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58화 (357/472)

358화. 10%

“애들아! 오늘 이 새끼 담근다.”

가장 힘이 좋아 보이는 남자의 한마디를 시작으로 1137번을 향한 제소자들의 무차별 폭행이 시작됐다.

퍽-

예고 없이 날아온 주먹에 1137번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

그 타격이 얼마나 강했던지 ‘억’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할 정도였다.

“아! 다, 다들 왜 이러는 컥!”

바닥에서 한 손으로 배를 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 자신을 둘러싼 제소자들을 향해 손을 펼치던 1137번은 이번에 누군가에게 발로 걷어차였다.

허벅지 쪽을 걷어차인 그의 몸이 의지와 상관없이 뒤집히며 엎드러진 자세로 고통을 호소했다.

“하아! 으윽!”

“이봐! 꼰대? 지금부터 시작이야. 야! 밝아.”

퍽- 퍽- 퍽-

1137번을 빙 둘러 싼 제소자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일제히 본격적으로 그를 구타했다.

퍽- 퍽-

허벅지, 등, 허리, 팔 등 제소자들은 신체 부위를 가리지 않고 폭행했으며 그 강도는 상당했다.

폭행의 강도가 누구라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보였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소낙비처럼 쏟아지던 가혹한 폭행이 30분 정도 지속되자, 1137번은 점점 만신창이가 되어 갔다.

“윽!”

급기야 그는 폭행으로 입안에서 한 움큼 피를 토하기도 했다.

퍽- 퍽- 퍽-

1137번이 피를 쏟아내도 제소자들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고, 계속된 폭행으로 주변 다른 방에서 또한 싸움이 일어난 걸 알게 됐다.

“뭐야! 저기 누구 담그나 본대?”

“어! 그러네. 오우! 시x 살벌하다.”

가장 먼저 맞은편 방에 있던 제소자들이 폭행 사실을 알게 됐다.

“맞는 사람이 누구지?”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저러다 죽겠는데?”

“아!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는데 가까이서 못 봐서 아쉽네.”

“뭐! 누구?”

“뽕쟁이들 싸움인가?”

“oo 방에서 누구 조진다.”

폭행 소식은 다른 방까지 빠르게 퍼졌고 제소자들은 맞는 사람이 누군지 상당히 궁금해했다.

“사람 때린다!”

제소자들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점점 커질 때쯤 다른 방에 있던 한 제소자가 방문 창살에 붙어 크게 소리쳤다.

“교도관님? oo방에서 폭행이 일어났어요.”

“뭐야?”

삐익-

그 소리에 때마침 순찰하러 온 교도관이 호루라기를 불며 폭행이 일어난 방으로 뛰어갔다.

곧이어 다른 교도관들도 차례대로 달려왔다.

“야, 이놈들아?”

교도관을 문을 열면서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야?”

“당장 안 떨어져?”

교도관들이 들이닥치자 제소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때리는 행동을 멈추고 얌전히 뒤로 물러났다.

“이봐! 괜찮……!”

엎드려 있는 가해자를 확인하던 교도관은 폭행당하고 있던 사람이 1137번이라는 사실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교도소 내부에서는 제소자들끼리 싸움도 종종 일어났다.

워낙 다양한 범죄자들이 모인 곳이라 잘 지내다가도 갑자기 죽일 듯이 싸우기도 했기에 교도관들은 항상 제소자들을 주의 깊게 살폈다.

싸움의 대상은 누구나 될 수 있었지만, 다른 제소자도 아닌 1137번이 맞고 있다는 사실이 살짝 놀라웠다.

연손 교도소 내에서는 가장 손꼽히는 모범수였고, 다른 제소자들 또한 모두 그를 의지하고 잘 따랐기에 더 그랬다.

“1137번, 괜찮아?”

“으! 으…….”

1137번은 신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얼굴을 고통으로 도배되어 있었고 말할 힘도 없었다.

“야! 이놈들아? 1137번을 왜 이 지경으로 만든 거야?”

“선배님, 그보다 의무실로 옮겨야 할 거 같은데요?”

“그래.”

교도관들은 일단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1137번을 의무실로 빠르게 데려갔다.

철컥-

“선생님! 선생님?”

교도관들은 의무실 문을 열자마자 의사를 찾았다.

“아니, 1137번 아니야?”

한쪽에서 다른 제소자를 보던 이지국이 베드에 눕힌 1137번을 보며 다가왔다.

“아니, 이 친구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갑자기 폭행이 일어나서 저희도 지금 상황을 정확히 모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1137번이 맞아서 좀 놀랐습니다.”

“보나 마나 똑바로 살라고 충고하다가 상대방이 심사가 뒤틀렸나 보지. 이 친구 삐딱선 타는 제소자 보면 본인이 나서서 바로잡아 주려고 하잖아. 내가 적당히 나서라고 했는데……. 쯧쯧,”

“그나저나 선생님,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을까요?”

“딱 봐도 엄청나게 맞은 거 같은데 한번 봐야지.”

이지국은 1137번 몸을 여기저기 확인했다.

“으…….”

1137번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표정과 함께 신음했다.

“선생님, 어떻습니까? 이 사람 괜찮은 건가요?”

“여기서 치료할 수 있을까요?”

“흠…….”

교도관의 질문의 청진기를 귀에서 뗀 이지국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1137번 이 친구, 당장 병원으로 옮겨야 할 거 같아.”

“그래요? 김 교도관은 가서 얼른 소장님께 보고부터 해.”

“예, 선배님.”

후배 교도관이 급하게 의무실을 나가자 선배 교도관이 이지국을 쳐다봤다.

“그러면 외부로 보내면 어느 병원으로 보내야 할까요? 아시겠지만, 교도소에서 제소자 환자 보낸다고 하면 꺼리는 곳이 좀 있거든요.”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 마침 딱 괜찮은 곳이 있으니까 내가 연락 한번 해 보지.”

“으!”

간헐적으로 신음을 토해 내는 1137번을 보며 이지국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 *

병원 근처 편의점-

“맛있을까?”

“그거 새로 나온 건데 맛있대요.”

진열대에서 못 보던 젤리를 보며 혼잣말하던 이찬희에게 편의점 주인이 답했다.

“그래요?”

“네, 우리 딸내미가 젤리를 좋아하는데 새콤한 맛이 강해서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오! 그러면 이것도 같이 사 볼까?”

이찬희는 요즘 저녁을 먹고 시간이 날 때면 가까운 편의점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었다.

딱히 간식을 좋아하지 않은 그가 편의점에 와서 젤리를 사는 건 여자 친구에게 줄 간식을 사기 위해서였다.

워낙 젤리를 좋아하는 최모나에게 젤리를 주면 진심으로 기뻐하며 좋아했는데, 이찬희는 그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시간이 나면 자연스럽게 병원과 가까운 편의점을 오는 게 일과가 됐다.

“디스 하나 주세요. 아! 그리고 저 즉석 복권도 두 장, 아니 다섯 장 주세요.”

“웬일로 복권을 다 사세요? 뭐 좋은 꿈이라도 꾸셨나 보네.”

“예. 좋은 꿈 꾸었습니다. 내가 꿈에서 똥통에 빠지는 꿈을 꾸었거든요.”

“그래요? 기가 막힌 꿈을 꾸셨네.”

똥통에 빠졌다는 다른 손님의 말에 젤리를 고르고 있던 이찬희가 귀를 쫑긋하며 집중했다.

“다들 주변에서 복권 사라고 하길래 로또까지 못 기다리겠고, 즉석 복권으로 한번 사 보려고요.”

“1등 되면 한턱 쏘세요.”

“당연하죠. 한턱이 아니라 두 턱 쏘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예, 안녕히 가세요.”

복권을 산 손님이 편의점을 나가고 몇 종류의 젤리를 다 고른 이찬희가 카운터로 향했다.

“계산할게요.”

“원장님도 잘 계시죠?”

“그럼요.”

“이 선생님, 요즘 젤리를 자주 사러 오시네. 젤리 좋아하세요?”

“아, 네. 달달하니 제법 맛있더라고요. 그런데 사장님. 똥이 나오는 꿈을 꾸면 복권 사는 거예요?”

“그럼요. 보통 똥 나오는 꿈을 꾸면 길몽이라고 해서 복권을 사거나 아니면 뭐 좋을 일이 있을려나 보다 하죠.”

“그러면 꿈이 아니라 실제로 똥을 뒤집어쓴 건, 그것도 좋은 걸까요?”

“아이, 말해 뭐해요. 실제 그러면 더 좋지.”

얼마 전 변비 환자의 관장을 하다 제대로 똥을 뒤집어쓴 이찬희는 뭔가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저도 복권 한 장 주세요.”

“선생님도 뭐 좋은 꿈 꾸셨어요?”

“그냥 재미로 한번 해 보게요.”

“맞아요. 복권은 원래 재미로 해야지 무슨 일확천금을 노리겠다는 그런 마음으로 하면 잘 안 된다니까. 내가 복권 긁을 때 팁 하나 알려 드릴까?”

“복권 긁을 때도 팁이 있어요?”

“내 주변에 거액에 당첨된 사람들이 꽤 있는데 그 사람들 얘기 들어 보면 공통점이 있더라고.”

“공통점? 그, 그게 뭔데요?”

분명 재미로 복권 산다고 했던 이찬희의 표정은 이미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처럼 편의점 사장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걸 긁을 때 본인이 직접 긁지 말고 주변에…….”

“주변에 뭐요?”

“주변에 운이 좋은 사람한테 긁게 했다는 거예요.”

“운이 좋은 사람이요?”

“그렇지. 왜 주변에 보면 막 하는 일도 잘되고 시험을 봐도 남들을 죽어라 공부해도 될까 말까 하는 건 막 한 번에 척척 붙고 이런 사람 한 명쯤 있잖아요.”

“있죠. 있네요.”

“그런 사람한테 긁어 달라고 해요. 그 기운이 복권에 들어간다고 하잖아요.”

“네, 좋은 팁 감사합니다.”

기분 좋게 인사를 마친 이찬희는 빠르게 병원으로 돌아가 곧장 태경을 찾았다.

“혹시 선생님 어디 계시는지 아세요?”

“조금 전에 식사하시러 식당 가셨는데요? 무슨 일이…….”

“이따 알려 드릴게요.”

접수처 직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식당으로 향하던 이찬희는 마침 밥을 다 먹고 나오는 태경과 마주쳤다.

“선생님? 식사는요?”

“방금 다 먹었는데 왜. 응급환자?”

“아니요. 그게 아니라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부탁? 나한테? 뭔데?”

“선생님. 정말 죄송하지만, 이거 한 번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이찬희는 가운 주머니에서 복권을 꺼내 보였다.

“뭐야, 갑자기 웬 복권이야?”

“그냥 재미 삼아 한 번 샀는데, 선생님께서 긁어 주시면 이게 뭐랄까 당첨이 될 거 같아서요.”

“아니,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좀 그렇긴 한데 그냥 시원하게 한 번 긁어만 주세요. 이게 원래 운이 좋은 사람이나 일을 잘하는 사람이 긁으면 그 기운이 복권에 들어간다잖아요.”

“이 선생님, 그게 사실인가요?”

접수처에 있던 최 팀장이 대화에 관심을 보였다.

“네, 팀장님. 제가 들은 건데 진짜 그런 게 있대요.”

“하긴, 우리 원장님 정도면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쌤 말을 들으니까 저도 궁금하긴 하네요.”

“보셨죠? 그러니까 선생님 이거 한 번만 긁어 주세요. 대신 제가 1등 되면 10% 드릴게요.”

“이거 1등이 얼만데?”

“5억이요.”

“오, 오억! 이 선생님,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

5억이라는 말에 최 팀장이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러다가 진짜 일등 당첨됐는데 갑자기 병원 그만두시거나 연락 두절 되거나 뭐 그러면 안 됩니다.”

“팀장님도 참. 제가 어디 그럴 사람으로 보이세요? 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잘 아시잖아요.”

“그건 그렇죠. 원장님? 복권 긁어서 한 번에 오천이면 할 만한데요?”

“선생님, 제가 진짜 드린다니까요.”

“이 선생이야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팀장님까지 왜 그러세요. 복권 일등 되기가 하늘의 별 따는 거보다 힘들어요.”

“원장님 말씀이 맞는데 그냥 재미 삼아 한 번 긁어 보세요.”

“이 쌤이 하도 저러시니까 우리도 궁금한데요?”

이찬희와 최 팀장뿐만 아니라 접수처 직원들까지 한마디씩 거들자 태경은 마지못해 복권을 긁어 보기로 했다.

“좋아. 대신 정말 1등 되면 10%나 안 줘도 되니까, 이 선생이 직원들한테 선물이나 하나씩 돌리는 거로 하자.”

“물론이죠. 하나가 아니라 두 개씩도 드릴 수 있어요.”

“정말요? 이 쌤, 전 그럼 최신 핸드폰 바꿔 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1등 되면 원하는 선물 다 해 드릴게요.”

“이 쌤 진짜 됐으면 좋겠다.”

“나도.”

모두의 기대가 부푼 가운데 이찬희가 복권을 꺼내 접수처 테이블 위에 놓았다.

“여기 복권이요.”

“나 동전 없는데?”

“동전도 여기 있습니다.”

이찬희는 편의점에서 바꿔온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태경에게 건넸다.

슥- 슥-

태경이 동전을 잡은 손으로 시원하게 복권을 긁자 속에 가려졌던 그림이 점차 드러났다.

“……!”

그러자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이찬희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놀란 토끼처럼 변했다.

“마, 마…… 말도 안 돼.”

“이 쌤? 왜 그래요? 설마 진짜 일등이에요?”

“5억?”

“그건 아직 모르겠는데 그림이 같아요.”

태경이 긁은 복권에는 축구공 모양의 똑같은 그림 두 개가 보였다.

“어머! 그림이 똑같네.”

“일단 당첨은 확실하네요.”

“그래요? 그림이 똑같으면 당첨인가요?”

곁에 있던 직원들 모두 상기된 표정과 달리 태경의 표정은 태연했다.

“그림이 같으면 일단 당첨은 확실해요. 원장님 복권 사 본 적 없어요?”

“살면서 복권을 사 본 적이 없네요.”

“정말요? 뭔가 정말 될 거 같은데요?”

“다들 질문은 나중에 하시고, 선생님 빨리 나머지도 긁어보세요.”

마음은 이미 5억에 다가간 이찬희가 발을 동동 굴렀다.

“선생님, 어서요!”

그렇게 이찬희의 재촉에 당첨 금액이 나온 부분을 동전으로 살짝 긁던 바로 그때였다.

“원장님!!”

접수처 안쪽 사무실에 있던 임정숙 간호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태경을 불렀다.

“지금 바로 전화 좀 받아 보셔야 할 거 같아요.”

“119인가요?”

“아니요. 교도소요.”

교도소라는 소리에 복권에 정신이 팔려 있던 직원들은 일제히 임정숙 간호사를 쳐다봤다.

“교도소요?”

“네, 연손 교도소라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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