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59화 (358/472)

359화. 주의 사항

“아니요. 교도소요.”

교도소라는 소리에 복권에 정신이 팔려 있던 직원들의 일제히 임정숙 간호사를 쳐다봤다.

“교도소요?”

“네, 연손 교도소라고 했어요.”

“……!”

‘연손 교도소’라는 말에 태경은 얼마 전 눈 밑에 자상으로 봉합하고 갔던 교소도 의사 이지국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치료를 다 받고 난 뒤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선생님, 초면에 실례지만 제가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말씀하세요.’

‘교도소에서 제소자들을 진료하다 보면 그 안에서 진료가 힘든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그럴 때 선생님께서 혹시 제소자들 봐 주실 수 있는지요?’

‘네. 그러세요.’

교도소 안에 있는 의무실은 의료 장비가 잘 갖춰진 곳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곳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교도소 내 의료 장비가 잘되어 있다고 해도 제소자의 몸 상태에 따라 진료가 힘든 경우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태경도 그 사실을 알기에 이지국이 어렵게 한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처음 우리병원을 맡기로 했을 때, 병원 근처에 교도소가 있다는 걸 알고 언젠가 제소자 환자가 올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지국의 부탁이 난감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여보세요. 김태경입니다.”

접수처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온 태경이 수화기를 들며 말하자 이지국의 목소리가 바로 이어졌다.

-선생님, 연손 교도소 이지국입니다.

“네, 선생님. 말씀하세요. 환자 건인가요?”

-네. 맞습니다. 저희 제소자 중에 한 명이 다른 제소자들로부터 폭행을 당했어요.

“지금 외상이 어디 어디 있습니까?”

-사실 온몸에 멍이 있고 열상도 있는데, 이 친구가 걷지를 못하고 지독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어요.

이지국은 상당히 미안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현재 교도소 내 의료기기가 충분하지 않아서 좀 협조를 구하고 귀원으로 이송할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네, 언제든지 오세요. 그 환자 제가 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준비 마치는 대로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제소자는 현재 의식이 있나요?”

-네, 의사소통은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 서둘러 오시고요, 환자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들 그러니까 과거에 앓았던 병이 있으면 알려 주세요.”

-네, 인적사항 다 들고 가겠습니다. 선생님, 이 친구가 행실도 바르고 아주 모범수입니다. 모쪼록 잘 좀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지국은 통화를 마치면서 옆에 있던 교도관에게 수화기를 넘겼다.

-안녕하세요. 전 교도관입니다. 다른 게 아니라 일단 몇 가지 알려 드릴 사항이 있어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네, 말하세요.”

교도관은 일단 급한 대로 1137번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전달했다.

“알겠습니다. 저도 각별히 신경 쓰도록 할게요.”

교도관과 전화를 끊은 태경은 곧장 임정숙 간호사와 최 팀장 그리고 이찬희까지 사무실로 불렀다.

교도소라는 단어에 심각해진 이찬희는 가운 주머니에 넣은 복권의 당첨 금액 여부는 이미 잊은 듯했다.

“원장님, 교도소에서 연락이 다 오고…….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환자 이송 건이에요?”

임정숙 간호사와 최 팀장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연이어 물었다.

“네, 환자 이송 건 맞아요. 근처에 있는 연손 교도소에서 제소자들끼리 폭행 사건이 있었나 봐요.”

“어머! 세상에.”

“교도소가 이래서 무섭다니까요.”

“의무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직접 연락하셔서 환자 관련 부탁을 했어요. 그래서 곧 환자가 이송 올 겁니다.”

“그런데 원장님. 환자가 어떤 제소자인지…….”

이찬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 그래도 지금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장기 복역수에 교도소 내에서는 행실이 바르고 모범수로 교도관들은 물론 제소자들도 좋아하나 봐.”

“그래요? 다행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난 교도소에서 환자가 온다는 소식 듣고 무서운 사람이면 어쩌나 살짝 쫄았다니까요.”

“모범수에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는 거 보니까 중범죄자는 아닌 거죠?”

“그게…… 그 사람 죄목이 살인이래요. 칼로 사람을 무참히 살해했답니다.”

살인이라는 말에 세 사람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어졌다.

아무리 병원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라도 이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여러 사람들을 겪으며 그 안에서 인간쓰레기라고 불릴 정도의 사람도 많이 겪었다. 그래서인지 어떤 유형의 환자가 와도 우리병원 직원들은 대처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살인자는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람으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 살인이요?”

“원장님, 그러니까 지금 우리 병원으로 오고 있는 제소자가 살인자라는 말씀이죠?”

“네, 맞아요. 병원에 환자로 오는 거고 의료진 역시 그 사람을 환자로 보는 건 같지만, 그래도 신경 써야 하는 건 사실이에요. 지금이야 바른 생활하는 모범수라고 하지만 흉악범으로 교도소에 들어온 건 사실이니까요. 병동에 입원 환자들과 보호자도 있고 그중에는 어린아이들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다들 잘 들으세요.”

태경은 세 사람에게 각자 주의사항과 함께 병원 내 직원들에게 알릴 전달 사항을 전했다.

“일단 이 선생은 곧장 응급실로 가서 바이탈 흔들리면 바로 처치할 수 있게 기도삽관이랑 승압제 준비하라고 해. 의식은 있는 상태라고 했지만, 혹시 모르니까 준비하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바로 전신 CT 촬영해서 외상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수술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니까 스탠바이하고 있어. 환자들이 놀라지 않게 다들 언행에도 조심하라고 전해.”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오더를 들은 이찬희는 바로 응급실로 향했다.

“최 팀장님은 장 요원님과 함께 보안에 각별히 신경 써 주세요. 교도관들이 동행하겠지만 그래도 환자 도착하면 장 요원님 응급실 쪽에 배치해 주시고요.”

“네, 원장님.”

“임 선생님은 병동 담당 간호사들에게 전달해 주시고 역시나 환자들 알지 못하도록 말하는 데 주의시켜 주세요. 그리고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오늘은 환자들 병동 벗어나지 않도록 해 주시고, 전달 끝나고 응급실로 와 주세요.”

“네, 원장님.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사무실을 나가고 태경도 응급실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뒤, 우리병원 내 모든 직원이 1137번의 존재를 알게 됐다.

“살인자요!”

임정숙 간호사에게 소식을 전해 듣던 병동 담당 간호사 중 한 명이 저도 모르게 목에 힘을 주어 되물었다.

“목소리 낮춰.”

“어머, 죄송해요. 제가 너무 놀라서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나 봐요.”

“수 쌤, 그러니까 지금 우리 병원에서 교도소에 있는 사, 살인자가 온다는 거죠?”

“그래. 근데 그 단어 자꾸 꺼내지 마.”

“쌤들 너무 긴장하시는 거 아니에요?”

막내 간호사가 잔뜩 얼어붙은 선배들을 보며 말했다.

“자기는 겁 안나?”

“네. 범죄자라고 해도 지금은 교도소에 복역 중인 사람이고 교도관분들도 같이 온다고 하니까 그렇게 겁낼 건 없는 거 같아요.”

“어머? 모르는 소리 마. 영화 못 봤어. 그런 사람들이 교도소를 벗어나면 꼭 문제가 생기고 사람이 죽…….”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이상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간호사들의 대화를 임정숙 간호사가 중지시켰다.

“다들 그만하고 아까도 말했지만, 환자들 잘 살피고 병동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해. 무엇보다 항상 말조심하고 환자들 없다고 그냥 말하지 말고. 알았지?”

“네, 수 쌤.”

“그리고 혹시 오 선생 못 봤어? 콜을 계속 했는데 이상하게 전화를 안 받네.”

임정숙 간호사는 한 달 전 새로 들어온 남자 직원 오창규를 찾고 있었다.

아무래도 힘이 좋은 남자 의료진이 필요할지 몰랐기에 그를 응급실로 호출하려 한 것이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전화를 또 안 받네. 응급실 내려가 봐야 하는데…….”

“오 쌤이라면 아까 저쪽에서 본 거 같은데 제가 찾아볼까요?”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그럼 제가 찾아서 응급실로 가라고 전할게요.”

“그래. 고마워.”

임정숙 간호사가 응급실로 발걸음을 옮기고 후배 간호사가 오창규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간호사는 그를 찾지 못했다.

“이상하다. 분명 아까 저쪽으로 가는 거 봤는데…….”

담당하는 병동은 물론 다른 병동까지 전부 찾아 봤지만, 오창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수 쌤, 전데요. 계속 찾아봤는데 오 쌤이 안 보이네요.”

-알았어. 수고했어요.

임정숙 간호사에게 전화 걸어 병동에는 안 보인다는 말을 전했다.

“이상하네. 조퇴했나?”

“누구? 오 선생 말하는 거예요?”

병실에서 환자를 보고 나오던 의진이 물어보자 간호사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지금 다들 그 교도소 이송 환자 때문에 긴장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오 쌤도 응급실에 스탠바이해야 하는데 콜도 안 받고 안 보여서요.”

“나 내려가는 길인데 내가 내려가면서 한번 찾아볼게요. 그럼 수고해요.”

“네. 쌤도 수고하세요.”

그렇게 잠시 뒤, 의진은 우연히 오창규를 찾을 수 있었다.

“어!”

복도를 지나가다 익숙한 실루엣에 걸음을 멈추고 가던 길을 되돌아가서 자세히 보니 오창규였다.

“저기 있네? 오 선생?”

“……!”

복도를 서성이던 오창규는 의진의 소리에 어깨를 움찔한 뒤 고개를 돌렸다.

“정 선생님.”

“아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예요? 계속 찾았는데…… 어라!”

오창규에게 말하던 의진의 시야에 한쪽이 살짝 들떠 있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저게 왜 저러지? 오 쌤 저거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게요. 아무래도 시설과에서 공사 중인 거 같은데요.”

“새로 교체 중인가……. 빨리 고치라고 해야겠네.”

“선생님, 저 이따 시설과 가야 하는데 제가 말하겠습니다.”

“그래요. 그건 그렇고 수 쌤이 오 선생 계속 찾았는데 어디 있던 거예요. 콜 여러 번 했다던데.”

“죄송합니다, 선생님.”

“무슨 일 있어요?”

시무룩한 답변에 의진이 고개를 돌리자 오창규의 표정이 어쩐지 좋지 않아 보였다.

이제 우리병원의 식구가 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지만, 오창규는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었기에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리고 이건 임정숙 간호사도 마찬가지였다.

연락이 계속 안 되고 찾아봐도 없다는 간호사의 말에 임정숙 역시 걱정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이유는 병원에서 오창규가 행실도 바를뿐더러 워낙 성실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오 선생, 표정이 안 좋은데 무슨 일이에요?”

“실은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요, 선생님.”

“정말? 어디가 얼마나 안 좋은데요?”

몸이 안 좋다는 말에 의진은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어제 퇴근하고 계속 설사에 시달렸는데 좀 괜찮아서 그냥 출근했거든요. 그런데 아까부터 또 신호가 와서 계속 화장실에 있다가 방금 나왔어요. 계속 콜이 들어왔는데 도무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못 받았습니다.”

“그래서 연락이 안 됐구나. 좀 괜찮은 거예요? 하이포텐션(hypotension, 저혈압)은 없어요?”

“혈압은 괜찮은 거 같아요.”

“장염인가 보네.”

“네.”

“그러지 말고 수액 맞고 씨프로플록사신(ciprofloxacin, 세균성 장염 시 복용하는 경험적 항생제) 그냥 예방적으로 먹어 두도록 해요.”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 선생, 지금 일할 수 있겠어요?”

“네, 쏟아내고 나니까 오히려 괜찮습니다.”

“다행이다. 지금 병원에 비상 아닌 비상이 걸려서 빨리 응급실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그 환자 벌써 왔어요?”

의진의 말을 듣고 있던 오창규가 아무렇지 않게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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