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화. 왜 불이 꺼져 있지?
“잘 챙겨 주셨는데 두 분께 죄송합니다. 절 좀 이해해 주세요.”
여전히 잠에 취해 있는 교도관들에게 꾸벅 인사를 한 1137번은 혼잣말로 속삭인 뒤 태연하게 병실을 나갔다.
드르륵-
그는 조용히 병실 문을 열고 나와 고요한 병동 복도를 걸어갔다.
중간에 다른 병실에서 나온 환자가 복도를 지나갔지만, 환자 눈에는 보호자로 보였을 뿐이었다.
또한 병실 위치상 스테이션에 있는 간호사들도 그가 나오는 걸 보지 못했다.
그렇게 복도 끝까지 걸어가던 1137번은 코너를 돌아 계단을 내려가기 전 옆쪽 벽에서 걸음을 멈췄다.
다시 뒤를 돌아 코너에서 얼굴만 살짝 내민 채 병동 복도를 살폈다. 새벽 시간이라 그런지 복도는 조용했다.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1137번이 이번에는 계단 쪽에 서서 아래를 살짝 내려다봤다.
그러자 오창규의 모습이 보였다.
“……!”
1137번과 오창규는 아주 잠시 동안 말없이 서로를 쳐다봤다.
두 사람은 아주 오랜만에 얼굴을 봤다. 둘 다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많은 표정이었다.
서로의 얼굴에는 사연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누구도 말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갈게.”
1137번이 엄지를 추켜세우고 자신이 서 있는 벽 뒤쪽을 가리키며 입 모양으로 말하자 오창규 역시 입 모양으로 화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세요.”
그렇게 들리지도 않은 대화를 한마디씩 주고받은 뒤, 1137번은 커터칼을 꺼내 벽에 바짝 다가갔다.
그곳에는 어제 오창규와 의진이 보고 있던 낡은 환풍구 입구가 있었다.
우리병원은 연식이 오래된 건물이라 건물 안에 환풍구가 몇 개 있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환풍구는 밖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들떠 있는 환풍구 입구를 보며 시설과에 알리려는 의진에게 본인이 직접 말하겠다고 하던 오창규는, 당연하게도 시설과에 알리지 않았다. 그래야 1137번이 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1137번은 커터칼을 이용해 환풍구 입구에 있는 나사를 천천히 풀어 나갔다.
오창규가 미리 손을 써 둔 덕분에 이미 반쯤 풀어진 나사는 아주 쉽게 풀어졌다.
또르르-
마지막 나사가 바닥에 떨어져 굴러가고 1137번은 꽤 무게가 나가는 입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는 팬티를 제외한 옷과 신발, 모자를 벗었다.
“후우!”
마음의 준비를 하듯 길게 숨을 한 번 내쉰 1137번은 어두운 환풍구 안쪽을 쳐다봤다.
그는 오늘 이 환풍구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갈 생각이다.
교도소에서 같은 방 제소자들에게 몰매를 당했던 것도, 오래전에 사고로 수술했던 척추를 또다시 수술하려 했던 것도 전부 병원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려는 계획이었다.
“후!”
다시 한번 짧게 호흡을 뱉을 그는 환풍구 안쪽에 두 손을 잡고 힘을 준 뒤, 그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건장한 성인 남자가 들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평균 키보다 작고 마른 1137번에게는 가능했다.
그가 환풍구 안으로 들어가자 계단에 있던 오창규가 올라왔다.
그리고 1137번이 입고 있던 옷에서 커터칼과 핸드폰, 진통제를 꺼내 하나씩 안쪽으로 살짝 힘을 주어 밀어 넣었다.
탁- 탁-
곧이어 손가락으로 환풍구를 치는 듯한 짧은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모든 물건을 받았다는 사인이었다.
탁- 탁-
오창규 역시 손가락으로 안쪽을 짧게 치며 사인을 보낸 뒤, 가져온 쇼핑백 안에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를 챙겨 넣었다.
그 뒤, 환풍구 입구를 원상 복귀시킨 그는 아무렇지 않게 계단을 내려갔다.
* * *
응급실-
“최 쌤, 9번 베드 환자분 식염수 다 사용했어요.”
“네, 지금 갑니다.”
챠륵-
“……!”
베드 커튼을 열던 최모나는 잔뜩 젖은 머리카락으로 물을 뚝뚝 흘리며 서 있는 환자를 보고 순간 놀랐다.
“환자분 왜 일어나셨어요?”
“아. 그게 이이가 소변이 마렵다고 해서요. 화장실 좀 다녀오려고요.”
여전히 머리카락과 얼굴에서 물기가 흐르는 남자는 응급실에 오기 전, 집에서 아내 몰래 야식을 먹고 설거지하고 있었다.
-제목과 가수를 다시 말해 주세요.
다이어트 중 새벽에 몰래 먹은 꿀맛 같은 라면에 콧노래를 부르던 남자의 소리에 눈치 없는 인공지능 스피커가 반응한 것이다.
당황한 남편은 아내가 깰까 싶어 빨리 전원을 끄려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는데, 넘어지면서 손에 쥐고 있던 세제 묻은 수세미가 눈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생각보다 눈에 이물질이 들어간 사람들이 응급실에 오는 경우가 꽤 있었다.
샴푸, 린스는 물론 자동차 워셔액이 들어간 경우도 있었고, 공업용 접착제가 들어간 경우도 있었다.
응급실에 온 남자는 베드에 누워 가느다란 호스를 이용해 식염수로 눈을 계속 씻어 내고 또 씻어 냈다.
눈에 들어간 세제를 최대한 빼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따가워 혼났는데 한참 동안 식염수를 눈에 흘러내리니 처음보다 눈이 편안해졌다.
“좀 괜찮으세요?”
“네. 선생님.”
“이 사람 화장실에 걸어갈 정도면 이제 안 아픈 거 같아요.”
“잠깐만요. 제가 좀 보겠습니다.”
최모나는 남자의 눈을 꼼꼼하게 살폈다.
“확실히 처음보다 좋네요. 그래도 내일 반드시 안과 가 보셔야 합니다.”
“네, 오전에 바로 가려고요. 이제 집에 가도 되나요?”
“네, 수납하고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이그! 당신 진짜 큰일 날 뻔했어.”
“새벽에 괜히 나 때문에 당신까지 고생했네요. 미안해.”
“고생은 당신이 했지. 그러니까 앞으로 야식 좀 먹지 마. 당신, 진짜 살 빼야 해.”
“알았어. 진짜 야식도 끊고 운동도 열심히 할게.”
젊은 부부의 애정 어린 대화를 뒤로한 채 스테이션으로 향하는 최모나는 이상한 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하! 어어! 에!”
스테이션에서 태블릿 PC를 보는 이찬희는 이상한 추임새를 내고 있었다.
“그건 무슨 소리야?”
환자를 보고 온 최모나가 컴퓨터 자리로 이동하며 물었다.
“개모나야~ 나 이거 때문에 돌아 버리겠어.”
보고 있던 태블릿을 얼굴 높이까지 들은 이찬희는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료?”
“어. 자료. 문제의 자료!”
이찬희가 보고 있는 건 간이식 관련 자료들이었다.
요즘 이찬희와 최모나는 틈만 나면 간이식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태경이 주는 자료와 각종 논문을 열심히 보는 중이었다.
외과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수술이기에 두 사람 다 공부하는 게 쉽지 않겠다는 각오는 하고 있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태경이 스승이었는데 어찌 보면 각오는 당연했다.
그런데 이건 예전에 이찬희가 한참 숙제하던 그런 양이 아니었다.
어렵기도 하고 양도 많고 게다가 중간중간 불쑥 튀어나오는 태경의 날카로운 질문까지 장난이 아니었다.
마치 시험을 앞둔 학생이 된 거 같았다.
그래서 요즘은 잠깐 궁둥이 붙일 시간이 있을 때도 가능하면 태블릿을 달고 살아야 안심이 됐다.
“최 쌤? 너도 자료랑 논문 봤지?”
“봤지. 어렵던데?”
“내 말이. 역시 LT(Liver Transplantation, 간이식)인가? 그래도 환자를 생각해서 열심히 해야 하는데…….”
“왜? 머리에 안 들어와?”
“어. 오늘따라 유난히 더 그러네.”
“그럼 억지로 보지 말고 오늘은 그만 봐. 그렇게 붙잡고 있다고 머리에 안 들어오잖아. 머리 좀 식히고 나중에 다시 봐.”
“그러고 싶은데 선생님이 질문하셨다가 대답 못 하면 이거 자필로 써 와야 하는데, 그거 완전 끔찍하거든.”
“하면 어때. 쓰면서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되지.”
“오! 말하는 거 보니까 개모나도 대답 못 해서 자필로 좀 썼나 보네.”
“아니! 난 한 번도 대답 못 한 적 없는데.”
눈 하나 꿈적하지 않고 시니컬한 표정으로 답하는 최모나였다.
“역시, 저래야 내 여친 개모나지. 멋있어. 너무 멋있어.”
이찬희는 얼굴 근육을 잔뜩 찡그리고 혼잣말하며 태블릿으로 고개를 돌렸다.
“7번 베드 CT 결과 정 선생한테 알려 주세요.”
“네, 원장님. 아! 그리고 201호 정기옥 할머님 또 콜 왔는데 어떡할까요?”
스테이션으로 들어오며 말하는 태경에게 임정숙 간호사가 난감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언제 왔는데요?”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지금 괜찮으니까 제가 올라갔다 올게요.”
정기옥이란 환자는 70대로 얼마 전, 대장 게실염으로 입원한 환자였다.
게실염은 쉽게 말해 대장 바깥에 풍선처럼 튀어나온 주머니 게실에 염증이 생긴 것이다.
아랫배 통증 때문에 충수염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 신중하게 살펴봐야 한다.
증상이 심할 경우 수술을 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약물치료를 한다.
다행히 증상이 심하지 않은 환자는 입원하여 약물 치료를 받고 있고, 점점 호전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할머니가 상당한 건강 염려증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주 사소한 것에도 예민하게 생각하고 의료진을 수시로 호출했다.
게다가 간호사가 하는 말은 귀담아듣지 않고 반드시 의사에게 직접 물어봐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다 보니 새벽에도 호출할 때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의료진의 말은 순한 양처럼 잘 들었다.
“오늘만 벌써 회진 빼고도 두 번째인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요. 환자분이 건강 염려증 때문에 그래요.”
“안 그래도 저번에 보호자분이 어머님 건강 염려증 때문에 선생님들이 고생하신다고 미안해하시더라고요.”
“건강 염려증이 있는 환자한테는 의료진이 신뢰감을 주는 게 도움이 되니까, 바쁘지 않으면 잘 들어 주는 것도 좋죠. 그럼 갔다 올게요.”
“저기, 선생님?”
태경과 임정숙 간호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찬희가 돌아서는 태경을 불렀다.
“왜?”
“그 환자에게 제가 갔다 오겠습니다.”
“이 선생이?”
“예. 아까 응급 수술 잡혀서 정신없으셨을 텐데 이럴 때 조금 쉬셔야죠. 그리고 정기옥 할머니 잠 다 깬 거면 말 진짜 많이 하시거든요. 그러면 더 힘드시잖아요.”
“이 쌤이 원장님 생각을 많이 하네요.”
“그럼요. 전 우리 선생님 바라기잖아요. 해바라기가 해를 보고 크듯이 저, 이찬희는 선생님을 보고 크는 거죠. 하하!”
“뭔가 이상한데?”
“이상하긴요. 후배의 마음이죠.”
“알았어. 갔다 와.”
“네, 선생님.”
허락이 떨어지자 이찬희는 빠르게 일어나 응급실을 나가려 했다.
“잠깐! 이 선생?”
그런데 고작 2미터도 못 간 발걸음이 태경의 부름에 멈추고 말았다.
“네, 선생님.”
“이리 와 봐. 그냥 내가 가는 게 낫겠어. 이 선생 여기 있어.”
“예?”
태경은 이찬희가 보고 있던 태블릿을 보고 질문을 피하려고 병동으로 가려는 후배의 생각을 간파했다.
“내가 갔다 올 테니까 여기 있으라고.”
“방금 저보고 갔다 오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왜긴 왜야. 내가 질문할까 봐 도망가는 거 모를 줄 알았지?”
“……!”
“어머, 이 쌤 표정 보세요. 진짜 맞나 보네.”
임정숙 간호사의 말대로 이찬희는 정곡을 찔린 표정이었다.
“병동 갔다 와서 질문할 테니까 앉아서 보던 거, 마저 봐. 틀리면 오늘은 숙제 두 배야.”
“아니, 저기……. 선생님? 그런 거 아니에요. 오해세요.”
두 배라는 말에 이찬희가 간절하게 불렀지만, 태경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동으로 향했다.
스르륵-
병동에 올라온 태경은 호출한 환자가 있는 병실을 찾았다가 바로 다시 나왔다. 그리고 스테이션에 있는 간호사에게 향했다.
“정기옥 환자 잠들었어요?”
“아, 네. 원장님. 제가 다시 수 쌤한테 연락드린다는 게 깜빡했어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오늘은 제가 하는 말을 들으시더라고요. 혈압 한 번 재달라고 하시더니 잠 온다고 주무신다고 해서 다시 찾아가 보니까 진짜 코까지 골면서 푹 주무시던데요?”
“환자분이 마음이 좀 편해지셨나 보네. 다른 거 뭐 특별한 건 없죠?”
“네, 원장님.”
“알겠어요. 수고해요.”
스테이션에서 멀어진 태경은 이왕 병동에 올라온 김에 1137번이 있는 병실로 걸음을 옮겼다.
두 교도관이 돌아가면서 쪽잠을 자는 걸 알았기에 괜찮은지도 보려 했다.
그렇게 병실 앞에 온 태경은 문에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투명 창으로 안쪽을 쳐다보려 하다 움찔했다.
“……!”
병실 안에 불이 완전히 꺼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병실과 달리 제소자 때문에 수면등을 끄지 않은 병실이었다.
“오늘은 왜 불이 꺼져 있지?”
게다가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반드시 깨어 있어야 하는데 불이 꺼져 있는 게 이상했다.