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54화 (353/472)

354화. 병원 온 지 한 달 좀 넘었죠?

“새찬이 너, 아버지랑 화해했다면서?”

호출받고 병동에 왔던 태경은 공새찬의 병실을 찾았다.

“원장님이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방금 복도에서 어머님 아주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씀하시던데.”

“엄마는 참 별소리를 다 하시네요.”

“아버지랑 잘 풀었다니 잘됐다.”

“이게 다 원장님 덕분이에요. 저 회복실에서 원장님이 해 주시는 말 듣고 거짓말 아니라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했다니까요.”

“그건 마취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에이! 아니에요. 아무튼 용기 낼 수 있게 해 주신 원장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

“그럼요.”

“그러면 재활 잘해서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해. 알았지?”

“당연하죠. 제가 까불까불해 보여도 성실함 하나는 끝내주거든요.”

“그리고 하나 더! 앞으로 너 오토바이는 절대로 타면 안 된다.”

“그건 진짜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안 타요.”

“그래. 지켜볼게.”

처음 사고를 내고 응급실에 왔던 껄렁한 공새찬의 모습과 지금 모습은 사뭇 다른 사람 같았다.

태경은 다시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을 믿으며 흐뭇한 얼굴로 병실을 나왔다.

“아니, 도대체 회복실에서 어떤 말씀을 하신 거예요?”

함께 왔던 임정숙 간호사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냥 오토바이 그만 타고 부모님 말씀 잘 들으라는 뭐 뻔한 말을 진지하게 했죠.”

“원장님은 환자들 상담도 참 잘해 주시는 거 아세요?”

“제가요?”

“네, 복순 할머니도 올 때마다 원장님께서 말을 참 잘 들어 주신다고 그러면서 환자 말 잘 들어 주는 의사 드물다고 얼마나 칭찬하시는지 몰라요.”

“그래요? 그 정도는 아닌데.”

“그 정도 맞아요.”

“멈춰라!!!”

대화하며 복도를 걸어가던 두 사람은 순간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12시 방향에 적군이 한 명 있다. 돌격!”

두 사람이 쳐다본 곳에는 남자 간호조무사가 환자복을 입은 남자아이를 업은 채 놀아 주고 있었다.

“또 놀아 주고 있네. 저게 쉬운 게 아닌데……. 오 선생 참 대단한 사람 같아요.”

“그러게요. 우리 병원 온 지 한 달 좀 넘었죠?”

“네, 사람이 저렇게까지 성실할 수 있나 싶어요.”

태경과 임정숙 간호사가 따뜻한 눈빛을 보내며 말하는 대상은 얼마 전, 우리병원에 새로 들어온 남자 간호조무사 오창규였다.

처음 면접을 봤을 때 그는 말수도 적고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아무래도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환자를 상대하고 그들을 케어해야 하므로 때문에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을 뽑으려고 했었다.

‘뽑아 주시면 성실한 모습으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열심히 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고, 면접을 봤던 최 팀장과 임정숙 간호사는 그를 직원으로 뽑아 함께 일하게 됐다.

그런데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싶던 염려가 민망할 정도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환자들을 대할 때면 환자가 아니라 가족을 대하는 것처럼 정성을 쏟았다.

특히 나이가 있는 노인 환자들에게 먼저 다가가 목욕까지 도와주고 머리를 감겨 주는 등 쉽지 않은 일도 본인이 나서서 자처했다.

그리고 방금처럼 어린이 환자들이 입원하는 경우에는 아이들이 병원을 무서워하지 않고 편안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친근하게 다가가 놀아 주는 일도 많았다.

게다가 30분 일찍 출근하고 30분 늦게 퇴근하면서 동료들 일을 도와주기까지 했다.

“이쪽 일이 쉬운 일이 아닌데, 보면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거 같아요.”

“원장님 말씀이 맞아요. 안 그래도 내가 어쩜 그렇게까지 일을 열심히 하느냐고 물어봤거든요. 그랬더니 뭐라고 한 줄 아세요?”

“뭐라고 했는데요?”

“자기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장에서 쭉 일했는데, 일이 너무 힘들어서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대요. 그래서 학원 등록하고 힘들게 공부해서 자격증 딴 거라 일이 너무 재미있고 소중하다는 거 있죠?”

“젊은 사람이 참 기특하고 대견하네요.”

“제 말이요. 요즘 만나는 환자분들마다 오 선생 칭찬이 장난 아니에요.”

“환자들뿐만 아니라 좋은 직원이 들어와서 저도 좋네요.”

“저도요.”

두 사람은 오창규의 칭찬을 하며 그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오 선생,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임 선생님. 원장님?”

“그러게요. 살살 해요.”

“아닙니다. 전 워낙 애들을 좋아해서요. 이 정도는…… 아!”

오창규가 두 사람에게 말을 하는 순간, 등에 업혀 있던 아이가 그의 머리를 세게 잡아당겼다.

“어머! 세상에, 민준아?”

순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온 아이의 엄마가 깜짝 놀라 오창규 등에 있는 아들을 떼어 냈다.

“선생님 죄송해요. 너 지금 선생님께 이게 무슨 짓이야? 민준이 너 자구 이러면 원장님한테 혼나.”

아이 엄마가 아들에게 겁을 주며 말하자 아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태경을 올려다봤다.

“원장 선생님, 저 혼나요?”

“민준아, 사람 머리 잡아당기면 머리가 아파요. 그러면 안 돼.”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죄송해요.”

자기가 잘못한 걸 알고 있는 아이는 민망한 표정으로 오창규에게 사과했다.

“민준이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면 괜찮아. 다음부터 안 그럴 거지?”

“네, 안 그럴게요.”

“먼저 내려갈게요. 오 선생 수고해요.”

태경과 임정숙 간호사가 병동 계단으로 내려가고 오창규는 아이를 달래 주었다.

“이럴 땐 따끔하게 혼내 주셔도 돼요. 선생님이 자꾸 그러시니까 민준이가 선생님만 보면 장난치는 거 같아요.”

“아니에요. 어른도 병원 생활이 힘든데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전 괜찮습니다.”

“선생님은 마음이 어쩜 이렇게 넓어요. 우리병원은 선생님들이 다들 너무 좋아요. 그리고 우리 애 잘 봐주셔서 감사해요. 선생님 때문에 민준이가 병원 생활 더 편하게 하는 거 같아요.”

“별말씀을요. 민준이 씩씩해서 병원 하나도 안 무섭지.”

“네, 주사도 안 무서워요.”

“와! 진짜! 민준이 최고다. 이따 밥도 씩씩하게 잘 먹어야 해.”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엄마와 아이가 병실로 들어가고 오창규는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계단으로 향하던 걸음을 잠시 멈췄다.

찰칵- 찰칵-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 버튼을 누르고 병원 내부를 몇 번 찍었다.

“어! 오 쌤, 또 사진 찍어요?”

때마침 계단에서 올라오던 병동 스테이션 간호사가 그 모습을 보며 다가왔다.

“저번에도 사진 찍고 있던데 무슨 사진을 그렇게 찍어요. 병원에 뭐 볼 것도 없는데.”

“아, 그냥 병원 모습을 찍고 있었어요.”

“좀 봐도 돼요? 어머! 사진 잘 찍는다.”

간호사는 오창규가 보여 준 핸드폰 화면을 보며 감탄했다.

“병원 내부를 어쩜 이렇게 잘 찍었어요? 무슨 감성 사진 같아요. 감각 있다.”

“제가 블로그 꾸미는 게 취미인데 환자나 직원들 얼굴이 안 나오게 찍다 보니까 이렇게 됐네요.”

“아~ 그래서 건물 모습만 찍은 거구나? 근데 진짜 잘 찍으시네요.”

“사진 찍는 걸 좋아하다 보니까 실력이 조금씩 늘었는지 예쁘게 찍히는 거 같아요.”

“혹시 나중에 기회 되면 저도 한 장 찍어 주세요.”

“그럼요.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그럴게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 이만 내려가…….”

“저기요! 선생님?”

오창규가 동료 간호사와 인사를 하고 내려가려던 찰나, 근처 2인 병실에 있던 보호자가 복도로 나와 그들을 불렀다.

“여기 좀 도와주세요. 할아버지가 또 난리 나셨어요.”

보호자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빠르게 2인 병실로 뛰어갔다.

“야, 이 나쁜 년아!”

병실에 들어가자 날 선 욕설과 함께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머리채를 잡고 있었다.

대장 내시경 검사에서 여러 개의 큰 폴립을 제거한 후 입원한 할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있었다.

비교적 심한 치매는 아니었고 자다 일어나거나 가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정도였는데, 문제는 한 번씩 치매기가 있을 때마다 부인인 할머니를 힘들게 했다.

평소에는 그렇게 다정하게 굴고 애정하는 할머니를 돌아가신 아버지의 외도 상대로 착각하며 막말을 쏟아냈다.

“자다 깨셔서 또 저러시네요. 제가 말려도 소용이 없어서 선생님 불렀어요.”

“너 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영감? 나예요? 말순이. 당신 마누라 고말순이라고요.”

“이년이 어디서 거짓말을 하고 있어?”

“할아버님!”

오창규는 얼른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뒤에서 그를 안았고, 함께 온 간호사는 할머니 머리카락을 꼭 잡고 있는 손을 떼어 내려 했다.

“우리 할아버지 왜 또 이러실까? 말순 할머니잖아요.”

“뭔 소리 하는 거야? 우리 마누라는 집에 있어!”

“아! 영감. 이것 좀 놔줘요.”

“다른 선생님들 불러올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자! 우리 할아버지 저 보세요. 임지렬 할아버지! 여기 병원이에요.”

오창규는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환자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꼭 쥐고 있는 할아버지 손안으로 검지를 비집고 넣더니 힘을 주어 손을 떼어 내는 데 성공했다.

“임지렬! 할아버지? 할머니 안 보이세요? 할아버지!”

“어?”

“정신 차리세요? 할머니 나쁜 여자가 아니라 할아버지 부인이시잖아요.”

“……!”

그렇게 할아버지를 안고 한동안 차분하게 상황을 인지시킨 결과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의 정신이 돌아왔다.

“이제 좀 정신이 드세요?”

“아니, 선생님 왜 날 안고 있어요?”

“영감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아이고! 세상에 할멈. 내가 또 정신을 놨네. 그렇지?”

자기 손에 들린 몇 가닥의 머리카락을 보며 할아버지는 정신이 또 오락가락했다는 걸 알게 됐다.

“이번에는 그래도 빨리 끝났어요.”

“지렬이가 또 지랄했네. 나 정말 콱 죽어 버릴까 봐. 미안해 여보. 선생님들도 미안해요.”

정신이 돌아온 할아버지는 평소 유쾌한 성격답게 농담을 던지며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니에요. 어르신 괜찮습니다.”

“늙으면 곱게 늙어야 하는데 우리 아버지는 뭐 좋은 거라고 치매까지 물려줘서 말년에 마누라 고생이나 시키고 앉았는지 원……. 다들 미안합니다.”

“여보, 난 괜찮아요. 머리 하나도 안 아팠어요.”

“정말 미안해.”

평생 속 한 번 썩인 적 없던 남편이기에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치매가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만 미안해해요. 나보다 여기 선생님들이 고생했어요.”

“선생님들 정말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볼게요.”

“그래요. 수고들 하세요.”

상황이 마무리되고 간호사는 할아버지를 달래며 구석에 있던 오창규를 불렀다.

“오 쌤, 안 가요?”

“네, 갑니다.”

“저기, 선생님 그거 그냥 두고 가세요.”

병실에 있던 재활용품을 챙겨 가는 오창규를 보며 할머니가 다급하게 그를 붙잡았다.

“제가 정리할게요.”

“괜찮아요. 그럼 쉬세요.”

오창규는 할머니의 만류를 뿌리치며 병실을 나왔다. 그 뒤 그는 병실마다 들어가 재활용품을 다 챙겨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저 재활용 버리러 가는데 버릴 거 있으면 주세요.”

“어휴, 됐어요. 여기는 우리가 정리할게요.”

“그러지 말고 이리 주세요.”

스테이션에 있던 간호사가 민망한 표정으로 다 먹은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치우려 하자 오창규가 얼른 집었다.

“미안해서 그렇지. 오 쌤은 할 일도 많은데 뭐 하러 이런 것까지 하고 그래요.”

“맞아요. 청소하시는 이모님들 계시잖아요.”

“가끔 시간 있을 때마다 그냥 하는 거예요. 저도 바쁠 때는 못 하죠. 제가 우리병원 정문 쪽 정원을 참 좋아하거든요. 이렇게 재활용을 핑계 삼아 한 번씩 나가는 거죠. 저 그럼 갔다 올게요.”

“네, 수고하세요.”

“어쩜 사람이 저렇게 성실하고 단점이 하나도 없지?”

오창규가 병동에서 내려가자 간호사들은 그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누가 아니래요. 세상에 병원 온 날부터 매일 저렇게 병실 재활용을 버린다니까요.”

“매일 하는 거 보통 아닌데.”

“어제는 청소 이모님이 미안하니까 그만하라고 했는데도 자기는 이게 좋다고 그랬대요.”

“세상에! 내가 우리 수 쌤 만큼은 아니어도 간호사 짬이 좀 되는데 나 저런 사람 처음 봤어.”

“저도요. 몇몇 환자들 때문에 힘들다가도 오 쌤 보고 마음을 다잡는다니까요.”

“아무튼 우리병원에 아주 좋은 직원이 들어왔어.”

“그러니까요. 오래 같이 일했으면 좋겠어요.”

* * *

간호사들이 칭찬하는 사이 오창규는 병원 건물 밖으로 나왔다.

커다란 봉지에 병동 재활용을 모아 온 그는 병원 뒷문으로 나와 주차장 쪽에 있는 수거함에 재활용품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정리를 마친 오창규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뒤로 살짝 젖히더니 병원 건물을 유심히 쳐다봤다.

“하나, 둘, 셋, 넷…….”

찰칵- 찰칵- 찰칵-

“잘 찍혔네.”

혼잣말하며 핸드폰 카메라로 병원 건물을 열심히 찍은 그는 결과물을 보고 만족한 뒤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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