들었다.
사실 한 자세로 고개를 숙인 채 수술하다 보면 생각보다 목덜미가 당길 때가 다반사였다.
고개를 든 태경은 다시 한번 시간을 체크했다. 시계를 보니 이제 지체할 틈이 없었다.
조심히 손을 갖고 가더니 불독으로 차단했던 혈류를 다시 열었다.
그리고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초음파를 공새찬의 발에 가져갔다.
“보, 보입니다. 선생님 혈류가 보여요!”
심장 박동이 뛸 때마다 붉은색 혈류가 보였다.
“혈류가 보여요.”
그 순간, 모든 숨죽여 긴장하던 의료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와! 정말 다행이에요.”
“어찌나 마음을 졸였던지……. 선생님, 이제 된 거죠?”
“그래도 아직 완전히 안심하기는 일러.”
얼굴에 화색이 돈 의료진과 달리 태경의 표정은 여전히 진지했다. 수술은 잘됐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밤사이에 혈전이 생길 수도 있고 정맥이 온전치 못해서 잘 안 빠져나갈 수도 있어. 그러면 고여서 또 괴사가 될 수도 있고, 앞으로 며칠은 혈전용해제를 쓰면서 면밀하게 봐야 해. 이제 시작이다. 병동에서 환자 잘 관찰하자.”
“네, 선생님.”
“그런데 이 환자 사고 날 때 날아갔다고 하던데 맞아요?”
수술하는 동안 환자와 모니터를 주시하던 의진이 궁금한 듯 물었다.
“네, 의진 쌤. 맞아요. 제가 아까 응급실에서 구급대원님이 설명하는 거 들었는데 차랑 충돌해서 5미터나 날아갔대요.”
“세상에! 큰일 날 뻔했네요. 혈관이 끊어지고 뼈도 골절됐지만, 이 정도면 운이 좋았어요.”
“저, 예전 병원에서 오토바이 사고 환자들이 종종 왔는데 진짜 심하게 다친 사람들 많이 봤거든요. 이 정도면 진짜 천운인 거 같아요.”
“전 인턴 때 등 쪽이 다 찢어져서 온 환자도 있었어요.”
의진을 시작으로 간호사와 이찬희는 물론 수술방에 모인 의료진이 다들 돌아가면서 크게 다쳤던 오토바이 사고 환자에 대해 한마디씩 던졌다.
“전 온몸이 다 골절돼서 온 환자도 봤어요. 손가락도 다 골절됐는데 그분 재활도 엄청나게 오래 걸리고 입원 기간 내내 힘들어했어요.”
“세상에 손가락까지 다요? 진짜 힘들었겠다. 원장님도 오토바이 사고 환자 많이 보셨죠?”
“많이 봤죠. 다발성 골절부터 장기가 쏟아진 경우도 있었는데, 가장 심했던 경우는 머리가 터진 채로 온 환자였어요.”
“머, 머리가요?”
“네, 덤프트럭과 다른 차 사이에 끼인 채로 충돌했던 거로 기억해요.”
“뭐든 사고 나면 다 위험하고 무섭지만, 오토바이는 특히 더 조심해야 할 거 같아요.”
“공새찬 환자가 다시는 오토바이를 타지 말아야 할 텐데…….”
“그런데 스피드 즐기는 사람도 중독이라서 끊는 게 쉽지 않을 거예요.”
“그것도 그래요. 이 환자도 벌써 사고 난 게 여러 번이라고 하잖아요.”
“이렇게 사고 났는데 그만 타야죠.”
“그건 이 쌤 말이 맞아요. 아까 보니까 어머니가 많이 놀라셨던데 부모님 생각해서라도 그만 타야죠.”
“난 그 아버지라는 사람이 막 소리치고 화내는 것도 이해돼요.”
“저도요.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아픈 것만큼 싫은 것도 없는데 본인이 자초해서 다친 거니까 얼마나 화가 나고 속상하겠어요.”
“아마 본인 스스로 느끼는 바가 있을 거예요. 아무튼 다들 수고 많았어요. 환자분도 수고했어요.”
태경은 공새찬의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특히 더 정신없이 진행됐는데 다들 잘 따라와 줘서 고마워요.”
정신없이 진행되던 수술이 잘 끝나고 공새찬은 고비를 잘 넘겼다.
“원장님이 제일 고생하셨죠.”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태경은 의료진을 격려한 뒤 가운을 벗으며 홀가분한 표정으로 수술방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