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52화 (351/472)

352화. 경각심

“그렇게 퇴원한 그 친구를 내가 어디서 다시 봤는지 아니?”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다시 사고 나서 또 병원에서 본 거 아니에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못 봤어.”

“못 봤다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사고가 난 건 맞는데, 그 친구를 다시 본 건 시간이 좀 더 지난 뒤 장례식장에서 봤어.”

퇴원하고 한 달 뒤, 다시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한 청년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참으로 어이없는 허탈하고 기막힌 사고였다.

오랜 병원 생활로 지쳐 있던 청년은 오랜만에 친구들은 만났다.

바닷가 근처에 살고 있던 청년은 여느 날처럼 오토바이를 끌고 나가서 길게 뻗은 방파제에서 친구들과 늘 하던 오토바이로 짧은 레이스를 즐겼다.

한 사람씩 오토바이로 방파제 끝을 갔다 오는 식으로 진행하는, 단순하게 시간을 재는 놀이였다.

그렇게 청년의 차례가 됐고, 여러 번 해 봤던 그는 익숙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청년은 돌아오지 않았다.

방파제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던 청년을 갑자기 나타난 너울성 파도가 그대로 집어삼킨 것이다.

‘야? 저기 봐. 저거 파도 올라올 거 같은데? 파도 지나간 다음에 가.’

‘괜찮아. 걸어가는 거 아니고 오토바이 타고 가는 거잖아. 속도 올리고 금방 갔다 올게. 한두 번 해 보냐.’

청년이 출발하기 직전 친구가 파도가 올 거 같다고 말했지만, 그는 익숙한 오토바이의 속도를 믿었다.

파도가 지나고 방파제에는 쓰러진 오토바이만 있을 뿐 청년의 모습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어이없는 사고에 가족들과 지인들은 물론 해양 경찰까지 총동원되어 한 달을 넘게 수색했지만, 그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고 잠수부까지 동원됐지만, 청년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 지나고 공식적으로 수색은 종료됐다.

그 뒤, 청년의 부모님은 아들의 시신을 찾지 못한 채 가슴에 자식을 묻고 장례를 지내야 했다.

그날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바다 위 악마라고도 불리는 너울성 파도였다. 하지만 그 청년이 오토바이를 타지 않았다면 그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에게 연락받은 태경은 일하던 도중 점심시간을 이용해 장례식장을 찾아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내가 방파제 오토바이 좀 끌고 가지 말라고 그러다 일 치른다고 그렇게 잔소리했는데 그놈이 듣지를 않더니만……. 결국 이래 가네요. 불쌍한 놈.’

부모님은 눈물을 쏟으며 태경에게 하소연하듯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다.

‘내 이럴 줄 알았으면 다리몽둥이라도 분질러서 집에 앉혀 둘 걸 그랬어요. 아이고! 내 팔자야. 내 새끼 보지도 못하고……. 내가 앞으로 어찌 사나. 나도 데리고 가라 이놈아!’

해맑게 웃고 있는 청년의 영정 사진을 보며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함께 그 친구가 참으로 미웠었다.

태경은 그 뒤로 오토바이 사고 환자가 오면 반드시 두 번 다시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도록 진지하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보통 오토바이 사고 환자 중 나이가 있는 환자들은 사고 후 대게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다.

나이가 있다 보니 그 사고의 무서움이 느껴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심어진 것이다.

하지만 젊은 환자들을 조금 달랐다.

본인들이 젊으니까 꺾이지 않은 패기로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다시 오토바이를 타는 경우가 많았다.

태경은 공새찬도 그럴 것 같아 경각심을 심어 주고 싶었다.

“새찬아, 사람 목숨은 여러 개가 아니야. 내 목숨도 네 목숨도 하나야. 그래서 더 삶이 소중한 거고. 물론 오토바이를 타는 건 네 자유야. 내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네가 다시 탄다면 그건 어쩔 수 없어. 그런데 만약 다시 사고가 난다면 그땐 이 정도로 안 끝날 수도 있어.”

“……저도 알아요.”

가만히 태경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공새찬은 아까보다 한풀 꺾인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면 사고 난 그 순간에는 저도 죽는구나 싶었어요. 지금까지 사고도 여러 번 났었는데 운이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네 말대로 너 사고도 여러 번 났다면서. 그런데 결국 또 타서 이번에 힘들게 수술까지 한 거잖아. 이런데도 또 탈 거야? 너, 부모님 생각은 안 하니?”

“하기는 해요.”

“너는 몰랐겠지만, 어머니는 아까 눈물까지 참으면서 네 걱정하셨어. 아버지도 네 걱정 많이 하셨고.”

“그건 아닐 거예요. 선생님도 우리 아버지 화내는 거 보셨잖아요.”

“새찬아, 응급실에서 소리치고 화내시는 아버지가 과연 네가 미워서 그렇게 화를 내셨을까?”

“아버지는 오토바이 탄 뒤로 저 싫어해요.”

“아니, 너희 아버지는 너 안 싫어해. 부모 자식 관계라고 해도 사이가 안 좋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어. 그런데 너희 아버지는 아니야. 정말로 네가 싫었다면 아들 사고 소식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응급실로 뛰어오지는 않아.”

“그럴까요?”

“당연하지. 화를 내는 것도 애정이 있고 관심이 있으니까 그러시는 거야. 사람이 사람을 포기할 때 나오는 행동이 뭔 줄 알아? 바로 무관심이야. 포기하면 관심이 생기지 않아. 네 아버지는 널 잃을까 봐 매일 불안한 마음으로 살고 계셨을 거야.”

“불안한 마음…….”

“네가 자식이니까, 소중한 자식이니까 그만큼 속이 상하셔서 화가 나신 거야. 부모는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평생 마음에 보이지 않는 구멍이 생겨. 그 구멍은 어떤 거로도 메꿔지지 않아. 넌 지금 너도 모르는 사이에 네 부모님 마음에 조금씩 구멍을 만들고 있어.”

“…….”

심각해진 분위기에 공새찬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오토바이를 타고 즐기는 그 순간순간이 짜릿하고 좋았을 뿐이다.

여러 번 사고를 당하면서 한 번도 부모님에 대해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새찬아, 선생님은 네가 이번 사고를 통해서 한번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 내 말 무슨 말인지 이해했니?”

“네, 이해했어요.”

“그래. 여기서 더 말하면 잔소리가 되니까 그만할게. 그리고 너 앞으로 재활도 열심히 해야 헤.”

“그건 각오하고 있었어요. 힘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열심히 할게요.”

“그래, 수술받느라 수고했고 병실에서 또 보자.”

“네, 선생님.”

태경이 회복실을 나가고 천장을 뚫어져라 보며 생각하던 공새찬은 잠시 뒤, 병실로 옮겨졌다.

“아들 괜찮아? 애썼어.”

“아니야. 엄마 나 괜찮아.”

“고생했다. 동생아.”

어머니와 누나는 공새찬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위로했다.

“내가 고생한 게 뭐 있다고.”

“알긴 아니? 너 때문에 부모님이 얼마나 놀라셨는지 몰라.”

“엄마, 죄송해요.”

“됐어. 지금은 몸 잘 회복하는 일만 생각해.”

“그건 그렇고 너, 또 오토바이 탔다가는 그땐 누나가 진짜 가만 안 둬. 알았어?”

“그러면 나 누나한테 맞는 거야?”

“이게! 아직 정신 못 차렸지? 너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니?”

“엄마랑 누나가 너무 걱정하는 거 같아서 분위기 좀 풀어 보려고 장난한 거야. 미안해.”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 너 진짜 이제 오토바이 타면 안 돼.”

“새윤아, 수술하고 온 애한테 그만해.”

“엄마, 얘 진짜 오토바이 또 타면 그땐 진짜 죽을지도 몰라.”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해.”

“엄마가 맨날 그렇게 말하니까 애가 정신을 못 차리잖아.”

“이제 막 수술하고 왔잖아. 그리고 새찬이 너 아버지한테 죄송하다고 해.”

“맞아. 아빠가 이 새벽에 사고당한 차주분께 연락해서 이따 낮에 만나서 합의하는 거로 얘기가 잘됐어.”

“아버지가?”

“그래. 너 그리고 신호 위반한 것도 경찰서 연락해서 어떻게 처리되나 확인까지 다 하셨어. 차주분이랑 합의가 잘돼서 벌금도 많이 나올 거 같지는 않아.”

“내가 이번에 진짜 크게 잘못했네.”

“그걸 이제 알았어?”

“그런데 아버지는 어디 계세요?”

“저기 밖에 계셔.”

밖에 있다는 어머니의 말에 열려 있는 병실 문 쪽을 쳐다보다 아버지의 뒷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는 거 같았다.

“아버지는 저 안 보신대요?”

“네가 약속 깨고 오토바이 몰래 타다 이 지경이 됐는데 아빠 화가 그렇게 쉽게 풀어지시겠어? 오죽하면 그렇게 화를 내시던 분이 아무 말씀 없이 저러고 계시겠어.”

“지금 새벽이고 병실에 사람들도 자고 있으니까 시끄러울까 봐 안 들어오시겠대. 며칠 지나면 마음 풀어지실 거야.”

아버지는 사고가 나면 항상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화를 내시고 졸졸 쫓아다니면서 잔소리를 하셨다.

늘 그랬다.

그런데 처음 보는 아버지의 모습에 공새찬은 기분이 이상했다. 그러면서 순간 아까 태경이 해 줬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람이 사람을 포기할 때 나오는 행동이 뭔 줄 알아? 바로 무관심이야.’

공새찬은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며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들, 너 왜 그래? 아파?”

“그러게. 마취 풀려서 아픈 거 아니야? 간호사 선생님 불러 줄까?”

“그런 거 아니야. 괜찮아. 수술 끝나고 나니까 뭔가 긴장이 풀어져서 그래요.”

“그래도 아직 자면 안 돼. 마취 가스 빠져야 하니까 조금 더 이따가 자.”

“네.”

“엄마, 아빠랑 조금 이따가 집에 가서 너 속옷이랑 필요한 거 챙겨올게. 누나가 옆에 있을 거야.”

“오늘은 내가 특별히 간호해 줄게.”

“애도 아니고 누나 출근해야 하잖아. 괜찮으니까 집에 가.”

“됐거든. 애들은 말이라도 잘 듣지. 그리고 어차피 월차 내서 괜찮아.”

가족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날이 밝았고, 공새찬의 부모님은 집으로 향했다.

“누나? 자?”

부모님이 병실을 나가고 눈을 감고 있던 공새찬이 조용히 누나를 불렀다.

“아니, 여기서 어떻게 자. 왜? 물 줄까?”

“아니, 그게 아니라 누나 핸드폰 좀 잠깐 쓸 수 있을까 해서.”

“써도 되는데 네 거 망가졌어?”

“아니, 멀쩡한데 충전을 못 해서 그래. 전화 한 통화만 할게.”

“그래. 여기. 나 화장실 좀 갔다 올 테니까 맘껏 써.”

“땡큐. 여보세요. 근호야 나야. 새찬이. 이거 누나 폰이야. 자냐? 몸은 괜찮아. 일찍 전화해서 미안하다. 부탁이 있어.”

공새찬은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처음 보는 진지한 표정으로 심각하게 통화를 이어 갔다.

* * *

몇 시간 뒤-

집에 갔던 부모님이 우리병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새윤이는?”

“아직 병실에 있죠. 우리가 가서 교대해야지. 밤새 병실에 있어서 새윤이도 피곤했을 거예요.”

“당신 안 피곤해?”

“내 새끼 아파서 누워 있는데 피곤하긴 뭐가 피곤해요. 그나저나 당신 출근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선수들 운동해야죠.”

“코치한테 조금 늦는다고 연락했어. 그리고 난 갈 데가 있으니까 당신 먼저 들어가.”

“새찬이 안 봐요? 어디 가게요?”

“…….”

“여보! 어디 가냐고요?”

“오피스텔.”

“새찬이 오피스텔이요?”

“어.”

“아니 갑자기 거길 왜 간다고……!”

순간 아내는 남편이 왜 오피스텔을 가는지 불현듯 생각이 떠올 났다.

“당신 혹시 오토바이 때문에 가는 거예요?”

“맞아.”

“어제부터 입에 꿀 바른 사람처럼 심각한 표정으로 있더니만 이 생각한 거예요? 세찬이 지금 병원에 있잖아요. 나중에 해요.”

“저 녀석 병원에 누워 있을 때 해야지. 언제 해? 새찬이 저놈 퇴원하면 분명히 또 오토바이 탈 거야. 당신도 아까 원장님 말씀 들었잖아. 오토바이 꼭 못 타게 하라고.”

“여보. 새찬이도 이번에 크게 다치고 느끼는 바가 있을 거예요.”

“당신 도박하는 놈들이 다시는 도박 안 한다는 약속 지키는 거 봤어?”

“어제 죄송하다고 다시는 안 타겠다고 했잖아요. 당신 아들 말인데 못 믿어요?”

“지금까지 계속 믿어서 그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결과가 이거야.”

호통을 치고 화를 내긴 했어도 아버지는 늘 아들의 말을 믿었었다.

그렇게 계속 믿음을 저버린 아들에게 느낀 실망감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스피드도 중독이라고 내가 이번에는 아주 그놈의 오토바이 전부 다 때려 부숴 버릴 거야.”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나는 새찬이가 퇴원하고 스스로 처분하는 게 더 좋을 거 같은데…….”

“할 거면 벌써 했어. 미우나 고우나 내 새끼인데 이대로 두다가는 쟤 정말 무슨 일 생겨.”

“알았어요.”

“당신 행여 새찬이한테 말하지 마. 알았지?”

“말 안 해요. 운전 조심히 갔다 와요.”

탁-

아내가 차에서 내린 뒤, 남편은 바로 병원을 빠져나갔다.

아들이 두 번 다시는 다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던 아버지는 이번 기회에 오토바이를 모조리 없애 버릴 생각이었다.

“……!”

그렇게 공새찬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 앞에 도착한 아버지는 눈 앞에 펼쳐진 아이러니한 광경에 별안간 차를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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