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55화 (354/472)

355화. 애꾸 눈

찰칵- 찰칵- 찰칵-

“잘 찍혔네.”

혼잣말하며 핸드폰 카메라로 병원 건물을 열심히 찍은 그는 결과물을 보고 만족한 뒤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오 쌤, 안녕하세요.”

뒷문으로 들어와 고개를 들고 한곳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오창규에게 연이어 인사 소리가 들렸다.

“……!”

그 소리에 핸드폰을 꺼내려던 그는 동작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경쾌한 인사 소리에 주인공은 나란히 출근하는 이찬희와 최모나였다.

“오 쌤, 하이.”

“이 선생님, 최 선생님. 안녕하세요.”

“천장에 뭐 좋은 거라도 있어요?”

호기심이 많은 이찬희는 오창규가 보고 있던 천장 주변을 쳐다봤다.

“뭘 그렇게 빤히 보고 있어요?”

“아~ 나비가 붙어 있길래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었어요.”

“나비?”

“나비 말입니까? 오 쌤 나비 좋아해요?”

“그런 건 아닌데 호랑나비였거든요. 호랑나비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해서 사진 찍어서 간직할 까 했죠.”

“그래요? 호랑나비가 행운의 상징이에요? 처음 알았네.”

“저도 예전에 들은 이야기예요.”

“그런데 나비는 어디 있어요?”

행운이라는 말에 최모나도 천장으로 고개를 들어 호랑나비를 찾았다.

“아, 그게……. 사진 찍으려고 하니까 저 위에 창문 열린 곳으로 날아갔어요.”

“아깝다.”

“오 쌤? 그건 그렇고 좀 어떤 거 같아요?”

“뭐야, 그게 무슨 질문이야?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

이찬희가 맥락을 알 수 없는 질문을 하자 최모나가 그의 팔을 툭 쳤다.

“주어가 빠졌잖아.”

“그러네. 우리병원에서 일하는 거 좀 어떠냐고요.”

“전 너무 만족합니다. 다들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셨고 직원분들도 좋고 무엇보다 원장님이 참 멋지고 좋은 분이라서 더 좋은 거 같아요.”

“하긴 우리 원장님이 좀 멋지긴 하지. 옆에서 같이 일하다 보면 막 존경심이 생기고 그런다니까요.”

“정말 그런 거 같아요. 특히 환자분들 진료하실 때 보면 정말 뭔가 막 가슴이 뜨거워지는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요.”

“우리 오 쌤이 나랑 통하는 게 있네. 생긴 것도 비슷하고……. 안 그래? 최 쌤?”

“응. 아니야.”

“그럼 내가 낫나?”

“아니, 오 쌤이 낫지.”

“야, 넌 그래도 내가 명색이 남ㅈ……읍!”

여자 친구의 장난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이찬희가 순간 남자친구라는 단어를 내뱉으려 하자 최모나가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뗐다.

“이 쌤. 미안. 입 주변 모기가 앉아서…….”

“모기?”

“어. 모기가 다 있네.”

“모기는 잡아야지. 그런데 요즘 모기가 있었나?”

“안녕하십니까.”

최모나는 이찬희의 말에 대꾸하지 않으며 접수처에 있는 직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최 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 이 쌤도 오셨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두 사람 함께 출근하는 거야?”

응급실에서 나온 태경이 인사하는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접수처 근처에 있던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찬희와 최모나에게 쏠렸다.

“그러게요. 원장님 말씀이 맞네요.”

“그러고 보니 두 분 오늘 같이 온 거예요?”

“어! 정말 그런 거예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요 앞에 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정류장이요?”

“이거 수상한대? 정류장이라면 뒷문이 아니라 정문으로 들어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

“어! 저, 저기!”

저도 모르게 말실수한 최모나가 당황한 사이 이찬희가 갑자기 정문을 향해 손가락을 뻗으며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저기 좀 보세요. 환자! 환자분 왔어요.”

“에이, 이 쌤도 참. 환자가 오긴 어디 왔다고.”

“정말이에요. 저기 좀 보세요.”

“어! 정말 환자네.”

다들 이찬희가 말을 돌리려고 그냥 한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두 명의 남자가 병원 입구 쪽으로 빠르게 걸어 들어오는 게 보였다.

그중 한 명은 키가 작은 60대로 보였고, 한 명은 비교적 젊어 보이는 남자였다.

60대 남자는 얼굴 한쪽을 손수건으로 가린 채 들어왔는데, 정확히 눈 한쪽을 수건으로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젊은 남자는 손바닥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내가 가 볼게요.”

태경이 그 모습을 보고 그들에게 다가갔고 주변에 있던 임정숙 간호사가 뒤따랐다.

“괜찮으세요?”

“저, 진료 보러 왔는데…… 바로 가능할까요?”

젊은 남자가 한 손으로 60대 남자를 부축하듯이 잡으며 말했다.

“그럼요. 바로 가능합니다. 임 선생님?”

“네, 제가 안내 도와드릴게요.”

임정숙 간호사가 두 남자의 접수를 빠르게 도와준 뒤, 태경의 진료실과 연결된 처치실로 안내했다.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주고받던 직원들은 환자의 등장에 업무 준비를 서둘렀다.

이찬희와 최모나도 의국실에 들어가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응급실로 향했고, 태경은 곧장 진료실로 들어갔다.

“어르신, 제가 좀 볼게요.”

“아니요. 저 말고요.”

태경이 60대 노인 환자에게 먼저 다가가자 한쪽 눈을 가린 손이 아닌 나머지 손을 들어 손사래를 쳤다.

“저, 말고 저 친구 먼저 봐 주세요. 선생님.”

“환자분이 치료를 더 먼저 해야 할 거 같은데요.”

“아닙니다. 이 정도로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엄살이 없어지다 보니 제가 참는 건 참 잘합니다.”

“아니요. 선생님, 저 말고 저분 먼저 해 주세요.”

이번에는 그 소리를 들은 젊은 남자가 노인을 먼저 봐 달라고 하자 노인이 다시 말했다.

“자네는 빨리 들어가 봐야지. 그러다 또 싸움이 일어나면 어떡하려고?”

“설마 또 일어나겠어요?”

“그건 모르지. 어디 이번 싸움이 일어날 줄 짐작이나 했어?”

“그건 그래요.”

“선생님? 사정이 있어서 그러니 저 친구 먼저 치료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정중하게 말하는 노인 환자의 거듭된 부탁에 태경은 젊은 남자에게 다가갔다.

일단 그의 손을 살펴본 뒤 추가로 의료진을 더 부르고 노인을 진료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소독만 하면 되겠네요.”

“그래요? 잘됐네요.”

젊은 남자의 손에 난 상처는 비교적 가벼운 상처였다. 처음 손에 붕대를 감고 왔기에 큰 상처면 어쩌나 싶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피가 나기는 했지만, 살짝 긁힌 정도라 봉합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었다.

이 정도면 굳이 후배를 부를 필요가 없었기에 태경은 젊은 남자의 상처를 빠르게 치료했다.

“다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럼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소독을 마친 남자는 노인에게 인사를 한 뒤 먼저 진료실을 나갔다.

“어르신. 이제 제가 상처 부위를 좀 봐도 될까요?”

“그럼요. 물론이죠.”

태경이 노인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수건에 피가 묻어 있는 게 보였다.

진료를 위해 눈에 대고 있던 손수건을 치우자 생각보다 안쪽에 피가 더 많이 묻은 채 굳어 있었다.

“저런! 피부가 찢어졌네요.”

남자는 눈 바로 아래쪽 피부에 자상을 당한 상태였다.

한눈에 봐도 날카로운 것에 찔린 상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뺨 주변으로 굳어 있는 피와 상처 부위를 봐서는 자상을 당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셨어요?”

“일이 좀 있었습니다.”

임정숙 간호사가 건네준 솜으로 상처 주위를 소독하며 태경이 말을 이었다.

“날카로운 것에 찔리신 거 같은데 맞죠?”

“네, 정확히 무엇에 찔린 건지는 보지 못했지만, 날카로운 건 맞습니다.”

“이거 찔릴 때 꽤 아팠을 텐데 왜 바로 안 오셨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허 참!”

노인은 뭔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일하는 곳에서 싸움이 났는데 말리다가 찔렸습니다. 찔리는 순간 어! 하며 이거 잘못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싸움을 말리는 게 더 급선무라서 당시에는 아픈지도 몰랐어요. 그러다가 상황이 정리되고 나니까 동료들이 놀라면서 얼른 병원부터 가라고 해서 아까 그 친구랑 부랴부랴 왔습니다.”

“싸움이 심했나 보네요. 상처 부위 봉합해야 해서 마취를 좀 할게요.”

“안 그래도 병원 가면 무조건 꿰매겠구나 했는데 역시 그렇네요. 선생님, 마취 주사 아프겠죠?”

“솔직히 안 아프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아픔을 느끼는 강도가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조금 따끔하게 아프긴 합니다.”

“하하하!”

노인은 껄껄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솔직하시네요. 그 말이 맞아요. 뾰족한 바늘이 그것도 상처 부위에 들어가는데 안 아픈 게 이상한 거죠. 사실 아까 젊은 친구가 보고 있다 보니까 아프다는 티를 낼 수가 없어서 거짓말 좀 했습니다. 나이 먹어도 주사는 무섭거든요.”

“당연하죠. 최대한 아프지 않게 잘 놔 드릴게요. 자! 주사 들어갑니다.”

태경은 마취 주사를 들고 상처 부위에 마취를 시작했다.

“아~~ 아!”

“조금만요. 조금만 더……. 다 됐습니다. 아프셨어요?”

“와! 이거 마취 주사를 오랜만에 맞아서 그런지 꽤 아프네요.”

“잘 참으셨어요. 이제 봉합 시작합니다.”

“네, 선생님 예쁘게 잘 꿰매 주세요.”

임정숙 간호사가 동그란 구멍이 있는 초록색 포를 노인 얼굴 위로 덮자 태경이 곧장 봉합을 시작했다.

“좀 괜찮으세요? 아프진 않으시죠?”

“그러네요. 조금 전에 마취 주사도 잘 놓아 주셔서 그런지 하나도 아프지 않습니다.”

“어르신, 이거 조금 더 깊게 찔렸으면 신경이 손상될 뻔했어요. 눈이 안 찔린 것도 다행이에요.”

“안 그래도 거울 보면서 이거 눈 찔렀으면 어쩔 뻔했는지 아찔했습니다. 노년에 애꾸눈 될까 봐 아차 싶었어요. 그런데 선생님 써전이시죠?”

“아, 네. 맞습니다.”

“아까 주사 놓는 스킬도 그렇고 봉합하는 솜씨가 대단하시네요. 외과의는 실 장난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고, 봉합하는 것만 봐도 그 실력을 안다고 하지 않습니까. 수술포에 가려서 선생님 봉합을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제 피부 위로 느껴지는 그 감각이 보통 솜씨가 아니구나 싶어서요.”

“봉합하는 건데 너무 칭찬해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봉합 다 됐습니다.”

그사이 태경은 봉합을 마치고 노인은 진료 베드에서 일어났다.

“어허! 봉합을 아주 기가 막히게 하셨네요.”

그는 벽에 걸린 거울을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여기서 수술도 다 하시나요?”

“네, 제가 할 수 있는 수술은 하고 있습니다. 어르신, 혹시 의사 선생님이신가요?”

태경은 노인이 말하는 뉘앙스를 듣고 왠지 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전, 봉합에 들어가기 전에 의료 용품 이름을 말하는 것도 그랬고 의학용어를 자연스럽게 섞어 말하는 게 아무래도 전문 의료인 같았다.

“눈썰미도 좋으시네요. 네, 저도 의사 맞습니다.”

“그러시군요.”

“이렇게 꼼꼼하게 봉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피부가 찢어진 자상을 봉합하는 걸로 유난 떤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노인은 태경의 손에 배긴 굳은살과 봉합 실력을 보며 의사로서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어쩌다가 눈 주변을 다치셨어요? 혹시 환자들끼리 싸움이 있었나요?”

봉합을 끝낸 태경이 마무리를 한 뒤 노인에게 물었다.

“그게 제소자들끼리 작은 싸움이 있었습니다.”

“네?”

“……!”

제소자라는 말에 태경은 물론 옆에서 봉합에 쓴 의료용품을 정리하던 임정숙 간호사도 적잖이 놀랐다.

“제소자들이라면…….”

“생각하시는 그곳 맞습니다.”

“그러면 교도소에서 근무하시나요? 교도소 의사세요?”

“네, 전 교도소 의사입니다.”

노인은 인자한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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