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56화 (355/472)

356화. 노란색……명찰? 1137번

“그러면 교도소 의사세요?”

“네, 전 교도소 의사입니다.”

마무리한 상처 부위를 거울로 보던 노인은 고개를 돌려 인자한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말을 이었다.

“저쪽에 있는 연손 교도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병원 식구들 역시 연손 교도소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병원이 있는 여울동은 서울에 속해 있었다.

여기서 차를 타고 20분 정도 가서 다리를 지나면 경기도였는데, 그곳에 산으로 둘러싸인 교정 시설 연손 교도소가 있었다.

늘 의사가 부족한 곳, 직업으로 택하는 의사가 많이 없는 곳, 그래서 병역 의무를 대신해 공중 보건의들이 3년 동안 일을 하는 곳, 의사들 사이에서도 가고 싶은 곳이 다 떨어져 어쩔 수 없이 가는 곳. 그곳이 바로 교도소였다.

이지국은 그곳에서 평생 제소자들을 상대로 의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 오늘 근무하시다가 다치신 거예요?”

임정숙 간호사가 궁금한 듯 물었다.

“예. 오늘 교도소 안에서 작은 싸움이 있었어요.”

여느 때처럼 출근하여 아픔을 호소하는 제소자들을 진료하고 있었다. 그런데 의무실에 온 제소자들끼리 시비가 붙었고 싸움을 말리다가 이지국과 몇몇 교도관들이 상처를 입은 것이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게 아닌데 오늘 좀 운이 없었던 거 같아요. 다친 제소자랑 교도관들 치료해 주고 제 상처를 보는데 안 되겠더라고요. 아무리 의사라고 해도 제 상처를 직접 봉합할 수가 없어서 병원에 왔습니다.”

“잘하셨어요. 그래도 크게 다친 곳 없으셔서 정말 다행이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무섭지는 않으세요?”

“왜요. 무섭죠. 지금에야 제소자들에게 농담도 하고 웃긴 말도 하면서 어깨도 툭툭 치고 장난도 치지만, 처음에는 오금이 지릴 정도였어요.”

이지국은 아직도 첫 출근 날을 잊을 수 없었다.

전문의 생활을 끝내고 월급 받는 의사로 일하다가 반복된 삶에 회의를 느낀 그는 교도소 의사로 일하게 됐다.

누가 시켜서 일하게 된 건 아니지만, 막상 출근하려니 전날 잠을 설칠 정도로 겁이 났다.

“제 와이프 말로는 제가 출근 날 아침에 밥을 먹으면서 손을 떨었다고 하더라고요.”

“긴장이 많이 되셨나 봐요.”

“맞아요.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만, 저도 사람이라 겁도 나고 긴장을 많이 했어요. 물건을 훔친 도둑부터 사람을 죽인 살인범에 억울하고 안타깝게 죄를 지은 사람도 있었고, 이런 나쁜 놈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어요. 처음에는 진료 보러 온 제소자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서 기 싸움도 많이 했답니다.”

“참 대단하시네요.”

“아닙니다. 선생님은 치료받으러 병원에 오는 사람들은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이지국이 태경에게 물었다.

“어떤 생각이 들기보다는 그냥 환자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진료를 봐야겠구나 합니다.”

“저도 선생님과 똑같아요. 제가 곧 있으면 정년인데 지금까지 일하면서 깨달은 건 결국 그들도 저한테는 한낱 환자일 뿐이라는 겁니다.”

교도소에 있는 제소자들이 범죄자인 건 부정할 수 없고 그들의 잘못 또한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지국은 의사로서 편견 없이 그들을 진료할 뿐이었다.

“전 제 일이 즐겁고 또 보람도 느끼고 있습니다. 남은 기간 큰 사고 없이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어요.”

이지국의 이야기를 들은 태경은 그가 의사로서도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교도소에서 일한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중 보건의로 3년 정도만 일한 것도 아니고 평생을 그곳에서 의사로 일했다는 그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제가 치료받으러 왔다가 참 주책없이 별말을 다 했네요. 괜히 두 분 시간만 뺏은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선생님. 이야기 재미있어요.”

“원장님 말씀이 맞아요. 아직 바쁜 시간대가 아니라서 괜찮았어요.”

“늘 창살만 보이는 곳에서 일만 하다가 이 시간에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 제가 기분이 들떠서 말이 많아졌네요. 아무튼 치료 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소독 받으러 오셔야 하는 거 아시죠?”

“제가 소독해도 될까요?”

“그래도 되는데 불편하시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네, 오늘 감사했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선생님.”

이지국은 진료를 마치고 태경과 인사를 한 뒤 진료실을 나갔다.

철컥-

이지국과 함께 진료실을 나갔던 임정숙 간호사가 다시 진료실로 들어왔다.

“두 시간 뒤에 수술 마취과에 30분 정도 당길 수 있는지 한 번 알아봐 주세요.”

“네, 원장님.”

“이지국 환자는 처방전 드렸죠?”

“그럼요. 원장님이 드레싱할 것도 챙겨 드리라고 하셔서 드리려고 했더니 괜찮다고 하셔서 그건 못 드렸어요.”

“그래요. 저 중환자실 좀 다녀올게요.”

“네, 다녀오세요.”

* * *

연손 교도소.

“이야! 드디어 햇빛을 보네.”

“난 이래서 운동시간이 제일 좋다니까.”

운동시간을 맞아 제소자들이 하나둘씩 운동장으로 나왔다.

운동장에는 가볍게 몸을 푸는 무리와 팀을 나눠 운동하는 무리 그리고 각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는 무리들이 보였다.

그런 가운데 운동장 한쪽에 있는 170cm 초반, 50대 후반의 비교적 마른 남자가 계단식 의자에 홀로 앉아 성경책을 읽고 있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주여!”

성경책 한 구절을 읽은 남자의 왼쪽 가슴에는 노랑 명찰과 함께 1137이라는 번호가 찍혀 있었다.

“주여! 이 죄 많은 인간을 어찌 그리 용서하시며 또 주의 품에 품으셨는지요. 주님, 감사합니다.”

성경을 읽고 감동받았는지 그는 혼잣말을 하다가 오른손을 허공으로 들고 찬송가를 부르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이…….”

“아, 거참! 시끄럽네.”

1137번이 찬송가를 부르자 앞쪽에 앉아 있던 젊은 남자가 뒤를 돌아보며 기분 나쁜 티를 냈다.

“어이! 예수쟁이 아저씨?”

“예?”

“여기, 당신이 전세 냈어?”

“그럴 리가요. 여기는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운동장입니다.”

남자의 거친 언변에도 1137번은 미소를 잃지 않고 다정하게 답했다.

“그러니까. 내 말이. 여기 다 함께 사용하는 공간인데 아저씨가 그렇게 막 듣기 싫은 성경이니 찬송가니 부르면 되겠냐고요. 내 말이 틀려?”

“저런! 저 때문에 형제님이 불편하셨군요. 미안합니다. 목소리를 작게 한다고 했는데 더 작게 하도록 하죠. 나 같은 죄인…….”

“어이! 아저씨 내 말 안 들려?”

하지 말라는 말에도 1137번이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찬송가를 부르려 하자 남자는 인상을 구기며 그에게 다가갔다.

퍽-

“이 양반아 내 말 안 들리냐고? 내가 분명히 하지 말라고 했잖아.”

1137번이 들고 있던 낡은 성경책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기분이 상한 남자가 던져 버린 것이다.

“성경책을 던지면 안 되는데……. 어쩌나, 흙이 다 묻었네요.”

“야! 너 지금 내 말 무시 하냐? 내가 시끄러우니칵! 카각-”

순간 젊은 남자의 말문이 강제로 막혔다. 누군가가 그의 뒷덜미로 두꺼운 손을 올리더니 그대로 남자의 뒷덜미를 힘주어 잡은 것이다.

“컥!”

그 때문에 목이 졸린 남자는 말을 하다 말고 얼굴이 붉어졌다.

“야 이 새끼야. 너, 지금 선생님께 뭐 하는 짓이냐?”

“……예?”

뒷덜미가 졸린 남자가 있는 힘껏 눈동자를 돌리자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제소자와 무리가 보였다.

그 포스에 눌린 남자는 바로 꼬리를 내리며 최대한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답했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기어야 하는 상대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교도소는 같은 제소자들끼리도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과 계급이 존재했기에 괜히 밉보였다가는 남은 생활이 피곤해질 수 있었다.

“예는 무슨 예야. 지금 뭐 하는 짓이냐고? 선생님, 괜찮으세요?”

“어허. 그러지 마세요.”

성경책에 묻은 흙은 털어낸 1137번이 뒷덜미를 잡고 있는 자에게 한마디를 건네자 그가 남자를 풀어줬다.

“야! 너 선생님께 당장 사과드려. 사과 안 해!”

“아니요. 합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난 괜찮습니다.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지요.”

1137번은 하늘에 떠 있는 해처럼 따뜻한 미소와 함께 남자의 등을 쓸어내리며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이, 애송이? 너 앞으로 선생님께 한 번만 더 까불면 그땐 가만 안 둔다. 알았어?”

“네. 네. 명심하겠습니다.”

“너 오늘 선생님 때문에 봐준 거야. 지켜볼 테니까 똑바로 해.”

“네. 똑바로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험악한 분위기를 풍기던 무리가 자리를 떠나고 남자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쯧쯧! 초범이지?”

손이 파르르 떨리는 남자에게 파란 명찰을 한 남자가 혀를 차며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다.

“예? 저요?”

“네. 너요. 교도소 처음 들어와서 멋모르고 설치는 꼴이 딱 보니까 처음 들어온 거 같은데 아니야?”

“마, 맞아요.”

“종류가 뭐야? 일반범이지?”

“네, 그것도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절도로 들어왔어요.”

“흰색이잖아. 흰색! 화이트.”

“예?”

파란 명찰의 남자는 상대의 흰색 명찰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간단하게 설명해 줄게, 잘 들어. 그쪽처럼 명찰이 흰색인 사람들은 비교적 가벼운 경범죄를 저지른 사람이고, 빨간색은 사형수. 나 같은 파란색은 일명 뽕쟁이들, 마약 하다 잡혀 온 놈들. 그리고 노란색은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지. 이제 좀 이해가 가?”

“네. 이해가 가요.”

“그렇지, 이 정도로 설명했는데 못 알아들으면 꼴통이지. 뭐, 여기 다 꼴통 짓거리해서 들어온 사람들이긴 하지만. 여기서 제일 조심해야 하는 사람들이 누굴까?”

“노란색…… 명찰?”

교도소에 사실상 빨강 명찰의 사형수들은 보기 힘들었기에 가장 조심해야 하는 부류가 노란색 명찰이었다.

“빙고. 그러면 여기서 문제?”

“……?”

“아까 그쪽이 얕잡아 봤던 저기 저 비리비리한 양반의 명찰이 무슨 색이었을까?”

마약사범은 걸어가고 있는 1137번의 뒷모습을 손가락을 가리키며 물었다.

“흰색이요?”

“땡?”

“파, 파란색?”

“놉! 정답은 노란색!”

“노, 노란색이요? 저 멸치, 아니 저분이요?”

“안 믿기지?”

“네, 전혀요.”

성경책을 들고 있어서가 아니라 비교적 작은 키에 비리비리한 몸매 게다가 허허실실 웃고 있는 인상까지.

조금 전 마주한 1137번은 도저히 살인 같은 강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솔직한 심정으로 얕잡아 봐도 되겠구나 싶은 정도의 인상과 체격이었기에 신입 제소자는 마약사범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교도소 안이건 밖이건 바로 저런 사람을 조심해야 하는 거야. 그저 고개 돌리면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얼굴이잖아. 안 그래?”

“그래요.”

“저런 사람이 왜 무서운 줄 알아? 설마 저런 평범한 얼굴로 나쁜 짓을 할 거라고는 상상을 못 하거든. 저 사람 우리나라 최고 대학인 S대 나와서 한때 잘나가는 회계사였어. 그런데 저 사람이 사람을 죽였어.”

“사, 살인범이네요.”

“그렇지. 그런데 어떻게 죽인 줄 알아?”

“어떻게 죽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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