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51화 (350/472)

351화. 삼촌 또는 아저씨

보호자 대기실-

“도와주세요. 제발 우리 새찬이 수술이 잘 끝나게 도와주세요.”

대기실에 모인 공새찬의 가족은 여전히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수술이 잘 끝나길 바랐다.

어머니는 두 손을 모으고 연신 기도하고 있었으며 누나는 대기실에 걸려있는 수술 현황이 나오는 모니터를 보며 이따금 동생 이름을 불렀다.

“새찬아, 잘될 거야. 수술 잘 끝날 거야.”

“…….”

그리고 공새찬의 아버지는 팔짱을 낀 채 여전히 근엄한 얼굴로 아무 말이 없었다.

“어!”

계속 모니터를 보고 있던 딸이 동생 옆에 있던 글자가 바뀌자 반응하며 고개를 돌렸다.

“엄마, 아빠? 끝났어.”

“뭐?”

“새찬이 수술 끝났다고요. 저기 모니터 보세요.”

[공새* 님의 수술이 종료되었습니다. 환자분은 회복실에 있다가 병실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네. 회복실로 이동 중이네. 여보, 새찬이 수술 잘 끝났나 봐요.”

“나도 봤어.”

“많이 기다리셨죠?”

온 가족이 모니터를 보던 사이 수술방을 나온 태경이 보호자 대기실로 들어왔다.

“아니에요, 원장님. 많이 안 기다렸어요.”

“엄마 말이 맞아요. 전 더 오래 걸릴 줄 알았거든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무래도 혈관이 끊어진 채로 오래 있으면 위험하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수술을 진행하다 보니까 일찍 끝났습니다.”

“그러면 수술은 잘 끝난 건가요?”

“네, 일단 수술은 잘됐어요. 끊어진 혈관도 이었고 골절된 뼈도 잘 고정했습니다.”

태경은 보호자가 궁금해하지 않도록 수술이 어떻게 진행됐는지와 앞으로 치료 방향과 재활 부분에 대해서도 꼼꼼히 설명했다.

“아이고, 세상에! 원장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설명을 들은 어머니와 누나는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행여 아들의 다리가 잘못되는 건 아닌가 마음 졸였던 어머니는 살짝 울컥한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내와 딸은 보지 못했지만, 뒤쪽에 서서 태경의 설명을 듣고 있던 공새찬의 아버지 또한 순간이지만 한결 안심한 표정을 보이며 보호자 대기실을 나갔다.

“아까도 설명해 드렸지만, 며칠은 계속 경과를 잘 지켜봐야 합니다. 그리고 재활도 잘해야 하고요.”

“그럼요. 선생님. 제가 옆에서 열심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할게요.”

“엄마, 새찬이 이제 진짜 오토바이 타면 안 돼.”

“당연하지. 오토바이 절대 못 타게 해야지. 선생님,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별말씀을요. 공새찬 환자는 조금 이따가 병실에서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네, 원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설명을 마치고 보호자 대기실을 나온 태경은 조금 걸어가다 말고 걸음을 멈췄다.

조금 아까 보호자 대기실을 나와 복도에 한쪽에 혼자 서 있는 공새찬 아버지를 봤기 때문이다.

“아버님?”

“아, 네……. 수술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는요. 환자가 고생한 거죠. 그보다 걱정 많이 하셨죠? 아까 들으셨겠지만, 수술은 일단 잘됐습니다.”

“걱정은요! 그 녀석 걱정 한 개도 안 했습니다. 부모 말 무시하고 제멋대로 하는 놈인데요.”

“아버님께서 옆에서 재활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럼 또 뵐게요.”

공새찬 아버지는 아들의 말에 또다시 목소리를 높이며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 후, 태경이 향한 곳은 진료실도 병동도 응급실로 아닌 회복실이었다.

회복실은 수술한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나고 병동으로 옮기기 전 잠시 상태를 보는 곳이었다.

“어머, 원장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회복실에 있던 간호사가 태경에게 다가왔다.

“환자 좀 잠깐 보려고요.”

“환자요? 혹시 공새찬 환자요?”

“네, 좀 어때요?”

“아까 눈뜨면서 자리 다리 온전하냐고 묻더라고요. 생각보다 아주 씩씩한 환자던데요?”

“다행이네요. 병실 옮기기 전에 잠깐 대화 좀 할게요.”

“네, 원장님.”

간호사와 대화를 마친 태경은 공새찬이 누워 있는 베드로 향했다.

조금 있으면 병동으로 옮기는 환자를 일부러 회복실로 찾아온 건 부모님이 없는 자리에서 직접 할 말이 있어서였다.

“환자분?”

“어! 원장님…….”

“말할 수 있어요? 불편한 곳은 없고요?”

태경은 공새찬 옆에 자리를 잡았다.

“네.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수술받느라 많이 힘들었죠?”

“아니요. 제가 힘들 게 뭐 있나요.”

“마취가 슬슬 풀리고 있을 텐데 아프지는 않아요?”

“무통 주사 때문에 그런지 견딜 만합니다.”

“수술받기 무섭지 않았어요? 아까 보니까 덤덤하게 마취도 잘 받고 잘하던데요?”

“이런 큰 수술도 처음이고 전신마취도 처음인데 수술한다는 두려움보다 제 다리가 잘못되면 어쩌나 그게 더 걱정돼서 그런지 수술은 덤덤하게 받았던 거 같아요.”

“의젓하게 잘 받았어요.”

조금 아까 수술방에서 마취에 들어가기 전에 공새찬은 뜻밖의 모습을 보였었다.

‘자! 이제 확인 다 끝났고 공새찬 환자 마취 시작할게요. 걱정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숫자를 1부터 10까지 천천히 세어 볼게요.’

‘저, 저기요? 선생님?’

의진이 마취를 막 하려는 찰나 공새찬이 다급하게 말했다.

‘잠시만요!’

‘왜요? 어디 불편해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저 한마디만 말씀드려도 될까요?’

‘환자분 다친 부분 때문에 빨리 수술에 들어가야 해요.’

‘짧게 할게요. 저기 원장님?’

공새찬은 고개를 살짝 돌려 이제 막 수술방으로 들어와 수술 준비를 하는 태경에게 말했다.

‘네, 환자분.’

‘아까 응급실에서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죄송한데요. 저 다리 없이 살기 싫거든요. 그러니까 원장님이랑 여기 계신 선생님들 모두 저 수술 좀 잘 부탁드릴게요. 제 다리 좀 꼭 살려 주세요.’

‘최선을 다해서 할게요.’

한시가 급했던 태경은 빠르게 답을 하고 의진이 바로 마취를 시작했다.

“아까 수술방에서 공새찬 환자 때문에 의료진이 다들 놀랐던 거 알아요?”

“안 그대로 그때 선생님들 표정이 당황스러운신 거 같더라고요.”

태경은 조금 전, 일을 생각하며 공새찬에게 물었다.

보통 수술방에 들어가기 전, 스탠바이를 할 때 긴장되거나 걱정스러운 마음을 말하는 환자는 꽤 있다.

그런데 공새찬처럼 수술 직전에 갑자기 저렇게 말하는 환자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워낙 촌각을 다루는 수술이기 때문에 별다른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러운 공새찬에 발언에 의료진 모두 살짝 당황했었다.

“저도 갑자기 무슨 용기가 나서 그랬던 건지 모르겠어요. 그냥 제 다리의 운명이 원장님과 선생님들 손에 달렸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급해서 뭔가 잘 봐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었던 거 같아요. 죄송해요.”

“괜찮아요. 가만있자…… 형이라고 하면 그건 너무 오버고 그래 삼촌이 좋겠다.”

“네?”

“지금부터 원장님 말고 삼촌이나 동네 친한 아저씨라고 생각하고 말 편하게 할게요. 괜찮아요?”

“아……. 네. 그럼요.”

“새찬아, 나랑 한가지 약속해 줄래?”

태경의 말투는 친근하고 다정했지만, 표정은 세상 진지하고 심각했다.

“약……속이요? 저랑요?”

별안간 말을 편하게 하는 것도 그렇고 약속이란 것도 그렇고 공새찬은 살짝 긴장한 채 물었다.

“뭔데요?”

“앞으로 병원에서 퇴원하고 나가면 다시는 오토바이 타지 마.”

“오토바이요?”

“그래. 오토바이. 네가 오토바이 사고당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선생님이 의사로 일하면서 가장 끔찍하게 죽은 환자들이 교통사고 환자들이야. 그중에서도 오토바이 사고 환자들이 사고당하면 정말 크게 다쳐.”

“저도 너튜브에서 보긴 봤어요. 교통사고 난 환자들이 부러지고 날아가고 어떤 외국 사람은 얼굴 형태도 못 알아볼 정도로 사고 난 경우도 있더라고요.”

“그래. 잘 아네.”

“그런데 선생님. 다른 것도 위험하긴 하잖아요.”

“네 말 맞아. 물론 자동차든지 오토바이든지 자전거나 킥보드도 위험하지. 그런데 자전거나 킥보드는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다니는 차도로 다니는 것보다 자전거 도로나 일반 도로로 많이 다니잖아. 요즘은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한다고 해서 사고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네 사고를 봐서 알지 않아? 넌 신호를 위반해서 달렸고 너랑 충돌한 운전자는 적정 속도에 안전하게 운전했는데 별안간 사고가 난 거잖아. 갑자기 일어난 사고는 막을 방법이 없어.”

“…….”

따박따박 말대답하던 공새찬은 반박할 수 없는 팩트에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도로가 한산하고 차가 없었다고 해도 신호를 위반하고 빠르게 달린 본인 잘못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너도 이 말 들어 봤지? 자동차랑 오토바이랑 충돌하면 무조건 오토바이 운전자가 더 많이 다친다는 거.”

“선생님 방금 우리 엄마 같았어요.”

오토바이를 처음 타기 시작하고 부모님께 걸린 뒤로 공새찬이 어머니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저 말이었다.

“새찬아, 선생님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야.”

아직도 본인이 오토바이 사고로 얼마나 크게 다쳤는지 상황 파악이 안 된 공새찬을 보며 태경의 말투에서 다정함이 사라졌다.

“너, 수술이 잘돼서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앞으로 며칠은 경과도 잘 지켜봐야 해. 수술한 혈관이 그 안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고 생각지 못한 일이 생길 수도 있어.”

“죄송합니다.”

“죄송한 게 아니라 앞으로 오토바이 타지 말라고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거야.”

“네, 알고 있어요.”

“내가 굳이 회복실까지 찾아와서 왜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줄 알아?”

“그거야 오토바이가 위험하니까요.”

“아니! 그게 아니야. 오토바이가 위험하다는 건 이미 네가 잘 알고 있어.”

“……그러면요?”

“네가 퇴원하고 나서 오토바이를 또 탈까 봐. 솔직히 너 다리 괜찮은 거 보고 다시 오토바이를 타도 되지 않을까 하지 않았어?”

“…….”

공새찬은 마음이 뜨끔했다.

회복실에서 눈을 떴을 때 자기 다리가 온전한 걸 본 직후 솔직히 말하면 순간 오토바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화장실 가기 전과 다녀온 후가 다르다더니 정말 마음이 그랬다.

오토바이를 타면서 뼈가 부러진 적은 많았지만, 혈관이 끊어진 적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수술 전에는 그 무서움에 무조건 오토바이를 두 번 다시 타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멀쩡한 다리를 보자 마음이 흔들린 게 사실이었다.

“새찬아 선생님 말 잘 들어. 예전에 오토바이 사고로 크게 다친 환자를 수술한 적이 있었어.”

오래전 일이지만, 태경은 여전히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이 선명했다.

오토바이 사고로 척추를 비롯해 몸 여기저기 심하게 다쳐 1년 동안 장기 입원을 한 환자였다.

이를 악물고 피나는 노력으로 힘겹게 재활을 한 결과 그 환자는 다시 걸을 수 있었다.

그 젊은 청년은 퇴원하는 날 감격스러움에 눈물까지 흘렸다.

퇴원을 기뻐하는 태경을 비롯한 의료진에게 두 번 다시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겠다는 맹세까지 하고 갔다.

“그렇게 퇴원한 그 친구를 내가 어디서 다시 봤는지 아니?”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다시 사고 나서 또 병원에서 본 거 아니에요?”

“아니, 정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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