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화. 아버지와 아들
“……!”
그렇게 공새찬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 앞에 도착한 아버지는 눈 앞에 펼쳐진 아이러니한 광경에 별안간 차를 멈췄다.
“저, 저거 새찬이 거 아니야?”
탁-
차에서 내린 아버지는 오피스텔 앞에 멈춰 있던 트럭 앞으로 다가가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불렀다.
“저기요?”
“죄송합니다. 오토바이를 차에 옮기느라 잠깐 주차한 건데 길을 막았네요. 다 됐으니까 빨리 빼 드릴게요.”
오피스텔 골목을 막은 1톤 트럭 위로 오토바이 두 대가 차례로 실려 있었다.
공새찬의 아버지는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저 오토바이가 아들의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저 오토바이 말입니다. 제 아들 거 같은데……. 오토바이 주인이 공새찬 아닙니까?”
“글쎄요. 저희는 오토바이 사장님께 가게로 옮겨 달라는 연락만 받은 거라서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저씨?”
뭐가 어떻게 된 일인가 싶던 찰나, 등 뒤에서 젊은 남자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공새찬의 아버지를 부른 청년은 아들의 친한 친구로 사고 당일 날, 집에서 함께 있던 친구였다.
“아니 근호야.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잠시만요. 기사님 키 여기 있어요. 가게까지 잘 부탁드릴게요.”
“운전 잘해서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근호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아버지는 트럭이 골목을 빠져나간 뒤 아들 친구에게 물었다.
“일단 주차장에 차부터 주차하시고 말씀드릴게요.”
차를 주차한 아버지는 아들 친구와 함께 아들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새찬이 때문에 많이 놀라셨죠?”
“말도 마라. 가족들 전부 난리도 아니었어. 다행히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수술도 잘 끝났다.”
“잘됐네요. 아까 보셨겠지만, 오토바이 전부 새찬이 거예요.”
“안 그래도 오토바이 때문에 온 거긴 한데……. 그 오토바이 어디로 가는 거야? 혹시 새찬이가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고 한 거니?”
“그런 거 아니에요. 아저씨는 오토바이 없애려고 오셨어요?”
“그래. 때려 부수든지 어디 갔다 팔든지 하려고 왔다.”
“그런 거라면 이미 한발 늦으셨네요.”
“한발 늦다니……?”
“오토바이 다 팔렸어요.”
“뭐?!”
“아까 밑에서 본 트럭이 오토바이 가게로 싣고 가는 거였어요. 일찍 새찬이한테 전화 왔었어요.”
몇 시간 전, 누나 핸드폰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한 공새찬은 자신의 오토바이를 팔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동안 돈이 생길 때마다 원하는 부품으로 하나씩 공들여 튜닝까지 해 가며 아꼈던 오토바이를 직접 팔아 달라고 한 것이다.
공새찬이 오토바이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알고 있는 친구는 부탁받고 꽤 놀랐다.
“그러니까 우리 새찬이가 직접 오토바이를 팔아 달라고 부탁했다는 거야?”
“네, 저랑 통화하다가 울기까지 했어요. 저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새찬이 우는 거 처음 봤거든요. 본 거 아니고 들은 거지만, 장난으로 우는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울더라고요.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몰라요.”
“울기는 왜 울어. 진짜 울고 싶은 사람은 부모인데…….”
“그러면서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너무 생각 없이 산 거 같다고요.”
공새찬은 늘 가족들이 오토바이를 타지 말라고 했을 때는 사실 그 말이 크게 귀에 들어오지도 마음에 와닿지도 않았다.
오토바이를 평생 탈 것도 아니고 나이가 들면 타지 못하니까 젊었을 때 신나게 즐기며 타자는 주의였다.
그래서 부모님의 잔소리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그때만 대충 말을 듣는 척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서 태경이 하는 말을 듣고 뭔가 여러 가지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한 번도 오토바이를 타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큰 사고로 수술을 한 직후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그런 소리를 들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수술한 의사가 직접 심각하게 말하니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동안 자기 즐거움만 생각하던 이기적인 행동들이 부모님에게 얼마나 큰 걱정과 근심을 드렸는지 깨달았다.
또한 오토바이 관련해서는 심하다 할 정도로 화를 내시던 아버지의 언행들이 다 자신 때문이었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침묵하는 아버지를 보니 뭔가 마음이 더 안 좋았다.
차라리 예전처럼 화를 내고 잔소리를 했다면 마음이 더 편할 거 같았다.
아버지가 완전히 자신을 포기하면 어쩌나 싶은 걱정과 함께 아버지가 진짜로 실망하셨구나 싶었다.
공새찬은 사고나 날 때마다 마치 앵무새처럼 반복했던 말이 있었다.
‘죄송해요. 이제 다시는 오토바이 안 탈게요.’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에요.’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부모님이 실망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였다.
이런 생각을 계속하고 또 하다 보니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오토바이를 그만 타야 한다는 거였다. 진지하게 충고해 줬던 태경의 말대로 나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위험한 건 그만하는 게 맞았다.
이 당연한 사실을 깨닫기까지 공새찬은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친구에게 연락해 오토바이를 팔아 달라고 부탁했다.
부모님에게 보여 주기 위한 식이 아니라 스스로 약속하고 달라지고 싶었다.
오토바이는 워낙 관리가 잘되어 있어서 예전부터 거래하던 사장님에게 좋은 값에 팔렸다.
“새찬이가 부모님께 죄송하대요. 특히 아저씨께 많이 죄송하다고 했어요.”
“나한테?”
“네, 아저씨가 진짜로 실망하신 거 같다고 정말 죄송해했어요.”
“지금 이때만 또 잠깐 그러는 건지 몰라.”
“아니에요. 아저씨. 이번에는 진짜예요. 아저씨가 보기에는 새찬이나 저나 아직 한참 어린애들로 보이겠지만, 저희도 한 번 마음 먹으면 달라요. 새찬이 녀석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한 번씩 스스로 마음먹은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해내요. 그러니까 아저씨도 한 번만 화난 마음 풀어 주세요.”
“참나!”
아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버지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근호 네가 더 어른 같구나. 아저씨보다 나아. 너희 부모님은 네 걱정도 없으시지?”
“아니요.”
“우리 새찬이도 네 이런 모습을 닮으면 좋겠구나.”
“에이, 아저씨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엄마는 저보고 새찬이 반만 닮으라고 하시는데요? 좀 싹싹하고 융통성 있게 살라고요.”
“그러니? 원래 부모님들은 내 새끼가 더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시는 거야. 특히 남의 자식들은 장점만 보이거든.”
“그런 거 같아요. 맞다! 오토바이 판 금액은 아저씨 통장으로 입금될 거예요.”
“내 통장으로? 아니 왜?”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근호야, 너도 바쁠 텐데 도와줘서 고맙다.”
“별말씀을요. 전 내일 새찬이 보러 가려고요.”
“새찬이 퇴원하면 아저씨가 맛있는 밥 사 줄게.”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안녕히 가세요, 아저씨.”
“그래. 또 보자.”
아들 친구와 헤어진 아버지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그는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 공새찬이 입원한 병실로 향했다.
“여보, 왔어요?”
“어. 당신 점심은 먹었어?”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한 번 쓱 쳐다보더니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 점심 먹을 시간 안 됐어요.”
“새윤이는?”
“집에 갔죠. 안 그대로 나 은행 좀 다녀와야 하는데 당신 잘 왔어요. 당신이 새찬이 좀 봐요.”
눈치가 빠른 아내는 남편이 아들에게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하며 일부러 자리를 피해 줬다.
“필요한 거 있으면 좀 주고요.”
“알았어.”
챠륵-
아내가 병실을 나간 뒤, 아버지는 옆 베드 사이와 오픈된 공간에 커튼을 치며 간이 베드에 앉았다.
“아버지 거기 앉기 불편하지 않으세요?”
“안 불편해. 넌 좀 괜찮아?”
“네. 혈전도 안 생기고 정맥도 괜찮다고 아까 원장님이 회진 때 오셔서 말씀하셨어요. 그래도 며칠 더 잘 봐야 한대요.”
“엄마한테 들었다. 그거 말고 아프지 않은지 물어본 거야.”
“다쳤을 때 고통에 비하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거 같아요. 저기 아버지…….”
부자 사이에 어색한 대화가 흐르던 사이 공새찬이 조금은 진지한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왜?”
“죄송해요. 제가 그동안 너무 제 생각만 하고 살았던 거 같아요. 엄마랑 아버지가 저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하실 줄은 몰랐어요.”
공새찬은 아버지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상의 없이 학교를 휴학한 것도 방송 일을 시작한 것도 다 죄송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랑 마지막 약속을 어기고 다시 오토바이 타다 사고를 내서 그게 제일 죄송해요. 아버지께서 악몽까지 꾸셨다는 것도 몰랐어요.”
공새찬은 아버지가 자신이 사고가 날 때마다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악몽에 시달린다는 걸 새벽에 누나를 통해 알게 됐다.
막상 사고 난 당사자인 본인은 아무렇지 않게 잠을 잘 자고 잘 생활했는데 아버지가 더 괴로워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동안 계속 약속 어기고 실망만 드려서 제 말에 믿음이 안 가신다는 거 알아요. 그런데 아버지! 저, 이번에는 정말 마음 다잡았어요. 그러니까 아버지 아들 한 번만 믿어 주세요. 속는 셈 치고 마지막으로 믿어 주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버지.”
“녀석! 이 말 하려고 그렇게 분위기 잡고 있던 거야?”
잔뜩 긴장한 얼굴로 말하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분위기를 풀어 주려 했다.
“새찬아…….”
“네, 아버지.”
“아버지 너한테 실망한 거 맞지만 포기는 안 했어. 이 녀석아, 세상 어느 부모가 내 새끼를 포기하니? 안 그래?”
아버지는 아들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달라지겠다는 다짐이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부모는 설령 자식이 또 거짓말을 해도 믿어. 내 자식이니까 믿고 또 믿는 거야. 아버지가 화가 난 건 이번에 또 오토바이를 타고 네가 신호위반도 하고 생각보다 크게 다쳐서 그 모습에 화가 났던 거야. 아버지는 네가 오토바이를 타는 게 정말 끔찍하게 싫어. 위험한 거 더는 안 했으면 좋겠다.”
“네, 다시는 타지 않을게요.”
“그 말 믿어도 되지?”
“그럼요. 앞으로 달라지는 모습 보여 드릴게요.”
“그래. 내 아들 말인데 믿어야지. 부모가 자식을 안 믿으면 누가 믿겠니. 솔직히 아버지도 네가 오토바이 파는 거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구나 싶어서 좀 놀랐어. 어떻게 팔 생각을 다 했냐?”
“이제 탈 것도 아닌데 갖고 있어 봤자 뭐 해요. 그리고 오토바이 돈 들어오면 엄마랑 같이 쓰세요. 맛있는 것도 드시고요.”
“됐어. 아직 아들한테 용돈 안 받아도 된다. 그 돈으로 너 복학할 때 써.”
“아버지, 그러면 대신 저 퇴원하고 나서 저랑 가까운 곳으로 여행 한 번 가요.”
“그래, 그러자. 너 몸 다 괜찮아지면 그때 가자. 이제 아무 생각하지 말고 몸 회복하는 데 전념해.”
“네, 그럴게요. 저기, 아버지?”
공새찬은 화장실을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버지를 불러 세웠다.
“왜? 뭐 필요해?”
“아니요. 그게 아니라. 꼭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뭐야? 너 혹시 또 사고 친 거 있어?”
“그런 거 아니고 사, 사랑합니다. 아버지.”
공새찬은 부끄러운 듯 빠르게 말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한 말이었다.
“녀석! 부끄러워하기는. 미투다 이 녀석아. 나도 알러뷰 다.”
본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병실을 나가는 아버지를 본 공새찬은 마음의 짐을 덜어낸 듯한 기분을 느끼며 똑같이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