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화. 연손 교도소
“사, 살인범이네요.”
“그렇지. 그런데 어떻게 죽인 줄 알아?”
“어떻게 죽였는데요?”
“그게 말이야 칼로 아주 난도질해 놨대. 교도소 안에 들리는 말로는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걸레짝을 만들었다는 말도 있어.”
“사, 사람을요?”
신입 제소자는 말까지 더듬으며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럼 뭐 걸레나 횟감을 썰었을까 봐?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죄송합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경찰한테 잡히기 전까지 아무렇지 않게 그것도 아주 태연하게 평소처럼 회사도 나가고 그랬다는 거야. 그러면서 연행 당시에 자기는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놈을 더 고통스럽게 찢어 죽이지 못한 게 원통하다고 말하면서 끌려갔다는 거야.”
교도소 내 1137번에 대한 소문이 워낙 많았기에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당사자만이 알 수 있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거였다.
“엄청난 사람이네요.”
“그러니까 앞으로 함부로 개기거나 독서하는 데 방해하거나 허락 없이 신체를 터치하거나 하지 말라고. 아까 봤지?”
“아. 네……. 물론이죠. 그런데 아까 보니까 제 목덜미 잡았던 덩치 큰 분이요.”
“아! 그 사람은 조폭 출신이야. 그 사람도 한 성깔 하니까 조심하고.”
“그런데 조폭도 그렇고 뭔가 1137번에게 다들 선생님이라고 하면서 뭔가 예의 있게 행동하던데 그건 왜 그런 거예요?”
“너 밖에 있을 때 공부 좀 했냐?”
“아니요. 당연히 못 했죠.”
“자랑이다. 가방끈은? 대학은 나왔어?”
“고졸이요. 꼴통이라 고등학교도 간신히 졸업했어요.”
“난 중졸이거든. 뭐,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사회에서 일하다가 보면 그 공부라는 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중요하잖아.”
“중요하죠.”
“나도 중졸에 머리가 좋지 못하니까 결국 뒷골목에서 이런 일 저런 일 하다가 결국 약에 손대고 그러다가 뽕쟁이가 되고…….”
마약사범은 묻지도 않던 자기 이야기를 하다가 현타가 왔는지 잠시 말을 멈추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 안에 모인 사람 중에 공부를 잘해서 들어온 사람들이 몇이나 있겠어. 국가적으로 정치 스캔들 일으킨 사람들은 서울에 있는 좋은 독방에 있지 이런 변두리 교도소에는 안 오잖아. 그런데 1137번이 S대 출신이니까 얼마나 머리가 좋겠냐? 안 그래?”
“좋죠. 저도 사회 있을 때 잠깐 알바 같이하던 동생이 S대였는데 머리 돌아가는 게 비상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여기서 있는 제소자들이 머리 쓸 일 있으면 저 양반이 적잖이 도움을 많이 줬어. 그러니까 다들 ‘선생님’ 하면서 신뢰하는 거지. 그뿐이야? 모범수에 행실도 좋아서 교도관들도 다들 좋아해.”
“그래도 살인자잖아요.”
“여기서 좋은 놈 나쁜 놈 찾는 게 웃긴 거 아닌가? 어차피 죄다 죄짓고 들어온 놈들이잖아. 세월이 오래 지난 만큼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고 다른 사람이 됐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건 그러네요.”
“뭐, 설명이 길어지긴 했는데, 내 말의 결론은 교도소 생활 조심히 잘하라는 거야.”
“네, 그래야죠.”
마약사범의 말을 들은 신입 제소자의 시선이 운동장을 걷고 있는 1137번에게 향했다.
몰랐던 사실을 알아서인지 조금 전과 다르게 1137번에게 느껴지는 기운이 뭔가 범상치 않았다.
* * *
교도소 작업장-
여러 제소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각자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목공소처럼 생긴 공간에서 책상을 만드는 제소자도 있었고, 쟁반이나 그릇 등을 만드는 제소자도 있었다.
“보면 머리도 좋은 사람이 손재주도 좋은가 봐.”
주변을 돌아다니며 제소자들을 살피던 교도관이 제일 뒤쪽에서 작업하던 1137번에게 다가왔다.
“도마를 아주 잘 만들었어. 자네는 못하는 게 없어.”
“별말씀을요. 하다 보니까 어떻게 이번에는 예쁘게 잘 나왔네요.”
“요즘 몸은 어때? 허리는 괜찮고?”
“예.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아! 맞다. 그건 그렇고 고마워. 자네 때문에 이번에 우리 아들이 세금 관련해서 덕을 크게 봤어.”
“제가 뭘 해 드린 게 있나요. 그저 몇 가지만 알려 드린 거뿐인데 도움이 됐다고 하시니까 다행입니다.”
“하! 이유가 뭘까?”
교도관이 본인 턱을 매만지며 물었다.
“네?”
“내가 교도관 생활을 꽤 오래 해서 나름 제소자들을 보면 대충 그 느낌이라는 게 오거든. 근데 자네는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 올 사람이 아니란 말이지. 대체 어쩌다 온 거야?”
“특별할 게 있나요? 저도 다른 제소자들과 똑같습니다. 죄를 지어서 들어왔죠.”
능글맞은 교도관의 질문에도 1137번은 웃으며 자신의 속내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 뭐, 옛날 일 들춰 봐야 뭐 하겠어. 나보다 자네 속이 더 쓰리지. 자!”
열심히 도마를 만들고 있는 1137번에게 교도관은 신문지를 꺼내 건넸다.
“저, 주시는 건가요?”
“다들 자네한테 신문지로 답례한다고 해서 나도 준비해 봤어.”
교도관은 물론 제소자들 사이에서 예전부터 이어진 일종의 규칙 같은 게 있었다.
그건 1137번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전부 신문지로 보답을 한다는 거였다.
대개 다른 제소자들은 금지 물품이자 간절하게 생각나는 담배를 가장 많이 선호한다. 그런데 1137번은 늘 언제나 항상 신문지 하나면 충분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크게 도움 드린 것도 아닌데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문지를 받은 1137번은 뭔가 대단한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얼굴에 화색을 보이며 기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 신문지 받은 게 그렇게 좋을 일이야?”
“그럼요.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니고 도대체 왜 그렇게 신문지만 고집하는 거야? 담배도 있고 카드나 고스톱 그것도 아니면 남자들 성인잡지도 있잖아.”
“글쎄요. 담배는 일단 제가 피우지를 않고 다른 것들은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신문은 교도소에 오래 있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게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여기 퀴즈 푸는 게 낙이거든요.”
물론 교도소 안에도 제소자들이 볼 수 있는 TV가 있었다.
하지만 시청 시간도 정해져 있었고 볼 수 있는 프로도 제한되어 있었기에 밖에서 일어나는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는 신문을 보는 재미가 더 흥미로웠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 아무튼, 도와줘서 고마웠어.”
“아닙니다.”
“그럼 수고해.”
교도관이 자리를 뜨고 작업을 이어 가던 1137번은 작업 종료 시간까지 열심히 도마를 만든 뒤 방으로 돌아갔다.
그 뒤, 저녁을 먹은 뒤 소등 시간을 알리는 소리에 제소자들은 한둘씩 자리에 누워 취침에 들어갔다.
“흐!”
그런데 잠시 후, 한쪽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평상시처럼 누군가의 잠꼬대 소리라고 생각했던 제소자들은 곧이어 그 소리가 흐느끼는 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흐윽!”
“잠잘 시간에 누가 쳐 우냐?”
“그러게요. 막내야?”
몇몇 제소자들은 얼마 전에 들어온 신입이 우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가끔 교도소에 처음 들어오는 제소자들 중에 적응할 때까지 우는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 아닌데요. 저 안 운 지 좀 됐어요.”
“하긴. 그러네. 그럼 누구야?”
“아, 씨! 그럼 누가 밤에 쳐 울고 지랄이……!”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맡 선반에 있던 작은 랜턴을 꺼낸 한 제소자는 불을 비추다 말고 놀라 말문이 막혔다.
놀랍게도 울고 있던 건, 1137번이었다. 그는 신문을 보다 말고 흐느껴 울고 있었다.
“서, 선생님?”
“뭐야, 선생님이 우는 거라고?”
“무슨 일이세요?”
제소자들은 작은 목소리로 그의 곁에 다가가 물었지만, 그는 대답 대신 계속 흐느끼며 숨죽여 울었다.
“하! 자는 시간에 다들 미안해요. 난 괜찮아요.”
그렇게 한동안 흐느끼던 1137번은 눈물을 훔치며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그의 모습에 제소자들은 궁금함이 가득했지만, 자리에 눈을 감고 누운 그에게 더는 물어볼 수 없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1137번은 평소보다 더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옆자리에서 잠을 자던 제소자도 몸을 일으키며 인사했다.
“일어나셨어요?”
“이거 나 때문에 괜히 일찍 일어난 거 아닌가요? 아직 기상 시간까지 시간이 있는데 더 자도록 해요.”
“아닙니다. 며칠 전에 면회했더니 요즘 잠이 잘 없네요. 이상하게 가족들 면회하고 가면 전 잠을 잘 못 잡니다.”
“그럴 수 있죠.”
“저, 그런데 선생님. 어제는 왜 그러셨는지?”
“나 때문에 밤에 놀랐죠?”
“예. 조금 놀라긴 했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두 사람의 대화 소리에 다른 제소자가 잠에서 깨어 대화에 합류했다.
그 뒤, 차례대로 일어난 제소자들은 1137번을 중심으로 전날 그가 왜 그랬는지 본격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고민거리라도 있으세요?”
“저희가 도울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쇼.”
“맞습니다. 저희가 개인 머리는 꼴통이지만 이게 또 머리를 맞대면 나름 괜찮은 묘책이 나오기도 하거든요.”
“그럼 제가 여러분들에게 작은 부탁 하나를 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물론입니다.”
“우리들이 그동안 교도소 생활하면서 선생님께 도움받은 일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맞아요. 뭐든 말씀해 보세요.”
제소자들의 거듭된 말에 1137번은 상당히 진지한 표정으로 한 가지 묘한 부탁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염치 불고하고 말할게요. 여러분들이 저한테…….”
“……!”
“……!?”
“예!?”
1137번의 말을 들은 제소자들은 눈을 크게 뜨며 멍한 표정으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말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갈뿐더러 말도 안 되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선생님. 지금 그게 무슨 말이세요?”
“우리가 잘못 들은 거죠?”
“아니요. 모두 제대로 들은 거 맞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이유는 묻지 말고 절 도와주세요. 제가 나중에 다 설명하겠습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그 방법은 좀…….”
“선생님, 정말 이 방법밖에 없는 겁니까?”
“저희 다 별로 내키지 않는데 차라리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1137번의 부탁을 들은 제소자들이 하나둘 말렸지만, 그는 결심을 굳힌 듯 흔들림이 없었다.
“아닙니다. 이 방법밖에 없어요.”
“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
“나도 그래.”
“힘들다는 거 아는데 여러분들이 날 좀 도와줘요. 부탁드립니다.”
“그래, 시x! 까짓것 도와드리자.”
모두가 고개를 갸웃하는 와중에 한 제소자가 격한 표현과 함께 그의 부탁을 들어주자고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생님이 생전 이런 말씀 하시는 거 봤어? 오죽하면 이러시겠어.”
“그것도 그래.”
“눈 딱 감고 시원하게 도와드리자.”
결국 제소자들은 1137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정했다.
* * *
그날 오후.
잠깐 주어진 자유 시간 제소자들은 방에서 각자 시간을 보내고 있던 가운데 어느 방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바로 1137번이 속한 방이었다.
“야! 꼰대 새끼야? 네가 뭐라도 돼?”
방에 있는 제소자들은 가운데 누군가를 세워 두고 날카로운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놀랍게도 1137번이었다.
“저한테 왜들 그러세요?”
“이게 선생이라고 불러 주니까 지가 무슨 진짜 선생인 줄 알고 있나? 병신이 지랄하고 앉았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하면서 1137번을 걱정하던 제소자들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야! 네가 뭐라도 되냐고? 어!”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다, 다들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난 예전부터 이 꼰대 새끼 마음에 안 들었어.”
날 선 목소리가 계속 높아지던 가운데 제소자들은 무언의 사인을 주고받았다.
“애들아! 오늘 이 새끼 담근다.”
가장 힘이 좋아 보이는 남자의 한마디를 시작으로 1137번을 향한 제소자들의 폭행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